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72
72화
싸늘해진 분위기 속에서 최준호가 손을 들었다.
“이건 편집이 필요해 보이네요. 다시 생각해 보니 빌런 취급은 과한 거 같습니다. 계산을 실수할 수도 있고 추징금이 발생해서 납부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것까지 지키지 않으면 범죄겠죠.”
“아, 네.”
고예진이 안도하면서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곧 세계 초능력자 연합의 날 행사가 일본에서 열린다고 들었는데요. 최준호 초인님도 참석하실 생각이신가요?”
“그 부분은 현재 고민 중으로······.”
세금 납부와 동떨어진 주제였지만 따로 편집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흐름이었다.
그 과정을 지켜보던 이세희가 자리를 벗어났다.
“후우!”
조금 전 들은 말을 떠올리면 모골이 송연해지는 기분이다.
모든 기업은 세금을 아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합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때로는 불법을 자행할 정도로 기업은 세금과 전쟁을 벌인다. 그러다 실수가 크게 터지면 추징금을 내기도 하고, 때때로 기업 오너가 감옥에 가기도 한다.
그건 신성그룹도 적용된다. 아니, 재계 서열 1위기에 이 분야에서 가장 적극적이다. 털면 가장 많이 나올 거고.
사무실로 돌아온 이세희가 곧장 이영탄을 불러 지시했다.
“세금 납부를 모든 면에서 검토하도록 해요. 최대한 합법이라는 틀 안에서, 트집이 잡히지 않게요.”
“팀장님, 이건 다시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이게 옳아요.”
이영탄은 거듭 설득하려 들었지만 이세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로 인해 천문학적인 금액이 지출되겠지만 그건 감수할 수 있는 출혈이다.
최준호와 함께 하기 위한 비용이라 생각하면 되니까.
어설프게 아끼려 들다가 틀어지면 그게 더 큰 손해다.
“돈에 욕심 없는 사람이랑 사업하려니 이런 게 힘드네.”
이런 해프닝이 벌어진 이유를 떠올리고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 * *
납세 관련 인터뷰는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고예진이 자극적인 제목을 끌어내고, 진세정의 디자인이 더해지니 인터넷 기사 댓글란은 찬사로 뒤덮이고 있었다.
내야 할 세금을 낸 것뿐인데 이게 열광할 이야기인가?
솔직히 최근 흐름은 이해하기 힘든 면이 존재했다.
“포기하고 받아들여. 그럼 편해져.”
이에 대해 윤희는 간단하게 정리해줬다.
내가 평소와 달라진 게 없다면 나머지는 주변 사람이 알아서 해 줄 거란 의미였다.
백날 머리를 굴려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 평소대로 살라는 게 윤희의 주문이다.
그게 낫겠지.
그나저나 윤희가 내일 부모님 집에 방문한다던데 아이돌 덕질하던 걸 제보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그리고 세금 납부에 대한 의문은 내가 국가수호국으로 출근했을 때 정주호가 풀어 줬다.
“그만큼 해야 할 일도 안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지. 세금이란 게 내려면 배가 아프거든.”
“국장님도요?”
“나도 사람인데 안 그러겠냐? 매년 환급 줄어드는 거 생각하면 배 아파 죽겠다. 어째 매년 더 뜯어 가는 거 같냐, 어우.”
돈에 전혀 욕심 없어 보이는 정주호도 세금 내는 걸 아까워하는 걸 보면 돈 문제는 내가 특이하긴 한가 보다.
혈종일 때 도피생활을 오래 한 부작용인가.
“그리고 제대로 세금 내지 않은 사람을 빌런으로 칭하지 않은 것도 잘한 일이야.”
“그렇게 생각하세요?”
“어. 세법이라는 게 얼마나 복잡한데. 나도 잘 모르던 시절에 제대로 신고도 안 해서 전화오고 그랬어. 이게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야. 까딱하면 합법이던 게 불법이 되어 버리는데 그 사람들을 다 빌런 취급해 버리면 세상 사람의 절반 이상이 빌런이 될걸? 세상 사람 반을 적으로 돌리는 건 피해야지.”
함부로 단정 짓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많다는 의미로군.
그러다 눈이 마주친 정주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근데 네 인터뷰 보고 식겁한 사람들 좀 있을 거다. 화들짝 놀라서 납부하는 사람들이 좀 있을지도.”
“에이, 설마요.”
“진짠데? 넌 네 말 한마디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구나.”
한다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나로 인해 널리 알려졌단다.
말을 했으면 행동으로 옮기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래서, 요즘 어때?”
“어떤 게요?”
“팬들 늘어난 거 말이야. 좋지 않냐?”
“···나쁘진 않습니다.”
미움 받는 것보다 환호 받는 게 좋다.
그 이유를 잘 모르겠어서 문제지만 싫진 않으니까.
낯선 기분이었지만 내가 빌런이 되지 않은 걸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주변을 좀 더 둘러보게 되었고.
“흐흐, 아이돌보다 인기가 더 많던데.”
정주호의 태도가 장난식이라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고운 걸 알려 줘야겠군.
“이번에 청장 취임 축하드립니다.”
“···그거 다 네놈 때문이다.”
싱글벙글 웃던 정주호의 표정이 바로 일그러졌다. 효과 하나는 확실하군.
근데 자기 능력이 뛰어나서 승진한 걸 왜 나한테 그러는지 모르겠다.
정주호는 본래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지만 빌런 소탕 작전 당시 완벽한 지휘 능력은 물론이고, 이번 부산시 장악 작전 또한 완벽하게 해내서 새로 설립될 청장으로 내정되었다.
기존 삼국 위에 서는 단체였고, 각성자안보실장과 장관과 함께 쓰리톱 체제의 일원이 되는 거였다.
모두 정주호가 이뤄 낸 성과였다.
난 대통령의 질문에 거든 거 하나뿐이고.
근데 왜 내 탓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네가 천 실장 그 양반하고 짝짝꿍만 안했어도 여기에서 편히 시간을 보냈을 거야!”
“낭중지추라던데, 그럴 리가요.”
“네놈, 네놈만 아니었어도 가정에 좀 더 충실할 수 있었어.”
반응이 격렬해도 너무 격렬하군.
난 오히려 감사 인사를 받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감사 인사는커녕 삿대질만 당하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아는 것과 사실이 많이 달랐다.
“사모님은 국장님이 승진하는 거 좋아하시던데.”
“···네가 내 와이프 생각은 어떻게 알아?”
“다현이 통해서 연락이 왔거든요. 감사하다고. 근데 국장님이 말씀하시는 거하고 얘기가 다르네요? 사모님하고 삼자대면 한번 해 볼까요?”
“아니. 안 물어봐도 돼. 연락하지 마. 맞아, 와이프는 사실 엄청 좋아해.”
정주호는 사색이 되어서 속사포랩을 하듯 변명을 내뱉었다. 사모님 언급이 그렇게 놀랄 일인가.
그 모습이 유해 7단계 마물을 만난 뉴비 헌터 같아서 난 달래 주기 시작했다.
“그래도 한가한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청장 역할 잘 해내면 각성자안보실장이나 각성부장관이 될 수도 있고.”
“별로 되고 싶지 않거든? 그리고 난 정치적인 성향도 여당도 야당도 아니야. 다 마음에 안 들거든.”
중간에서 가늘고 길게 둘 다 욕하면서 해먹는 게 목표란다.
“그리고 청장이 되려면 귀찮아지는 게 인사청문회도 준비해야 된다.”
“구린 거라도 있어요?”
“···없거든. 근데 왜 묻냐?”
순간 움찔 몸을 떠는 게 보였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싶다가 어이없는 생각이 들어 웃었다.
“그냥 걱정해서 물어본 건데요?”
“너 같은 냉혈한은 내 목을 치고도 남아서 그래. 나 죽일 거면 고통 없이 보내 주겠다고 약속해라.”
“에이, 그동안 국장님하고 함께 한 시간이 있지 않습니까. 당연히 믿고 있습니다.”
“1년도 안 됐거든?”
그건 그러네. 워낙 사건사고가 많다 보니 시간이 꽤 흐른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잠깐 생각하고 있는데 정주호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나 보다.
“야, 보통 내가 이렇게 말하면 손 안 쓸 거라고 말하지 않냐? 어? 설마 다른 생각하는 거 아니지?”
이걸 받아 봐?
“용납하기 힘든 건수가 생기면 다시 생각은 해 봐야겠죠?”
“어? 진짜냐? 아니지? 야야, 어?”
“보고요. 그럼 전 가 볼게요.”
정주호가 날 붙잡으려 했지만 내가 벗어나는 게 빨랐다.
별일 없겠지.
* * *
난 대통령과 영부인, 천명국과 함께 식사자리를 가졌다. 그곳에서도 인터뷰 때 스치듯 지나갔던 단체 이름이 다시 언급되었다.
“세계 초능력자 연합이요?”
“각성자들에게 유명한 단체지. 영어로 줄여서 UPN이라고 부르고.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근데 저랑 딱히 연관 없는 곳이라 생각해서.”
“연관은 있지. 친해져서 나쁠 것도 없고.”
“실질적인 이득이 있습니까?”
“있지. 이곳에서 평가하는 것들이 여러 가지거든. 그중 하나가 세계 각성자 파워 랭킹인데 이게 국가 입장에서 은근히 중요하고.”
그런 것도 있나? 난 유치하기 그지없는 분류라 생각했지만 대통령의 말은 달랐다.
“세계 모든 국가의 각성자 전력을 순위로 나열한 거지. 예전 군사력 순위처럼 보면 되네. 현 시대에서 국격을 의미하는 지표지.”
대통령이 말하길, 세계 각성자 파워 랭킹의 척도는 각성자 숫자와, 고레벨 각성자 숫자, 해당 국가의 지원 액수와 시장 규모, 지리적 이점과 마물의 발생 빈도, 사냥 성과를 망라하여 추산한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인구나 규모에 비해 고레벨 각성자 숫자가 많고, 마물 등장 빈도가 상대적으로 적어서 세계 각성자 파워 랭킹 10위 안팎을 오갔다고 했다. 인구에 비해 대단한 순위라 할 수 있다.
역사상 최고 전성기일 때 순위는 8위였고, 그 후 9~11위를 왔다갔다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7위를 달성했지.”
“높네요.”
대통령의 말에 의하면 역사상 최고 전성기 아닌가?
좀 더 좋아해도 될 듯한데 표정에 불만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나치게 낮다고 항의했지.”
“왜죠?”
“세계 초능력자 연합에서 우리 최준호 초인이 홀로 누리를 사냥한 걸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어.”
세계 초능력자 연합에서 내가 누리를 혼자 잡은 걸 거짓으로 치부하고 인정하지 않는 중이라고 했다.
내가 잡은 걸 내가 잡았다고 한 건데 무슨 문제인지, 이상한 놈들이군.
“제대로 적용하면 대한민국의 각성자 파워 랭킹은 4위에서 5위까지 올라갈 수 있어. 상임이사국 이상이 된다는 이야기야.”
그건 모르고 있었다.
아무튼 나로 인해 순위가 널뛰기 한다는 건데, 솔직히 관심이 크게 가지 않았다.
순위가 높다고 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대통령의 생각은 다른가 보다.
“이번에 도쿄에서 세계 초능력자의 날 행사가 열리지. 한번 참가해 보는 게 어떻겠나?”
내가?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별로 다른 각성자가 궁금하지도 않고 도쿄라고 해도 멀리 갈 필요성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누리를 사냥한 것도 믿지 않는다던데, 불신으로 가득 찬 놈들만 봐 봤자 입맛만 떨어질 뿐이다.
시비 거는 녀석들 죽이느라 바쁠 것 같고.
“안 가면 안 됩니까?”
“······.”
순간 대통령과 천명국의 표정이 흐려지는 걸 봤다. 내가 가길 바랐나 보다.
오히려 내가 자리를 비우면 일처리에 구멍이 나서 안 좋은 거 아닌가.
내 시선을 눈치 챘는지 두 사람이 황급히 표정을 수습했다.
“음! 안 가도 상관없지만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맞습니다. 필수 방위를 맡은 초인을 제외하고 세계각지의 초인을 볼 수 있는 자리입니다. 앞으로 세상을 넓게 보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세상을 굳이 넓게 볼 필요가 있을까.
넓게 봐 봤자 드는 생각은 세상은 넓고 죽일 놈은 많다, 인데.
이건 좀 다른 건가?
아무튼 이렇게 권유한다면 이유가 있겠지.
“그럼 한번 가 보겠습니다.”
“정말인가?”
“예.”
왜 표정들이 환해지는 거지?
나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 * *
사람이라는 게 참 묘한 동물이라는 걸 느끼는 요즘이다.
진세정을 만나고 본격적으로 이미지를 관리하고, 사람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내 속에 여러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걸 느꼈다.
내 안의 혈종이 희미해지고 진짜 초인 최준호가 되어 가는 느낌.
그 전까지 초인이라는 것에 큰 애착도 깊은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날 지지해 주는 걸 보면서 생각이 달라지고 있었다.
괜히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보게 되고, 어려움에 처하면 도움을 줘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도 하고.
“그게 준호 씨가 빌런이 될 수 없는 이유에요.”
이세희의 말이 내게 힘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오늘도 여느 날처럼 초인콜이 와서 외곽 지원을 나갔다가 복귀하던 길이었다.
헬리콥터를 타고 복귀하던 중, 서울로 막 진입했을 때 눈에 걸리는 게 있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불쑥 치솟은 호기심이 지나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한 대위님, 먼저 복귀하세요.”
“예? 그럼 초인님은······.”
“저는 눈에 밟히는 게 있어서. 잠깐 내려갔다가 복귀하겠습니다.”
“초인님······!”
대답이 들려왔지만 나는 문을 열어 그대로 뛰어내렸다.
갑자기 하늘 위에서 나타나서인지 지면에 착지할 때 주변의 시선이 온통 모여 있었다. 난 개의치 않고 눈에 밟혔던 주인공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남매였다. 누나로 보이는 여자 아이는 12~13세 정도, 남자 아이는 7~8세 정도로 보였다.
“우와아아! 히어로다!”
남자 아이는 하늘 위에서 내려오는 날 보며 탄성을 터뜨렸지만 누나로 보이는 여자 아이는 경계심 어린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난 남매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내 시선을 잡아끌었던 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낡은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던 모습이다.
서울 안쪽이라고 해도 자유롭게 활보할 만큼 치안이 좋지 않다. 도시 내부에는 빌런들이 있고, 어린 아이들은 납치 대상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서울은 서울이다. 일할 능력이 되고 정상적인 세금 납부가 가능한 사람들이 모인 도시. 이런 곳에서 저런 차림새로 돌아다니니 사연이 있나 싶었다.
“너희.”
내 말에 움찔하는 둘.
“왜 그런 꼴로 돌아다니고 있냐?”
“······.”
“먹을 게 없어요! 저 배고파요!”
대답은 남자 아이에게서 나왔다. 여자 아이는 동생을 잡아끌면서 더 말을 못 하게 했지만 이미 다 들은 후였다.
먹을 게 없다고? 왜?
난 의아함이 들었다. 나라 사정이 예전만 못해도 최소한의 지원은 이루어질 텐데?
마물과 빌런이 활개 치는 시대에 서울 시민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이었다.
“지원을 안 해 주나?”
“자격이 안 된데요!”
“안 될 리가.”
“안 되니까 이렇게 구걸하러 돌아다니고 있죠.”
“그렇군.”
여자 아이의 뾰족한 말에 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의아함은 가시지 않았다. 서울은 정부의 가장 강력한 입김이 닿는 곳으로, 시민들이 난민화 되지 않도록 각별한 공을 기울이고 있었다.
시민이 난민이 되면 대부분 빌런에 가담하기 때문에 형편이 어려운 가정도 먹고 사는 건 가능하도록 지원해 준다. 그러니 남매의 말은 말이 안 된다.
“동사무소로 가자. 내가 문의해 줄게.”
“아저씨를 어떻게 믿고요?”
“누나, 저 형은 히어로야.”
경계하는 누나와 헤실헤실 웃는 아이를 보며 난 어깨를 으쓱했다.
“의심되면 좀 떨어져서 오던가.”
나는 앞장서서 남매와 함께 인근 동사무소로 가서 문의를 넣었다.
전산 자료를 조회해 본 담당 공무원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격이 안 되네요.”
“왜 안 되는 겁니까?”
“부양자가 있습니다. 부양자가 있는 집안은 지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일하다 다치셨어요. 당장 약값도 마련할 수 없어서······.”
내 시선을 받은 여자 아이가 말했다.
“그렇다는데요.”
“그래도 어렵습니다. 아버지가 다쳐도 어머니가 부양자로 올라가 있어서.”
“엄마는 도망갔어요.”
그래서 집에 일할 사람이 없으니 남매는 굶주리고 있고, 나라에서는 지원을 못 주고 있는 건가.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그럼 이제 지원을 받게 될······.
“전산상 부양자가 있어서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
“······.”
규정이 그렇단다. 담당자가 임의로 바꿀 수 없다고. 결국 큰소리쳤던 게 무색하게 빈손으로 나오고 말았다.
아니, 정확하게 빈손은 아니다. 담당자가 안타깝다면서 취약계층에게 지원되는 도시락 세 개를 챙겨 주었다.
내가 보기에 부실한 도시락인데··· 이게 하나당 6천 원이라고?
어이가 없군.
뭔가 허탈한 마음에 난 어색하게 서 있는 남매를 보고 말했다.
“따라와.”
나는 아이들에게 입을 것과 먹을 걸 사 줬다. 내게는 값싼 동정이지만 애들에게는 필요한 거였다. 도저히 부실한 도시락만 들려 주고 보낼 수 없었다.
“형! 고맙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
집에 도착한 아이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감사를 표하는 걸 보며 난 묘한 감상에 빠졌다.
나라에서는 저런 아이들을 돕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쓰고 있다. 하지만 정작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있다.
나는 국가가 올바르게 돈을 쓸 거라 생각해서 의심 없이 세금을 납부했다. 하지만 지금 보여 주는 건 그 시스템에 의구심이 생기도록 만들었다.
“내가 낸 세금, 어디에 쓰이는 거지?”
규정은 왜 그런 거고? 그리고 그 도시락이 6천 원이라고?
아무래도 확인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