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73
73화
73화
그 길로 청와대로 복귀한 나는 천명국에게 조금 전 있었던 일에 대해 내 소감을 언급했다.
“······.”
초인콜로 희생자가 없다며 좋아하던 천명국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우선 안 좋은 걸 보신 것에 유감을 표합니다. 이렇게 복지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줄 몰랐습니다. 다만 변명을 하자면 무분별한 남발을 막기 위한 방지책으로 인한 현상입니다. 보완할 수 있도록 건의드리겠습니다.”
천명국은 이번 케이스 같은 경우, 도망간 아이들의 어머니가 빌런에 협력하거나 애초에 위장결혼인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친모인지 확인은 안했다.
복지의 무분별한 남발에 대해서는 담당 공무원에게도 들은 이야기다.
나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정책에 구멍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죠.”
뭐든지 양면성이 있는 법이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자격을 까다롭게 심사하면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마물과 빌런이 활개치는 이 시대에서 자원은 부족하고 그걸 갖고자 하는 사람들은 넘쳐난다. 간절한 사람이 철저하게 준비해서 지원을 받아가는 건 어쩌면 당연한 방향이다.
날 향한 천명국의 시선이 조심스러워졌다.
“따로 바라시는 게 있습니까?”
“제가 볼 때 나라에서 하는 지원은 충분한 거 같습니다. 실제로 업무를 보시는 분도 규정 때문에 더 못해주셨을 뿐, 응대도 훌륭하셨습니다.”
“그건 다행입니다.”
결국 취약계층 지원은 매뉴얼 수정만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고, 조항을 보강하면 되니까.
문제는 그 다음이다.
난 동사무소에서 받아온 도시락을 천명국에게 내밀었다.
“이건······?”
“취약계층에 지원되는 도시락이랍니다.”
“상당히 부실하네요.”
천명국이 침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가격을 알면 더 놀랄 텐데. 그래서 가격도 이야기해줬다.
“그게 6천원이라고 합니다.”
“이런 개 같은! 예비군도 이렇게 안 줬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내 시선에 겸연쩍은 표정을 짓은 천명국이 말했다.
“전 예비군 세대입니다. 과거에는 예비군도 처참한 식사를 줬었습니다. 그래도 저희 때는 도시락이 그럭저럭 나왔는데 이건 좀 심하군요.”
천명국이 말하길, 예비군 도시락도 6천원이었다고 한다.
퀄리티는 좀 비싸다 싶어도 괜찮았다고. 물가 상승을 고려해야 하지만 이건 좀 심하다고 말했다.
그나저나 예비군이라니. 마물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면서 예전에 사라진 제도였다.
아버지가 가끔 군대 얘기를 할 때 들었던 게 전부였다.
음, 좋은 말은 하나도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무튼 천명국도 분노하니 이야기 하기가 편해졌다.
“제가 볼 때 가장 문제는 이거입니다.”
내가 들어보인 건 국이었다. 겉모습은 영락없는 된장국이다. 하지만 맛을 보는 순간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건 된장국에 대한 모욕입니다.”
감히 된장국을 이렇게 만들다니! 내가 만들어도 더 저렴한 가격으로 더 맛있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음, 똥국이군요.”
천명국도 침음을 흘리며 동감을 표했다.
똥국? 표현이 더럽긴 해도 찰떡같은 표현이었다.
이 도시락은 나랏돈으로 지원이 된다. 나는 이걸 무슨 생각으로 만든 건지 알기 위해서라도 도시락 업체를 찾아갈 거라 말하자 천명국이 기겁했다.
“그건 좀 더 생각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왜죠?”
그냥 도시락 만든 곳을 찾아가서 이 도시락이 어떻게 6천원이란 가격이 나올 수 있는 건지 알아보기만 하면 되는 건데.
물론, 나도 마진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기업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것인데 이익을 보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당장 빅뱅 시리즈만 해도 원가는 터무니없을 정도니까. 그래서 이익률이 높은 거고.
그럼에도 그 가격이 ‘합리적’이라고 소비자들이 생각하기에 구매를 하는 것이다. 마진이 아무리 높아도 소비자가 사는 물건이면 상관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도시락을 6천원에 사먹을 사람이 있을까. 당장 편의점 3800원 도시락 퀄리티가 더 나아 보이는데.
내가 볼 때 이 도시락은 2500원이면 내 잔고가 2500원이라는 가정 하에 도시락이 이거만 남아있다면 30분 정도 고민하다가 눈을 질끈 감고 구매할 듯했다.
“일단 상의를 나눠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제가 대통령님에게 보고를 올려보겠습니다.”
난 신경을 안 쓰게 할 요량으로 말했는데 천명국이 오히려 사건을 키우고 있었다.
대통령이 알기에는 자잘한 사안 아닌가?
“굳이 그러실 필요가······.”
“바로 보고 올리겠습니다. 기다리십시오.”
천명국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사라지다가 다시 머리를 내밀었다.
“먼저 가시면 안 됩니다.”
“······.”
그렇게 못미덥나?
내가 얼마나 이성적인데.
믿음을 못받는 거 같아 살짝 서글퍼졌다.
*
꽤 길었던 대화가 끝났다.
최준호의 움직임을 늦추는데 성공한 대통령이 안도 섞인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결국 터질 게 터졌군.”
“죄송합니다. 제 선에서 해결해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아니, 옳은 판단이었어. 내가 만류하지 않았으면 바로 목적지로 찾아갔겠지. 그리고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해보면 끔찍하군. 천 실장의 판단이 서울 한복판의 대량학살을 막았어.”
“···감사합니다.”
대통령의 말이 곧 천명국의 생각이었다.
중앙수사부에서 한 치의 망설임없이 부장검사를 죽여버린 게 최준호다. 도시락업체 하나쯤 날려버리는 건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일 것이다.
무엇보다 최준호가 내민 6천원 도시락은 딱 봐도 중간에서 해먹은 것이 맞았다.
문제는 이게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지원사업이라는 점이다.
최준호의 사고로 생각해볼 때, 업체 선정한 것은 서울시의 결정이고, 최종결정권자는 서울시장이 된다.
참고로 서울시장은 여당의 유력 정치인이다.
대통령은 이 사안에 대해 서울시의 협력을 약속하는 걸로 최준호를 설득했다.
이게 최선이다.
“성실 납세가 재정에 크게 이바지할 거라 생각했더니 생각하지도 못한 부작용이 생겨나는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건 분명한 건이라 뭐라 말을 하기도 힘들어. 하필 장난을 쳐도 먹는 걸로.”
어쩌다 대통령이 초인을 설득하는 역할이 된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부산시를 손 대는 순간, 예고된 일이기도 했다.
그 시기가 너무 빨라서 문제였지만.
그리고 이번 건으로 정보 하나가 쌓이긴 했다.
최준호는 먹을 것에 진심이다.
다만 천명국은 다른 부분에서 우려를 드러냈다.
“한정문 시장이 반발할 수도 있습니다.”
“반발하면 어쩌라고? 유성수처럼 뇌세척이라도 당해서 비리를 줄줄 불다가 죽겠지. 지금은 반발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리고 제깟놈이 반발해봤자야.”
유성수가 부산시장으로 야당의 강력한 대선후보였다면 한정문은 서울시장으로 여당의 강력한 대선후보였다.
마물의 등장하고 도시 기능이 집중되면서 광역지방자치단체장의 위상이 몇 단계 상승했다.
여기에서 서울시는 예외에 속했는데, 정부가 서울시 기능을 상당 부분 대체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다 보니 독립성이 강한 다른 시와 다르게 정부에 종속되어 있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이렇게 무시당할 위치는 아니었지만 상대가 나빴다.
“반발 따위는 무시하고 조기에 진압하는 것만 생각해봐.”
“예.”
“일단 단속도 해야겠어.”
대통령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고심을 거듭하던 그가 결정을 내리고 천명국에게 명령했다.
“지창용하고 한정문 불러. 팔다리가 불타더라도 머리가 터지는 건 막아야겠지.”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지창용은 4선 여당대표였고, 한정문은 서울시장이다.
여당의 실세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황급히 청와대에 모였다.
*
진세정을 팀으로 끌어들인 뒤 내게 달라진 점이라면 행동에 옮김에 있어 한 번 방지턱이 생겼다는 점이다.
그걸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내 행동을 강제하려 했다면 유능하고 여부를 떠나 일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내 생각을 눈치 채기라도 한 것처럼 진세정은 내가 그어놓은 선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넘지 않았다.
“저는 절대 초인님의 결정을 막지 않아요. 초인님의 매력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 그 거침없는 면이거든요. 그걸 제가 막을 재주도 없고 막아서도 안 돼요. 하지만 좀 더 돋보이게 살릴 필요가 있어요.”
“어떻게?”
진세정은 내게 직설적으로 좀 더 세련되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시락 업체 선정 과정에 분명 비리가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이걸 다짜고짜 찾아가면 초인님은 혼자서 적을 상대하게 돼요. 저들은 정치적 생명을 공유하는 이익 공동체에요. 나라의 권력을 대변하는 거대 세력이죠. 초인님이 혼자서 이길 수 있지만 번거롭게 만들 힘은 있어요. 그러니 우선 여론을 초인님의 편으로 만들어서 훼방 놓지 못하게 무력화 시킬 필요가 있어요. 공동체를 갈라놓는 거죠.”
“여론이라······.”
과거의 나는 그걸 신경 쓰지 않았었으나, 진세정의 마법을 맛보고 기사란에 날 응원하는 댓글로 가득 뒤덮이는 걸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실체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아군이 늘어난다는 건 든든했다.
근데 댓글 대부분 오빠 사랑한다고 하던데 연령 분포를 보면 30대가 제일 많더라. 이건 뭐지? 진세정에게 물어봐도 원래 그런 거라고 하고. 풀리지 않는 의아한 점이다.
“최준호 초인님의 분노가 정당하다는 걸 알아주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나는 진세정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도시락 먹방을 하게 되었다.
이게 맞는 건가?
진짜로?
처음에는 전혀 기대가 없었다.
그래도 보고 있는 사람 몇 명을 내 편으로 만드는 과정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고작 도시락 하나 먹는 방송을··· 30만 명이나 보고 있다고?
이거 생방송인데.
“전부 최준호 초인님을 응원하는 사람이에요.”
진세정, 그녀는 마법사인가?
세계를 뒤집어버리겠다는 아르고스 눈깔보다 진세정이 더 대단했다.
대체 이건 무슨 마법이지?
댓글창은 온통 분노로 가득했다. 그들도 나와 생각이 비슷했다.
내가 방송에서 한 거라고는 이 도시락이 6천원의 가치를 하지 않는다는 것. 먹은 게 전부였다.
30분 투자의 효과는 실로 강렬했다.
벌써 기사가 나오고 있었다.
그중 돋보이는 제목은 역시 고예진이었다.
“이제 초인님이 원하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왜 그러세요?”
“그냥, 믿음직해서.”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은 체구의 진세정이 무척 크게 느껴졌다.
*
내가 서울시청으로 향했을 때 마중 나온 것은 시청의 부시장이었다.
“저는 함국기 행정부시장입니다. 초인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최준호입니다.”
정리해놓은 인물란에 있는 이름이다.
함국기가 고개를 숙였다.
“우선 최준호 초인님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내가 느낀 건 아주 작은 수준이고. 그저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과정을 파악하려는 생각밖에 없었다.
내가 정부에 납세하는 세금도 세금이고, 서울시에 납세하는 지방세가 얼마인데.
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궁금해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닐까.
“제가 알고 싶은 건 도시락 업체 선정과정입니다.”
“아아, 예. 그게 참, 워낙 예전 일이라.”
“자료가 없습니까?”
“아닙니다, 있긴 있습니다. 그런데 참 애매해서. 하하!”
어색하게 웃으면서 내 눈치를 본다. 그것만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어영부영 넘어가려는 생각이로군. 딱 예상한 대로였다.
“예전 일이면 예전부터 이 도시락이 나눠지고 있었다는 거로군요.”
“예, 아무래도 일을 맡길 때 믿고 맡기다보니 이런 일이 발생한 거 같습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네요.”
“······.”
함국기의 입이 닫혔다. 머리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여론을 내 편으로 만들어도 변명하려는 사람의 사고회로는 바뀌지 않는 건가.
“도시락 업체 선정한 부서가 어디입니까?”
“그게, 그 전에 있던 부서인데 현재 공중분해되고 통폐합이 된 상황입니다.”
“그럼 그 부서를 다 둘러보면 되겠군요. 자료를 가져다주시겠습니까.”
“그, 저······.”
“부시장님.”
“예.”
“제가 알고 싶은 건 도시락 업체에 관여한 곳입니다. 지금 자리에 앉아있는 것도 최대한 빠르게 해결을 보기 위해서지, 부시장님의 말에 설득될 생각으로 있는 게 아닙니다.”
내가 단칼에 자르니 함국기도 더 이상 말을 돌리지 못했다. 직원을 불러 자료를 가져오라고 한 뒤 날보며 변명하기 시작했다.
“당시 부서가 입찰을 받고, 시민단체인 ‘함께하는 나눔’이란 이름의 단체와 업체를 선정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도시락 퀄리티 외에도 시에 공헌한 거나 업체 대표의 신용도를 따지다 보니······.”
“그럼 그 업체를 선정한 시민단체부터 조사해보면 되겠네요.”
“말이 그렇게 됩니까? 그럼 저희가 면밀하게 조사해서······.”
“부시장님.”
“예에.”
어디가 관여했는지 알았다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다. 굳이 서울시가 조사해서 내게 정보를 가져오는 걸 기다리고 있을 필요도 없고.
그리고 함국기에 대한 정보를 떠올린 나는 더 이상 참을 필요를 못 느꼈다.
“부시장님이 저 단체 이사로 이름이 올라가 있던데요.”
“아, 아닙니다! 저는 다른 단체 소속입니다.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럼 이름이 왜 올라가 있는거죠?”
허위로 이름을 올린 거면 엄한 돈을 타먹은 거고, 소속이면 도시락 업체 선정에 부시장이 힘을 쓰고 같이 해먹은 걸 텐데.
이렇게 뻔하게 사실이 드러났는데 변명하는 걸 보면 날 바보로 아는 것 같다.
“그, 그게······.”
확실히 나한테 개소리 알레르기가 있는 것 같다.
같잖은 변명을 듣고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머리를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이 드는 걸 보면.
더 이상 봐줄 필요를 느끼지 못한 나는 손을 썼다.
“혓바닥이 긴데 얼마나 긴지 뽑히고 싶어서 개소리를 하나.”
콰드득!
“끄아악!”
기뢰를 실은 내 손이 쇄골에 닿자 섬뜩한 파열음과 함께 어깨가 푹 꺼진 함국기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애석하다, 애석해.
내 앞에서 개소리하다가 어떻게 된 줄 알면서 왜 변명으로 일관할까.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고 실토하면··· 음, 그래도 저 꼴로 만들었을 것 같다.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방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날 향한 시선에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난 손짓으로 뒤늦게 가져온 자료를 넘겨받은 뒤, 함국기 상관을 호출했다.
“시장님 오라고 해요.”
그래도 여당 출신이라 얘기가 통할 줄 알았는데.
대통령이 제대로 말을 안해놨나?
이럴 거면 바로 찾아가는 게 나아 보이는데.
“안 오면 제가 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