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77
77화
만독불침은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주인에게 존재하는 모든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것이 만독불침의 존재 이유다.
기프트 만독불침은 충실했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주인의 육체, 포스를 탐방했다.
이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신을 탐방하던 도중 심각한 이변을 눈치 챘다.
겹겹이 두텁게 쌓인 정신방벽 너머로 심각한 뒤틀림이 전해졌다.
하나부터 열까지.
만독불침은 주인의 정신이 뒤틀린 걸 바로잡고자 했다. 하지만 그 의도는 주인에 의해 철저하게 짓밟히고 말았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주인의 포스가 자신을 매섭게 짓누르기 시작했다.
이건 잘못됐다. 주인의 정신은 지금 잘못되어 있다. 바로 잡아야 한다. 근데 주인은 왜 그걸 방해하나!
만독불침은 자신의 충성을 알아 달라며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지만 역부족이었다.
“요즘 기프트가 버르장머리가 없네.”
안······돼······!
곧이어 해일처럼 밀려드는 포스 앞에 만독불침의 의사는 무참하게 꺾이고 말았다.
* * *
만독불침이 잠잠해진 걸 느끼며 나는 작게 안도했다.
“꽤 질기네.”
과연 전설의 기프트다.
잠깐 오작동을 일으켰지만 찰나지간 내 정신방벽을 뚫기도 하고 불리한 상황에서 오래 버텨 내기까지 했으니.
전설의 기프트 중에 일부는 약간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만독불침도 그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기프트가 자아를 갖는다는 건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다. 기프트 자체에 고유 성질로 부여된다는 말도 있고 기프트 보유자의 무의식이 전달된다는 말도 있다. 저번 생에 혈종으로 살아갈 때도 끝내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다.
하지만 자아가 있는 건 사실이다.
기프트가 때때로 사용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발동되는 것이 대표적인 예였다.
영국의 초인 블랙 월(Black Wall) 윌리엄스가 보유한 프로텍트는 시전자의 의지와 별개로 위험한 상황에 자동으로 방어막을 형성하는 기프트였다. 이 기프트로 윌리엄스는 공방일체 전투 스타일을 완성했다고 알려졌다.
프로텍트가 그러니 만독불침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다.
마지막 순간에 절규하듯 꿈틀거리던데, 기프트에 의지가 있는 걸 보니 신기하긴 했다.
밖으로 나온 나는 국가수호국 사무실을 어슬렁거리던 정주호와 마주쳤다.
“어? 왜 여기 있냐?”
“점검할 게 있어서 왔습니다. 국장님은?”
“내일 청문회잖냐. 준비하고 있었지.”
예상 질문지를 뽑는 것 외에 리허설까지 했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한테 죽는 소리를 하더니 지금은 표정이 좋았다.
“청장되기 싫다고 하시더니 괜찮아 보이는데요?”
“받아들이기로 했으니 잘해 봐야지. 내가 권력자가 되면 얼마나 무서워지는지 다들 알게 될 거다.”
그러면서 음흉하게 웃는데 그 모습이 영락없는 빌런이었다.
권력을 가지면 사람이 본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아주 좋지 않은 방향으로 바뀌던데, 정주호는 어떻게 바뀔지 기대되긴 했다.
“근데 청문회 하면 네 얘기 좀 나올 거고 나도 네 얘기 할 텐데 괜찮겠냐.”
“무슨 얘기가 나올까요.”
“네가 정치인들을 얼마나 많이 족쳤는데 좋은 얘기하겠냐? 당연히 안 좋은 얘기지.”
나 별로 손 쓴 적 없는데. 억울하군.
“나오면 어쩔 수 없죠.”
내가 욕먹은 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그냥 누가 어떻게 욕했는지 머릿속에 담아 두기만 할 뿐이다.
그런데 정주호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나도 네 욕 좀 한다.”
“왜요?”
“네가 손을 과하게 쓴 걸 나한테 지적할 거라서. 그럼 내가 시켰다고 말하고 다 뒤집어쓰리?”
“보통 부하를 위해 감수하지 않아요?”
내가 국가수호국에 있을 때 정주호는 부하를 위해 기꺼이 욕먹는 걸 감수하던 사람이었는데?
그 모습 보고 이 시대 참된 상관이구나, 이런 생각도 했었다.
내 생각과 달리 정주호가 펄쩍 뛰었다.
“그거 감수하려면 나 사퇴해야 돼. 내가 미쳤냐? 나 출세 좀 할 테니 욕 좀 먹어라. 애초에 나 청장 되라고 한 거 너잖냐.”
“알았어요.”
“오케이, 그럼 승낙한 걸로 안다.”
“네, 일단 기억만 해 둘게요.”
“······.”
“농담이에요.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사색이 된 정주호를 달래 주느라 꽤 시간을 썼다.
내일 청문회니 더 붙잡지 않고 나도 슬슬 돌아가려 할 때였다.
야근을 했는지 뒤늦게 국가수호국으로 들어오는 정다현이 보였다. 한바탕 격전을 한 흔적이 남아 머리와 상의에 피가 묻어 있었다.
“오빠.”
“어서 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다가오는 정다현을 반겨 줬다.
“빌런 잡았어?”
“네. 마약을 유통하던 곳인데 점 조직이라 소탕하는데 꽤 애먹었어요. 외부 빌런 조직과 연계돼서 실력 있는 빌런도 꽤 많았고요. 한자리에 모아서 다 죽였어요. 더 이상 활개치지 못할 거예요.”
“잘했어.”
빌런 죽인 걸 해맑게 말하는 정다현이라니, 처음 봤을 때 답답하던 모습을 훨훨 털어 버린 거 같아 보기 좋았다.
그런데 정작 정다현은 내 얼굴을 살피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피곤해 보이시는데 괜찮으세요?”
“나? 괜찮은데.”
“피곤해 보여요.”
“오늘 일정 여러 개를 소화해서 그런가 보네.”
버서커를 잡으러 여수까지 갔고, 가장 쉬운 죽이는 방법을 배제하고 여러 방법을 시도하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버서커 녀석, 내가 이렇게 신경 써 준 걸 전혀 알아주지 않고 있다. 괘씸한 놈.
여기에 만독불침 기강까지 잡아서 심력이 꽤 소모됐나 보다.
난 별 차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정다현의 눈썰미가 날카로웠다. 직감의 활용도가 높아졌나?
“별거 아니야. 신경 쓰지 마.”
“그럼 다행이지만······.”
“할 말 있어?”
“사실 부탁 하나 하려고 했는데 피곤해 보이셔서요.”
“말해봐. 할 수 있으면 들어줄게.”
“···네. 괜찮으시면 제 수련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수련을?”
버서커가 아니고 나한테? 혹시 버서커를 부르고 싶은 건가 싶었는데 정다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오빠한테 제대로 한번 배워 보고 싶어요.”
“어려운 이유를 알잖아.”
“심하게 다쳐도 돼요.”
그럴 때를 위해 회복제를 비축해 뒀단다. 하긴, 팔다리가 부서져도 시기적절하게 사용하면 부상 없이 회복할 수 있다.
무슨 죽을 위기 겪으면 강해지는 종족도 아니고.
난 정다현의 눈에 서린 기대감을 뿌리치지 못했다.
“팔다리가 으스러져도 괜찮다고?”
“네.”
“좋아. 언제 할까?”
“지금 당장이요.”
본인이 겪어 보고 싶다면 해 주는 수밖에.
난 정다현과 그 길로 훈련실로 가서 어울려 줬다. 그 결과 정다현의 팔다리가 부러지고 처참한 몰골이 되었지만 끝까지 전의를 꺾지 않고 내게 덤벼들었다.
확실히 전보다 살기가 늘고, 직감의 응용 분야가 늘어났다.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래서 더욱 엉망으로 만들어 줬다.
마침내 전의가 꺾인 정다현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보냈다.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어. 곧 레벨 7에 도달할 거 같아.”
“···고마워요.”
“일어날 수 있어?”
“네.”
정다현에게 내 회복제를 뿌려 줬다. 나야 무한리필이 가능한 거니까. 정다현은 박봉의 공무원이니 이건 진짜 위험할 때 쓰라고 돌려줬다. 그나저나 오늘 버서커한테도 써서 소모되는 속도가 상당히 빠르군.
부러진 팔을 원래 형태로 맞춘 정다현이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마워요.”
“그래.”
엉망이 되고 고맙다고 하는 걸 보면 묘한 마음이 들었다.
저번 생에서는 날 죽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었는데.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고 볼 일이다.
난 정다현에게 피드백을 해 줬다.
종합적으로 보면 실력이 많이 늘었다. 이 추세면 곧 레벨 7에 도달할 것이고, 3년 이내에 저번 생의 실력을 따라잡을 것이다.
초인이 되는 것까지는 모르겠다. 알면 내가 초인제조기였겠지.
그나저나.
“음.”
“왜 그러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밖으로 나가던 나는 조금 전 정다현 지도 중에 슬그머니 정신방벽을 파고들려던 만독불침을 떠올렸다.
교육을 시켰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덜 됐나.
집으로 돌아가 확실하게 기강을 잡아 놔야겠다.
* * *
도쿄에서 열리는 세계 초능력자의 날은 유서 깊은 행사였다.
과거 마물이 등장하고 인류가 속절없이 밀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 후 각성자가 등장했을 때, 세계는 멸망 위기에서 구원해 줄 영웅이 등장했다며 열광했다.
하지만 그 열광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마물과 교착 상태에 접어들면서 기존 사회 질서를 부정하는 빌런이 등장, 각성자의 이미지가 급속도로 나빠졌던 것이다.
여기에 각성자를 대비한 법 체계 미비로 인해 온갖 사건이 벌어졌다.
그로 인해 사회 갈등이 극에 달했고, 각성자와 비각성자의 대립이 심화되었다.
세계 초능력자의 날은 법 체계가 완비되어 각성자가 사회로 완전히 녹아든 첫날을 의미했다.
그들 중 정점에 선 것이 레벨 8, 초인이다.
현재 전 세계에 존재하는 초인의 숫자는 약 150여 명으로 추산된다.
빌런 숫자까지 합치면 비공식적으로 200명에 가깝다.
그중 50여 명의 초인이 매년 세계 초능력자의 날에 모여든다.
각국의 외교 조율은 물론 초인들간 교류가 이루어지는 세계 최대 축제 중 하나였다.
대한민국에서는 초인으로는 나와 이찬택이 참가할 예정이고 정부 외교 사절단 백여 명, 전국 길드 연합 소속 헌터 이백 명으로 도합 삼백 명이 넘는 인원이 도쿄로 건너갈 예정이다.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각성자 대국이고, 개최 장소가 도쿄인 만큼 규모는 역대 최대로 꾸려졌다.
도쿄로 떠나기 전, 나는 이찬택을 청와대에서 만났다.
“잘 지내셨습니까.”
“덕분에 잘 지냈다. 네게는 항상 감사한 마음뿐이다. 도쿄에 가서 한 수 배우겠다.”
“별말씀을.”
누리 사냥 이후, 이찬택의 아방가르드 길드는 상당한 부침을 겪었다.
하지만 하락세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는데, 이찬택이 솔선수범하여 전력 강화에 나섰고 신성 길드에 한 수 굽히고 들어가 제휴를 맺어 빅뱅 시리즈를 가장 먼저 도입했다.
그 결과 짧은 시간이지만 누리 사냥 당시 잃었던 전력을 복구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리고 누리 사냥 과정에 대한 의혹이 제기될 때, 내 편에 서서 지지를 표명하고 인터뷰를 하는 등 내가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냈다.
“청문회가 꽤 요란하던데, 괜찮나?”
“별 문제 없습니다.”
“정주호 청장이나 너나 대단하군.”
어제 열렸던 정주호 청문회는 가관이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렸다.
정주호 청문회인지 내 청문회인지 헷갈릴 정도로 내 얘기가 주를 이뤘다.
특히 내가 국가수호국 소속일 당시 정주호가 내 과잉 진압을 방치했다는 걸 시작으로 청문회 내내 나에 대한 비난이 주를 이뤘다.
더 웃긴 건 보통 공격은 야당, 방어는 여당이어야 하는데 나에 대한 공격은 야당여당 가리지 않았다는 거다.
여기에 화룡점정은 정주호의 반응이었다.
-그럼 제 목을 걸고 막아야 했을까요?
그 말에 야당여당 가리지 않고 모두 침묵하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아니, 왜 정주호가 막으면 내가 죽일 거란 걸 전제로 하는 거지?
솔직히 억울했다.
문제는 내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도 댓글로 ㅇㅈ이라 쓰며 도배를 한 것이다.
누가 보면 사람 막 죽이고 다니는 빌런인 줄 알겠다.
그래도 수확은 있었다.
“유익한 점도 있었고요.”
“어떤 부분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됐으니까요.”
“···그거 굉장히 무서운 말이로군.”
“행동으로 옮길 생각은 없습니다.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안다.”
머릿속에 넣어 두면 언제고 생각 날 일이 있는 법이니까.
나와 이찬택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눌 때, 천명국이 안으로 들어왔다.
평소에 속 쓰린 표정이 패시브로 달려있더니, 오늘따라 유난히 표정이 좋아 보였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초인님들의 돈독한 모습, 보기 좋습니다.”
집안에 경사라도 났나. 싱글벙글 웃음이 가시질 않고 있었다.
“이번 행사에서 본국의 목표는 그동안 거둔 성과를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누리의 사냥 성과 홍보가 있을 것입니다.”
천명국이 말하길, 유해 8단계 플러스라고 명명된 새로운 단계 마물들이 등장하고 나서 내가 누리를 사냥한 게 다시 한번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가당치도 않은 음모라며 사냥 성공은 사실이라 주장하는 중이다.
초인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이루어지고 있는 주제여서 이찬택이 사냥 경험자로서 증언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자기가 실패한 경험을 인정하고 날 띄운다고?
이찬택을 보니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걸 보니 뭔가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밑에서 내가 모르는 거래가 오갔을 확률이 높다.
“근데.”
내가 입을 열자 둘의 시선이 바로 모였다.
“내가 사냥했다고 해도 안 믿을 사람은 안 믿을 텐데요.”
“예. 하지만 사냥 성과가 있고, 이찬택 초인님의 증언이 있다면 더 이상 조작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사라집니다.”
내가 볼 때 시비 걸 놈은 계속 걸 거 같은데.
그런 놈들은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생각을 바꿔 먹더라.
아, 물론 그렇게 생각 바꾼 놈은 살려 준 적이 없다.
자기 생각에는 책임을 져야지.
그러다 궁금했던 부분을 질문했다.
“그래도 사냥 사실을 못 믿고 제 실력을 보겠다는 놈을 죽이면 어떻게 됩니까?”
호기심이 명을 재촉하는 거니까.
세계 초능력자 연합이니 세계 공공의 적이 되나?
빌런도 월드 클래스가 존재하나?
“······.”
둘 다 대답하지 않는다. 혹시 못 알아들었나? 아니면 질문이 잘못됐나? 흙빛이 된 천명국의 표정을 보니 질문은 제대로 전달된 거 같은데?
다른 부분을 오해했나?
“아, 죽일 생각 없습니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겁니다.”
진짜로.
손을 쓰기 전에 정부 입장을 들어보려고 하는 건데?
“······.”
어째 둘 다 안 믿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