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79
79화
‘큰일이다.’
제임스 리드의 머릿속으로 경종이 연이어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하필이면 최준호와 기예르모가 이렇게 일찍 마주칠 줄이야.
식은땀을 흘리는 이유는 당연하지만 기예르모가 최준호에 대해 떠들었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어서다.
모임에 참석하기 전,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최준호의 정보를 머릿속에 숙지하고 참가했다.
이번에 새로 등장한 유해 8단계 플러스의 등장으로 멕시코는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런 와중 기예르모는 절친한 친구를 잃었고.
그는 플러스 단계의 마물 위험도가 조작되었다면서 홀로 사냥했다는 최준호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제임스 리드는 기예르모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분노 표출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엄밀히 말해 최준호가 홀로 사냥했다고 하여 다른 유해 8단계 마물과 비슷하다고 여긴 기예르모 측의 오산이었다.
그 원망을 돌릴 대상을 찾다가 최준호가 선택되었을 뿐.
‘우리는 잘 대응했어.’
미국의 경우 초창기부터 철저한 대응 체계를 통해 플러스 단계 마물을 큰 피해 없이 사냥했다. 여기에 누리 사냥 브리핑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면서 내부에서 격렬한 토론이 오갔는데, 주된 내용은 ‘최준호가 이걸 홀로 사냥한 게 맞는가?’였다.
제임스 리드는 자신을 비롯해 다른 초인들 누구도 홀로 사냥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만큼 플러스 단계 마물은 강했다.
하지만 최준호를 보고 있으면 혼자 사냥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홀로 사냥한 게 사실이라면, 최준호의 위상은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
세계 최강의 초인 중 한 명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자신을 비롯한 다른 초인들은 그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걸지도 몰랐다.
아무튼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내가 통역을 잘못하면 기예르모가 죽는다.’
제임스 리드는 최준호의 성격을 떠올렸다.
정의로운 초인에서 한없이 멀고 빌런에 한없이 가까운 성향.
여기에서 한 발자국만 더 내딛으면 리그의 12궁 일원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잔인한 손속을 지닌 초인이 최준호다.
눈에 거슬리면 신분을 가리지 않고 손부터 쓰며, 속은 좁고 좁아 자기 욕을 한 사람을 앞에 두고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장점이라면 물욕과 성욕이 없다는 점.
최준호의 손은 남자, 여자를 가리지 않는다. 안나 크리스틴이 나이 공격에 심각한 멘탈 손상을 입어 한 달 동안 쉰 게 대표적인 예였다. 미국에서는 안나 크리스틴의 시선 한 번 받아 보려고 애쓰는 각성자들이 넘쳐 나고 있는데 말이다.
이 사건으로 미인계를 동원하는 계획은 전면 폐기되었다.
그리고 물욕이 없는 것도 좋다고 보기 힘든 게, 기부로 이어져 도시락업체의 비리를 파헤치다가 사건이 서울시장, 국회의원으로 번진 건 최준호라는 존재가 시한폭탄이라는 걸 다시 한번 증명한 것에 해당했다.
밝혀도 문제고 안 밝혀도 문제라니.
어디에 놓아도 평지풍파를 일으킬 성격인 것이다.
‘내가 잘못하면······.’
제임스 리드는 자신의 통역으로 미칠 파장을 떠올렸다.
상상만으로 끔찍했다.
기예르모는 멕시코의 기둥으로 불리는 초인이며, 친미 성향으로 미국과 멕시코의 가교 역할을 한다.
그가 있어 미국과 멕시코가 국경을 접하고 있음에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기예르모가 없으면?
다른 반미 성향을 띤 멕시코 초인들은 미국과 대적하려 들 것이다.
그것은 북미 대륙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또한 최준호는 초인을 죽임으로써 다른 초인들의 배척받게 될 테고.
그가 플러스 단계 마물을 홀로 사냥한 게 진실이라면 앞으로 등장할 더 강한 마물을 상대할 귀중한 자원이 된다. 세계에 좀 더 이바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 자원이 세계를 적으로 돌리게 두고 볼 수 없다. 제임스 리드는 사명감을 갖고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이 충돌, 자신이 막아낼 것이다.
“알았어. 졸라 열심히 해 볼게.”
제임스 리드가 둘 사이에 통역을 시작했다.
* * *
제임스 리드가 통역 제안을 받아들이고, 난 하고 싶은 말을 기예르모에게 전달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간단했다.
왜 본인이 약한 걸 내 탓을 하는지.
그러게 잘 좀 사냥하지.
그 시간에 차라리 실력을 늘리는 게 낫지 않겠냐.
말이 통하지 않으니 적당히 순화했다.
녀석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반항하면 가차 없이 손을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우리 대화는 생각하지 못한 제임스의 농간에 놀아나기 시작했다.
기예르모가 한 말이 통역되는 과정이 이상했던 것이다.
“네가 사냥한 거 졸라 과장했잖아! 네가 그렇게 강해? 네 똥 굵다!”
“사냥한 거 혼자 독식해서 좋겠다, 돈 많다며? 한 턱 쏴!”
“그래, 너 잘났다! 대머리나 돼라!”
기예르모는 분명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다. 근데 제임스 리드의 입을 거치니 말이 이상하게 바뀌고 있었다.
녀석도 초월 통역을 눈치 챘는지 표정이 이상해지기 시작했고.
근데 대머리 되라는 건 선 넘는 거 아니냐?
정주호가 하소연할 때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막상 내 입장되니 찬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설마 모발이 얇아졌나? 한번 확인해 봐야겠다.
난 물 만난 것처럼 입을 놀리는 제임스 리드에게 물었다.
“얘가 진짜 이렇게 말하는 거 맞아?”
“응! 졸라 진짜임!”
“아닌 거 같은데.”
“진짜야! 믿어 봐!”
“······.”
뭔가 중간에서 많이 바뀐 거 같은데.
내 시선에 제임스 리드는 순진무구한 눈동자로 맞받아쳤다.
스페인어를 모르니 더 이상 시비를 걸기 어렵군.
하지만 초월번역인 건 분명했다.
나나 기예르모의 분위기가 처음보다 훨씬 부드러운 걸 보면.
“불만이면 스페인어 배우던가! 졸라 쉬워!”
그런 와중에 태연히 기만을 한다.
이 마초맨 아니, 이제부터 넌 졸라맨이다. 졸라맨이 중간에서 농간을 부린 게 분명하다.
나나 기예르모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자 졸라맨이 웃는다.
“하하! 서로 졸라 오해가 있었던 거 같아. 내가 볼 때 둘은 졸라 친한 친구가 될 수 있거든? 그러니 사이좋게 지내자고! 응? 졸라 베스트 프렌드!”
“너나 사이좋게 지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냐! 기예르모는 엄청난 미식가라고! 내가 사과의 의미로 기예르모한테 멕시칸 스타일 된장찌개를 만들어 달라고 해 볼게.”
“······!”
그런 음식이 존재한다고?
멕시칸 스타일? 대체 어떤 스타일이 가미되는 거지?
내 시선에 졸라맨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궁금하지 않아? 맛있을 걸?”
“맛없으면 재미없을 거야.”
“하하! 나를 믿으라고!”
기예르모가 요리하는데 왜 너를 믿냐.
“자자, 좋은 건 서로 공유하자고! 그런 말 있잖아! 위아더월드! 음! 졸라 좋아!”
“······.”
아무래도 이 녀석, 한국어가 능숙한데 일부러 못하는 척 하는 것 같다.
그것과 별개로 졸라맨의 중재 아래 멕시칸 스타일 된장찌개를 먹어 볼 수 있었다.
···음! 기예르모, 생각보다 나쁜 녀석 아닐지도?
* * *
세계 초능력자의 날 행사를 도쿄에 유치하는데 성공한 일본 측에서는 이번 행사를 성공시키기 위해 각별한 공을 들이고 있었다.
세계 각국에 일본이 죽지 않은 것을 널리 알리면서 국력을 과시하는 선전의 장이 될 예정이었다.
그러다 보니 초인들의 동태를 예의주시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최준호와 기예르모를 같은 호텔에 묵게 한 것도 일본 측의 암계가 숨어 있었다.
만약 충돌이 일어난다면 타국의 초인을 제거하는 결과가 나올 테니까.
타국의 전력이 줄어들고 이미지가 나빠지는 건 일본 입장에서 결코 나쁘지 않았다.
하물며 이웃 국가 출신이 포함되어 있다면 더더욱.
각성장관은 총리에게 보고를 올렸다.
“최준호와 기예르모가 조우했지만 충돌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왜지?”
“제임스 리드가 중재했다고 합니다.”
“마초맨이··· 최준호가 중재에 응할 인물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제임스 리드가 수완을 발휘했습니다.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마초맨 제임스 리드, 우락부락한 겉모습이 속기 쉽지만 실상은 스탠퍼드 박사 과정을 밟은 엘리트 중 엘리트다.
이번 행사에서 일본이 가장 경계하는 초인 중 한 사람이다.
어떤 상황에서 국익을 챙겨가는 노련함마저 겸비하고 있는 문무겸비 스타일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최준호가 폭탄이니 기회는 많지 않겠나?”
“그렇습니다.”
“실력도 상당하지만 성질머리가 좋지 않지. 폭탄은 언제 어디서든 터질 수 있으니까.”
“몇 가지 터질 지점이 있습니다.”
각성장관은 그중 누리 사냥 과정을 짚었다.
세계 각지에서 나타난 유해 8단계 플러스 마물을 사냥하면서 한국에서 제공한 사냥 정보에 의문을 제기하는 초인이 부쩍 늘어났다.
총리나 각성장관은 한국에서 건넨 정보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걸 바탕으로 매뉴얼을 확립하여 플러스 단계 마물을 적은 피해로 사냥할 수 있었다.
다만 이웃 국가에 세계 최강을 논할 수 있는 젊은 초인의 존재는 부담스러웠다.
설사 동맹에 가까운 관계라고 해도 말이다.
“질투는 진실을 가리기도 하는 법이니까. 뒤에서 부채질만 하도록. 절대 우리 존재가 드러나서는 안 돼.”
“본래 혈기가 넘치는 존재들이니 살짝 떠밀기만 해도 사건이 벌어질 겁니다. 최대한 상황을 조장해 보겠습니다.”
“수고하게.”
각성장관이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 * *
행사를 여는 오프닝 공연은 실로 훌륭했다. 일본의 강력한 소프트파워를 앞세워 각양각색의 공연이 이루어져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저 행사에 엄청나게 많은 돈을 쓴 느낌이 드는데. 역시 돈 많은 국가답다 싶었다.
이찬택이 말하길, 세계 초능력자의 날 행사에 공통 의제 몇 가지를 의결하는데 이걸 각국이 받아들이는 것은 선택사항이라고 한다.
“많이 받아들이면 UPN의 호감을 살 수 있지. UPN이 직접적인 도움을 주진 못하지만 여러 방향에서 간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 거짓이 넘쳐 나는 이 시대에 그나마 가장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곳이지.”
세계 각지에서 초인들이 모이는 최대 행사인 만큼 그 권위가 상당하다는 게 이찬택의 설명이다.
각성자들의 여러 의견이 모이는 만큼 중요한 내용도 있어 종종 큰 도움이 된단다.
“인기가 많아.”
“얼굴 뚫리겠네요.”
아까부터 내게 시선이 모여드는 걸 느꼈다.
질투, 분노, 살기, 동경, 경의 같은 여러 플러스 마이너스 감정이 전달되었다. 동물원 원숭이라도 된 기분이로군. 내 실력을 확인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한가보다.
확인은 할 수 있지만 각오는 해야 될 거다.
공통 의제를 결의하기에 앞서 각국의 발표가 있었다.
개최국인 일본을 시작으로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이탈리아, 캐나다, 브라질, 인도, 남아공,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대한민국 순서로 각성자 대국 G15의 사냥 성과 발표와 특이 케이스 보고 다섯 개를 포함하여 총 스무 개의 발표가 이루어진다.
이 발표는 각국의 성과를 과시하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각성자 전력이 충분하지 않아 마물 방위 전선을 완전히 굳히지 못한 국가는 G15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경우 체계적으로 조직된 각성자 전력이 터무니없었다. G15는 외부에 전력을 파견함으로써 타국의 이권을 챙겼다.
정보 교류의 장이지만 껍질을 벗겨 놓고 보면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외교의 장인 것이다.
나야 여기에 쓸 머리는 없어서 그냥 타국의 발표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몇몇 국가에서는 성과를 지나치게 과장하기도 했는데, 저러다가 나중에 큰일 나겠다 싶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걸 나서서 짚어 줄 이유는 없고. 그냥 조용히 들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마침내 우리 순서가 되었다. 누리 사냥으로 유해 8단계 플러스 첫 사냥 스타트를 끊은 것이 우리다 보니 각국 관계자들의 표정이 살아났다.
우리 측 첫 발표자는 이찬택이었다.
단상 앞에 선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발표를 시작했다.
“플러스 단계로 분류된 1호 마물 누리에 대한 사냥과정을 브리핑하겠습니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이끄는 아방가르드 길드는 누리 사냥을 실패했습니다.”
“······!”
모두가 자랑하는 자리에서 담담하게 실패를 고백하자 장내에 모인 사람들이 놀라 이찬택에게 집중했다.
쏟아지는 시선 속에서 이찬택은 처음과 다르지 않은 목소리로 누리 사냥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사냥 전 어떻게 대비하려 했고, 사냥에 들어가서는 누리가 어떻게 대응했고 아방가르드 길드가 어떻게 당했는지.
“저는 길드원을 모두 후퇴시켰고, 홀로 남아 누리를 막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누리의 기프트는 너무나도 강력하여 무리였습니다. 이대로 최후를 맞이하는가 싶었습니다.”
생생한 실패 경험담에 각성자들은 귀를 기울였다. 인간은 실패에서 배우는 법이다. 내가 볼 때 이찬택의 발표는 오늘 있던 것 중 가장 영양가가 높았다.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역적이 될 수 있었던 저를 구해준 건 최준호 초인입니다. 한 가지 단언하자면 최준호 초인은 누리를 홀로 사냥한 것이 맞습니다.”
이찬택의 말을 단순히 자국 초인을 띄워 주는 행동으로 볼까, 아니면 의혹이 해소된 걸로 생각할까.
나한테 시비만 안 털면 아무 상관없다.
자꾸 뒤에서 뒷담을 해 대서 문제지.
“누리를 사냥한 과정은 최준호 초인이 해 줄 것입니다.”
각성자들의 시선이 이번에는 내게 모여들었다. 난 이찬택의 뒤를 이어 단상 앞에 섰다.
주위를 둘러보니 온갖 감정이 뒤섞인 시선이 좀 더 선명하게 전해졌다.
몇몇은 몸이 달아 들썩이고 있었다.
하긴, 초인 숫자도 숫자지만 자기 수준을 사기 치는 사람들도 많으니.
내가 젊은 나이에 초인이 되었으니 그걸 거짓이라고 까발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난 이렇게 생각한다.
어차피 누리 사냥 과정은 각국에 널리 알려져 있는데 굳이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믿지 않을 녀석은 계속 믿지 않고 씹어 댈 텐데.
나는 나더러 읽으라고 복사해 놓은 종이를 들어 보였다. 기뢰를 발동하자 뇌전에 휩싸여 가루가 되어 산산이 흩어졌다.
시선 집중 효과 하나는 확실하군.
“어차피 내가 누리를 어떻게 사냥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고, 안 믿을 사람은 끝까지 안 믿을 텐데 입 아프게 얘기할 이유가 있나? 그냥 불만 있는 사람, 다 손 들어. 친절하게 설명해 줄게.”
물론 말이 아닌 몸으로 알려 줄 것이다.
내 말은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되어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