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81
81화
81화
“이게 무슨······.”
이찬택은 야심한 밤에 찾아온 최준호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의 손에 잡혀 축 늘어진 녀석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랐다. 기니 소속 초인인 디아와라였던 것이다.
야밤에 덤비기라도 한 건가? 아닌데, 최준호한테 덤볐으면 이렇게 살려둘 리 없다.
뭔가가 있다. 이찬택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그 의문을 최준호가 풀어줬다.
“리그 첩자입니다. 저랑 분탕 치자고 하더군요.”
“디아와라가?”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시죠.”
“···들어오게.”
안으로 들어온 최준호는 디아와라를 잡게 된 경위에 대해 설명했다.
멍청한 녀석의 멍청한 행동이었다.
가만히 있는 사자 머리에 얼굴을 들이밀다니.
“날 왜 리그 소속이라 생각한 건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디아와라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은데.
이찬택은 최준호를 둘러싼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중 ‘리그 첩자가 아니냐?’는 소문은 이미 공공연한 이야기였다.
빌런보다 더 지독한 손속에 앞뒤 가리지 않고 들이박는 성격, 잔인한 기프트는 빌런으로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으니까.
다만 리그 소속 빌런이 저렇게 빌런 티가 나게 행동할 리 없다고 해서 더 말이 나오지 않을 뿐이었다.
위장해서 침입을 시켰는데 대놓고 정체를 드러낼 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아무튼 디아와라는 뜬소문을 믿고 실행에 옮긴 멍청이였다. 그 결과 이렇게 사로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된 건지, 이찬택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 부지런히 머리를 굴렸다.
“따로 생각해둔 게 있나?”
“이대로 일본 각성 관련 부서에 연락할까 생각합니다.”
“그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 기왕이면 판을 키우는 게 좋지. 마초맨과 친분이 있지? 그에게 알리게.”
“일본이 아니라요?”
이찬택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대한민국과 일본의 사이가 어느 때보다 좋지만 그보다 더 오랜 기간 동안 경쟁해왔던 걸 잊으면 안 된다.
디아와라를 잡고 자칫 애먼 초인을 잡았다는 프레임이 짜일 수 있는 만큼 확실하게 판을 키울 수 있는 미국을 끌어들여야 한다.
“자칫 묻어두면 여론이 안 좋아질 수 있어. 이럴 때는 미국을 이용하는 게 나아. 리그 퇴치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니까 진상을 파악하려 들겠지. 마초맨이 자네가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줄 거야.”
“알겠습니다.”
“나도 같이 가지.”
이찬택은 최준호와 함께 미국 일행이 머무는 곳으로 향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세계 초능력자의 날에 이런 일이벌어질 거라 생각도 못했다.
디아와라가 리그 첩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 여파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최준호와 함께 다니니 요 며칠 사이 수십 년 동안 겪은 것보다 더 많은 사건사고를 접하는 기분이다.
‘평지풍파가 끊이질 않는군.’
*
디아와라를 잡은 다음 날, 행사에 참여한 모든 국가가 발칵 뒤집혔다.
특히 기니 측 반발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자국의 유일한 초인인 디아와라가 리그 소속이라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다.
내가 시비 붙어서 다짜고짜 잡았다고 하는데, 이걸 공감하는 곳이 꽤 많다는 점이다.
왜 이걸 수긍하는 거냐고.
상황이 반전된 건 나와 디아와라가 나눈 녹음이 공개되면서다.
기니 측에서는 그마저도 거짓이라고 강짜를 부렸지만 미국과 일본이 의견을 보태면서 여론이 뒤집혔다.
나는 심각한 표정이 된 제임스 리드를 봤다. 이찬택의 말대로 내가 디아와라가 리그 소속인 걸 알리자 한달음에 달려와 뜬소문이 힘을 얻을 때 녹음을 모든 국가에 공개할 것을 내게 권했다.
근데 왜 이렇게 심각한 거지?
“고작 하나 가지고 왜 그래?”
“아니거든! 이건 졸라 심각한 일이야!”
그러면서 제임스 리드는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리그의 사상은 각성자를 앞세운 선민사상에 기반하고 있었기에 은연중 불만을 가진 각성자들에게 아주 달콤한 사상이란다.
그래서 리그에 가담하지 않아도 동조하는 각성자가 아주 많단다. 독버섯처럼 퍼져 리그 체포 작전이나 척살 작전에서 보이지 않는 훼방을 놓는 경우가 꽤 많다고 말했다.
각국 정부는 리그에 협조하는 사람들을 발본색원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느 정도 규모인지, 얼마나 깊숙이 협력하고 있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막연함은 곧 두려움이 되고 두려움은 공포가 된다.
리그는 공포를 먹고 규모를 키워왔고, 세계 각국의 골칫덩어리가 되었다.
그런데 디아와라가 잡혔다. 기니 유일의 초인인 그는 마음만 먹으면 국가를 뒤집어엎을 수 있는 실력자. 만약 달리 움직였다면 기니 자체가 뒤집혀서 리그로 돌아설 수 있었다.
난 그거보다 눈앞에 있는 녀석이 더 의심스러웠다.
지금 이 모든 설명을 한국어로 너무나 유창하게 해냈다.
“너, 일부러 한국어 못하는 척하는 거지?”
“무슨 소리야, 준호! 나 한국어 졸라 못해!”
“방금 전까지 잘하던데.”
“흥분한 게 졸라 유창한 것처럼 들렸나봐!”
···분명 냄새가 나는데.
나중에 좀 더 흔들어봐야겠다.
내 시선을 피한 제임스 리드가 소리쳤다.
“문제는 디아와라의 입을 여는 거야!”
“그게 왜 문젠데?”
“입을 열지 않으면 우리가 억지로 초인을 졸라 구속한 것처럼 보일 수 있어!”
녹음 내용이 있는데도 그렇다고?
내가 이해 못한 표정을 지으니 제임스 리드는 우리가 붙잡아둘 명분이 약하다고 밝혔다. 최대한 빠르게 실토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그게 왜 문제지?
입을 여는 건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인데.
“그건 나한테 맡겨. 녀석이 숨겨놓은 팬티까지 탈탈 털어놓게 할 테니.”
“그게 가능해?”
“어. 대신 미국이 판 좀 깔아줘.”
“당연하지! 미국은 리그를 졸라 없애고 싶어 하거든! 나만 믿고 졸라 질러!”
“그거 다행이네.”
나는 곧장 디아와라를 끌고 왔다. 이틀이 되었지만 녀석이 깬 시간은 1분도 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릴 때마다 기절시켰거든.
“바로 하려고?”
“어. 금방 끝나.”
“대체 무슨 방법을 쓰려고······.”
“이렇게.”
난 디아와라 머리 위로 손을 얹었다.
*
리그에 대한 정보는 일본 정부 측에도 전달되었다.
당연히 일본도 발칵 뒤집혔다. 가뜩이나 리그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국가 소속 초인이 리그 소속이었다는 사실이 경악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행사 마지막 날,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모인 자리는 어수선했다.
내게 브레인워싱을 당한 디아와라는 황금고블린답게 이것저것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 정보를 취합, 크로스 체크를 통해 미국, 일본과 함께 움직였다.
녀석의 정보 중 가장 유용했던 건 세 가지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리그가 각국 요인과 접선하는 방식이었고 두 번째는 아프리카에 리그 세력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마지막은 인위적으로 힘을 증폭시키는 방식이었다.
“특히 마지막 사안이 매우 심각하지.”
이찬택이 그리 말했다. 그런가? 어차피 자기 힘을 폭발시키는 거라 지속성이 길지 않고 심각한 후유증을 동반할 것 같은데.
“인위적으로 강자들을 양성할 수 있다는 건 리그 전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니까. 리그가 압도적인 전력으로 국가 정부를 무너뜨릴 수도 있어.”
정부 입장에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차피 대부분 허수아비 수준일 테지만 내가 상대할 때와 다른 녀석이 상대할 때는 다를 테니.
“더 파고들면 리그에서 자체적으로 실행하는 연구 수준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는 거고.”
이찬택은 이 부분에 대해서 리그가 압도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애초에 선민사상을 내세운 이들이기에 필요하지 않은 인원은 가차없이 실험재료로 써버린다는 말이었다.
국가 조직에서 인권이나 각종 비정상적인 방법을 배제할 때 리그에서는 온갖 상상을 동원하여 비인간적인 실험을 일삼고 있었다.
물론 눈을 피해 비인간적인 실험을 하는 곳도 있지만 감시를 피해야 하다 보니 대놓고 저지르는 리그만큼 효율이 나오지 않는단다.
“힘을 증폭시키는 방법도 비인간적인 수단일 확률이 높겠지.”
정상적인 수단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게 가능했다면 벌써부터 대중화가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디아와라의 존재로 인해 각국에서는 내부에 리그 세력이 침투해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들을 경계하기 위해 각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리그 입장에서는 각국 정부가 내부적으로 심력을 소모하게 되니 꽃놀이패를 쥔 셈이다.
“좀 더 경계할 뿐 뚜렷한 방법은 없겠지.”
이찬택의 말대로였다. 이후 이어진 회의에서 획기적인 방안은 없고 ‘리그에 대해 좀 더 경계하자!’가 전부였다.
이제 날 의심하지 않으니 한결 편하군.
리그 첩자를 잡아왔는데 칭찬은커녕 의심의 눈을 하니 상처를 좀 받았다.
회의가 끝난 뒤 나는 일본 총리의 초대를 받았다.
“자칫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질 뻔한 걸 막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케타 총리는 내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내가 이곳에 와서 본 일본 사람들은 대체로 예의가 바른 느낌이다.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오히려 일본이 도와줘서 공론화를 쉽게 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협력해야 하는 일입니다. 리그로 고통받고 있는 입장에서 최준호 초인의 공은 큽니다.”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준호 초인의 협력이 없었다면 행사에 큰 차질을 빚었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드립니다.”
총리와 각성장관은 연신 내게 칭찬을 건넸다. 보통 용건이 있을 때 칭찬을 앞세우면서 빙빙 돌아가던데, 내게 원하는 게 뭘까?
“최근 국내 리그 잔당이 날뛰고 있습니다.”
“일본에 리그 세력이 있다는 걸 듣긴 했습니다.”
“그로 인해 마물에 대한 대응 능력도 많이 떨어진 상황입니다.”
왜 이런 얘기를 나한테 하는 거지?
“그래서 사냥 능력을 높이기 위핸 조치를 취하려고 하는데, 최준호 초인의 힘이 필요합니다.”
“어떤 겁니까?”
“한국에 버서커라는 빌런이 있는 걸 알고 있습니다.”
“예.”
“버서커가 일본으로 귀화할 수 있도록 힘 써주지 않겠습니까?”
“버서커를?”
난 나를 끌어들이고 싶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버서커가 일본의 초인이 된다? 그 미친놈이 초인이 된다고? 일본 입장에서 재앙일 텐데.
그 미친놈보다 내가 낫지 않나?
아, 물론 일본에 가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거절하겠습니다.”
“역시······.”
“하지만 제 독단으로 버서커의 선택을 가로막을 수는 없으니 총리님의 제안을 녀석에게 전달하겠습니다.”
흐려졌던 총리의 표정이 환해졌다.
“아! 그래주신다면 참 감사한 일입니다.”
*
최준호가 밖으로 나가고, 총리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전달은 하는군. 아예 마음이 없는 건 아니겠어.”
“진심이 전해졌습니다.”
“버서커를 끌어들여서 최준호까지 끌어들인다. 나쁘지 않은 계획이야.”
“감사합니다.”
본래 총리는 시한폭탄인 최준호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몇 차례 충돌로 초인 몇 명이 죽기만 해도 타국의 전력을 깎아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브리핑이 이루어지던 당일, 최준호와 슈반트네르, 로라, 트라오레간에 벌어진 1:3 대결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초인 셋을 상대하고 압도하다니. 상상을 초월한 무위였고, 누리 사냥에 대한 보고서가 거짓이 아닌 진실임을 깨달았다.
최준호를 이용하지 않고 일본으로 끌어들인다.
미쳐있는 빌런 버서커를 끌어들이려는 것도 계획의 일환이다.
“버서커와 최준호는 절친한 사이입니다. 버서커를 포용한다면 계약이 끝난 후, 최준호도 데려올 수 있을 것입니다.”
총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혀를 찼다.
“최준호를 데리기 위해 미친놈을 데려와야 하다니, 우리 형편도 다 됐군.”
최준호 주변에 정상이 하나도 없다.
여동생인 최윤희는 유망한 헌터지만 손속이 가차 없어 첫 사냥에서 빌런의 다리 셋을 잘라버렸고, 직장 동료였던 정다현은 한국에서 손이 꼽히는 천재지만 지금은 나찰녀라 불리며 빌런들의 두려움 대상이 되었다. 사업 파트너 황금귀 이세희는 황금을 갈퀴로 쓸어가기로 유명한 피도 눈물도 없는 사업가였다.
버서커도 애초에 이명이 미쳐있는 만큼 제정신이 아니다.
하지만 최준호에 대해 조사하면서 총리는 한 가지 확신을 얻었다.
“그중 최준호가 가장 비정상이로군.”
각성장관이 동감을 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애송이, 그러니까 뭐라고?”
버서커의 물음에 미국에서 건너온 디버퍼 샤일로는 눈을 치뜨며 말했다.
“리그는 버서커, 당신이 다시 가입하길 원합니다.”
말을 하는 샤일로의 태도는 몹시 불손했다.
그는 이 좁은 나라에 남쪽 끝까지 온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수? 풍광은 좋지만 마물로 인해 초토화 되어 아무것도 없는 동네에 왜 처박혀 있는지 모르겠다. 버서커라는 이명처럼 미친놈인 게 확실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을 이 먼 곳까지 파견하다니. 리그가 버서커를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과, 자신을 대우해주지 않는 현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디버퍼 샤일로는 미국 최고의 천재 각성자 중 한 사람으로, 리그에 투신하면서 미국 전역을 충격에 몰아넣은 당사자다.
당시 샤일로의 손에 무고한 민간인이 무려 천 명 가까이 죽었었는데, 시체의 일부를 수집하는 버릇 때문에 범죄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그 길로 샤일로는 리그의 일원이 되었다.
현재 나이는 27세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 최연소 초인에 오를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그 타이틀은 최준호가 등장하면서 깨지고 말았다. 그래서 최준호에 대한 감정도, 친하다고 알려진 버서커에 대한 감정도 좋지 않았다.
세계 변두리에서 조금 과장된 녀석들일 뿐이다.
이런 속내를 모르는지 버서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제멋대로 깽판치고 한국 내 세력을 궤멸시킨 나를? 왜?”
“당신이 초인이기 때문입니다.”
“내 가치가 높아졌다는 건가.”
“그렇게 보셔도 무방합니다.”
“흐음.”
버서커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마저도 샤일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권유가 오면 엎드려 절해도 모자랄 판에 고민이라니. 리그는 이 좁은 물에 갇힌 녀석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줄 수 있는 수단이었다.
“난 리그에 원하는 게 없는데.”
“리그는 당신이 원하는 모든 걸 해줄 수 있습니다.”
“내가 힘을 원해도?”
“리그 소속 초인들은 세계 최강입니다. 그들에게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겁니다.”
“크크, 그거 하나는 끌리는군. 나쁘지 않아. 하지만 땡기지 않는군.”
아무리 튕겨봤자 각성자는 결국 힘을 추구하는 법이다. 하지만 버서커는 자기 주제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샤일로는 버서커를 향한 살심이 생겼다. 조금 대우해줬다고 으스대는 꼴이 같잖았다.
“허락 하나만 얻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허락? 무슨 허락 말입니까?”
“내 주인님이 있거든.”
낮게 웃은 버서커가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통화 대상은 다름 아닌 최준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