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82
82화
82화
버서커가 전화를 걸고 잠시 후, 통화가 연결되었다.
건너편에서 메마른 최준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왜?
“리그에서 내게 제안을 해왔다. 가입할 생각이 없냐고 하더군.”
-그래서?
“넌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해서 연락했다.”
-내가 말하면 따를 생각이고?
“당연히. 넌 내 주인님 아닌가. 중요한 사안은 결정을 내려줘야지.”
버서커는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최준호를 향한 마음은 어느 정도 진심이었다.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을 고민해볼 정도?
몇 번 충돌하면서 알게 모르게 쌓인 감정이 유대감이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최준호가 자기더러 미친놈이라 하는 건 전혀 동의하지 못하지만.
미친놈은 오히려 최준호다.
당사자는 스스로가 정상이라 생각하는 게 함정이다.
-···헛소리하지 마라. 찾아온 녀석은 죽여 버려. 상종 못할 미친놈들이니까.
“그냥 망상병 환자들 아닌가? 얘들도 미쳤다고?”
-나더러 빌런이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지껄이던데?
···소름이 돋았다.
괜히 리그가 세계 곳곳에 뿌리를 내린 게 아니었군.
보는 눈 하나는 확실하다.
하지만 최준호는 인정하지 않겠지. 이미 주변은 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던데.
자기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에 버서커는 웃었다.
“주인의 지시에 따르지. 그런데 디버퍼 샤일로를 아나? 내게 리그 가입을 권유하러 온 녀석이다.”
디버퍼 샤일로는 전 세계에 위명을 떨친 유망주였다. 최준호가 나타나기 전, 최연소 초인이 될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혔다.
주위에 무심한 건 알고 있지만 한때 최고 유망주였던 이름을 알까 궁금했다.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아는 이름이었으나······.
-그딴 놈 몰라. 그리고.
말을 멈춘 최준호의 목소리가 스산해졌다.
-왜 자꾸 나더러 주인이라고 하냐? 한 번 더 헛소리하면 찾아가서 목을 꺾어놓을 줄 알아라.
그걸로 통화가 끊겼다. 일방적이다.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던 버서커가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크크크, 부끄러워하기는.”
자기도 레벨 8 초인인데 좋으면서 저렇게 행동한다. 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 주인이라 부르는 이유? 간단했다. 재밌거든. 매를 버는 행동인 건 알지만 끊을 수가 없었다. 매야 안 맞으면 되는 거고.
무엇보다 최준호가 행동하는 걸 보면 형언할 수 없는 짜릿함에 휩싸이곤 했다.
세계 최고 재능이라 불린 샤일로가 한순간에 무명 애송이로 전락했고, 세계 각국을 벌벌 떨게 만드는 리그가 잡스러운 빌런 조직으로 격하되었다.
오직 최준호이기에 할 수 있는 언행이고, 그가 말하면 진심으로 느껴졌다. 세상의 모든 걸 한없이 깔보고 있는데 그럴 실력까지 지니고 있다.
버서커의 시선이 샤일로에게 향했다. 통화 내용이 들렸는지 그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애송이 녀석이다. 최준호였다면 통화조차 기다리지 않고 손을 썼을 거다.
광기가 모자라다. 자신도 저랬었지. 최고가 되려면 최준호처럼 제대로 미쳐있어야 한다.
“아쉽지만 리그에 가입하지 못하겠어.”
“······.”
“그나저나, 최준호는 네 이름도 모르는 걸 보면 생각보다 별로였나 봐. 크크, 가서 더 노력하고 와라, 애송이.”
“···지껄이는 걸 참아주려고 했지만, 더 이상 안 되겠어.”
조금 전까지 예의를 차리던 샤일로의 눈에 날카로운 살기가 담겨 있었다. 미국에서 천 명 넘게 죽인 살인마의 얼굴이 되었다.
버서커는 코웃음쳤다.
그래봤자 천 명이다.
최준호에 비하면 저건 가짜 광기였다.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데려가지 못하면 죽이는 수밖에.”
“누굴? 날?”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어서. 이런 촌구석에 사는 녀석이 뭐가 중요하다고 신경 쓰는 건지. 좁은 골목에서 대장질이나 하는 녀석인데.”
“쯧쯧, 최준호였으면 손부터 썼을 거다. 겉멋 든 애송아.”
샤일로는 대꾸하지 않고 단검을 뽑아들었다. 양손에 들린 단검이 햇빛에 반사되어 새하얀 빛을 뿌렸다.
동시에 포스가 스멀스멀 흘러나오며 음산한 분위기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넌 이 자리에서 죽는다, 버서커.”
이래서 세상은 재미있다.
애송이 녀석이 제 주제를 모르고 덤벼오는 걸 보면.
“덤벼라.”
*
샤일로는 천재다. 일찍이 포스 운용이 눈을 뜨고 어린 시절부터 성인 각성자들이 해내지 못한 걸 일찌감치 해내기 시작했다.
기프트인 디버프를 개방하면서 샤일로는 화려한 길을 걸어왔다. 주위에서 독보적인 천재로 추켜세워졌고, 방송으로 널리 알려져 전미 최고 스타가 되었다.
주변이 떠받들어주는 만큼 빠르게 성취를 이뤄낸 샤일로는 그만이 지닌 초월감각으로 무려 12개의 디버프 운용 방식을 완성했다.
이례적인 성취였고 전미가 흥분에 휩싸일 정도였다.
하지만 샤일로는 그때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더 강해지기 위해 사람을 실험대상으로 삼았다.
세상은 넓고, 쓸모없는 인간은 많았다. 샤일로는 그들을 납치하여 자신의 기프트 응용 능력을 키우는 재료로 사용하였다. 선을 넘는 순간, 성취도 수직상승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지루해졌다. 좀 더 큰 자극을 원했다. 그래서 각성자를 납치하기 시작했다.
기프트를 숨기고 있던 각성자로 인해 범행이 들키긴 했지만 그게 나쁜 결과는 아니었다. 리그에 가입한 샤일로는 자신이 모르는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아르고, 블랙하운드, 헬 마스터.
전설의 빌런은 본인이 왜 전설인지 보여줬고, 12궁도 뛰어난 실력자였다. 샤일로는 가장 먼저 12궁에 오른 뒤, 리그의 삼악에 도전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눈앞의 버서커 따위는 애당초 안중에도 없었다.
“네놈의 세계가 얼마나 좁은 건지 알려주지.”
샤일로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벽에 가로막혀 있었다.
바로 초인이라는 거대한 벽이다.
노력하는 족족 레벨이 올랐던 그였지만 초인의 경지만큼은 손에 넣을 수 없었다.
하지만 리그의 은혜로움은 그마저도 극복하게 만들어줬다.
부스트(Boost).
무수히 많은 제물들의 포스를 응축시킨 결실이다. 이걸 주입하여 내부 포스와 충돌을 일으키게 하여 초인이 동원할 수 있는 포스량을 갖게 하는 것이다.
시술이 실패하면 죽음이지만 샤일로는 천재적인 재능으로 부스트를 활용,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초인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유일한 단점은 부스트 발동시 이성보다 본능이 앞서게 된다.
“어떻게 죽여줄까.”
머릿속을 지배해나가는 살기에 뇌가 절여지는 느낌과 함께 세상의 모든 만물현상이 선명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초인이 보는 세계, 초인이 느끼는 감각이다.
이걸로 12가지 디버프를 완성하고 추가로 네 개의 디버프를 더 완성했다.
눈에 핏발이 선 샤일로는 버서커의 모든 정보가 눈에 들어왔다.
갑옷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단련된 육체와 폭발하기 직전의 흉폭한 포스가 눈에 들어왔다. 예상보다 뛰어난 수치였지만 큰 걱정은 없었다.
“처음에는 촉각을 잃을 것이다. 그리고 시각, 후각, 미각, 청각이 사라져 오감을 상실하겠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각을 하나씩 뺏고, 혼란스러워하는 상대가 가진 걸 상실시킨다.
절망에 빠진 적을 요리하는 것이 샤일로의 방식이다.
레벨 7인 상태에 초인이 된 지금 디버프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당장 도전하면 12궁의 초인조차 잡을 거라 자신할 정도.
실제로 리그 가입 권유를 거절한 초인 하나를 처리했고, 추격하던 헌터 수백 명을 제거했다.
그만큼 디버프의 위력은 강력해서 은밀하면서 빠르고, 치명적이었다.
당시 제안을 거절했던 초인 녀석도 목을 뻣뻣하게 세우다가 오감을 잃고 절망하며 무릎 꿇고 리그를 가입하게 해달라며 살려달라고 빌었었지.
물론 리그에 그런 쓰레기는 필요하지 않아 죽여 버렸다. 초인도 다 같은 초인이 아닌 것이다.
다 늙은 초인 하나 잡은 것이 인생 최대 업적인 반쪽짜리 초인쯤은 순식간에 사경을 헤매게 될 것이라.
하지만 그 생각은 디버프에 당하고도 멀쩡하게 서 있는 버서커를 보는 순간,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끝이냐?”
“···어?”
“그럼 내 차례로군.”
버서커가 살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
버서커는 샤일로의 이름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미국을 진동시킨 희대의 빌런. 한때 세계 최고의 천재였던 그가 빌런으로 전향한 건 미국을 뒤집히게 만든 큰 사건이었다.
20대 중반에 레벨 7에 도달한 것도, 리그에 들어간 뒤 더 강해졌을 거란 생각도 했다.
샤일로가 가진 디버프의 위력은 실로 대단해서 마물 사냥에 필수적인 능력이라 불릴 정도였다.
그걸 천재적인 감각으로 운용하는 샤일로의 이탈은 그만큼 뼈가 아팠을 테고.
강력한 각성자를 한순간에 일반인보다 못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샤일로의 디버프는 경계의 대상이었다.
녀석이 디버프를 시전했을 때, 버서커는 그걸 막아낼 수 없었다. 신묘하기 그지없는 움직임으로 허를 찔러 내부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디버프는 아무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만독불침이 개방됨과 동시에 흔적도 없이 소멸한 것이다.
“크크! 크크크! 크하하하!”
이 얼마나 강력한 기프트란 말인가! 전설이라 칭해지는 기프트가 천재의 압도적인 재능으로 발전된 기프트마저 무산시켰다.
더 강한 힘! 더 강력한 기프트!
모든 것은 버서커가 간절히 갈망하던 것이었다.
샤일로의 얼빠진 표정에서 버서커는 형언하기 힘든 쾌감을 느꼈다. 이것이야 말로 강자가 누릴 수 있는 감정이다. 만독불침만 있으면 세상 전체를 파멸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최준호를 생각하는 순간 전신에 소름이 올라오며 정신이 돌아왔다.
녀석이 있는 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떠오른 것이다.
자신이 가졌던 완전회복에 만독불침까지 최준호는 갖고 있다.
거기에 본래 갖고 있던 기프트들까지.
대체 녀석은 얼마나 강할 것이란 말인가.
···더 무서운 건 저래놓고 스스로를 제정신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점이다.
“방심하면 안 되겠어.”
최준호만 아니었으면 좀 더 파괴하는 삶을 누릴 수 있었는데.
가끔씩 제동이 걸리는 모든 이유가 녀석의 존재 때문이다.
리그의 삼악? 12궁? 모두 버서커의 안중에도 없었다.
최준호 옆에 있다면 힘의 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광기에서 벗어나니 당혹스러워하는 샤일로의 얼굴이 보였다. 녀석이야 말로 좁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애송이다. 저 녀석을 최준호 앞에 던져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제 손에 들어온 제물을 양보하면 안 되겠지.
“애송이 전투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가 볼까.”
버서커가 대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
“크아아아!”
괴성과 함께 무시무시한 굉음이 연이어 울려 퍼졌다.
디버프가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샤일로는 꽤 강했다.
하지만 버서커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디버프가 없는 녀석은 꽤 쓸모 있는 수준에 불과했다. 오히려 신체 능력이 떨어지고 포스도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붉은뱀 김영환이 더 까다로웠다.
“크하하하하!”
버서커는 스스로도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쳐가는 걸 느끼고 가족을 버리고 빌런이 되었다.
미쳐버렸지만 자신이 갈망하던 별의 순간만큼은 반드시 손에 넣고 싶었다.
하지만 실력이 느는 것보다 광기가 정신을 잠식해나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완전히 미쳐서 더 이상 되돌릴 수 없을 지경에 도달했다고 여겼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최준호를 만난 순간, 버서커는 자신이 생각보다 미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진짜를 본 것이다.
그러자 자신을 뒤덮었던 광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늘 밖 하늘을 보니 자신을 둘러싼 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저 심마가 자신을 잠식하고 있었을 뿐.
세상을 보는 시선이 바뀌는 순간, 버서커는 자신을 둘러싼 벽을 산산이 부숴버렸다.
쩌엉!
샤일로의 단검이 부러졌다. 무기를 잃었어도 맨손으로라도 공격해야지. 최준호였다면 좋다고 달려들어 목을 틀어쥐려 했을 것이다.
뒤늦게 양손에 포스를 집중해서 막아내려 했지만 대검에 걸레짝이 되었다.
“큭!”
이를 악 문 녀석이 거세게 저항한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디버프 기프트를 잃은 순간, 특색 없는 초인에 불과했다.
실전 경험도, 포스량도, 대결 전체 운영 능력도 모두 버서커가 앞섰다.
마무리는 최준호가 준 누리 뼈단검을 가슴에 박아 넣었다.
“포스를 얻는다고 초인이 된 게 아니다, 애송이.”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리그에서 세상을 호령할 내가 이런 촌구석에서······.”
샤일로는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 피를 토하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가짜 광기 녀석이 마지막까지 헛소리를 하는군.”
진짜를 보여줘서 참교육을 해야 하는데, 그게 유일하게 아쉬웠다.
콰드득!
“커허헉!”
단검을 비틀자 심장이 갈가리 찢긴 샤일로가 비명과 함께 죽었다.
하지만 버서커를 둘러싼 열기는 조금도 식지 않았다.
더 강한 상대가 필요했다. 더 죽일 상대가 필요했다.
“입맛만 버렸군.”
진짜 리그에 가입해볼까?
그 생각이 들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결국 목적이 있는 단체는 목적을 위해 쓰이기 마련이다.
버서커는 자유를 갈망했고 사랑한다.
책임 없는 자유 속에서 마음껏 파괴 욕구를 발산하고 싶었다.
그리고 리그에 가입하면 최준호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녀석은 미친놈이거든. 크크크!”
진짜 미친놈이 자신더러 미쳤다고 할 때만큼 어이없을 때가 없었다.
그때,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샤일로의 시체를 밀어버린 버서커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연락해온 사람은 최준호였다.
-죽였냐?
“죽였다. 꽤 흥미롭더군.”
-말해봐.
“레벨 7 수준이 기프트 비슷한 걸 발동하니 초인에 비견되는 포스 위력을 발휘했다.”
-······.
직접 본 버서커도 놀랄 정도였으니 최준호도 놀라는 게 무리는 아니겠지.
그 반응에 버서커는 살기 섞인 웃음 소리를 냈다.
“아무튼 주인의 지시대로 녀석을 끝냈다. 상을 기대해도 되겠지?”
-조만간 찾아가서 한 번 만져주지.
어? 이게 아닌데?
버서커는 정신이 맑아지는 걸 느꼈다.
조금 전까지 머릿속을 꽉 채운 광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내가 바란 건 그런 게 아니다.”
-상 달라며? 애송이 상대하고 몸이 덜 식어서 그런 거 아닌가? 저번 대결 끝나고 다 나은 거 같으니 내가 상대해주지.
“······.”
-넌 맞아야 정신 차리더라. 여수에서 딱 기다리고 있어.
결국 버서커는 본전도 건지지 못하고 통화를 끝내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최준호가 한국으로 돌아와 곧장 여수로 갈 거란 톡을 보고 욕을 내뱉었다.
“···씨발.”
버서커는 바로 차를 몰고 여수를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