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88
88화
이영문의 왼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무슨 말이지?”
“능력은 없는데 욕심은 많고 쓸데없이 나대기까지 하는 댁 아들 말입니다.”
나는 최대한 순화해서 말했다. 내 의도가 먹혔는지 이영문도 더 반응하지 않았다.
“아들이 누군지 모르는 건 아닐 테고.”
“······.”
신성그룹 회장, 이영문.
재벌그룹이 대한민국 최고 길드까지 거느리게 만든 능력자였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하고, 차남이라는 리스크가 있었음에도 전대 회장의 선택을 받았고 그 기대에 부응하여 신성그룹을 대한민국 최고 재벌그룹이자 길드로 발돋움 시켰다.
작은 체구임에도 초인급에게서나 발산할 수 있는 기세가 느껴지는 건 그가 이뤄 낸 성과 때문이겠지.
별명이 재계의 작은 거인이라던가.
감이 좋고 상황 판단이 빠른 양반이다. 단점이라면 자기 가족에게 무심한 부분이겠지.
당장 장남인 이세찬보다 이세희가 중용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나처럼 가족에게 좀 더 신경 쓸 것이지.
화려한 수식어가 제법 많지만 나한테 얄짤없다.
“세찬이만 관리하면 되는 건가?”
“나대지 못하게 팔다리도 자르고. 아, 진짜 팔다리를 자르란 건 아닙니다.”
요즘 내 말을 착각하는 사람이 많아서 친절하게 덧붙여 줬다.
근데 진짜 딴 짓 못 하게 할 거면 이것도 나쁜 선택은 아닌 거 같다.
“만약 관리를 못하면?”
“죽일 겁니다.”
“망설임이 없어.”
“죽일 놈 죽이는데 생각이 필요합니까?”
애초에 여기까지 찾아온 게 그 목적이었는데 달성하지 못하면 나도 손을 써야겠지.
그리고 자식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이 양반도 없어지는 게 나을지도. 오히려 이세희가 일찍 신성그룹을 장악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살기가 이는군.
일반인이면 오줌을 지릴 수 있는 거였는데 잘 버틴다. 각성자가 아니어도 거인은 거인이란 건가.
“······.”
이영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날 조용히 바라봤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지만 찰나지간 눈꺼풀이 떨리는 걸 난 봤다.
“받아들이지.”
“좋은 판단입니다.”
“누군가가 강요한 판단이겠지.”
누가 보면 내가 설득이 아니라 강압적으로 구는 줄 알겠군.
그래도 빠른 판단이었다.
이영문이 살아 있었을 때 신성그룹은 매년 안정적으로 성장했다. 따지고 보면 이세찬이 밀려나고 이세희가 재능을 발휘하는 건 이영문이 배치해 둔 덕분이니 용인술도 뛰어나다.
이 상황도 의도한 건 아니겠지?
적당한 잡음도 자극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이 갈등도 의도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봤자 거기까지.
내 신경에 거슬리니까 더 이상 그 꼴을 봐주기 싫었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내가 나서야지. 근데, 보다시피 건강이 좋지 않거든.”
“영약이라도 하나 구해 줄까요?”
“구해 줄 수 있나?”
“근데 값이 많이 비쌉니다.”
포스가 잘 정제된 마물의 장기는 훌륭한 보양식이지.
특히 마물의 성기가 정력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한동안 품귀 현상이 벌어진 적 있다.
난 당연히 먹지 않지만 장기는 괜찮다.
먹을 땐 좀 역하지만 눈 딱 감고 즐기면 이만한 진미가 없다.
마치 내가 마물이 된 기분이랄까.
묘하게 꼬릿한 게 된장찌개와 비슷한 것도 있고.
오랜만에 떠올리니 군침이 돌았다.
“끌리긴 하는데 먹을 수는 없겠어. 약효를 받아들이는 것도 까다로울 만큼 상태가 좋은 게 아니거든.”
“필요하면 말하면 됩니다.”
“세희가 친구를 잘 뒀군. 여기까지 오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쉽던데.
아무튼 이야기가 잘 통하니 다행이다.
이럴 거면 진즉에 찾아올 걸 그랬다.
신성그룹 내부가 본격적으로 복잡해지는 건 내가 혈종이 된 이후라 아는 바가 그리 많지 않다.
이 양반이 하는 걸 보면 이세희에게 우호적인 거 같던데. 머리가 지나치게 차가워서 그런 건가. 이세찬에 대해 처리할 때도 별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맞을지도.
거기까지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겠지.
그냥 어이없게 죽지 않도록 신경 좀 써 봐야겠군.
“세찬이는 내가 단속하도록 하지. 그거면 되나?”
“사회적 위치가 있는 분이니 말한 건 지키기 바랍니다.”
목적을 이뤄서 미련 없이 돌아가려 할 때였다.
“이래 보여도 대한민국 최고 부자네. 신용이 없으면 사업도 못 하지.”
그래서 어쩌라고?
그렇게 돈이 많으면 나한테 좀 주고 자랑이나 하던가.
내 감정에 표정에 드러났는지 이영문이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이곳까지 올 정도면 원하는 게 좀 더 많을 거라 생각했지. 가령.”
“가령?”
“세희를 원한다거나.”
이세희? 마음 같아서는 데려가고 싶긴 하다. 수완은 진짜배기였으니까.
근데 얘 훈련시키다 보니 좀 무서워서.
궁지에 몰릴수록 귀기 어린 웃음을 짓는데, 정상이 아니다.
“탐이 나는 인재긴 한데, 이세희가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건 신성그룹에 있을 때라서.”
“그런 의미가 아닌데.”
“그럼 뭡니까.”
날 물끄러미 보던 이영문이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얘기하도록 하지.”
김빠지게 만들기는.
나도 더 할 말은 없어서 조용히 돌아갔다.
* * *
“······.”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최준호의 잔상을 쫓던 이영문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각성자는 아니지만 사람 보는 눈 하나로 이 자리에 오른 것이 이영문이다.
젊은 시절 백군서를 발탁한 것도 그였고, 계열사를 책임지는 사장단도 그가 직접 뽑아 가르친 사람들이다.
이 눈이 없었다면 자신도, 신성그룹도 지금의 위치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최준호의 위명을 듣기는 했지만 듣던 것 이상으로 거침이 없고 무례했다.
그 이상으로 실력은 확실했고.
위험도는 자신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수가 틀리면 신성그룹조차 위험할 정도로.
예전이라면 당장 손을 끊으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능력이 받쳐 주면 무례함도 매력이 되는 법이지.”
이영문은 자기 손아귀에 고인 땀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사람 앞에서 이렇게 긴장한 건 오랜만이었다.
저 사나운 맹수를 이세희는 용케 잘 구슬렸다 싶었다.
그리고 이세찬은 그 맹수의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을 하고 있었고.
“나도 가장 가까운 곳을 등한시하는 멍청이였군.”
가업을 성공시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살아온 인생이다.
정작 집안단속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으니 최준호에게 어떤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애초에 그런 쓴소리를 할 사람이 주변에 없는 것도 있지만.
이영문은 곧바로 집사를 호출했다.
갑작스러운 호출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집사는 어수선한 방안의 풍경을 보고 대경했다.
“회, 회장님!”
“침입자가 다녀왔다.”
“죄송합니다! 죽여 주십시오!”
사색이 된 집사가 엎드리며 벌벌 떨었다. 대한민국 최고 재벌 회장의 집에 침입자라니.
만약 침입자가 다른 마음을 먹고 왔던 거라면? 지금 당장 자신의 목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탓할 생각 없다. 침입자가 들어온 루트를 재점검하고 경비 체제를 새로 구축하도록.”
“아,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나가는 집사를 보며 이영문은 가볍게 혀를 찼다.
유일한 불만이라면 이세희와 관계 진척이다.
“고자는 아니겠지?”
에이, 설마, 아니겠지.
이영문은 다음 날, 신성그룹 본사로 출근했다.
* * *
칩거에 들어가 두문불출하던 이영문의 등장에 신성그룹은 비상이 걸렸다.
이영문의 존재가 곧 신성그룹이라 할 정도로 그 존재감은 강렬했다.
본사는 물론 모든 계열사의 이목이 이영문에게 집중되었다.
곧이어 백군서가 불려 가는 걸 보며 그룹 임원들은 백군서와 이세희의 충돌이 직접적인 원인임을 깨달았다.
“실망했다.”
“······.”
“문제가 있었으면 말해야지.”
“······.”
백군서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이영문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빤히 바라보다 얕은 기침을 했다. 놀란 백군서가 고개를 들자 이영문이 입을 열었다.
“군서야.”
“예, 회장님.”
“지금은 네 형으로 부르는 거다.”
“예, 형님.”
“날 정말 형님으로 생각하고 있는 거 맞냐?”
“죄송합니다.”
“죄송할 거 없다. 내가 무심해서 벌어진 일이지.”
“아닙니다.”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는 백군서를 보며 이영문은 숨을 몰아쉬었다. 놀란 백군서의 표정에 잠깐 호흡이 가빠진 거라며 손을 들어 제지했다.
백군서가 이세희와 충돌을 일으킨 이유는 아들 문제였다. 이세찬에게 붙어 있던 백군서의 아들 백진용은 철없는 망나니였는데 몇 가지 죄를 저질렀다. 이세찬이 그걸 덮어 준 걸 알리면서 이세희와 충돌을 일으켜 달라고 한 것이다.
이세찬의 목적은 후계자 자리겠지.
하지만 이영문이 본 이세찬은 후계자감이 아니다.
“네 아들이면 내게 조카다. 진용이를 한국인들이 아예 없는 미국으로 유학 보내겠다. 낯선 곳에서 공부만 하다 보면 정신이 좀 들겠지. 반론은 받지 않겠다.”
“···감사합니다, 형님.”
“아직 날 형님이라 생각하면 됐다. 너도 머리 식혀라. 컨디션을 유지해야지.”
“예.”
백군서가 밖으로 나가자, 이영문은 가볍게 혀를 찼다.
자신이 이뤄 온 제국이었다. 자신의 대에 반석 위에 올려놓는 것을 생각했을 뿐, 그 이후에 대해 소홀했다.
어쩌면 젊은 날 형님과 경쟁했던 기억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당시 골육상쟁이 신성그룹을 이만큼 키우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이영문은 대담하게 저택에 침입해서 자신에게 살기를 발산하던 최준호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무리 견고한 성을 쌓아도 사람 하나의 변심으로 모든 게 무너질 수 있다.
그런 시대인 걸 알면서 불안요소로 두고 싶지 않았다.
고작 한 사람에게 무너지기 위해 세운 제국이 아니다.
“이세희 총괄 운영팀장 불러.”
* * *
아버지의 부름에 이세희는 가슴이 거세게 뛰는 걸 느꼈다.
어린 시절부터 늘 어려웠던 아버지다. 그녀에게 이영문의 존재는 아버지이자 존경하는 기업인이며, 반드시 뛰어넘고 싶은 목표였다.
신성길드 총괄 운영팀장을 맡으면서 눈부신 성과를 거뒀지만 아버지와 비교하면 한참 멀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숨어 있었다.
집에서 쉬며 몸조리를 하던 아버지가 본사로 출근했다.
본능적으로 이번에 일어난 충돌 때문인 걸 알았다.
“세희야.”
“네, 회장님.”
“편하게 불러라.”
“네, 아빠.”
“군서와 대화는 나눴다. 곧 네게 찾아가 사과할 거다.”
이세희가 고개를 저었다.
“삼촌하고 이미 풀었어요.”
“하지만 공식적으로 푼 건 아니지. 이번 건은 조용히 처리할 수 있던 걸 키운 군서 탓이 크다. 그러니 군서가 한번 굽혀야 깔끔하게 끝이 난다.”
그 과정에서 백군서의 자존심에 금이 갈 것이다.
하지만 이영문이 나선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자신이 어렵다고 생각했던 걸 이영문은 깔끔하게 해결했다.
“······.”
“그리고 네 성과가 그룹을 빛냈다.”
“저, 정말요?”
이영문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걸렸다.
이세희는 알고 있다. 저 작은 미소를 보기 위해 무수히 많은 임직원이 목숨을 걸고 일을 했다. 이영문이 보내는 신뢰 표시였다.
“앞으로 널 믿고 더 많은 일을 맡기마. 도와줄 수 있느냐?”
“네! 당연하죠!”
“그럼 네가 먼저 해 줘야 할 일이 있다.”
“시켜만 주세요!”
이세희는 당차게 말했지만 이어진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최준호를 불러와라.”
“네?”
예상하지 못한 말에 이세희의 눈이 크게 뜨였다.
* * *
오랜 칩거에 복귀한 이영문은 광폭 행보를 보였다.
첫날 복귀해서 백군서와 이세희 간에 있던 갈등을 깔끔하게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이세찬에게 붙었던 임원 12명을 날려 버렸다.
일각에서는 이것을 이세희가 후계자로 낙점한 거라 보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청와대에 방문한 뒤, 대규모 투자를 발표함으로써 신성그룹을 둘러싼 불길한 분위기를 단번에 씻어 냈다.
기사가 나오는 것도 그렇고, 청와대 분위기도 보니 방귀 꽤나 뀌는 양반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나와 협력을 강화할 거라는 기사가 쏟아진다.
누가 보면 나와 이영문이 엄청 친한 것처럼 알겠는데?
그리고 나는 지금, 신성 길드 귀빈 파티에 참석한 상태다.
“와 주셔서 감사해요.”
이세희가 살짝 달아오른 얼굴로 인사를 건네 왔다.
난 파티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을 보다 중얼거렸다.
“초대를 받아서 오기는 했는데, 이런 자리인 줄 몰랐는데.”
“회장님을 뵙고 싶어 하는 분이 워낙 많으셔서요. 이 정도도 많이 추려 낸 거예요. 그보다 저 어때요?”
살랑, 한 바퀴 돌며 묻는 이세희.
몸매라인이 한껏 강조된 블랙 롱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목걸이와 귀걸이, 팔찌로 한껏 화려함을 더하고 보석으로 장식된 허리띠로 잘록함을 강조했다.
드레스 옆트임으로 드러난 각선미나 새하얀 팔이 눈에 띄었다.
근육이 잘 안 잡히는 체질인가? 더 굴려 줘야 하나?
그래도 미적 관점에서 볼 때 아름다웠다.
“잘 어울리는데?”
“다행이다.”
내 평가가 뭐라고 그렇게 안도할까.
그것과 별개로 꾸미는데 잔뜩 힘준 건 분명했다.
근데 저거 숨이나 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배는 괜찮아?”
“네, 숨은 쉴 수 있네요.”
“배 나온 건 아니고?”
“···방금 그건 마이너스 백만 점짜리 발언이에요.”
졸지에 호감도 마이너스 백만 점이 되었군.
안나 크리스틴한테 나이 언급할 때도 비슷한 표정이었던 거 같은데.
아무튼 파티에 왔지만 역시, 이런 자리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주변에서 쏟아지는 이목도 결국 내게 뭔가를 바라는 게 있어 보였으니까. 정작 난 저 사람들에게 원하는 게 없는데.
내가 다른 사람과 어울릴 생각이 없는 걸 눈치챘는지 이세희가 계속 옆에 있어줬다.
그때 백군서가 내게 다가왔다.
“최준호.”
“예.”
“내부 일로 네게 불똥을 튀게 만들었다. 사과하지.”
초인 자존심은 하늘처럼 드높다며? 이렇게 쉽게 해결되는 거였나?
좋게 마무리하자는 거였으니 나도 좋게 받았다.
“전 괜찮습니다. 사냥에 방해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방해라니, 오히려 우리가 배워야지.”
“그럼 저도 신성길드 방식을 배우겠습니다.”
“그날 잘 부탁하겠네.”
백군서의 사과로 나름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마쳤다.
예전의 나라면 둘 중 하나는 죽었어야 했을 텐데, 나름 흡족한 결과다.
난 이세희를 보며 물었다.
“사냥 준비는 어때?”
“순조로워요. 남은 건 소예만 나타나면 되는 것 정도?”
“잘 되고 있군.”
나야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면 되는 거니까.
오죽하면 준비의 ‘신성’이라는 말이 있을까.
그때, 수군거리는 소리가 커지더니 소란이 일어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이영문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여전히 건강이 안 좋아 보이는데 진짜 영약 하나 구해 줘야 하나.
“와 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지.”
“이 팀장 초대가 아니면 안 왔을 겁니다.”
“하긴, 이런 자리를 싫어한다고. 익숙해지면 좋겠지만 초인이 맞출 필요는 없겠지. 다음에는 다른 자리로 마련하겠네.”
굳이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나.
이런 내 생각을 모르는지 이영문이 이세희에게 눈짓했다.
“세희를 잘 부탁하지. 세희 너도 최준호 초인을 잘 모시고.”
“···네.”
왜인지 이세희가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몸이 안 좋은 이영문은 짧게 파티를 즐기란 말을 남긴 뒤 자리를 벗어났다.
그 하나만 사라졌는데 자리 분위기가 가벼워진 게 느껴질 정도였다. 각성자가 아니고 체구가 작아도 그룹의 회장이라는 카리스마가 대단하긴 하다.
나도 적당히 자리 잡아 음식을 먹었다. 맛이 있긴 한데 역시 내 입맛에는 기예르모의 멕시칸 스타일 된장찌개에 밥 말아 먹는 게 최고다.
날 기만한 제임스 리드의 레시피인 지중해 담치(홍합) 베이스 육수로 만들면 환상의 맛이 만들어진다. 나중에 아울베어 머리까지 넣어 봐야겠다.
난 음식을 먹으며 내게 다가오는 몇몇 귀빈과 인사를 나눴다. 이세희가 옆에서 도와줘서 어려움 없이 응대할 수 있었다.
“지루하죠?”
“슬슬 가도 될까.”
“나머지는 제가 커버할게요.”
“그래.”
이세희의 호의를 받아들여 자리를 벗어나려 할 때였다.
“최준호!”
파티장 안으로 들어온 건 이세찬이었다.
녀석은 표정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분노를 표출하며 내게 다가왔다.
“최준호 이 새끼, 네가 그러고 무사할 줄 알아?”
다짜고짜 욕이다.
이영문한테 혼난 걸 나한테 화풀이 하는군.
큰소리에 주변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래서 자기한테 좋을 게 없는데, 역시 멍청한 놈은 멍청한 선택을 한다.
“너보단 무사하겠지.”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아? 네 동생, 신성 길드 소속인 거 다 알아. 네놈은 무사할지 몰라도 네 동생은······”
빠각!
“끄아악!”
내 발이 이세찬의 정강이를 걷어차자 다리가 돌아갈 수 없는 방향으로 꺾였다.
이세찬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이영문의 부탁으로 참았지만 선을 넘은 녀석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난 발로 툭툭 차서 무릎과 팔을 모조리 부러뜨렸다. 그리고 머리끄덩이를 잡아 녀석과 시선을 마주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얼굴이 보인다.
나보다 약한 주제에 왜 자꾸 시비를 거는 걸까.
악감정이 있어도 힘이 부족하면 꾹 억누를 것이지.
아니면 나보다 강해지던가.
“다시 말해 봐.”
“끄으, 너······.”
“세희 오빠라고 봐줄 줄 알았어? 너 세희랑 친하지도 않다며.”
끝내자.
내 손이 녀석의 얼굴을 뒤덮을 때였다.
“준호 씨!”
이세희가 몸으로 나와 이세찬을 갈라놓으려 했다.
난 손으로 이세희를 밀어냈다. 끝을 내야겠다.
그때, 자리에 없던 이영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준호 초인.”
고개를 돌리니 숨이 가쁜 상태로 몰아쉬고 있는 이영문이 서 있었다. 그의 옆에는 백군서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부축한 상태였다.
백군서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태세였다. 자기 아들을 이용한 원수인데도 충성심 하나는 확실하다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덤비면 백군서도 죽일 것이다.
호흡을 가다듬은 이영문이 내게 말했다.
“아들의 결례를 사과하지.”
“회장님이 사과할 일 아닙니다.”
이 망나니랑 다른 사람인 걸 아니까.
“다시는 눈에 안 띄게 할 테니 살려줄 수 있나?”
“아들한테 미련이 있습니까?”
“없네. 하지만 아들을 이대로 죽게 두면 최준호 초인에게도, 내게도 좋지 않지.”
“그럼 믿고 맡기죠.”
난 잡고 있던 머리끄덩이를 놓고 품속에서 회복제를 꺼내 뿌려 줬다. 치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팔다리가 원래 형태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세찬은 비명을 지르지 못한 채 꿈틀거릴 뿐이었다.
“호의에 감사하지. 데리고 나가.”
이영문의 말에 경호원들이 몰려와 이세찬을 부축했다.
어차피 나도 처음부터 죽일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망나니여도 이영문의 아들이고 이세희의 오빠니까.
하지만 윤희를 언급한 순간 선을 넘었다. 그렇다면 죽는 것만도 못하게 만들어 줘야겠지.
이세희가 내게 다가왔다. 눈물로 얼굴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준호 씨,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인사 받을 일은 아냐.”
후환은 남기지 않았으니까.
끌려 나가는 이세찬의 눈은 흐릿하게 풀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