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9
9화
“······.”
고급 한식당집 앞에 도착한 정다현은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준호를 보고 느꼈던 위화감은 틀리지 않았다. 자칫 일을 벌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뒤를 쫓아 도착한 곳이 이곳이다.
그가 입사 첫날부터 왕주열을 안 좋게 보고 있었다는 걸 안다. 마약 조직에서 왕주열의 이름이 나오기도 했고 크게 번지지 않았지만 몇 차례 충돌도 벌어졌다.
무엇보다 왕주열도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왔으니 감정이 좋으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그래도 무모해.”
왕주열은 비리로 얼룩진 공무원 헌터지만 인맥 하나는 알아주는 인물이다. 공무원 헌터들 사이에서 굵직한 인연을 맺어 두고 있고, 대기업, 대형 길드와 관계도 끈끈했다.
장부에 기록된 이름, 자잘한 몇 개의 비리로 그를 찍어 낼 수 없다.
그래서 정주호도 마음에 안 들어 하면서 섣불리 손을 대지 못했다.
자신 또한 언제고 왕주열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들어갈까?”
어설프게 숨은 채로 정다현이 머뭇거렸다. 자기 멋대로 쫓아온 거라 상관하지 않아도 되지만 행동에 나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최준호다.
그녀는 새로 생긴 부사수를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겉모습만 보면 잘생긴 25세 청년이지만 그 내용물은 무려 레벨 7이다.
그토록 젊은 나이에 어떻게 레벨 7에 도달했는지 여전히 의문이지만 그것과 별개로 공무원 헌터 일에 진지하고 열심히 임한다.
또한 빌런을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사회악임을 인식하고 체포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호감이 가지 않는다면 거짓이다.
비록 손속이 빌런조차 고개를 저을 정도로 잔인했지만 요즘 들어 그것이 빌런들의 범죄를 억제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최준호의 신속한 판단과 과감한 행동이 없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았을지 짐작하기 힘들다.
개입 여부를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 무렵, 스마트폰 진동에 정신을 차렸다.
최준호의 연락이었다.
-왕주열을 잡았습니다.
“······네.”
-국장님에게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후 안으로 들어와 줬으면 합니다.
그걸로 통화가 끝났다.
“하아!”
마치 자신이 뒤쫓을 걸 알고 있다는 눈치였다. 아니, 애초에 레벨 7인 최준호가 자신의 미행을 눈치 채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 게 오만이겠지.
곧바로 정주호에게 연락을 한 뒤 정다현은 한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최준호가 어느 방에 있는지 아는 건 어렵지 않았다.
“······.”
복도에는 정장을 입은 자들이 팔다리가 부러진 채 쓰러져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왕주열을 포함해 사지가 부러진 네 명을 볼 수 있었다.
“뒷골목 길드 마스터들입니다.”
“다친 곳은 없고요?”
“없습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위험했어요.”
“기회가 왔을 때 붙잡은 겁니다. 지금이 아니면 잡기 힘들었을 거라.”
무표정한 최준호의 말은 전혀 공감하기 힘들었다.
어차피 내킬 때 쳐들어가서 잡았을 것 같은데?
“사람들이 오기 전에 회복제 사용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안 그럼 죽을 것 같아서.”
“준호 씨 건요?”
“여기 세 명한테 나눠 썼습니다.”
“아, 이미 썼구나.”
그런데도 상태는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대체 얼마나 험하게 다룬 걸까?
정다현은 회복제 병을 왕주열 입에 물렸다.
제아무리 비리로 얼룩진 공무원 헌터라고 해도 레벨 6의 실력자인데 이렇게 처참하게 처리하다니.
“감사합니다.”
“제가 뒤따라올 걸 알고 있었나요?”
“다현 씨의 직감을 속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제가 안 왔으면요?”
“올 거라 믿고 있었습니다.”
“진짜 준호 씨는 알기 어려운 사람이네요.”
자신의 기프트를 칭찬하는 것 같으면서 한편으로는 손에 놀아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사수로서 위엄을 보여 주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왕 팀장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에요.”
“몇 번 들어 알고 있습니다.”
“확실히 옭아맬 증거가 있어야 돼요. 증거는 있죠? 네? 설마, 아니죠?”
최준호의 모호한 표정을 본 정다현의 표정이 급변했다.
“준호 씨, 설마 심증만 갖고 일을 저지른 건 아니죠?”
오히려 주변에 있는 사람이 더 걱정하는 형국이었다.
정작 당사자는 태연했다.
“저번에 보여 드린 게 전부입니다.”
“진짜요?”
“예.”
“···아!”
아찔하게 엄습해 오는 현기증에 정다현이 눈을 질끈 감았다.
잠시 후, 정주호가 직속 부하들을 거느리고 한식당에 도착했다.
방안의 풍경을 본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주 화려하게 저질렀군.”
혀를 찬 정주호가 최준호를 보며 말했다.
“확실하게 잡지 못하면 네가 잡힐 거다. 모두 데려가.”
대답을 바란 게 아닌 듯 곧장 명령을 내리는 그였다.
* * *
국가수호국으로 체포된 왕주열은 다음 날, 일어나기 무섭게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정치적 술수가 능하다는 것은 눈치가 빠르다는 의미. 자신이 처한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챈 그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미란다 원칙을 외쳤다.
“당장 풀어! 이러고도 무사할 거라 생각하냐! 국장님! 죄 없는 날 이렇게 가둬 두는 의미가 어떤 건지 잘 알 겁니다!”
“···골치 아프군.”
이런 흐름을 예상한 정주호가 고개를 저었다. 노련한 왕주열은 자기변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틈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
옆에 서 있던 정다현은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밤새 마음고생을 해서 안색이 다소 창백했다.
최준호가 저 미모에 조금이라도 홀렸으면 이런 사고도 안쳤을 것을.
여자에 홀리는 것도 문제지만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것도 문제라 생각하며 정주호가 혀를 찼다.
“최준호는 뭐라냐?”
“왕주열의 죄가 확실하다고······.”
“죄가 확실해도 증거가 있어야지. 그 죄마저도 확실한 건수가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 아니, 지금 상황이면 본인이 자백하는 게 아닌 한 힘들 걸?”
정주호는 최준호가 신입 특유의 객기를 부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선에서 처리를 하려고 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는 게 현재 상황이다.
“제가 얘기해 볼게요.”
“방법은 있고?”
“장부로 압박해 보려고요.”
“쉽지 않을 거다.”
정다현은 결연한 표정으로 취조실 안으로 들어갔다.
* * *
왕주열을 체포하고 이틀.
각성자의 세계는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것 같지만 좁은 세계라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국가수호국 2인자이자 특수팀을 책임지는 왕주열의 체포는 큰 화제가 되었다. 그것도 하급자에게 체포당한 것이 큰 충격인 듯했다.
특히 윤희는 공무원 헌터의 문란한 기강, 어디까지 추락하는 걸까?라는 기사 링크를 보내면서 고예진 기자에게 이를 갈았다.
아무튼 충격을 느끼는 포인트는 저마다 달랐는데, 국가수호국에서는 내가 왕주열을 제압해서 끌고 온 데에 충격이 크다고 했다.
대외적으로 내 레벨은 5였고 왕주열은 6이었으니까. 하위 레벨이 상위 레벨을 잡아내는 케이스는 그리 많지 않았고, 특히 고위 레벨이라 할 수 있는 5 이상에서는 레벨이 곧 전투력이기에 이런 경우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여러 길드에서 연락이 빗발쳤다. 그들은 만난 적도 없는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놓았다.
얼마나 연락이 많았냐면 일상생활이 불편할 정도였다.
근데 내 연락처는 다른 곳에 게재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아는 거지? 참고로 내 스마트폰 연락처는 부모님과 윤희, 정다현이 전부였다.
아무래도 내 개인 정보는 보호가 되지 않는 듯했다.
일상에 번거로움을 겪는 나와 달리 정다현의 얼굴은 파리하게 질려 있었다.
연유를 물으니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왕 팀장 심문이 쉽지 않아요. 내일이 지나면 풀려나게 돼요.”
애초에 왕주열의 체포가 정상적인 과정이 아니었기에 정주호는 국가수호국의 책임자로 72시간 구금할 수 있지만 그 안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풀려난다.
“심문은 해 보셨는지?”
“해 봤는데,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어요. 장부의 존재도 언급했지만 자기는 연관된 거 없고 전부 조작된 거라고······.”
“주변을 털지도 못하는 겁니까.”
“아직은 혐의만 있는 걸로 의심받는 중이에요. 우리가 증명하지 못하면 불가능해요.”
그러면서 날 원망스러운 눈으로 본다. 그 모습이 내게 투정부리던 윤희와 비슷했다.
“그래서 신중하자고 말했던 건데.”
“남은 시간이 많지 않으니 제가 나서도 되겠습니까?”
“국장님도 더는 수가 없으니 허락한다고 하셨어요.”
참고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왕주열 취조하는 걸 정주호가 막고 있었다.
“취조할 때 폭력 사용은 안 돼요. 오히려 역공을 당할 수 있어요.”
“자발적으로 진술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네, 하지만 강압적인 수단은 안 돼요.”
“그것도 아닙니다. 그냥 약간의 부작용이 있는 정도입니다.”
“그럼 제가 국장님에게 보고할게요.”
“네.”
잠시 후, 정주호의 허락이 떨어지고 나는 취조실로 향했다.
밖에는 정주호와 정다현이 서 있었는데, 특히 정다현이 내게 책잡힐 일을 저지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폭력 금지, 약물 사용 금지, 그 외 강제적인 수단 전부 금지 등등. 결국 확실한 증거로 인정을 유도하거나 자백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솔직히 잘 납득이 가지 않았다. 왕주열이 구린 놈인 게 확실한 이상 그걸로 쳐내면 될 텐데. 이런 점에서 답답할 정도로 비효율적인 조직이었다.
“아직 자백하지 않았다며?”
“네놈! 죽여 버리겠다!”
내가 안으로 들어오자 왕주열은 구속된 상태에서 발광했다. 난 맞은편에 앉아 녀석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약 10여 분 동안 발광하던 왕주열은 힘에 부치는지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두 눈은 날 갈가리 찢어 죽일 것처럼 살기가 가득했다.
“후욱! 후우! 내일 나가면 기대해도 좋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널 죽여 버릴 테니까.”
“그러던지.”
어차피 여기에서 나가는 일은 없을 거니까.
녀석이 자백할 생각이 1도 없음을 확인했기에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가자 녀석이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가까이 오지 마라! 정 국장! 이 녀석이 폭력을 쓰려고 해! 나한테 다가오게 하지 마!”
“폭력 아니야. 그냥 지금부터 근심걱정 잊고 행복해지는 거지.”
난 필사적으로 머리를 흔드는 녀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내 손아귀에 머리가 들어왔고, 곧바로 기프트를 사용하자 눈이 멍하게 풀리며 몸부림이 멈췄다.
그때, 밖에서 지켜보던 정주호와 정다현이 안으로 들어왔다.
“최준호! 이게 무슨 짓이냐!”
“진술 받을 준비를 한 겁니다.”
“대체 무슨 짓을······.”
난 정주호의 말을 한 귀로 흘려 버리며 왕주열에게 질문을 던졌다.
“자기소개 좀 해 봐.”
“왕주열. 나이는 54세다. 현재 서울 강남구 대치 2동에 살고 있고······.”
굳이 불필요한 부분까지 세세하게 자기 정보를 실토하기 시작했다.
정주호와 정다현이 경악하는 걸 흘려 내며 나는 다음 질문을 했다.
“이틀 전 길드 마스터들을 왜 만났지?”
“녀석들은 마약 유통을 맡고 있다. 그래서 적당히 다독이고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최준호 녀석을 제거할 생각이었다. 그러면 정다현도 잠잠해질 테니 다시 조직을 재건할 수 있다.”
“네가 저지른 비리를 전부 말해 봐.”
그때부터 왕주열은 수십 년 동안 저지른 비리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녀석은 철저하게 공범을 만들어 이익을 공유했고 증거를 확보해서 운명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약점을 잡은 자들을 집요하게 부려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마약 매매부터 시작해서 인신 매매, 마물 소재 불법 유통, 범죄조직과 결탁 등등 왕주열이 저지른 죄가 끝이 없었다.
“···정다현, 녀석이 말한 곳에 가서 증거를 찾아봐.”
정다현이 밖으로 나가고도 왕주열의 실토는 계속 이어졌다. 1시간 후, 정다현이 증거를 갖고 오자 정주호의 얼굴에 허탈함이 서렸다.
“이거 부작용은 뭐지?”
“딱히 부작용은 없습니다. 앞으로 좀 어린 사고를 하게 될 뿐입니다.”
“어린 사고? 몇 살?”
“5살 정도입니다.”
“이 능력의 이름은?”
“브레인워싱(Brainwashing)이라 합니다.”
“······.”
난 이 기프트를 가졌던 녀석만큼 활용하지 못했다. 녀석은 유려한 언변과 집단 환경 조성으로 오랫동안 공을 들여 광신도를 만들어 냈지만 난 그러지 못하니까.
그러고 보니 몇 년 후부터 본격적으로 세력 구축을 시작할 텐데 시간이 나면 한번 찾아가야겠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군. 후우 다현아, 신성 길드에 연락해라.”
정주호가 긴 탄식을 터뜨렸다.
* * *
그 후 일처리는 일사천리였다.
왕주열의 증언을 바탕으로 증거가 확보되었고, 관련 범죄 길드가 쓸려 나갔다.
가장 큰 문제점은 왕주열이 실토했던 신성 길드와 연관성이었다.
비록 자회사의 투자가 들어간 협력사의 하청이 저지른 범죄였지만 신성 길드라는 이름이 언급된 것만으로도 화제성이 강렬했다.
신성 길드는 대한민국 재계서열 1위 신성 그룹에서 만든 길드이자 대한민국 최대 규모를 가진 곳이다. 국가수호국의 움직임이 그들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할 수 있다.
그렇다고 범죄에 예외가 있을 수 없는 법.
정주호는 이 상황을 엄중하게 받아들여 관련자 출석을 요구했고 신성 길드는 휘하 길드 관리 소홀을 사과하며 출석 요청을 수용했다.
며칠 뒤, 신성 길드 관계자자가 국가수호국을 방문했다.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정주호와 미팅을 갖더니 끝나기도 전에 기사로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관리 소홀인지 꼬리 자르기인지 몰라도 사과를 하고 관련자를 문책, 보다 확실히 관리하겠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마지막으로 사과의 의미를 담아 국가수호국 지원을 하기로 했고. 아마 정주호의 노림수는 이거였을 것이다.
잠시 후, 국장실 문이 열리며 정주호와 미팅하던 당사자가 내게 다가왔다.
대놓고 특수팀을 가로질러 다가와서 보이지 않으려고 해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최준호 씨 맞으시죠?”
내 앞에 선 것은 아찔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화려한 치장과 자신감 넘치는 미소, 치명적인 매력과 고귀한 기품이 느껴졌다.
눈이 마주치자 도도했던 눈매가 부드럽게 호선을 그린다.
“신성 길드의 이세희라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