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93
93화
“속이 뻥 뚫리는군. 역시 프란츠 공이야. 시원하게 일침을 날렸어.”
“······.”
환하게 웃는 대통령과 달리 천명국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공항에서 이루어진 프란츠의 인터뷰는 생방송으로 낱낱이 반영되었다.
아무 의미 없이 방영된 게 아니었다.
프레임을 잡기 위한 인터뷰였고, 그 도구로 선택된 게 프란츠였다.
결과는 기자들이 원하던 대답과 정반대로 나왔지만.
아마 기자들은 프란츠에게서 초인이라면 정의로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식의 대답을 원했을 거고, 그 부분을 따서 여론몰이를 하려 했을 테지.
하지만 프란츠의 말로 모든 게 뒤집혔다.
“평화는 결코 공짜로 굴러온 게 아니지. 지금 입법하려는 세력은 이걸 망각하고 있고.”
물론 각성자들이 존경을 받는 독일과 부와 명예를 갖는 대한민국의 각성자 시스템은 다소 다르다.
대한민국은 각성자가 되는 것이 신분역전의 기회라 생각하고 있고, 부와 명예를 얻은 각성자가 사고를 치면서 천민자본주의가 득세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각성자가 이뤄 놓은 평화를 부정하는 면이 강했다.
그래야 각성자들이 전면에 나서는 걸 막을 수 있으니까.
각성자보다 비각성자 숫자가 더 많아서 할 수 있는 여론몰이였다.
불안감 속에서 공존이 이루어졌으나, 그 균형이 깨진 것이 리그의 득세였다.
비각성자들이 각성자들에게 지배당할 수 있다는 공포가 생긴 것이다.
당연하게도 비각성자 표를 얻기 위해 이 공포심을 자극하는 세력이 있었다.
“지금 보다 명예를 세워 줘야 해. 그래야 각성자에게 양보를 요구할 수 있지.”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럴 테지.”
프란츠의 인터뷰 장면에서 시선을 뗀 대통령이 천명국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조금 전과 달리 심각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방법이 없어. 그거 말고 최준호를 우리가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없습니다.”
“그래, 없지. 최준호의 실력은 우리가 생각한 걸 아득히 뛰어넘었으니까.”
각성자는 결국 정부가 제어할 수 있는 힘이어야 한다. 서로 상호견제가 가능하고 하나로 뭉치지 못하게 갈라놓아야 통제가 가능하다.
그게 불가능하면 서로 원하는 걸 주고받아야 한다. 제어가 불가능한 절대적인 힘은 환희를 가져다주지만 폭주하게 되면 멸망을 앞당기는 결과를 낳는다.
정부 입장에서 최준호란 존재가 그러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가 이뤄 내는 성과들은 그 생각을 희미해지게 만들었다.
결정타는 프란츠와 충돌한 정보를 접했을 때였다.
“프란츠 공이 십대 초인에서 물러났지만 그 역량은 밀린다고 보기 힘들지.”
“체력 이슈가 발생할 수 있지만 포스량이나 기프트 운용 노하우는 더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런 프란츠 공을 제압한 게 최준호고.”
“···예.”
두 사람이 한식당 산책로에서 충돌하고, 상대적으로 최준호가 멀쩡했던 점, 남은 기간 동안 프란츠가 불편함을 보였던 걸 볼 때 결과를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최준호는 멀쩡하게 잘 돌아다녔으니까.
죽이는 것보다 제압하는 게 더 힘들다는 걸 감안할 때, 최준호가 명백히 한 수 위라는 말이 된다.
“플러스 단계 마물을 홀로 잡는 걸로 예상하기 어렵지 않았지. 최준호는 리그의 삼악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존재일 거야. 처음부터 우리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 있던 셈이지.”
“위험합니다.”
“하지만 우리 편인 게 더 중요해. 국가 소속 초인인 게 중요하고. 애써 부인하던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자고.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은 자기 손에 놓인 서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 법안은 거부권을 행사하는 게 좋겠어.”
얼마 전, 국회에서 올라온 각성자, 비각성자 평등적용법이다.
법안 자체는 각성자와 비각성자의 법 적용이 동일하게 이루어지는 걸 다루고 있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현재 각성자의 자율적인 무력행사를 크게 침범하고 있다.
이것이 각성자의 범죄율을 획기적으로 낮출 거라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각성자의 목에 목줄을 거는 행동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잘 안다.
최준호의 존재 덕분이다.
그러니 여야 가리지 않고 합의를 했겠지.
천명국이 우려를 드러냈다.
“반발이 심할 겁니다.”
“내가 거절하겠다는데 어쩌겠나. 아직 지지율이 60%가 넘어.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국가가 되는데 방해가 된다고 하면 딴소리 못 할 걸?”
“······.”
“아니면 다른 좋은 의견이 있나?”
천명국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법률은 제 주전공이 아닙니다.”
“그러니 내 말대로 하자고. 이거, 기자들이 보고 최준호한테 달려갈 수도 있겠는데.”
그리 말한 대통령이 천명국을 보며 히죽 웃었다.
“그 부분은 우리 천 실장이 좀 더 고생해 주고.”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근데 제일 황당한 건.”
대통령이 황당한 표정으로 서류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이 법이 제정된다고 최준호를 옭아맬 수 있다고 본 건가? 안 지키면? 잡아넣을 수는 있고?”
그럴 리가.
오히려 법안을 제출한 국회의원들을 찾아갈지도 몰랐다.
같은 생각을 하던 대통령과 천명국이 시선을 마주치고 실소를 흘렸다.
“최준호에게 익숙해진다는 거, 무섭군.”
* * *
프란츠가 돌아갔지만 여운은 강하게 남겼다. 특히 돌아갈 때 날 겨냥한 인터뷰에 일갈을 터뜨린 게 화제가 되었다.
인터뷰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기자들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확실히 기자들이 날 안 좋아하긴 하나 보다. 오창문의 사지를 부러뜨려서 그런가. 그것도 손속에 사정을 둔 건데.
그나마 모두가 내 적은 아니었는지 고예진을 필두로 옹호 기사가 올라왔다.
···이렇게 보니 나도 나라를 위해 꽤 많은 일을 했다.
근데 평등적용법은 또 뭐야? 뭐, 법 만드시는 분들이 이상한 짓 하는 거 하루이틀 아니니 그러려니 싶었다.
그나저나 기사를 보니 나도 꽤 훌륭한 초인이잖아? 이런 나를 리그에 갈 걸 우려했던 프란츠 영감도 걱정이 참 많다 싶었다.
그나저나 프란츠 영감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 남는다.
세계가 멸망할 수도 있다는 예언.
그리고 리그의 분탕질.
심각한 일이랍시고 내게 얘기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공감이 가진 않았다.
“높은 분들이 알아서 잘 하겠지.”
자기 밥그릇이 걸린 만큼 빠릿하게 움직일 거라 기대하는 중이다.
물론 경고를 마냥 흘려듣진 않는다. 행여나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게 나였으니까.
빌런이 아닌 믿음직한 아들로서, 든든한 오빠로서 살아가고 있는 현재는 내가 혈종에게 먹혔던 시절, 간절히 바라던 순간들이다.
막상 꿈을 이루니 별거 없었지만.
그래도 미치지 않은 게 어딘가 싶었다.
집에 돌아오니 날 본 윤희가 대놓고 궁시렁거렸다.
“갑자기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어? 입맛 떨어지게.”
“그게 오빠한테 할 말이냐?”
“그럼 애인한테 하겠냐?”
“애인은 있으면서 하는 소리이길 바란다.”
“걍 죽어.”
“말 참 예쁘게 한다.”
“그럼 다현 언니처럼 조곤조곤 할 줄 알았어? 꿈 깨셔. 자기만 재미 봐 놓고.”
얘가 이렇게 토라진 이유는 프란츠를 만날 때 소개를 안 시켜 줘서 그렇다.
윤희의 롤모델이 로라였는데, 닮고 싶은 초인이라고 한다. 재능도 재능이고 젊은 나이에 초인이 되어 멋지다나.
그런 로라 팔목을 부러뜨린 게 난데 용케 아무 말도 없다 싶었다.
“다음에 소개 시켜 줄게.”
“약속 지켜.”
“오냐. 요즘 사냥은 어떠냐, 할 만해?”
“순조로운데? 내 발전 속도 엄청 빠르다고 칭찬 엄청 듣는 중. 하긴, 죽어라 훈련하는데 실력이 늘지 않으면 맥이 풀릴 거 같긴 해. 누구씨가 굴려 줘서 말이지.”
날 원수 보듯 바라보는군.
오히려 감사받아야 되는 거 아닌가.
게다가 아직까지 불굴이 개방되지 않는 걸 보면 여력이 남아 있는 거 같은데.
“더 훈련할 거 있다는 식으로 얘기하기만 해 봐라. 다 뒤집어 버린다.”
···귀신같은 것.
어쩌면 불굴이 아니라 감지 같은 기프트를 개방한 거 아닐까?
“내 얘기는 됐고, 이번에 다현 언니랑 합방한다며?”
“어, 훈련하는 걸 컨텐츠로 해 보려고.”
“갑자기 훈련 컨텐츠?”
“요즘 헌터들이 날로 먹는다는 여론이 있다고 해서. 평소에 얼마나 열심히 훈련하는지 대중에게 알려 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 외에 최근 국회에서 이상한 움직임을 보인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평등적용법과 관련된 내용인가 싶었다.
진세정은 이 법의 반대 입장으로, 각성자들을 옥죄어서 잘된 곳이 없는 걸 예로 들었다.
근데 너무 풀어 두면 각성자나 빌런이나 비슷한 거 아닌가.
내 눈에 띄면 가리지 않고 뭉개 버리면 그만이긴 한데.
“그거 좋네. 안 그래도 사람들이 각성자가 하늘에서 뚝딱 내려오는 줄 알던데.”
윤희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진짜 아무것도 모르면서 막말 장난 아니라니까? 누가 보면 선택받고 힘이 주어진 건 줄 알아. 가끔 댓글 보면 속 터져서 죽겠어. 진짜 직접 찾아가서 어떻게 생겼는지 면상 한 번 뜯어보고 싶더라.”
“얼굴 가죽 뜯다가 죽을 수 있다.”
“안 죽거든?”
죽던데?
그렇게 죽여 봤다고 할 수도 없고.
네 말 맞다고 해 주니 으스댄다.
이런 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건가.
진실을 진실이라 말하지 못하니 답답하군.
“아무튼 좋은 컨텐츠야. 고레벨 각성자도 평소에 얼마나 열심히 훈련하는지 알리면 각성자에 대한 인식도 조금 달라지겠지.”
그러면서 보고 싶은 거만 보는 현 세태가 문제라고 열변을 토하는데, 그 모습에서 프란츠의 꼰대력이 느껴졌다면 내 착각일까.
합방 의도를 알아차린 윤희가 입맛을 다셨다.
“부럽다. 나도 오빠 방송 한번 나가 보고 싶었는데.”
“너도 한번 초대할까.”
“어! 나도 출연하고 싶어.”
진세정에게 한번 말해 봐야겠군. 컨텐츠 제작은 진세정을 비롯해 이제 어엿한 팀이 된 최준호팀에서 회의를 거쳐 내 수락하에 제작된다.
회의에서 자꾸 내 세계관에 디테일을 더하는데, 솔직히 진세정이 내 전생을 엿봤다는 것에 백 원을 걸 정도였다.
“난 다른 컨텐츠 할래!”
“하고 싶은 거 있어?”
“나 먹방 좋아! 겜방도 좋고! 술먹방도 좋겠다!”
다 몸이 편한 거다.
내 생각이랑 많이 다른데?
내가 짜본 컨텐츠는 이러했다.
···등등의 컨텐츠를 생각했었는데.
뭐, 컨텐츠 방향이 당일 사정에 따라 바뀌기도 하는 법이니까.
일단 해 준다고 하자. 낚는 게 중요하니까.
“알았어. 다 해 보자.”
“예쓰!”
···라고 해 놓고 훈련 컨텐츠로 짜 봐야지. 몰래 카메라라고 하면 납득하지 않을까.
자기 좋으라고 하는 건데.
납득할까?
납득하겠지.
물론 납득할 확률 0.01%고 절망할 확률은 99.99%겠지만.
절망할 윤희의 표정을 생각하니 신기할 정도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 * *
최근 각성자 개인 방송 중에서 가장 핫한 것이 최준호의 이라는 밋밋한 이름의 채널이었다.
평범한 일상 영상이 주를 이룸에도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여 단기간에 구독자 500만을 돌파하고, 영상마다 조회수가 1,000만 이상이라는 수치를 기록했다.
영상이 가진 여파가 워낙 강렬하다 보니, 초기에 의도했던 최준호의 이미지 메이킹 외에도 공익적인 의미를 담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오늘 방송도 그 연장선상에 속했다.
“오늘 방송 의도는 ‘고레벨 각성자가 평소에 얼마나 열심히 훈련하는가.’ 예요.”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공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프란츠가 남긴 이 말은 유럽에서 각성자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려 주는 부분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각성자에 대해 안 좋은 인식도 존재하기에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준비하는가를 놓고 준비한 컨텐츠였다.
“어느 정도로 하면 됩니까?”
“평소에 훈련 강도가 약한가요?”
“그리 강하진 않습니다.”
“그래요, 곤란한데. 정다현 팀장님은 어떠세요?”
진세정은 내가 아닌 정다현을 보며 물었다.
회색 트레이닝복에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정다현이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주변에서 꽤 강하다고 하는 편인데, 저는 버틸 만해요.”
“그럼 평소대로 해 주시다가 제가 신호를 보내면 좀 더 강하게 해 주실 수 있겠어요?”
이번에는 날 보며 물어봐서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합니다.”
“네. 근데 좀 과격할 수 있어서. 눈살 찌푸려질 수도 있어요.”
“괜찮아요. 리얼리티가 중요하니까요.”
“그럼 평소대로 하자.”
“네.”
내 말에 정다현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어떤 그림인지 모르는 진세정은 멀뚱멀뚱한 눈으로 우리 둘을 보고 있었다.
* * *
김태현은 올해 30살 된 백수다. 일용직을 전전하다가 일거리가 없으면 부모님이 계신 집에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새벽에 늦게 잠들어서 점심을 지나 오후에 기상한 그는 라이브에 최준호 방송이 예고된 걸 확인했다.
“오늘 정다현이 나온다고 했지.”
김태현은 최준호 채널에서 유명한 최준호 억까였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웬만한 배우보다 잘생긴 얼굴, 레벨 8 초인이라는 타이틀은 하나하나가 열등감을 폭발 시키는 요소였다.
김태현은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최준호를 보며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도 각성자 재능이 있었다면, 기프트가 주어졌다면 일용직을 전전하지 않고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런 관점에서 최준호는 운이란 운은 다 끌어다 쓴 녀석이었다.
자신도 녀석처럼 행운이 따랐다면 열심히 살았을 텐데.
미리 시켜놓은 치킨이 도착했을 때, 라이브 방송이 시작되었다. 타이밍이 딱 좋았다.
-안녕하세요, 오늘 일일 게스트 정다현입니다.
“···예쁘다.”
순간 악플을 달려던 마음이 사라지게 만드는 미모였다.
방송 화면에 나온 정다현은 기초 메이크업만 했음에도 미모가 빛이 났다. 트레이닝복만 입었음에도 쭉 빠진 몸매는 탄력이 넘쳐 보였고, 레벨 7에 도달한 아우라가 발산되었다.
부럽다. 나란히 선 모습이 잘 어울리는 걸 보니 최준호에 대한 적의가 더욱 커져 갔다.
-오늘은 평소 각성자가 어떻게 훈련하는지를 컨텐츠로 해 보려고 합니다. 정다현 팀장은 평소 쉬는 날 어떤 훈련을 하죠?
-저는 평소에 임무가 없는 날은 전부 훈련에 매진합니다. 무기가 손에 익어야 해서 손에 떼어 놓지 않으려고 하고, 무기가 없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무술과 총기 훈련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거짓말은. 재능을 타고 나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는데 그렇게 열심히 훈련한다고? 믿을 수 없다. 김태현은 노력이라는 키워드마저 빼앗아 가려는 둘에게 적의감을 느끼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악플이 쏟아졌다. 매니저가 빠르게 차단에 나섰지만 채팅창을 보는 둘이 보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둘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게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반응을 보일 때까지 쑤셔 주겠다고 생각할 때, 최준호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훈련을 시작하겠습니다. 개별 훈련이 아닐 땐 주로 지도 대련을 합니다.
채팅창에서 시선을 뗀 둘은 구석에 걸린 목검 빼어 들더니 들고 마주했다.
어차피 보여 주기 식이겠지. 몇 번 소꿉장난 하다가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어요, 라고 말할 게 뻔했다.
각성자들은 땀 흘리며 노력하는 것보다 자기에게 주어진 재능으로 부와 명예를 누리는 족속들이니까.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김태현이 그리 생각할 때, 둘의 목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쩌엉!
두 사람의 대련은 김태현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최준호의 목검은 공기를 갈라 버릴 것처럼 매섭고 빠르게 움직였다.
이에 대응하는 정다현의 목검은 날렵하면서 다채로웠다. 눈을 현혹시키는 검격으로 방어를 해냈지만 강맹한 최준호의 검격은 어렵지 않게 방어를 뚫어 냈다.
쾅!
-흐읍!
목검이 어깨에 작렬하자 정다현은 호흡을 들이키며 황급히 뒤로 물러나 균형을 잡았다. 그마저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최준호의 목검이 집요하게 찔러 들어왔다.
보는 것만으로 숨이 턱턱 막혀올 정도로 끈질긴 검격이었다. 미처 대비하지 못한 정다현이 다시 한번 공격을 허용했다.
퍽!
최준호는 봐주는 게 없었다. 정다현의 방어가 무력화 될 때마다 어김없이 목검이 작렬했고, 듣는 것만으로 섬뜩한 타격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정다현은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아, 안 돼!”
지켜보던 김태현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치다가 흠칫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정다현을 응원하고 있던 것이다.
각성자를 혐오하는 자신이 이렇게 몰입했다고?
믿기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애처로울 정도로 끈질기게 버티는 정다현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간질간질해지는 기분이다.
무엇을 위해 저렇게 최선을 다하는 걸까.
천재로 불리지 않았었나. 20대 초반의 정다현은 레벨 7에 올라 부와 명예, 실력을 모두 갖춘 천재다. 근데 왜 저렇게 필사적인 걸까.
“······.”
어느 순간 김태현은 악플을 쓸 의욕이 완전히 사라졌다. 대신에 둘의 대련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정확하게 이리저리 휘둘리며 필사적으로 발악하는 정다현을 응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반전은 없었다.
최준호의 목검은 비열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정다현을 농락하며 전신 곳곳을 두드렸다. 목검이 빗겨 맞아 찢겨 나간 어깨 부위는 새파랗게 멍이 들어 있었다.
아마 다른 곳도 마찬가지겠지.
-읍!
20여 분 동안 이어진 대련의 끝은 정다현이 복부에 목검을 찔리면서 끝이 났다.
-여기까지.
최준호가 목검을 거두자 뒷구르기로 몸을 일으킨 정다현이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감사합니다.
-원래 쓰러져도 공격을 하지만 제한된 시간이 끝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최준호의 말에 그를 향한 원성이 쏟아졌다. 김태현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방송이라고 해도 오바해서 정다현을 때리다니!
댓글창은 최준호를 향한 원성과 최준호 실더들이 가세하면서 엉망진창이 되었다.
-이거 살살한 겁니다.
보통 이 정도면 과하게 했다고 할 법도 하지 않나?
최준호는 끝까지 자신이 살살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