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98
98화
“······.”
밖으로 나온 콘스탄티나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오랫동안 아르고스를 봐 왔지만 그가 이런 말을 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오래 전부터 유럽을 주 무대로 활동해 왔다. 그래서 최근 등장한 헤드 브레이커 이슈에 대해 잘 몰랐다. 동아시아에 등장한 신예 정도?
“내가 유럽에 신경 쓴 동안 이렇게 바뀔 수 있나?”
그곳에서 얻은 이명 위치 닥터.
저주를 활용한 전혀 새로운 전투 방법은 유럽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녀의 손에 루마니아는 초토화 되었으니까.
콘스탄티나는 아직도 기프트 각성할 때를 생각한다.
자신의 기프트를 욕심낸 정부, 그리고 길드들. 만약 그들이 자기 능력을 탐내어 가족을 해코지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도 심심찮게 떠오른다.
불타오르던 집안. 타 죽어가던 부모님. 겁에 질린 언니와 남동생.
그 광경을 보며 낄낄 웃던 정부 관계자들.
위치 닥터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날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빌런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가정은 무의미하지.”
핑계 없는 무덤 없는 것처럼 리그에 들어온 빌런들 모두 각자 사정이 있다.
자신처럼 과거사에 얽혀 어쩔 수 없이 빌런이 된 사람도 있고, 태생 자체가 쓰레기인 사람도 있고.
눈에 띄지 않으면 상관없지만 눈앞에서 쓰레기 짓을 하면 가차 없이 손을 썼다.
리그 소속 12궁의 일원이지만 악(惡)에 누구보다 단호한 것이 콘스탄티나 그녀였다.
세상의 모든 악과 어둠을 집어삼키는 검정을 표방하지만 그 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헤드 브레이커에 호기심이 생겼다.
대체 얼마나 악하기에 아르고스조차 거절하는 걸까.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건 다섯도 되지 않을 텐데.
아니, 애초에 아르고스는 가까운 사람에게 감정 표현이 과하지 않다.
호기심이 점점 커져갈 때, 마침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블랙하운드를 보고 콘스탄티나가 손을 들었다.
“하인즈!”
“콘스탄티나.”
“마침 잘 왔어. 밖이 아니라 안에 있었네?”
“내가 있어야 할 곳이니까.”
담담한 목소리에 콘스탄티나가 놀랐다.
자신이 알던 미친개 하인즈가 맞나 싶었다. 강해지고자 하는 열망을 버리지 못해 세계가 좁다 하며 누비고 다니는 게 그였다.
본거지에서 가장 얼굴을 보기 힘든 인물이 저리 말하니 의외일 수밖에.
“내가 아는 블랙하운드가 맞으려나? 하는 행동은 완전히 달라졌는데.”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상황에 따라 바뀌는 법이다.”
“신기하네.”
시간이 흐르면 사람이란 바뀌는 걸까.
전 세계의 공적이라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블랙하운드가 화제를 돌렸다.
“알을 만났나?”
“응. 이번에 임무를 부여받았어.”
“무슨 임무?”
“헤드 브레이커를 제거해 달라네?”
“···헤드 브레이커.”
무섭게 굳는 블랙하운드의 표정에 콘스탄티나가 눈을 반짝였다.
“그러고 보니 하인즈는 헤드 브레이커랑 부딪쳐 본 적 있지 않아?”
“네게 맡긴 걸 보면 알이 확실하게 제거하기로 마음을 먹었나보군. 헤드 브레이커는 강하다.”
“그 정도야?”
“나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강자다.”
“그건 좀 놀라운데?”
콘스탄티나의 말은 진심이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정중하지만 실력에 대한 평가가 가차 없는 것이 블랙하운드였다. 그는 누구도 자기 위에 놓아두는 법이 없으며, 아르고스만을 동지이자 리더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 블랙하운드가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고?
여태까지 그 평가를 들은 건 헬 마스터를 포함해서 다섯도 넘지 않았다.
헤드 브레이커는 이제 갓 초인이 된 걸로 아는데.
아르고스에 이어 블랙하운드까지.
둘의 평가가 동일하다면 헤드 브레이커는 진짜 위험한 초인이라는 말이 된다.
“단단히 준비해야겠네.”
“너도 조심해라.”
“알잖아? 내 영역에 들어오면 누구든 자신 있는 거.”
“나도 죽을 뻔했으니 안다. 하지만 헤드 브레이커는 아니다.”
“어떤 점이?”
끝을 헤아리기 힘든 저력이야 말로 헤드 브레이커가 갖는 무서운 점이다.
블랙하운드가 진지하게 조언하는 것만으로도 그 위험성이 체감되었다.
“아쉽진 않아? 내 손에 헤드 브레이커가 죽는 건데.”
“누구더라도 제거할 수 있다면 상관없다.”
“헤드 브레이커는 죽을 거야. 가장 혐오하는 모습에 자신이 삼켜지는 걸 보면서.”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자, 확언이었다.
“······.”
블랙하운드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세희가 보는 최준호는 참 신기한 사람이다.
어떻게 하면 저런 사람이 등장할 수 있는 걸까.
그래서 스스로도 뿌듯함을 느꼈다. 첫 만남에서 수작을 부리려다가 죽을 뻔한 경험을 한 후 빠르게 전략을 수정해서 친해지는데 성공했으니까.
보통 사람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며,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외면하고 회피하는 걸 선택한다.
빠르게 전략을 수정한 것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나도 참 대단하다니까?’
최연소 초인과 ‘친한 사이’라는 타이틀은 물론, 빅뱅 시리즈 히트까지.
신성그룹은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고, 자신의 입지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해졌다.
이세희는 아직도 기억한다.
플러스 단계 마물 소예가 최준호에게 겁을 먹는 걸.
초인도 인간의 한계를 벗어던졌다고 하나 최준호는 그 수준이 다른 것 같다.
그래서 내심 리그의 삼악도 견주지 못할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이런 초인도 세상을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다현이 덕분이지.’
이세희는 정다현이 최준호를 처음 만났을 때 공무원 헌터가 되는 걸 강하게 권유하지 않았다면 최준호는 빌런이 되었을 거라 생각했다.
세상에 대한 이해가 명백한 괴리가 있었으니까.
아직도 대다수의 사람은 자신과 다른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보다 외면하고 배척하려 한다.
최준호의 존재는 세상에 있어 이질적이다.
그 오해가 쌓이고 쌓여 빌런이 되는 경우는 꽤 많았다.
최준호 실력을 가진 빌런의 등장이라.
···상상만으로 끔찍했다.
‘내 공도 있고.’
이세희는 최준호가 빌런이 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옆에서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 결과가 아이돌 세계관 접목과 인터넷방송이라는 기괴한 형태로 나타났지만 적어도 최준호가 빌런이 될 가능성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자신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주변에 널리 알려서 인정받아야 하는데.
가끔 자신이 세계를 구한 게 아닐까 생각을 한다.
뭐, 자신에게도 이익이 되는 거니까.
이세희는 더 이상 최준호가 없는 삶은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그만큼 인생에 큰 영역을 차지했다.
그래서 최준호의 일본행 이야기를 들었을 때 본인이 생각해도 놀랄 정도로 크게 반응했다.
“위험해요.”
어쩌자고 그 제안을 받아들인 건지.
대통령의 제안이라고 해도 이건 결코 좋지 못했다.
정작 당사자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설명을 했다.
“이미 수락하셨으니 말리지는 못 하겠지만 좋은 의도는 아닐 거예요. 왜냐하면 초인이 타국에 온다는 건 정말 큰 각오를 해야 하는 일이거든요.”
친선교류라면 큰 상관은 없다. 외교사절 임무 수행으로 교류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합동 작전이라는 것은 머리가 여러 개에 여러 갈래 이해관계가 얽혀서 최선보다 최악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지금처럼 국제 관계가 안정기에 접어들기 전, 타국의 초인을 초대해서 죽이는 사건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
마물의 위협 아래 인류가 하나로 힘을 합쳐야 하지만 마물에게 시달리는 와중에도 어느 세력 하나가 커지는 걸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안정기에 접어든 지금도 100% 안전하냐고 물어보면 그것도 아니다.
“그래?”
아무리 외쳐도 당사자는 평온한 얼굴로 대답하고 있었지만.
이게 최준호답긴 했다.
솔직히 이세희도 최준호가 임무에 가서 위험에 처하는 상황이 상상되지 않았다.
“타국 작전에 참여해서 죽은 초인의 비율은 압도적으로 많아요.”
“제거하기 좋다는 거네.”
“네. 타국에 초인 숫자가 많다는 건 결국 이웃국가의 전력이 강하다는 의미에요. 이웃국가가 강해져서 좋아할 곳은 어디에도 없죠.”
아무리 생각해도 득보다 실이 많은 제안이었다.
그렇다고 청와대가 최준호를 속여서 그런 거냐, 라고 말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이익 공유도 약속했고, 부탁하는 대통령의 태도도 정중했다.
오히려 최대한 신경을 써 줬던 것.
그래도 안전은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았다.
“물론 청와대가 그걸 몰라서 권하지 않았을 거예요. 준호 씨의 실력에 대한 확신, 일본이 내어 주기로 한 이권에 대한 욕심이 함께 했겠죠.”
“믿어준다고 딱히 기쁘진 않은데.”
“그런가요? 제가 말하는 건 일본 측 의도에요. 리그로 인해 오랫동안 고생을 했으니 준호 씨의 손을 빌려 처리하면 좋고······.”
“겸사겸사 나도 죽으면 더 좋겠다는 말인가.”
“네. 비정한 세계죠.”
그렇게 될 리가 없겠지만.
오히려 개수작을 부리다가 최준호의 손에 머리가 부서질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근데 일본 내부에서는 반대가 없나?
그 정도로 몰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없는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차했다.
자신의 잔소리가 과했다는 걸 자각한 것이다. 최준호는 지인의 잔소리에 관대한 편이지만 그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는 법이니까.
“이렇게 얘기해도 큰 줄기에서는 청와대와 같은 생각이에요.”
“무슨 생각?”
“저들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준호 씨는 끄떡도 없을 거란 생각.”
“잘 봤어.”
최준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그 안에 자신감과 확신이 어우러져 눈부신 아우라를 발산했다.
이세희는 그 모습이 눈부시다고 생각했다. 차마 마주할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
왠지 모르게 볼이 화끈거리는 기분이다.
“네······.”
어째 열이 식지 않는다.
* * *
마침내 일본으로 가는 날이 되었다.
내가 갈 곳은 후쿠오카였다. 일본 내각에서는 이곳에 리그의 지부가 있는 걸로 추정하고 있으며, 합류 지점으로 유력하다고 전해 왔다.
“조심하게.”
“최대한 상대를 덜 죽이라는 겁니까?”
“그럴 리가. 몸조심하라고 하는 걸세.”
“알겠습니다.”
어째 말하는 게 좀 수상한데.
난 시선을 외면하는 대통령의 말에 납득하곤 정부의 전용기를 타고 후쿠오카로 향했다.
짧은 비행이 끝나고 날 마중 나온 것은 30대 후반에 각진 턱과 부리부리한 눈빛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그는 절도 있는 행동으로 내게 인사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초인님. 저는 초인님을 모시게 된 박영후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각성자안보실 소속인 그는 주일대사관에 머물면서 정보를 취합했다고 밝혔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 포르투칼어가 가능한 실력자였다.
레벨로 가늠하면 대략 5 턱걸이 하는 정도. 실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은 걸 보면 다른 부분에서 실력이 뛰어난가보다.
“이제부터 제가 모시겠습니다.”
“가시죠.”
난 박영후를 따라 숙소로 향했다. 호화로운 숙소에 짐을 풀고 소파에 앉아 있으니 박영후가 다가와 상황을 보고했다.
“현재 일본 상황은 진정 국면에 있습니다. 얼마 전 리그 소속 빌런 백 명을 체포하는데 성공하여 이번 기회에 뿌리를 뽑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리그에서 초인 둘을 보냈다?”
“예. 숫자로 밀어붙이기에는 12궁의 일원도 오고 있어 만만치 않을 거라 생각됩니다.”
“12궁에서 누가 옵니까?”
“현재 후보로 세 명이 꼽히는데, 가장 유력한 건 위치 닥터입니다.”
“위치 닥터?”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박영후가 설명을 시작했다.
“한때 동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빌런입니다. 직접 전투보다 저주 계열 기프트를 활용하는데, 특정 조건이 갖춰지면 십대초인보다 더 무서우며, 저주는 초인조차 죽일 수 있다고 합니다.”
“저주라······.”
만독불침이나 완전회복이 있는 내게는 크게 상관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기프트가 만능인 건 아니니까. 어느 정도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위치 닥터를 상대하던 초인 중 하나가 미쳐서 자살한 적 있습니다.”
그건 조심해야겠다. 설마 미쳐서 혈종이 튀어나오는 건 아니겠지.
내가 과거로 돌아오면서 의구심을 갖고 있는데 사실은, 녀석이 수면 아래 잠자코 있는 건지 소멸한 건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조심하셔야 하는 게 하나 더 있는데.”
“뭡니까?”
“이번 작전에서 함께 할 일본 측 초인은 부동심 츠요시와 수호신, 현지에서는 마모리가미(まもりがみ)로 불리는 군지입니다. 그중에 군지는 초인님을 모셔 오는 걸 반대했습니다.”
날 싫어하는 녀석이 어디 한둘인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도 이유는 알아 두자.
“이유가 뭡니까?”
“자기들이 해낼 수 있는 걸 굳이 외국에 도움을 청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고작 그걸로?”
“예, 자존심 문제니까요.”
“그럴 수 있네요.”
아직 일본의 세력이 크게 꺾인 게 아니니까.
자기들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가 외부 인원이 끼어들면 불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근데 어쩌겠나, 위에서 정한 건데.
불만이면 자기들끼리 해결하면 된다.
날 보내고 싶으면 약속한 이권은 다 내놓던가.
저쪽 내부 일은 저쪽에서 알아서 할 일이니 내가 굳이 신경 쓸 필요 없겠지.
다음 날, 나는 박영후와 함께 후쿠오카 시청으로 향했다.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니 상당수가 날 보는 눈이 곱지 않았다.
그중, 유일하게 미소 지으며 다가오던 것이 세계 초능력자의 날 행사에서 본 적 있는 츠요시였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준호!”
“반갑습니다.”
악수를 하면서 우리는 안부를 주고받았다.
여전히 부동심은 탐이 나는 기프트다. 동기화도 갖고 싶고 부동심도 갖고 싶고. 욕심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군.
“이번에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츠요시가 자리를 벗어나고 회의가 시작되기 전, 나는 군지와 시선이 마주쳤다.
들었던 대로 녀석의 눈빛이 상당히 불손했다.
이거, 리그 녀석들 처리하기 전에 내부 정리부터 해야 할 거 같은데.
사달은 회의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났다.
군지가 일어나 날 보며 뭐라 떠들었다.
통역을 맡던 박영후가 머뭇거리다가 내게 어렵게 말했다.
“군지가 작전 수행을 위해 초인님의 기프트를 알고 싶답니다.”
“내가 왜?”
난 박영후를 보며 말했다.
“가르쳐 줄 생각 없다고 전달하세요.”
“···예.”
박영후가 내 말을 가감 없이 전달하자 군지의 표정이 싸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