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own Prince in the ruined Game is Good Idols RAW novel - chapter (211)
망겜 속 황태자가 아이돌을 잘함-211화(211/236)
# 211화
어중간한 심정으로 ‘전쟁’이라는 단어를 꺼낸 게 아니었다.
아이디어를 냈을 때, 나의 머릿속엔 실제로 <그랜드 퀘스트 사가> 안에서 겪었던 풍경들이 그려지고 있었다.
무대는 전쟁과도 같다.
우리의 우월함을 모두에게 알려야 하고.
만약 우리가 남들보다 부족한 역량을 보인다면 어김없이 왕좌를 내어 주게 된다.
한번 높은 곳에 올라갔다면 그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게 당연한 이치고.
더 나은 자신. 더 나은 실력. 더 나은 무대로 증명해야 떳떳하게 고개를 들 수 있다.
활동 종료 축하연 그다음 날.
연습실에 모인 멤버들은 송형빈을 중심으로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있었다.
“자, 그러면 어제 카리스가 말한 것들을 나열해 볼게.”
송형빈은 연습실 안에 있던 화이트보드에 글자를 쓱쓱 적었다.
[키워드: 전쟁] [필요한 것들: 깃발, 무기, 액션, 백댄서]“일단 여기서 조금 더 상세하게 말해 줄래, 카리스? 어제는 좀 간단하게 넘어가는 식으로 말이 나왔었으니까.”
“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검은색 마커로 화이트보드에 무대 도안을 그렸다.
“콘셉트 자체는 간단한 편입니다. 무대 위에서 치열하게 싸운 끝에, 왕좌 위에 앉는 승리자가 바로 우리다. 이 메시지를 중심으로 퍼포먼스가 전개될 겁니다. 우선 러닝 타임이 대략 6분에서 7분 사이라고 했었죠?”
“응.”
“그러면 인트로 장면과 중간 퍼포먼스를 고려해서, 두 곡은 1절과 후반부 부분으로 잘라서 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겠네요. 2분으로 맞춰서 편집하면 맞을 것 같습니다.”
커다란 직사각형 위로, 나는 ‘깃발 등장’이라고 적었다.
“제가 깃발과 관련한 무대를 생각했을 때, 무대 첫 장면에 나오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메인 스테이지 뒤에서 문이 열리고 저희가 등장하는 타이밍에 맞춰, 백댄서분들이 깃발을 들고 일제히 앞으로 걸어 나오는 거죠. 그리고 중요한 포인트는, 멤버 중 한 명이 가장 큰 깃발을 들고 선두로 나서는 겁니다.”
“우리만 빈손으로 나타나는 것도 조금 허전하긴 하니까요.”
나는 유민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깃발들로 무대 분위기를 잡은 후, 노래가 시작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2분으로 노래를 끊어야 한다고 했잖아. 그러면 어디서 끊어야 타이밍이 딱 맞으려나.”
채은규의 질문에, 다들 잠시 생각에 빠졌다.
허유빈은 곧바로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서 을 재생했다.
그러다 좋은 게 떠올랐는지, 손을 번쩍 들고 앞으로 나왔다.
“민하 형 랩 끝나는 가사 있잖아요. ‘모두 우릴 보고 놀라, 더 높이 날아올라’. 여기서 끊는 게 카리스 형님이 말한 무대 분위기랑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우리의 실력을 증명하는 자리.
더 높이 날아오른다는 구절은 정말로 내가 구상하던 분위기와 콘셉트에 딱 맞아떨어지는 가사였다.
“좋은 것 같은데?”
“유빈이 말 들으니까 나도 뭔가 생각났어. 마커 줘 봐.”
강시윤도 흥이 오른 표정으로 일어났다.
내가 마커를 건네주자, 그는 송형빈이 적은 ‘액션’ 단어에 별표를 친 후 옆에다 ‘곡 연결 파트’라고 적었다.
“전쟁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액션을 중간에 넣었으면 좋겠다고 카리스가 말한 거잖아, 그렇지?”
“분명 그랬었다.”
“이 액션이 난데없이 등장하면 이상하니까, 적절한 타이밍을 생각해야 하는데. 딱 여기. 이랑 연결하는 지점에 브레이크를 넣으면 좋을 것 같아. 이러면 나름대로 메시지도 완성이 된다고.”
강시윤은 허유빈이 말한 의 랩 가사인 ‘모두 우릴 보고 놀라, 더 높이 날아올라’와 의 내레이션 가사인 ‘Nowhere to hide I got you in my sight’을 적었다.
“액션 신, 즉 전투 장면을 통해 우리가 이겨서 모두를 지배한다는 메시지를 던져 주면 어떨까 싶은데.”
멤버들은 강시윤의 설명을 듣다가 이내 좋은 아이디어라고 일제히 말했다.
“확실히, 뜬금없이 중간에 액션이 나오는 게 아니라 저렇게 연결하는 식으로 활용하면 전체적인 그림이 괜찮지.”
“시윤이 형 나이스!”
“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전방을 향해 꾸벅꾸벅 인사하는 강시윤을 보며, 허유빈은 낯설다는 식으로 말했다.
“우리가 알던 시윤이 형 맞아요? 왜 이렇게 똑똑해 보이지.”
“얌마! 난 언제나 똑똑하고 스마트하고 지적이었다고!”
“형, 뭐 잘못 먹은 거 아니죠?”
나는 허유빈에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상황이 나올 때마다 내가 전 재산을 털어 산 ‘정신 감응’ 아이템의 효력이 확실하다는 게 느껴진다.
“그러면 이제 또 중요한 게 남았네.”
송형빈은 손바닥에 마커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액션은 어떤 식으로 할지. 참여하는 인원은 몇 명으로 할지, 그리고 누가 할지 결정해야 해. 카리스, 생각한 그림 있어?”
“음……. 처음 이걸 생각했을 때 멤버 전원이 아닌 일정 인원만 소화하는 거로 생각하긴 했습니다. 7명 모두 싸우는 연출이 나온다면 사뭇 정신이 없을 것 같아서.”
“그건 맞긴 해. 7명을 전부 잡으려면 카메라 시점 돌아가는 것도 혼란스럽고, 자칫 시간이 너무 길어질 수도 있으니까.”
멤버들끼리 토의한 끝에, 액션에 참여할 인원은 3명이 적합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무대 길이가 6분에서 7분 사이라고 가정한다면, 한 곡당 2분, 오프닝에 30~40초, 그리고 액션 신 및 댄스 브레이크에 2분을 투자하면 모든 게 맞아떨어진다.
한 사람당 액션에 20초를 투자하고, 남는 1분 동안 메인 스테이지에서 돌출 무대로 나와 변형된 의 반주에 맞춰 댄스 브레이크를 갖는 계획.
전체적인 그림이 점점 완성되기 시작하자, 다들 흥분감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아직 이런 말 하기엔 시기상조일지는 모르겠지만, 나 벌써 너무 기대돼. 이거 엄청나게 멋있을 것 같지 않아?”
채은규도 평소답지 않게 한껏 들뜬 목소리로 만족감을 표했다.
항상 과묵하던 지윤철도 눈빛을 반짝거리며 동의했다.
“……처음에 카리스 형이 전쟁이라고 해서 이게 뭐지 싶었는데, 완성된 걸 보니 정말 멋있을 것 같아요.”
“윤철아, 너도 그랬어? 나도 처음에 전쟁? 갑자기 전쟁이요? 에에에? 이랬는데.”
유민하는 과장된 몸짓으로 벌벌 떨었다.
그러자 강시윤이 그의 정수리를 손날로 툭 치며 눈을 얇게 떴다.
“거짓말하지 마. 너 카리스가 처음 이 주제 꺼냈을 때부터 재미있겠다고 엄청 좋아했잖아. 그러다가 뭐라고 했더라. 같은 편 찔러도 재미있겠다고 한 것 같은데. 흐음, 찌르고 싶은 상대가 누구라고 했더라.”
“그건 장난이죠! 제가 아무리 그래도 형을 찌르고 싶다고 말했을까.”
“민하 너, 은근히 내숭 떠는 게 늘었다?”
“에이, 다 형 보고 배운 거예요!”
“……내가 호랑이 새끼 두 마리를 키운 셈이 됐구나.”
아마 강시윤이 말하는 또 다른 호랑이는 내가 아닐까.
“그러면 일단 오늘 결정된 내용은 바로 매니저 형 통해서 전달할게.”
“좋아요!”
송형빈은 멤버들을 불러 모은 뒤,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아주 잠깐 옛 생각에 빠졌다.
송형빈과 이 정도로 가까웠던 적은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 당시 나에게 고민 상담을 하러 왔을 때가 처음이다.
그때는 자기가 과연 리더 자리에 적합한 사람이 맞는지, 자기 때문에 멤버들이 피해를 입는 건 아닐지 무척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옛날의 우유부단함은 이제 온데간데없었다.
“올 한 해 마무리, 화려하게 해 보자.”
* * *
시그마 엔터테인먼트의 기획부도 우리의 아이디어에 합격점을 줬다.
심지어 본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스케일이 커서 무척 좋아하는 눈치였다.
‘너무 준비해야 할 게 많아서 퇴짜를 맞는 게 아닌가 걱정됐는데.’
나는 그들의 말에 이런 느낌까지 받았다.
돈과 지원은 얼마든지 가능하니 좋은 아이디어만 가지고 오라고.
이걸 무능하다고 봐야 할지 아니면 아티스트에게 무척 우호적인 스탠스라고 봐야 할지. 굉장히 애매하다.
아무튼, 나의 이른 걱정과는 달리 무대에 필요한 모든 자원이 마련될 예정이라는 답변이 나오면서 한시름 놓였다.
그리고 액션 장면 연출을 위한 준비에도 돌입했는데.
시그마 엔터테인먼트는 무술과 영화 액션을 전문으로 가리키는 학원 한 곳을 소개해 줬다.
영화계에서 수많은 액션 장면을 디렉팅한 베테랑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감독님은 우선 우리 무대의 전반적인 설명을 들었다.
“세 분이 따로따로 한 장면씩 연출하는 게 가장 나을 것 같네요. 아무래도 모든 인원이 한 번에 모이게 되면 카메라에 담기는 앵글도 너무 꽉 찰 테니. 흠……. 혹시 어떤 분이 하실지는 결정했나요?”
“아니요, 아직 결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오늘 감독님께 추천받을 생각으로 오긴 했어요!”
“호오.”
감독님은 눈빛을 반짝거리며 우리를 쓱 훑었다.
“체격 조건이 좋은 친구들이 많네요. 혹시 내가 이전에 무술을 배웠다 하는 사람 있을까요? 태권도나 검도나 유도나, 다 좋습니다.”
“저, 저 어릴 때 태권도 하긴 했는데요.”
“오오!”
유민하가 살짝 우물쭈물하며 손을 들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고선 왜 이렇게 머뭇거리는지 기억해 냈다.
유민하는 항상 열정이 넘치지만, 운동 쪽으로는 딱히 특출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
공원에서 농구를 하자고 했을 때도, 실력이 그리 좋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었지.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비슷한 흐름으로 이어졌다.
“하긴 했는데, 초록 띠밖에 따지 못했어요.”
“그래도 해 본 경험이 있다는 게 중요해요. 그러면 우선 바로 해 볼까요?”
“지, 지금 바로요?”
감독님은 무척 의욕적인 태도로 유민하의 발차기를 점검했다.
유민하도 우선 이를 악물고 최선을 다해 발을 휘둘러 봤지만, 몸을 지탱하던 왼발이 심하게 후들거리며 그대로 엉덩방아를 찍고 말았다.
여기서 한번 유민하의 기를 되살리고 갈 수도 있었지만, 감독님은 예상외로 냉철한 스타일이었다.
“흠, 우리 민하는 안 되겠네요. 중심 자체를 잘 못 잡네.”
“흑…….”
“다른 분들은 무술을 배운 적이 아예 없나요?”
여기서 사실대로 답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이돌 멤버가 갑자기 손을 번쩍 들고 석궁을 포함한 웬만한 무기를 다뤄 본 적도 있고, 거기다 실제 사람에게 쏴 본 경험까지 있다고 하면, 믿어 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테다.
하지만 내가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어도, 나의 타고난 피지컬은 감독님의 눈에 곧바로 들어오기 마련이었다.
“오, 몸 너무 좋은데요? 평소에 운동 즐겨 하나 봐요.”
“하하……. 꾸준히 관리는 하고 있습니다.”
“감독님, 쟤 진짜 무서운 애예요! 같이 농구하다가 쟤 밑에 깔려서 죽을 뻔했어요!”
반쯤 사실이긴 하다만, 강시윤은 일부러 나를 놀리려고 농구 일화를 과장해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감독님은 당연히 나의 신체 능력을 테스트하길 원했고.
“오오오! 운동 신경 너무 좋은데요? 잠깐만, 살짝 욕심이 나는데.”
갑자기 기분이 한껏 올라간 감독님은 난데없이 나에게 권투 장갑을 끼워 준 다음 간단한 스파링까지 진행했다.
물론 가벼운 잽들만 날리셨지만, 뛰어난 동체 시력으로 공격을 회피하는 나를 보고선 감격에 찬 박수를 보내셨다.
“엄청난 재능이에요. 나중에 카리스를 우리 액션 스쿨에 직접 섭외하고 싶을 정도야.”
“감사합니다.”
“아니, 농담이 아니에요. 진짜 나중에 액션 신 찍을 일 생기면 불러도 괜찮을까요?”
“그, 그건 매니저 형에게 한번 여쭤보겠습니다.”
즉석에서 캐스팅까지 당해 버리다니.
그렇게 모두의 만장일치로 액션 담당 인원 중 한 명으로 내가 뽑혔다.
“흠, 카리스는 아까처럼 맨손 격투를 한다고 가정하면 되고. 나머지 두 분은 각자 다른 장르로 갔으면 좋겠는데요. 아이돌 무대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눈이 즐거운 게 1순위이죠?”
그 말을 던진 감독님은 교실 구석에서 뜀틀 하나를 들고 왔다.
“만약 가능하기만 하다면, 아크로바틱 동작을 넣어도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만약 모두가 동작 수행이 어렵다고 하면 부상 위험 때문에 당연히 안 할 거지만, 한번 시도만 해 보는 게 어떨까요?”
아크로바틱이라.
나는 살짝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멤버들을 바라봤다.
다들 평상시에 엄청난 고난도의 안무를 연습한 덕분에 어느 정도 운동 신경을 갖췄지만, 아크로바틱은 또 다른 얘기다.
과연 괜찮을까 싶었지만.
“어?”
“에?”
“와―!”
멤버들은 얼떨결에 반대편으로 매끄럽게 착지한 송형빈을 보며 탄성을 터뜨렸다.
자기도 어안이 벙벙한지, 송형빈은 눈을 연속해서 깜빡였다.
“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