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own Prince in the ruined Game is Good Idols RAW novel - chapter (235)
망겜 속 황태자가 아이돌을 잘함-235화(235/236)
살면서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나 싶을 정도로 내 눈앞에서 비정상적인 일들이 자주 벌어졌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초현실적인 것들에 대한 면역력이 생기지 않았나 싶었는데.
예전에 살았던 집이 아예 존재조차 사라진 것을 목격하니 소름 돋는 감각이 혈관 안을 타고 돌아다녔다.
‘이상해. 너무 이상하다.’
나는 기억을 되짚어 보며 서둘러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전부 익숙한 풍경들이었다. 학교, 편의점,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 단지, 옛날에 자주 다니던 교차로까지.
“후…….”
깊은숨을 내쉬며 냉정하게 판단하려고 노력했다.
주변을 수색한 결과, 모든 게 그대로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는 않지만, 한지혁으로 살았던 때와 모든 게 똑같다.
딱 하나.
나와 가족이 거주하던 주택만 사라졌을 뿐.
나는 다시 천천히 주택가로 걸어가며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현실로 돌아오고 나서, 거의 모든 일이 내가 기억하던 대로 이루어졌었다. 단지, 내가 개입했던 것들만 빼고.’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 데뷔 조도 나 때문에 전반적으로 다 바뀌었고.
성공 가도를 달리는 시기도 달라졌고.
셀레스트의 타이틀곡들까지 바뀌었다.
다른 것들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카리스 폰 발덴의 몸으로 참여했던 것들만 제외하면.
그리고 지금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을 미루어 생각해 본다면…….
‘이 세계에서는 한지혁이라는 인물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건가.’
그렇게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랜드 퀘스트 사가>로 전이되는 순간, 현실에서 ‘한지혁’은 사라졌다.
나의 영혼은 여전히 한지혁이지만, 육체는 황태자인 카리스 폰 발덴의 것이고.
육체 그대로 현실로 넘어왔으니 세계선이 이상하게 꼬일 일이 없도록 하려면 한지혁이 존재하지 않는 게 옳은 일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한지혁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없어질 수가 있는 건가.
‘조금 더 시험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
나는 일단 다시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곤 내가 현실 세계로 돌아왔을 때 처음 눈 뜬 원룸으로 향했다.
지긋지긋한 집구석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옛날.
무턱대고 시작한 자취 생활인 만큼 마냥 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집에 있을 때보단 행복했었다.
만약 한지혁에 관한 데이터가 이 세상에 남아 있다면, 그곳이 가장 유력하다.
한 시간 넘게 대중교통을 타 경기도로 넘어왔다.
나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최대한 빠르게 원룸으로 들어갔다.
방을 안 쓴 지 조금 오래돼서 먼지가 폴폴 날렸다.
대충 먼지를 털어 내곤 청소기를 돌린 후,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심호흡을 천천히 했다.
파일을 열어 한지혁의 공인인증서과 등본 등의 기록이 남아 있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한지혁이라는 이름이 적힌 데이터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내가 시스템의 권능으로 만들어 낸 카리스의 정보만 나올 뿐.
“…….”
현재 데이터상으로는 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다면 다른 방도를 생각해야겠지.
나는 휴대폰을 꺼내 한지혁이 다니던 중학교를 검색했다.
그리고 약간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네, 상천중학교 교무실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제가 동창 하나를 찾고 있는데요…….”
나는 애써 돌려 말하며 20XX년에 3학년 2반에 재학했던 한지혁이라는 친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은 개인 정보는 알려 주기 어렵지만 기록은 한번 찾아봐 주겠다며 타자를 열심히 두들겼는데.
―아까 동창분 성함이 어떻게 된다고 했었죠?
“한지혁이요.”
―어, 죄송하지만 그런 이름을 찾아볼 수가 없어서요. 제대로 기억하고 계신 거 맞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확인 사살을 당하니까 다시금 기분이 묘해졌다.
나는 시간 내서 확인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이젠 거의 확실해졌군.’
한지혁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과 함께 살던 집, 그리고 그의 모든 기록이 말소되어 있다.
이 원룸이 남아 있던 이유는…….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내가 <그랜드 퀘스트 사가>에서 복귀할 때 ‘거점’ 개념으로 사용해야 할 공간이 필요해서 남겨 둔 게 아닐까.
그것보다.
‘한 사람의 존재를 전부 없애 버릴 힘이 있었던 건가, 그 신은.’
나는 아직도 <그랜드 퀘스트 사가>의 신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시스템 오류로 인해 팔을 우스꽝스럽게 허우적거리던 할아버지.
오류 하나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신이 이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는 게 조금 의아하긴 하다만, 그가 나에게 준 시스템을 보면 또 이해가 간다.
나의 요청 한마디에 없던 부가 기능도 순식간에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가졌으니, 시스템을 만든 신은 얼마나 비범한 존재일지.
이 생각을 계속하자, 한 가지 추가로 확인해야 할 것이 떠올랐다.
나는 천천히 브라우저 검색 엔진에 ‘그랜드 퀘스트 사가’를 입력했다.
그 결과.
‘역시, <그랜드 퀘스트 사가>라는 게임은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마우스 휠을 내리고 내려 봐도, 정확히 <그랜드 퀘스트 사가>라는 명칭을 지닌 게임은 등장하지 않았다.
단순히 제목에 ‘그랜드’ 또는 ‘사가’가 들어간 다른 종류의 게임들이 나타날 뿐.
나는 의자를 뒤로 젖히고 숨을 내쉬었다.
만약 이 세계에서 <그랜드 퀘스트 사가>가 존재했었다면, 내가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에 나온 순간부터 논란이 일어났어야 한다.
게임 속에 존재하는 캐릭터와 너무나도 똑같이 생겼다고.
게임 속 캐릭터가 현실로 넘어왔으리란 생각까진 못하겠지만, ‘게임 캐릭터 실사’ 등의 이야기 정도는 나올 만했으니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부터, 나는 속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이 세계엔 <그랜드 퀘스트 사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래, 여기까지는 나도 이미 짐작하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물음표가 걷히지 않았다.
한지혁의 존재를 없애야 했을 이유가 따로 있을 거라는 찝찝한 생각이 들었다.
단지 나의 자아들끼리 만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걸 두려워했던 거라면, 한지혁의 기억을 조작하면 됐을 것이다.
아니면 아예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한지혁으로 만들었으면 편리했을 것이고.
무엇 하러 무리해서 한지혁의 모든 기록을 세상에서 말소했는가.
나는 시스템창을 불러내어 잠시 생각했다.
‘……혼자서 이렇게 머리를 굴리고 있어 봤자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 이 일을 만들어 낸 신이 직접 와서 말해 주지 않는 이상, 궁금증은 풀리지 않는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는 거다.
또 다른 그랜드 퀘스트인 ‘시스템 파손도 복구’를 완료하는 것.
벌써 28%까지 찬 게이지를 확인하며, 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걸 끝까지 채우면 무언가가 일어나겠지. 좋은 방향이든, 안 좋은 방향이든.’
시스템을 파손한 건 마왕 세이르.
그가 신의 시스템을 망가뜨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부터, 나는 조심스럽게 한 가지 가정을 했었다.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하지만……. 나도 지금 황태자의 몸으로 현실 세계에 나와 있지 않은가.
<그랜드 퀘스트 사가>는 현재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안에 있는 다른 캐릭터들이 밖으로 나와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생김새가 조금 현대식으로 바뀌긴 해야겠지만.
가장 걱정이 됐던 건 ‘파손’이라는 단어다.
결계를 예로 들어 보자.
결계를 이루는 방벽 중 어딘가가 손상되면 틈이 날 수가 있다.
외부에서도 침입할 수 있고, 내부에서 탈출도 가능한 상황.
만약 시스템이 파손되어 특정한 무언가가 노출되었다면, 내가 떠올릴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거다.
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무 갔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했어.’
이런 건 계속 생각할수록 이상한 상상만 하게 된다.
내가 집중해야 할 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이다.
‘결론적으로 오늘 수색은 나름 성공적이라고 할 순 있겠군.’
옛날의 나와 지금의 내가 만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속설에 그런 말이 있다. 도플갱어끼리 만나면 죽는다고.
이게 사실이라고 생각했던 적은 없지만, 그래도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상황이긴 하다.
과연 옛날의 나는 황태자로 변한 나를 보고 어떤 반응을 할지.
하지만 오늘의 탐색 덕분에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게 밝혀졌다.
‘그래, 오히려 나에겐 좋은 소식이다. 그 지긋지긋한 기억을 완전히 떨쳐 낼 수 있게 되었으니까…….’
가족들과 연관된 옛날의 기억.
누군가 들으면 과거의 추억이 사라졌음에 굉장히 안타까워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반대다.
차라리 이렇게 마음 편히 잊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가수가 되고 싶다는 나의 꿈을 결사적으로 반대한 집안.
꿈을 응원해 주기는커녕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손부터 올렸던 아버지와 그 모습에 질려 밖에 나가는 빈도가 늘어난 어머니.
내가 스스로 자립을 결심하여 집을 떠난 후부터 서로에게 더더욱 관심이 없어져서 서류에만 도장을 찍지 않았을 뿐 사실상 이혼한 상태였었다.
한마디로 저 집안을 생각했을 때 나에게 돌아오는 아련한 기억이나 애틋함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있었다고 해도, 이미 마모되어 없어졌겠지.
“후우…….”
내 입에서 재차 한숨이 나온다.
왠지 모르게 피로가 급속도로 몰려왔다.
긴장감이 살짝 풀어져서 그런가, 몸에 힘이 조금 빠져나갔다.
나는 휴대폰 메신저 앱을 켜서 매니저 형에게 여기서 자고 가겠다는 연락을 남겼다.
그러곤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 * *
다음 날 아침.
일찌감치 지하철을 타 숙소로 돌아왔더니, 예상치 못한 사람이 나를 반겼다.
“혼자 어디 갔다가 이제 오는 거야, 집 잘 지키고 있으라 했잖아.”
“……?”
“얘 왜 여기 있냐, 라고 물어보고 있네.”
강시윤은 쾌활하게 웃으면서 큼지막한 비닐봉지를 흔들었다.
“집에 갔더니 부모님 여행 떠나셨더라고. 그래서 엄마가 해 놓으신 반찬만 잔뜩 들고 오늘 돌아왔지.”
“그러면 부모님 얼굴을 못 뵈고 온 것이냐?”
“어쩔 수 없지. 타이밍이 안 좋았으니까. 야,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걱정스러운 눈으로 볼 필요 없어. 우리 가족은 항상 그러거든. 즉흥적인 여행 자주 떠나셔.”
내 걱정스러운 시선에, 강시윤은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반찬 통을 부엌 식탁에 차곡차곡 쌓으면서 정리하는 거나 도와 달라고 말했다.
“이건 고구마 맛탕이고, 이건 김치……. 아싸, 장조림이다. 카리스, 너 에스토니아에서 이런 거 먹어 봤어?”
“고기 조림이라면 당연히 먹어 봤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말이지만, 한국에 와서 장조림도 먹어 본 적 있다.”
“그러면 이거 오늘 저녁에 꼭 먹어. 우리 엄마가 만든 건데, 진짜 맛있어. 내가 보장할게.”
“고맙구나. 어머님께 감사하다고 꼭 전달해 주어라.”
“네가 그렇게 안 말해도 당연히 전화 드릴 생각이었지.”
내가 방금 한 말은 반은 사실이고 반은 거짓말이다.
장조림은 당연히 먹어 봤다.
그러나 일반적인 반찬 가게에서 먹은 게 아닌, 정말 어렸을 때다.
아직 집안 분위기가 괜찮았을 때, 어머니가 해 주신 반찬 중 장조림이 제일 맛있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나도 모르게 어딘가 아련한 표정을 하고 있었나 보다.
눈치 빠른 강시윤은 냉장고 문을 닫으면서 씩 웃었다.
“그거 알아? 엄마 아빠가 너 엄청 좋아한다?”
“너희 부모님께서 나를……?”
“내가 자주 얘기 꺼내거든. 아육시 레벨 테스트 때부터 알게 된 외국인 친구가 한 명 있다고.”
“그렇게 말하면 너무 많은 게 생략되는 것 아니냐.”
“하하하! 당연히 그 이후도 네 얘기 진짜 많이 했지. 엄마는 너 엄청 성실하고 착한 것 같다고, 나중에 꼭 집에 한번 데리고 오라고 하셨어. 나랑 잘 지내 줘서 고맙다고.”
“…….”
이런 대화를 듣는 게 얼마 만인가 모르겠다.
아니다. 실은 처음일지도 모른다.
강시윤은 내 팔을 탁 치면서 일어났다.
“여기서 별로 안 머니까 나중에 한번 같이 가자. 아빠한테 고기 사 달라고 할게. 어때?”
“…….”
“웬일로 아무 말도 없냐? 왜 그래.”
“아니다.”
나는 잠시 울컥했던 감정을 추스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아까 했던 말을 다시 천천히 읊었다.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꼭 전해 드리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