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1
뽑기하는 마왕님
제1화
나는 숙제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굳이 말하자면 싫어하는 쪽에 가깝다.
세상에 숙제를 좋아하는 인간이 몇이나 되겠느냐만…
유년 시절에도 싫었고 학창 시절에도 싫었다.
어른이 된 지금은?
역시나 싫다.
하지만, 나는 공교롭게도 그 싫어하는 숙제를 다른 사람들의 손에 들려주는 어른이 됐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과제 관련해서는 오늘 저녁까지 사이버 강의실에 올려둘 테니 확인들 하세요.”
과제라는 단어가 공간을 울리고 난 후에, 곧장 구겨지는 얼굴들.
그 얼굴을 못 본 척하는 게, 이 일을 하면서 가장 열심히 배운 것 중 하나다.
그래요, 그래.
저도 숙제는 싫어합니다, 여러분.
하지만 어른이니 꾹 참고 견디세요.
“혹시, 질문 있는 학생?”
스윽…
앞자리에 앉은 짧게 자른 머리,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의 남학생이 두리번거리다가 멋쩍게 대답한다.
“…없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
내가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여긴 건가?
“그렇군요, 다음 시간에 봅시다.”
저벅…
저벅…
내 구두 소리가 강의실에서 채 빠져나가기도 전에 금세 학생들의 말소리로 공간이 가득 찬다.
그런데, 유독 밝은 귀가, 아직 채 문밖에 나가지도 않은 내 귓가로 험담을 실어 날랐다.
“김서진 강의 진짜 못 들어주겠다. 너무 딱딱해. 무슨 살얼음판이야?”
“왜?”
“사이보그 같잖아, 진짜. 강의하는 로봇.”
“야,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 너 그거 몰라?”
“응?”
“김 교수님 원래는 유쾌하고 부드러운 분이셨대. 나도 들은 건데 몇 년 전에 와이프 분이 사고로….”
* * *
와이프의 사고 얘기는 늘 쓰라리다.
그래도, 무뎌졌다고 생각한다.
아니 생각보다 그렇게 무너질 만큼 슬퍼하진 않았던 것 같다.
정말로 참을만했다.
서른 중반의 나이.
이 나이에 강단에 서고 있으니 주변에서 새장가를 보내겠다고 야단들이다.
최근에는, 도통 웃질 못했다.
슥…
스마트폰을 집어 들면, 여지없이 잠금 화면에 떠오르는 한 여성의 얼굴.
달덩이 같다.
‘예쁘다, 승아.’
사진 속 여자는 적어도 내 눈엔 세계 최고 미녀의 얼굴이다.
승아.
현승아.
승아야, 장난 그만 치고 벌떡 일어나서 나 좀 웃겨줘라.
“하아….”
스르륵…
신경질적으로 스마트폰의 잠금을 해제하고, 몇 개 안 되는 아이콘 중 하나를 선택해 눌렀다.
삐링…
– 레메게토오옹~
약간 어눌한 일본식 영어 발음의 타이틀.
화들짝 놀라 소리를 줄였다.
이곳이 교수실이라 다행이지.
슥…
슥…
소리는 간신히 들릴 정도로 최대한 줄여놓고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숙제, 오늘 숙제 안 했었지.’
현재 내게 남은 낙은 이 게임뿐이다.
레메게톤을 즐겨온 건 몇 년 전부터였나?
…맞다, 승아가 사고로 내 곁을 떠나고 얼마 후부터일 거다.
아내는 중소 게임 개발사의 프로젝트 책임자였다. 레메게톤은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맡았던 프로젝트다. 승아가 직장 스트레스로 투덜거리던 게 아직도 어제 일만 같다.
– 서진 씨, 들어봐. 아니 그 돼지들! BM을 너무 악독하게 밀어붙이잖아! 이러면 유저가 겁먹고 다 떨어진다고 내가 몇 번이나…
– 콘셉트를 대체 몇 번이나 바꾸라는 건지.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야. 그래서 어쩔 거냐고? …어쩌겠어, 바꿔야지.
승아의 죽음이 남긴 아픔은 무뎌…졌다고 생각한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아내가 사고로 죽고 난 후, 난 선 채로 썩어버린 오래된 나무가 되었다.
그런 나를 그나마 무너지지 않게 해 준 것이 바로 이 게임이다.
내가 싫어하는 숙제가 잔뜩인 모바일 게임.
72악마 레메게톤.
매해 쏟아지는 흔하디흔한 수집형 모바일 게임이다.
마족이 악마를 소환해 인간을 사냥하며 던전을 경영하는 평범한 소재.
유저들은 절대 모를 것이다.
이 게임에 생전 아내의 눈물과 웃음이 가득 담겼다는걸.
그러니까, 이 게임이 버림받았겠지.
모두 떠나간 거겠지.
‘…꽤 재밌는데 말이지.’
그래. 인정하기 싫지만, 레메게톤은 졸작이 맞다.
이 게임을 조금이라도 해 본 리뷰어들은 리뷰에 악평을 꽉꽉 눌러 담았다. 혹시라도 뉴비가 이 게임에 발을 들일까 염려한 것인지.
뉴비들에게는 친절한 것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얄미워 보이는 행동이다.
레메게톤은 분명 똥겜이 맞지만, 똥겜이라고 공공연하게 소문이 나는 건 가슴 아프다.
이 게임의 반응이 시들어가는 걸 실시간으로 지켜보면, 떠오르곤 한다.
새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고 염려하는 동시에 그래도 도전해보겠다며 들뜬 표정이던 그녀가.
승아가 떠오른다.
– 내가 꼭, 파우스트에게 행복을 줄 거야. 자기도 동참해!
승아가 종종 했던 말이다.
파우스트.
이 게임의 주인공이자, 유저가 플레이하게 되는 인물이다.
여러 사연이 있는… 뭐 지금 그게 중요한가?
결국 파우스트는 행복해지지 못 했잖아, 승아야.
딸칵…
스마트폰으로는 숙제를 하고, PC는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공지를 확인한다.
장문의 공지를 읽고 또 읽었다.
수십 번쯤 읽었으려나.
오늘도 벌써 강의 들어가기 전에 한 번, 다녀와서 한 번.
두 번이나 읽었다.
레메게톤의 생명은 여기까지라는 내용의 공지를.
안타깝게도, 오늘로써 모든 서버가 숨을 멈춘다.
애초에 나는 이 게임 최후의 결사대니까, 이런 결말을 어렵지 않게 상상하곤 했다.
‘드디어 숙제에서 해방되는 건가?’
이 게임마저 쓸쓸히 사라지면, 나는 이제 승아를 조금씩 잊어갈지도 모른다.
조금씩, 덜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게임이 서비스를 종료하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구의 멸망이 예정되었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듯이 유저 역시 해야 할 일이 있다.
답은 정해져 있다.
쌓인 재화를 털어내는 것.
가챠, 즉 뽑기다.
잔뜩 쌓여있는 마석을, 일순간에 태운다.
무려 상시 뽑기에!
아내가 손댄 게임이니 나름 핵과금에 준할 정도로 과금을 했지만, 과금 효율이 최악에 가까운 레메게톤. 거기다 최악 중 최악인 통상 뽑기에 마석을 쓴다는 건 본능적인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혀 밑에 가시가 돋는 느낌이군.’
나름 적응했지만, 게임에 돈을 쓴다는 것에는 아직도 약간의 거부감이 남아있었다.
아마 아내와의 추억이 담긴 게임이 아니었다면 과금이라는 선택지는 없었을 것이다.
‘아니, 평생 모바일 게임 같은 건 손대지 않았겠지.’
그런 내게 있어 애써 모은 마석을 픽업 뽑기도 아닌 통상 뽑기에 전부 사용하는 건 자신에 대한 파괴 행위. …하지만 오늘만큼은 할 수 있다!
레메게톤은 6성급 악마의 뽑기 확률 자체가 여기가 지옥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낮았다. 거기에 사역마를 제외하고도 각종 추가 가챠들이 존재해 과금 게임에 익숙한 유저조차도 고개를 젓게 만들 정도.
…괜히 망한 게 아니다.
레메게톤은 일반적인 모바일 게임 유저들이 뜨악해할 만한 기행을 자주 벌였고, 지옥의 뽑기 확률은 그 일부일 뿐이다.
어쩌면 사건 사고 없이 정상적으로 막을 내리는 것이 호상처럼 느껴질 정도.
아무튼…
서비스 종료 임박, 무한 출혈 뽑기다.
이 마석은 지옥문에 투입되어 실망감으로 되돌아오겠지.
휘오오오오…
사슬로 굳게 잠긴 지옥의 문.
그 위쪽엔 달그락거리는 해골의 머리가 소환 의식을 진행했다.
– 그 어떤 괴물도 지옥 밑바닥까지 긁어 찾아주마!
‘매번 허풍만 떨지 말고 좀 찾아달라고.’
휘이이잉…
파란색.
– 크르륵… 고기… 맛 좋은 고기….
[★★★놀 무투가를 소환합니다.]……
휘이이잉…
초록색.
[★★조악한 곤봉의 수색에 성공합니다.]……
휘이이잉…
보라색.
– 오늘은… 보름달이 떴군.
[★★★★늑대 인간을 소환합니다.]……
방금 30연차는 했는데 뭐지?
맵다.
상당히 매운맛이다.
‘와… 심한데.’
6성은커녕 5성조차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자연스럽게 쌓인 마석이 한 줌의 재로 화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최근, 숙제를 좀 게을리했으니 이해는 됐다. 그래도, 내가 태운 마석이 적은 양은 아니었다.
최근에 과금을 멈췄는데도 이렇게 마석을 모을 수 있는 것도, 어찌 보면 레메게톤의 방향성 때문이기도 하다.
과금 유저인 흑우들은 쥐어짜고, 흑우들이 비교군으로 삼아 자존감을 채울 목초나 다름없는 무과금 유저들에겐 은근 친절한 게임.
전략은 나쁘지 않았으나, 어쨌든 침몰했다. 정신을 너무 뒤늦게 차렸거든.
난파선이 그 안에 꿈과 희망, 비단과 후추를 실었든 뭐든 알게 뭔가.
휘이잉…
‘…뭐지?’
방금, 80연차를 했다.
자각몽을 꾼 게 아니라면 분명 방금 80연차를 막 끝냈다.
…뭐지?
어느새, 마석 잔고가 마지막 10연차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후우….”
잠시, 호흡을 고르고 터치.
휘오오오오…
– 크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지옥문의 해골이 고통인지 희열인지 아무튼 뭔가에 가득 차서 고함을 내질렀다.
가끔, 6성 악마를 뽑았을 때 이런 연출이 흘러나왔다.
‘…왔다.’
– 경배하라… 지옥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태어난 존재를 목격했으니….
‘…뭐? 무슨 소리야?’
보통 멋진 연출이 흘러나오긴 하지만, 이런 수식어는 좀처럼….
이후에 흘러나오는 대사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아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 모든 악마의 어머니여, 거룩한 천상의 대적자여!
‘설마….’
콰르르르르르르릉-!
직후, 지옥문의 문짝이 아예 박살 나는 처음 보는 연출이 흘러나왔다.
– 운명을 넘어, 당신을 만나러 왔어요.
[★★★★★★ 루시퍼를 소환합니다.] [위업 퀘스트 ‘종막의 여인’을 달성합니다.]동공이 자연스럽게 크게 확장했다.
‘…뭐? 방금, 뭐?’
루시퍼?
…루시퍼라고?
그럴 리가?
‘지금 루시퍼가 나온다고?’
일반적인 6성 악마가 등장했다면 이리 놀랄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게 루시퍼는… 유저가 클라이언트 뜯기로 모델링을 훔쳐본 사건 이후에 단 한 번도 소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잠수함 패치? 아니… 망하기 일보 직전인 게임이?’
일단 루시퍼는 레메게톤의 72 악마에 속하지도 않았기에 언젠가 이벤트성으로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만 있었을 뿐이다.
심지어 이미 결사대들마저 떨어져 나간 후라, 루시퍼라는 존재 자체는 유저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졌었다.
그런 루시퍼를 최초로 수집하게 된 것이니, 기뻐해야 하는 걸까? 버그성 획득일지라도?
아니다, 오늘은 레메게톤의 서비스 종료일이다. 심지어 몇 분 뒤에 종료다.
“별….”
띠링…
[레메게톤의 서비스 종료가 임박했습니다.] [5분 뒤, 레메게톤의 서비스가 영구히 종료됩니다.] [지금까지 레메게톤을 사랑해주시고 아껴주신 마왕님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합니다.]……
어쩌고… 저쩌고…
눈을 비볐다.
근데 갑자기 왜 이렇게 졸리지?
뒤에 따로 강의는 없지만 그래도….
아, 나… 최근에 잠을 좀 못 자기는….
털썩-!
* * *
쏴아아아아…
…어디서 빗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여라!”
조용히 좀 해, 잠 좀 자자.
“얼른 시작해!”
“집행하라고!”
…이게 무슨 소리지?
내 교수실에 노크도 없이 누가….
음?
덜걱…
음?
덜거덕…
음?
‘뭐야? 몸이….’
몸이 구속당했다.
‘납치! 아니, 납치라고?’
그뿐만 아니라, 지금 비를 계속 맞고 있다.
콰르릉-!
쏴아아아아…
내가 지금 왜 길바닥에서 비를 맞고 있는 건지는 도무지 알 수 없다.
“오늘 우리는 이곳에서, 인류를 위협해온 타락의 주구! 마족 저항군을….”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마족?’
마족… 마족?
마족이라니, 누가?
누가 마족인데? 갑자기 마족이라는 말이 왜….
척-!
선동가의 손가락이 나를 가리켰다.
“그중에서도 언젠가 마왕군이 될지도 모르는 간악한 자손들을 단죄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인류가… 현재에도, 미래에도 승리했음을 선포하려 합니다!”
“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죽여라! 죽여어어어!”
이쯤 되면 바보라도 눈치챌 수 있잖아….
내가 구속된 곳은 단두대다.
서슬 퍼런 칼날이 저 위에 매달려 있다.
칼날은 묶여있으니 직접적으로 보이진 않는데, 느껴졌다.
신기하게도.
기이할 만큼 감각이 예리해져 있었다.
그런데, 자손들이라고?
슬쩍 눈알을 굴려 좌우를 확인했는데, 나처럼 구속된 자들이 더 있는 듯했다. 좌우로 한 명씩밖에 보이지 않는 위치였지만 느낌상 족히 다섯은 넘어 보였다.
근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도와줘, 누가… 이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좀….’
목소리가 안 나온다.
기분 탓이 아니라 정말로 뭘 잘못 먹은 건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꿈이라면 이때쯤 일어나야 한다. 악몽에도 자비가 있는 법이니까.
‘제발… 제발….’
정신없이 눈알을 굴렸다.
부자유 속, 그나마 내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건 동공뿐.
“죽여!”
“목을 베라!”
모두 단두대의 주인공들을 어서 죽이라고 소리친다.
저항할 수 없다.
그 순간, 스스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삿대질하며 규탄하는 인간들에게 증오를 느꼈다.
‘감히….’
그것이 나의 본질이라도 되는 듯, 내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이 피가 아닌 분노인 것처럼.
까드득…
이를 꽉 깨물고 전면을 노려보았다.
핏발이 선 채로 군중을 노려보는데, 유독 시선을 잡아끄는 여자가 있었다.
이제 더 놀랄 게 무엇이 있을까 싶었지만, 로브의 후드를 뒤집어쓴 여인의 화려한 이목구비는 난리통에도 분명 놀랄 만했다.
순은으로 짜인 것처럼 찰랑거리는 은색 머리칼, 새하얀 피부에 묘하게 동양적인 이목구비까지.
눈은 또 고양이처럼 노란빛을 뿜었다.
그런데, 내가 진정 놀란 이유는 그 여인이 아름다워서가 아니었다.
그 여인은 내가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본 누군가와 닮았기 때문이다.
‘…루시퍼?’
후드를 걷자, 여인의 뿔이 드러났다.
“조금만….”
뭐라고 말하는 거야?
“참으시길.”
휘오오오오오…
여인의 손에 엄청난 암흑이 휘몰아쳤다.
“뭐… 뭐야!”
“꺄아아아악!”
“악마다!”
“여기에 악마가 있다!”
군중이 혼비백산하여 사방으로 흩어지는 가운데, 빛이 번뜩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터져나가는 단두대.
그 순간, 나는 자유를 되찾았다.
그리고 또 다른 부자유를 맞이했다.
벼랑에서 떨어지며, 이곳이 외딴섬의 첨탑이라는 걸 인지했고 단두대의 위치는 그곳에서도 꽤 높은 곳에 마련되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즉, 나는 바다로 떨어지는 중이었고 방금 여인의 일격에 첨탑이 송두리째 붕괴한 것이다.
촤아아아아…
비바람과 함께 난폭하게 철썩이는 바닷속으로 떨어졌다.
그게 내 마지막 기억이다.
아니, 사실 기억이 조금 더 있다.
바다에 빠지자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흩어져 도주하는 다른 단두대의 마족들의 모습이.
그리고…
꼬르륵…
나를 향해 헤엄쳐오는 루시퍼의 모습이.
꼬르륵…
꼬르르륵…
우우우우웁…
“쿨럭… 쿨럭….”
물을 토했다.
뭐지?
‘아….’
꿈에서 깬 거구나.
…아닌데?
물을 토했다는 건, 꿈이 아니라는 얘긴데.
“콜록… 하아… 하아….”
“깨어나셨군요.”
방금 눈치챈 건데 나 지금, 누군가의 무릎을 베고 있다.
그 어떤 베개도 이보다 편안하진 않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내 시선과 내가 벤 무릎의 주인, 악마 루시퍼의 시선이 얽힌다.
“파우스트 님.”
“…아.”
일순간, 이곳으로 건너오기 전 두 여성이 내게 건넸던 말이 떠올랐다.
– 내가 꼭, 파우스트에게 행복을 줄 거야. 자기도 동참해!
현승아.
– 운명을 넘어, 당신을 만나러 왔어요.
그리고 루시퍼.
“…이런.”
어쩌면 나는 오늘, 최악의 숙제를 넘겨받은 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