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10
제10화
페넥스가 휘두르는 검과 같은 강도,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더 단단한 앞 다리.
[아그네아가 점 찍기를 사용합니다.]‘피해야 해!’
콰아아아앙-!
공격을 받아내자 곧장 반격해 오는 것으로 보아, 아그네아의 간격에서는 페넥스가 확실하게 불리했다.
‘어떡해… 어떡하지?’
그녀의 트라우마와도 같은 이전 계약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 그래서, 넌 그것밖에 안 되는 거냐? 재주가 없군. 의식으로 계약을 무르겠다. 불쾌하구나.
페넥스는 열심히 했는데….
– 하, 웃기지도 않네. 정말. 너, 악마는 맞아? 이걸 어떡한다… 저기 너, 계약은 아무래도 물러야 할 것 같아. 응? 왜냐고? 강한 악마가 필요하거든, 너 같은 녀석 말고.
이곳에 네가 있을 자리는 없어.
쓸모도 없이 밥만 축내는 악마야.
‘…아니야!’
페넥스는 분명 쓸모 있어!
아니, …쓸모 있을 거야.
‘…조, 조만간.’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내야 했다.
실력자들에게서 던전을 지켜내는 것도 아닌, 던전을 잠식한 마물을 떨쳐내는 것도 제대로 못 해선 여기에 남아있을 수 없다.
원거리에선 싸울 방법 자체가 없고 파고들더라도 뚫을 수 없다. 타고난 재생력을 믿더라도 그 전에 아그네아의 흉악한 앞 다리에 찢길 게 분명한 상황.
‘어떻게 해야….’
– 파고들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다. 확실한 순간을 만들어라.
파우스트의 말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확실한 순간….’
아그네아를 파고들 수 있는 확실한 순간.
화르르륵…
‘떠올랐다!’
[아그네아가 산성 맹독을 사용합니다.] [매우 빠른 맹독 오염 물질이 대상을 향해 쏘아집니다.] [대상에게 강한 산성 피해를 입힙니다.]촤아아아악-!
산성 맹독을 가까스로 피해낸 페넥스가 기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파아아앗-!
아그네아를 뒤로한 채로 맹렬히 반대 방향으로 돌파하기 시작한 것.
촤아아아악-!
촤아아아아아아악-!
그녀가 마침내 새끼 거미가 짜낸 방진의 한쪽을 뚫어내 툭 튀어나왔다.
화르르르르르륵-!
– 키이이이이-!
페넥스는 그대로 곧장 나아가 아직 깨어나지 않은 고치들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화르르르륵…
페넥스의 화염은 잠들었던 새끼 거미들을 차례차례, 그리고 빠짐없이 깨웠다.
그녀의 화염이 강렬하긴 해도, 새끼 거미를 즉사시킬 정도의 화력은 아니었기에 당연히 상대해야만 하는 군세는 오히려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
“좋아, 전부 일어난 거지?”
– 키이이이이!
– 키이익!
– 키이이익…
페넥스는 벽을 등지고 섰다.
아그네아의 자손들로 이루어진 새까만 파도가 눈앞을 가득 메웠다.
아찔한 상황.
그러나 그녀는, 지금부터 이 파도를 헤치고 아그네아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스으으으…
페넥스가 검을 수직으로 들어 올린 후, 비틀며 횡으로 휘둘렀다.
화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그에 따라, 불길이 일렁이며 부채꼴 방향으로 엄청난 기세로 나아갔다.
[페넥스가 고통 분담을 사용합니다.] [페넥스가 부채꼴 형태의 화염파를 발사합니다.] [화염파는 전투력의 150%를 범위 내의 적에게 나누어 입힙니다.]화아아아아아아아아아-!
– 키이이?
– 키이이이!
전투력의 150%.
페넥스의 기본 스킬셋에 포함된 스킬답게 매우 직관적이고 애매한 성능.
그러나, 이 스킬의 진정한 가치는 이것만으로는 표현되지 않았다.
범위 피해.
피해량이 많지 않기에, 꽤 넓은 범위를 가진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고통 분담은 페넥스를 한계까지 육성한 유저들마저 종종 채용하곤 했던 스킬이다.
이 스킬의 진정한 위력은, 그녀의 기본 지속 효과와 결합할 때 나타난다.
[페넥스의 기본 능력: 열기 전이가 발동합니다.] [페넥스의 기본 공격이나 능력에 피해를 받으면 불씨 상태가 됩니다.]……
수십… 어쩌면 백에 달하는 새끼 거미들이 일시에 불씨 상태가 되었다.
불씨는 30초 동안 유지되며, 중간에 대상이 사망하면 주변으로 전이되어 지속 시간을 갱신한다.
던전 수호에서는 파티에 신관이 포함되어 있다면 불씨 상태를 해제할 수 있지만, 마물 대부분은 저항할 수 없다.
[기본 능력: 열기 전이는 기본 능력: 타오르는 불꽃에 영향을 줍니다.] [불씨 상태에 있는 적 하나당, 타오르는 불꽃의 생명력 회복 효과가 강화됩니다.]30초.
불씨가 옮겨붙은 새끼 거미들은 페넥스를 그 30초 동안에 불사신으로 만들어버린다.
“으아아아아!”
파아아앗!
촤아아아아아아아-!
화염을 두른 페넥스가 악귀처럼 검은 물결을 가르며 나아갔다.
– 키이이이이-!
아그네아의 괴성이 새끼 거미들을 결집했지만, 그녀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금방 뚫리고 마는 장벽.
그렇다면, 직접 상대한다.
– 키이이이이이-!
후우웅…
흉측한 앞다리가 페넥스의 어깨를 노리고 날아든다.
쒜에에에엑-!
콰지이이이이이이익!
그녀는 피하지 못했다.
처참하게도, 페넥스의 한쪽 팔이 고깃덩이처럼 덜렁거리며 짓이겨졌다.
그러나 응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그네아의 점 찍기에 피해를 입었습니다.] [추가타가 발생합니다.]후우우웅-!
콰지이이이이익-!
페넥스의 왼쪽 가슴을 꿰뚫는 앞다리.
죽었다!
심장을 으스러트리는 감각이 분명, 말단 신경까지 전해졌다.
고양감이 아그네아의 전신을 물들였다.
악마가 현현한 육신을 먹어 치우면, 으스러진 뒷다리도 회복할 수 있을 테지.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파르르…
아그네아의 앞다리를 페넥스가 붙잡았다.
“우으으… 안 아파….”
페넥스는 방금 상황이 거짓말처럼, 갑주를 휘감은 멀쩡한 팔과 생생히 뛰는 심장을 가지고 있었다.
“페넥스는… 악마야, 그러니까 안 아파.”
사실은, 아프다.
당장에 까무러칠 만큼 아프다.
그러나 그녀는 충분히 아파봤다.
흉터 하나 없는 몸은, 어쩌면 저주나 마찬가지일지니.
그녀가 걸어온 길을, 감출 뿐이니까.
그녀는 늘 쓰러졌고, 늘 일어났다.
– 키이이이이이!
아그네아가 소름 끼치는 괴성을 내질렀다. 위급 신호다.
무리여! 어미를 보호하라!
– 키이!
– 키이이!
새끼 거미들이 아그네아를 구하기 위해 일제히 뛰어들었다. 어미를 구하기 위해선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야 했다.
그러나 막을 수 없다.
페넥스는 죽지 않는다.
으적…
머리를 노리고 휘둘러진 새끼 거미의 다리를 으적 씹어 뱉는다.
콰아아아앙-!
등에 달라붙어 독니를 어깨에 꽂은 새끼 거미를 패대기친다.
으지지직!
그리고 가볍게 짓밟는다.
그 한 번으로, 불씨는 다시금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불씨 상태의 적은 사망하면 화염에 휩싸이며 주변에 불씨를 전이시킵니다.] [불씨가 전이된 대상은, 불씨의 지속 시간이 갱신되며 사망한 대상의 남은 화염 피해를 짊어집니다.]불씨 갱신.
그녀는 여전히 불사신이다.
온 사방에 타는 냄새가 너무도 고약했다.
이미 앞다리의 간격 안으로 파고든 페넥스에게 다급히 산성 액체를 내뿜는 아그네아.
[아그네아가 산성 맹독을 사용합니다.] [매우 빠른 맹독 오염 물질이 대상을 향해 쏘아집니다.] [대상에게 강한 산성 피해를 입힙니다.]촤아아아악-!
산성 액체를 뒤집어쓴 페넥스의 몸이 한순간 이지러지는 것처럼 보였다.
“소용없어.”
푸화아아아악-!
페넥스가 아그네아의 배에 검을 찔러넣었다.
– 키이이이이이!
푸화아악!
푸화아아아아악!
페넥스는 거칠 것 없이 검을 휘둘렀다. 검로에 걸려드는 모든 것을 베었다.
이미 고통에 잠식된 정신은, 모든 것을 잊고 베는 행위만을 계속하라 명했다.
아그네아의 내장.
아그네아의 다리.
새끼 거미들의 저항.
때로는 구속된 그녀의 사지.
그녀는 불에 타오르며 웃었다.
“아하하하핫!”
계속해서, 그녀의 웃음소리 외에 아무런 소음이 들리지 않을 때까지 검을 휘두르며 웃었다.
“하하… 하….”
마치, 악마처럼.
그녀는 부활의 악마다.
* * *
저벅…
저벅…
매캐한 연기는 한차례 빠져나갔지만, 공동에는 무언가의 살점이 지독하게 타버린 냄새가 아직 남아있었다.
파우스트가 잔불이 남은 길을 걸었다.
우뚝…
그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멈춘 후에 발견한 무언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 모든 사단의 시발점인, 모험가 차마르가 구속된 실고치였다.
아마도 그는, 이대로라면 죽을 것이다. 차마르의 파리한 안색이 증명하고 있었다.
“…루시퍼.”
“예.”
“녀석을 심처에 결박해 두도록.”
루시퍼가 곧장 답하지 않았다.
잠시 한 차례 생각을 거친 후에 물어오는 그녀.
“혹, 어떤 까닭이신지…….”
“……?!”
파우스트는 루시퍼가 던진 질문의 의도를 눈치챘다. 그녀는 의심하는 것이다.
이후에 이어질 행동이 던전을 소란스럽게 한 침입자의 목숨을 동정해 보전해주는 것은 아닌지.
…분명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파우스트가 어떤 인물인지 확신하지 못한 상황에선 말이다.
‘그래, 나였다면… 온전한 나였다면….’
파우스트가 아닌 김서진만의 판단이었다면 루시퍼의 염려는 옳았을지도.
“그대가 걱정하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분부대로.”
스으윽…
루시퍼가 실고치를 한쪽 어깨에 메고 심처로 되돌아갔다.
남은 건, 이 현장을 만든 주인공과 파우스트뿐.
타닥…
탁…
아직도 군데군데 불길이 이글거리는 이곳에는 둘뿐이다.
“…넥스.”
“…….”
“페넥스.”
삐걱거리는 고개가, 뻣뻣하게 돌아가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파우스트다.
그리고 김서진이다.
‘…지독하군.’
검댕이, 가득했다.
온 사방이 검댕으로 가득했다.
그녀가 만들어 낸 참혹한 추상화처럼.
끼긱…
끼기긱…
페넥스가 바싹 구워진 아그네아를 바라보았다.
“…나리.”
“…….”
“페넥스는… 해낸 거야?”
쫓겨나는 건, 무서우니까.
이 몸은 상처 입지 않아도, 상실은 견딜 수 없으니까.
페넥스는 오히려 그것만이 두려웠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 그것이 부활의 악마를 사로잡은 결핍일지니.
그녀의 몸엔 생채기 하나 없지만, 그녀가 내뱉은 말엔 억지로 감춘 상처들이 새겨져 있었다.
“페넥스… 쓸모 있었어?”
지옥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현장에서, 파우스트는 그 어느 때에도 냉정을 유지했다.
한 차례 불길이 휩쓸고 간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차가운 마음이다.
그러나, 페넥스의 물음에 파우스트는 냉담할지언정 김서진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명령에 따라, 목숨을 바쳐 싸웠다는 것.
그의 안에 김서진은 게임 속 캐릭터에 불과했던 페넥스가 보여준 처절한 투쟁에 감화되었지만, 그가 깃든 파우스트로서는 큰 반응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것이, 파우스트와 페넥스.
둘 모두를 구하는 길임을 알기에.
앞으로 다가올 시련에 물러나지 않게 할 준비임을 알기에.
…다만, 적어도 그녀를 괴로움에서 구할 말 한마디 정도는 건넸다.
이것은 아직은 김서진인, 파우스트이자 마족이 하는 말이다.
“나쁘지 않았다.”
페넥스가 해맑게 눈물을 머금고 웃었다.
“우으으… 헷….”
[던전 수호 임무가 종료되었습니다.] [임무 결과: 차마르(생포)] [던전 수호 임무의 보상으로 침입자의 소지품을 획득합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침입자의 소지품에 마석 × 1,500을 획득합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침입자의 소식이 그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중립 우두머리 ‘절름발이 아그네아’와의 우두머리 전투가 종료되었습니다.] [오래전, 아그네아의 거미줄에 묶여 사망한 모험가들의 주검에서 마석 × 4,500을 획득합니다.] [아그네아의 사망으로 그녀의 영토에 속해 있던 마물들이 약화합니다.] [아그네아의 사망으로 영역의 경계선에 이상이 생깁니다.]……
[아그네아는 대단한 보물을 품고 있었습니다.] [심처에 귀속된 물품을 확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