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102
제102화
교관인 지프에게 최하급 가계낭과 함께, 엄청난 양의 교재와 참고 자료를 배급받았다.
“이 중 일부만이라도 익혀서 야전에 나간다면, 적어도 원통한 죽음은 없을 겁니다.”
“…고맙군.”
“가계낭은 사용해 본 적이 있으신지요?”
“출처가 불분명한 물건은 사용해본 적이 있다.”
“그렇군요. 하지만 앞으로는 그런 물건은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겁니다. 가계낭이란 것이 말라시스의 장인이 만든 게 아니라면, 가끔 사소한 문제들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이해했다.”
지프가 지루함을 참고 대기 중인 파우스트의 악마들을 차례로 보면서 물었다.
“사역마입니까?”
“모두 내 사역마다.”
“조금 특이한 기운의 요마족이군요. 그것도 모두 여성… 흐음….”
“걱정하는 의도는 없다.”
“아, 제가 걱정하는 쪽은 오히려 다른 부분입니다. 최근 요마족 사역마와 계약한 마족들을 습격하는 자들이 있다고 해서….”
“그렇군, 그것도 주의하지.”
“앞으로 보름, 도련님께서는 보름 안에 군인이 되셔야 합니다.”
“짧긴 짧군.”
보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군인으로 완성되어야 한다니.
– 일이 잘 풀리면, 오만의 특작대에 배속될 거야. 어쩔 수 없을 거거든. 지망하는 자가 없을뿐더러, 임무도 드문드문 있는 곳이라 충원 자체가 힘들어.
아카드는 내게, 오만의 특작대에 소속될 것이라 말했다. 그게 그가 원하는 것이기도 했고.
“오만의 특작대에 대해선 들어보셨습니까?”
“악명 정도는.”
“하하… 뭐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닙니다. 다만, 출세의 가능성이 마왕군이나 다른 특작대보다 훨씬 희박하기도 하거니와 변방의 임무를 맡게 될 확률이 높아 다들 꺼리는 부대지요.”
– 오만이 사라져서, 부대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개판일 거야. 적당히 스며들도록 해.
아카드가 남긴 전언은 이게 끝.
오만의 특작대에 소속되는 것 외에 다른 지시 사항은 없었다.
“특작대의 교관은 스승이 아닙니다. 지식과 전술을 전수하는 자들일 뿐. 교육 수준은 기본적인 걸 알려주는 수준이지 대부분은 실전에서 깨우치게 될 겁니다.”
특히나 훈련 기간이 짧은 오만의 부대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럼, 무사히 훈련을 마치시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날 위해 힘써줘서 고맙군, 지프 경.”
“제가 아르칸드 가문에 받은 은혜의 극히 일부라도 갚았다면… 그것만으로 다행입니다.”
* * *
배정받은 숙소는 원래는 2인용이었지만, 오만의 특작대는 정원을 다 채우지 못했기에 난 혼자서 사용할 수 있었다.
“갑갑해서 죽을 뻔했어!”
“바람이라도 쐬도록.”
“그래도 돼?”
페넥스는 사역마 등록이 완료되었고 이곳은 자유시간에는 사역마들이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게 안배가 되어 있었다.
‘오만 쪽 숙소와 연무장은 가뜩이나 쓰는 인원도 적으니 누군가와 마주칠 일도 적고 말이지.’
작은 가계낭 안에 악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걸 생각하면, 틈만 나면 밖에 나와 환기를 할 수 있게 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럼 다녀올게!”
“페넥스, 제시간엔 맞춰 오셔야 합니다.”
“응!”
루시퍼의 당부에 페넥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몬은 아예 가계낭에 틀어박혀 잠을 자는지 나오지 않았고 이포스도 근방에 산책하러 나가 방에는 나와 루시퍼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루시퍼가 승전 섬에서 썩은 뿌리로 장거리 전이를 사용한 지도 반 년 넘게 흘렀다.
서서히, 그녀의 뿔이 검은색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아직은 회검정 정도의 빛깔이었지만 조금 지나면 완전히 새카만 뿔로 다시금 돌아올 것 같았다.
“그 뿔….”
“아, 마력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아마도 머지않아 저도 파우스트 님께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중입니다.”
루시퍼는 악마.
당연히 6성급일 것이다.
성능은… 모른다.
‘과연 어느 정도로 강할까?’
레메게톤의 명부에 올라 있지는 않지만, 루시퍼는 지옥의 상징적인 존재다. 괜히 악마의 어머니라는 둥, 천상의 대적자라는 둥 하는 수식어가 붙은 게 아니다.
‘제작사가 미리 만들어 둔 게 맞겠지?’
비록 출시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녀의 이미지 정도는 사전에 유출됐었으니 그녀의 스킬셋도 준비되어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다.
‘루시퍼가 원래의 힘을 되찾는다면, 나는 무려 악마를 넷이나 보유한 마족이 된다.’
게임에서는 별거 아닌 무과금 유저 정도겠지만 현실에서는 칠죄종도 깜짝 놀랄 만큼의 전력이라고.
…잠깐 희망적인 생각에 빠져있다가, 다시 할 일에 몰두한다.
‘교재 수준은 높지 않군.’
양은 많은 편이지만, 그다지 어려운 내용은 아니었다. 그리고 파우스트는 특별히 복잡한 내용이 아니라면 스펀지처럼 지식을 빨아들인다.
물론 이 역시 활력을 소모하니 조심해서 사용해야 하는 힘이지만 말이다.
‘훈련 내용을 따라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겠군.’
마족의 역사.
마왕군의 편성.
마왕과 칠죄종.
사역마를 활용한 전투.
던전의 구조를 이용한 함정.
침습 과정과 결과물.
코어의 유형과 유형별 특징.
온갖 종류의 기초적인 교범이 잔뜩이다.
‘그래도 대부분은 알고 있는 내용이라 다행이군.’
아예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읽는다면 상당한 고역일 테지만, 그간 스토리를 통해 어느 정도는 지식의 뼈대가 잡혀 있었다.
당장 내일이 훈련이니, 주경야독해서라도 문제가 안 생기게끔 할 생각이었다.
똑똑똑…
루시퍼가 슬쩍 내 눈치를 봤다.
“제가 응대해도 되겠습니까?”
이곳이 군의 숙소이다 보니, 아무리 사역마일지라도 요마족 여성이 나와 함께 머무는 모습은 오해를 사기 쉬웠다.
하지만….
‘그러라지.’
어차피 보름 있다가 떠날 곳, 평판에는 크게 신경 쓸 필요도 시간도 없었다.
“자리에 있는가? 알 아르칸드 경.”
“…누구지? 이 밤 중에 숙소 문을 두드릴 만한 사람을 알지 못하는데.”
“같은 부대에 배치될 로데릭 마르퀴스라고 하네! 잠시만 시간을 내주겠나?”
로데릭이라… 로데릭….
들어본 것 같으면서도 가물가물한 이름. 하지만, 마르퀴스라는 성을 이어 붙이자 금방 기억이 났다.
끼이이익-
“반갑군, 로데릭 경. 무슨 일이지?”
“아하하! 다름이 아니라, 그대와 호연지기를 나누고자 함이네!”
…이게 무슨 개떡 같은 소리래?
“자네가 그간 겪었을 고초가 이 나에게도 절절히 전해지는군. 그 슬픈 눈이라니!”
“……?”
“탐욕… 아카드 그자는 종잡을 수 없고 괴팍하지. 가문의 어른들께서도 그자에게는 약한 부분을 보이지 않기 위해 늘 조심하고 계시네.”
아, 그렇군요. …그러시구나.
근데 그 얘기를 자정에 가까워지는 밤에 왜….
“내가 그대를 지켜보겠네! 함께 성장해 나가세나! 언제고, 기회가 온다면 꼭 아카드 그자를….”
“로데릭 경, 밤이 늦었다. 내일 훈련에서 보지.”
“아, 아흠… 그렇지? 푸하하하하! 우리가 함께할 날은 기니까 말이야! 다음에 또 얘기함세!”
쿵-
문을 닫고 의자에 앉아 루시퍼에게 말했다.
“내일도 올까?”
“그럴 것 같습니다.”
“내 생각도 그렇다.”
로데릭 마르퀴스.
원작의 파우스트는 마왕군에 입단하여 임무를 치르던 도중, 마족의 젊은 영웅들이라는 주제로 쓰인 홍보물을 보게 된다. 그곳에 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게임에서 특별히 그 영웅들을 스토리를 통해 강조했으니 이후에 뭔가 크게 엮일 전조일 거라 예상했는데….
그 전에 게임의 서버가 종료되어 버렸다.
‘로데릭 마르퀴스가 왜 영웅이 됐더라….’
작중 그가 영웅처럼 떠받들어진 시기는 지금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많이 차이 나야 수개월 정도?
‘그 안에 로데릭 마르퀴스가 무언가 성과를 이뤄냈다는 건데… 그게 뭘까.’
어쩌면 이번에 그가 나와 함께 맡게 될 임무에서 뭔가 큰 변화가 일어나는 건 아닐까?
‘…는 무슨.’
로데릭 녀석은 괜히 야밤에 찾아와 쓸데없는 생각만 떠올리게 했다.
“괜히 번뇌만 늘겠군.”
덕분에 슬슬 잘 시간이다.
그런데,
“…페넥스는 아직도 복귀하지 않았나?”
* * *
사리야 로제르.
칠흑색의 머리칼은 그녀가 물려받은 피에 흐르는 오만의 상징이다. 모든 마족이 검은 머리칼을 가졌지만 로제르 가문의 구성원들은 윤기가 흐르는 칠흑빛이었다.
로제르 가문은 칠죄종 중 상위의 세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가주인 크레핀 로제르는 현재의 칠죄종 중 직위를 역임한 지가 가장 오래되었다.
그런 크레핀 로제르가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되고 난 후, 로제르 가문은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칠죄종은 모두 세계관 최상위의 강자들. 당연하게도 다른 이가 그 직무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특히나, 로제르 가문의 경우 손이 귀해 후계자라고 할 만한 자들이 제대로 바로 서지 못했다.
그게, 사리야가 특작대에 들어온 이유다.
그녀는 오만의 피를 가장 진하게 물려받은 3인 중 한 명이라고 은연중 알려졌고, 가문의 어른들 역시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후우우우웅…
그녀가 달빛 아래, 코어를 띄워 올렸다. 파우스트와는 상당히 다른 코어의 쓰임새.
그녀는 코어와 공명하지도, 연결되지도 않았다. 다만, 코어를 외부 마력 탱크처럼 사용해 움직임을 보조하게 할 뿐이다.
쒜에에엑-!
쒜에엑!
검이 달빛 아래 흩날린다.
코어를 굳이 외부에 띄워 올리는 이유는, 마력을 물이라고 가정했을 때 샤워 헤드에서 일정한 양의 물을 계속해서 쏟아내게 만들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움직임을 보다 매끄럽게 이어가는 것.
이것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자는 같은 양의 물이라도 그 물을 양동이로 뒤집어쓰는 것과 같다. 마력 이용의 효율에서 지대한 차이가 있다.
그녀가 띄워 올린 코어의 마력이 서서히 줄어들고 늘어나기를 반복하는 것을 보면, 이미 코어를 다루는 경지가 완숙의 경지에 다다랐음을 알 수 있다.
휘릭-!
파아아아아앙!
알 아르칸드.
낮에 보았던 남자의 움직임이 이상하게도 뇌리에서 잊히지 않았다.
뭐랄까… 그 남자의 검은 마력도 사용하지 않은 검인데도 어떻게 따라 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살기 때문일까?’
마지막 검초에서 느껴지던 폭발적인 살기. 이전 공방에서는 한 올의 살기조차 느껴지지 않다가 진지하게 임하고 난 후 속에 있던 걸 전부 끄집어낸 것만 같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아르칸드 가문에 얽힌 사연에 연민을 느낀 것일까?
‘…마음에 들지 않아.’
그 남자의 검술에 자신의 검술이 빨려 들어간 것만 같은 느낌.
공허한 눈과 경직된 표정.
단호한 말투와 절대로 평범하지 않은 실력.
‘가문의 복수를 꿈꾸는 건가….’
그녀와 비슷한 나이가 분명하지만, 어째서인지 남자는 한참이나 저 멀리 먼저 가 있는 듯했다.
휘릭…
파아아아아아-!
검초가 유려하게 뻗어나간다. 주변에 누가 있다면 감탄을 금치 못할 만큼 아름다운 검술이었지만 정작 사리야의 마음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대로는… 부족할 텐데….”
고운 입술을 짓깨물며 중얼거리는 그녀.
“…예쁘다.”
파아아앗-!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돌려 상대를 확인하는 사리야.
“…요마족?”
“나? 나는… 어, 어어어! 요마족이지! 훌륭한 요마족이야! 누가 봐도 요마족이지.”
“왜 훔쳐본 거죠?”
“훔쳐본 게 아니라 이쪽으로 가는데 보인 거라… 그건 춤이야?”
“…춤?”
사리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설마 제 검술을 춤이라 폄훼하는 건가요?”
“뭐야? 춤이 아니었어? 이런!”
상대가 더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했다.
“…왜 춤이라고 생각한 거죠?”
“상대가 안 보여서….”
“그게 무슨 말이에요?”
“허허벌판에서 예쁜 동작만 펼치니까 당연히 춤인 줄 알았지….”
이 무례한 말을 입 밖으로 내뱉자마자 상대가 질겁하며 중얼거렸다.
“헉!? 나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지?”
“…네,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예요.”
“미안! 그럼 나는….”
철컥…
사리야가 납검한 후, 상대를 향해 내밀었다.
“그럼, 당신이 한 번 보여봐요.”
“내가?”
“당신에게 악의가 없었다고 판단되면 저도 수긍할게요. 아니라면….”
그녀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모욕은 반드시 갚아주겠어요.”
“어… 그래. 그러지 뭐.”
상대가 검을 받아 들더니 적당히 몇 번 휘둘러 무게감을 확인했다.
휙-!
휘이익-!
“가볍네, 내가 쓰는 검보다.”
“핑계를 댈 생각이라면….”
팟-!
검을 잡은 요마족이 발을 어지럽게 움직였다.
파아아아앙-!
검이 앞으로 막힘없이 뻗어나가고, 두 발짝 물러나 사선으로 다시금 올려 벤다.
‘방금….’
휘릭-!
목을 노리는 검.
…따아아아앙.
들려올 리 없는 소리가 분명 들리는 것 같았다. 상대가 요마족의 검을 막았다.
‘목을 노리는 검을 막았으니… 다음 검은….’
요마족의 검이 어디로 향할지를 고대하며 바라보는 사리야.
후우우우웅-!
‘…뭐?’
요마족은 발을 앞으로 밀어내듯 차고는, 다시금 자세를 잡았다.
“으음… 더 해줘야 해?”
아주 짧은 검무.
아니, 검무가 아니었다.
가상의 상대를 두고 짧지만 치열한 공방을 펼친 거다.
“…어떻게 한 거죠?”
사리야는 요마족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마치 반대편에 상대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움직임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런 차이가 어째서 생겨난 건지 원인은 알 것 같았지만 말로 풀어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노력하면 돼!”
“…네?”
“난 이제 돌아갈 시간이라….”
“자, 잠깐만요!”
파아앗-!
사리야가 요마족의 앞을 막아섰다.
“조금만 더, 얘기를 나눌 수 있나요?”
“엑? 안돼! 파우… 알이 알면 화낼 거야.”
“…알?”
그녀는 낮에 있었던 대련, 그 장소에 존재했던 다른 이들을 떠올렸다.
“당신 설마… 아르칸드 남작의….”
“응! 사역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