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103
제103화
훈련 3일 차.
숙소에 머무는 동안 로데릭은 매일 찾아왔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날은 눈물까지 흘리면서 아르칸드 가문의 억울함은 꼭 풀어주겠다는 둥 헛소리를 해댔다.
‘소금이라도 뿌리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다행인 건 그가 훈련을 방해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도 칠죄종의 가문답게 훈련 시간엔 훈련에만 집중했다.
‘훈련이라… 사실상 훈련이라고 말하기 뭐한 수준이긴 하지.’
오만의 특작대는 주로 이미 마왕군이 점령한 지역의 임무를 맡게 되고, 그 위치는 전장을 기준으로 후방이다. 전투가 벌어질 확률 자체가 희박한 곳에 떨어진다는 얘기.
그러니 한 달의 동안 기초 지식만을 때려 박고 바로 임무 수행을 위해 말라시스를 떠나게 된다. 나 같은 경우엔, 중도에 합류했으니 딱 보름간만 지식을 쌓게 된다.
“생도들의 경우, 가장 오해하고 있는 게 바로 코어에 관한 사용법이다.”
오늘은 코어에 관한 시범 및 훈련이다. 으레 그렇듯, 교관이 코어에 얽힌 역사 지식을 이야기로 풀어내며 교육이 진행됐다.
“…이후, 최초의 마왕께서는 이것을 코어라 불렀다. 이것이 던전의 심장으로 기능하게 되는 건 좀 더 나중의 일이다.”
역사 자체는 전달받은 교범에서도 나왔었으니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지만, 이후에 진행되는 내용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이 코어가 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걸 이용해, 다른 이들과 던전을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아나? 마왕군의 침습 작전은 이 원리에 기반하여 이뤄진다.”
마왕군의 침습 작전.
인간들의 땅을 점차 마족들이 못 쓰게 만든다는 둥, 판타지 컨텐츠에서 주로 나오게 되는 마왕군의 검은 땅이다.
저런 게 세상을 어지럽게 하면 참 그 세상 사람들도 곤란하겠구나~ 했었는데….
‘내가 마왕군 쪽이 될 줄이야….’
“코어를 이용해 인근의 마력을 점진적으로 변형하면, 아주 순도 높은 마력 지대가 형성된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긴 하지만, 우리 마족에게는 살아가는 데 있어서 최상의 환경을 만들어지지. 반면 인간들은 오래 머무를 수 없는 땅이 되어 영토를 포기해야만 하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마족에게 이득이 큰 방법이다.”
이게 마족과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현시대의 전쟁이다.
침습을 이용한 땅따먹기.
순도 높은 마력은 인간들에게 있어서 극독이나 다름없기에 침습이 완료된 땅에선 물러날 수밖에 없다.
‘침습은 이전에도 해본 적이 없군.’
공격대 던전이 업데이트됐을 때도 주인공은 홀로 활동했다.
코어를 이용한 협력이나 다른 무언가를 해본 기억은 없다. 애초에 원작 파우스트가 마왕군에 있을 당시 침습 임무에 배정된 적이 없었으니까.
“코어는 마족 신체 외부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심장이다. 던전에 있어서는 보루이자 봉화이고 또 발전기지.”
후우우웅…
교관이 순식간에 코어를 형성해 띄워 올렸다.
“생도들은 모두, 앞으로 간단한 재료만 있으면 이렇게 금방이라도 코어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될 거다.”
코어 형성에 대한 이론은 교재를 통해 이미 깨우쳤다. 실제로 인공 코어를 형성하는 데에도 성공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코어는 전투에도 응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마력 회전에 효율적이다. 실제로 테렐루드 가문이나 로제르 가문이 이 코어를 응용하는 전투 방식은 가히 환상적이지.”
생도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사리야에게 쏠렸다.
‘괴상한 여자.’
이틀째 되던 날부터 저 생도와 부딪히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니까 의견 충돌이나 뭐 이런 마찰이 아니라 순수한 의미로 동선이 자주 겹쳤다.
‘날 감시하는 건가?’
오만의 로제르 가문.
거기다 그녀는 준수한 성적임에도 이 특작대에 배속되기를 자처했다고 하니….
‘…스파이인가?’
– 주변을 완전히는 믿지 마. 특히나 마왕군을 제외한 다른 집단은 다른 칠죄종들이 영향력을 뻗치기가 쉬우니까.
요컨대, 특작대 내에도 간자들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얘기.
‘음… 나도 간자잖아?’
어떻게 보면 나도 탐욕의 간자이니, 참 개판인 집단이구나 싶었다.
“단, 아무리 마족이 고강한 마력을 가졌다고 한들, 개인의 마력으로는 코어를 높은 수준으로 강화할 수 없다.”
조금 흥미 있는 얘기가 나왔다.
“코어라는 그릇은 마력이 가득 차면 새로운 마력을 도리어 밀어내니, 마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선조들께서는 첫 번째 방법으로 대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걸 택했지.”
이건 우연히 발견된 방법이었다고 알고 있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던전, 그곳에 코어를 두었더니 점차 코어가 대자연의 기운을 흡수해 코어의 힘이 비대해졌던 것.
“두 번째는, 생명의 영혼을 흡수하는 법. 이 방법은 꽤 오랜 기간 금지되었으나 알다시피 패권 전쟁 이후로는 금제가 풀리게 되었다.”
과거에 사악한 마족들이나 행하던 방법이 결국 전쟁에 동원될 정도로, 당시엔 살아남기 위해 모두가 절박했었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던전이 결국 전쟁을 위한 무기가 된 것처럼, 코어 역시 그 역사와 함께했다.
‘덕분에 파우스트라는 기괴한 존재가 탄생한 거지만….’
이후엔 침습을 위한 다중 코어의 연결 정도만을 실습했을 뿐, 전투 훈련은 생략되었다.
다른 부대가 3개월 이상, 최장 반년 동안 훈련하는 건 우리가 배우는 것 외에 다른 전투 훈련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반면 오만의 특작대는 어차피 전투가 주가 아니기 때문에 전투 훈련은 최소한으로 할 수밖에.
‘뭐, 덕분에 쓸데없는 훈련은 거치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 * *
‘꼭두각시 술법이라….’
마녀의 땅에서 얻은 자색 마녀의 비전 술법. 그들이 오랜 기간 쌓아온 저주의 총체가 저주받은 검 미스란테였다면, 이 비전은 다른 갈래로 뻗어나간 자색 마녀의 비전이다.
책 내용은 상당히 재밌는 부분이 많았다.
‘암시, 최면, 세뇌가 모두 한 과정에서 이루어진다니….’
물론,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도 통용되는 힘은 아니다. 그랬다면 진작에 자색 마녀가 동토에서 툭 튀어나와 제국의 변방 귀족들을 쥐락펴락했을 테니까.
‘트리거가 되는 건, 찰나의 공포….’
바로 이 부분이 이 비전의 꽃이다.
–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누구든 공포를 깨우친다. 날카로운 사물, 처음 보는 식물, 다리가 많은 생물. 별것 아닌 거지만 한 번이라도 공포를 경험한 자라면 본능이 먼저 공포를 불러온다. 그것은 시위가 되어 곧….
조건이 좀 많이 따른다.
상대가 나보다 경지가 한참 부족할 것. 그것이 아니라면 상대가 지금 정신이 온전한 상태가 아닐 것. 그 대상에게 어떻게든 공포를 불러올 것.
‘그리고 자색 마녀가 발견한 술식을 사용해 암시를 걸 것.’
이후는 뭐, 다른 암시나 최면술과 비슷하다. 다만, 더 깊숙이 파고들면 상대를 꼭두각시처럼 부릴 수 있다는 정도.
* * *
…훈련 7일차.
페넥스가 밤마다 산책을 다녀오는 건 이제 긴 하루의 마침표로 쓰이고 있다.
아몬은 훈련이 끝날 때까지는 자신을 찾지 말아 달라고 했으며 가계낭에서 나온 적도 없다.
이포스와 루시퍼는 늘 똑같다. 적당히 있는 듯 없는 듯, 시간을 보냈다.
이포스는 그마저도 지루해지면 지급받은 작은 가계낭에 들어가 있기를 반복했다.
가계낭 하니까 생각난 것인데, 이 가계낭이란 물건의 가능성이 상당히 제한적이라는 걸 알게 됐다.
마족의 물건이다 보니, 제국 측에서도 가계낭에 대한 대비가 철저한 편이었다. 가령, 가계낭을 잔뜩 챙긴 마족이 제국의 도시 한복판에 나타난다면 큰일이 벌어지는 것 아닐까 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고 한다.
인간들은 가계낭이 가진 특수한 마력흔을 감지하는 장치를 만들었고 이는 제국의 변방에도 빈틈없이 깔려있다고. 그 덕분에 마족이 가계낭을 소지한 채 제국에 잠입하는 방법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한다.
‘뭐… 마족들도 바보는 아니니 감시 장치를 무력화하는 방법도 연구 중이겠지만.’
그리고, 가계낭을 사용할 때 그 사용자가 위험에 노출되는 건 가계낭의 등급과 무관하다고 한다.
뭐 이것도 이전의 가계낭들이 가진 단점들이었으니 앞으로는 개선될지 모를 일이다.
“저자야? 밤마다 요마족 시종들을 잠자리에 끌어들인다는 게?”
“그 몰락한 아르칸드 가문의 마지막 핏줄이라더군요. 참… 어찌 저런 자가….”
“그러니까 말이야. 복수는커녕 색에 빠져 사는군.”
요 며칠 잠잠하다 했더니만, 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세 번째인가?’
훈련은 모든 특작대가 서로 다른 곳에서 받지만, 식사는 모든 부대가 같은 장소에서 한다. 덕분에 식당에서 몇 번이고 내 험담을 듣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생도라는 게 다 그렇듯, 훈련 빼고는 다 재밌을 시기다. 가십만큼 그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건 없겠지.
가짜 신분이라지만, 어쩔 수 없다. 은근히 성질이 긁힌다. 자아 의탁을 하지 않더라도, 확실히 거슬리는 말들이다.
스윽…
시선을 움직이자, 칠흑빛 머리칼이 눈에 들어왔다.
‘또 마주치는군.’
사리야 로제르, 또 그녀다.
배급받은 음식을 가지고 이곳으로 오고 있다.
…웬 남자 무리를 달고.
“…사리야, 언제든지 말해. 그 거지 같은 특작대에서 꺼내줄 테니까. 아버지에게 내가 말만 하면 그건 일도 아니….”
“이미 끝난 얘기 아닌가요? 제가 원해서 이곳에 온 거니, 그 얘기는 그만해 줬으면 좋겠어요.”
사리야는 생도들에게 인기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저 여자를 추종하는 무리가 지금 들어오는 쟤들 말고도 더 있었다.
번번이 퇴짜를 맞는데도 사리야가 이곳에 머무는 한 달 사이에 어떻게든 그녀를 자신의 것으로 하고 싶은가 보다.
…별안간 그녀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설마, 아니지?’
성큼성큼 걸어오는 사리야.
드르륵…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내 앞자리에 앉는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사리야라는 여자는 늘 이렇게 사전에 아무런 징후도 없이 엇나간다.
‘완전히 제멋대로군.’
나에 대한 배려는 없는 건? 아니… 혼자 먹는 게 안쓰러워서 오히려 배려를 해준 건가?
뭐가 되었든, 난 시끄러운 녀석과 밥을 먹는 취미는 없다.
“사리야. 내가… 음? 오… 이게 누구야? 그 소문의 호색한이잖아?”
“흐하하하하! 진짜네? 그 친구잖아? 이봐, 나도 요마족 취향이긴 한데 너처럼 대담하게 구는 녀석은 처음 본다고.”
“사리야, 이제는 이런 녀석과 식사하는 거야? 조심하라고, 아카드 님이 언제 변덕을 부려 스튜에 이 녀석의 내장을 넣을지 모르니까.”
뚝-
그 말에, 스튜를 떠 입으로 가져가던 사리야가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당신… 제게 추근대는 건 참을 수 있다지만 제 주변 사람들까지….”
곤란하다.
어떻게 해야 이 사태를 평화롭게 끝낼 수 있을까.
무슨 말이든 꺼냈다가는 큰 문제가 발생할 게 뻔했다. 대체로 이런 패거리들은 말보다는 주먹이 가까웠으니 말 한 번 잘못했다가 주먹 싸움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마 테이블이 부서지고 의자가 날아다니며 주변 마족들은 꺅꺅 소리를 질러대겠지. 정확히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결말이다.
‘아… 그거면 되겠군.’
며칠간 부단히 학습했으니, 아마도 될 것이다. 파우스트는 애초에 그런 놈이다.
‘중요한 건 찰나의 공포다. 찰나의 공포라….’
영감이 번뜩였다.
위압감을 조절해, 사리야를 제외한 이 식탁에 앉은 모든 무리에게 발산했다.
스오오오오…
흠칫-!
그들의 눈빛이 잠시나마 공포로 물드는 걸 느꼈다. 이후는, 정해진 마법 술식과 시동어가 할 일이다.
“예의라는 걸 알고 있나?”
“…뭐?”
시동어, 예의.
마력의 흐름을 뒤틀어 예의라는 단어에 암시를 부여한다. 겉에서 보기엔 대화를 나누고 있더라도 자세한 내막을 살펴보면 예의라는 시동어와 함께 술법이 시작됐다.
“지성이 있다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지. 너희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
스으으으…
녀석들의 눈이 몽롱해진다.
“…맞아.”
술법이 먹혔다.
“나와 같은 공간에 머무는 것, 샤리아에게 접근하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짓이다. 맞지 않은가?”
“예의에 어긋나면… 안 돼….”
미리 익혀두길 잘했군.
“알아들었으면 이 테이블에서 조용히 물러나 사라져라. 예의를 안다면 말이지.”
스으윽…
의자를 조용히 정돈하고 식사를 들고 사라지는 무리. 하나같이 멍해져서 동공의 초점이 흐릿한 모습이었다.
저벅…
저벅…
“…….”
“저, 저거….”
장내가 방금 믿기지 않는 광경을 목격해서인지 조용해졌다.
“아르칸드 남작… 당신….”
“식사 편안히 하시지. 나는 배가 불러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