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104
제104화
늦은 밤, 페넥스와 사리야가 연무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은 같은 자리에서 식사했어요.”
“오오! 친해졌네!”
“예! 친해졌어요. 저보고 식사 편안히 하라는 말까지 해주셨거든요.”
“음음… 나리는 그런 말을 안 하는데! 분명 되게 가까워진 걸 거야.”
“이렇게 급작스럽게 가까워져도 괜찮을까요? 저 이런 적이 처음이라….”
“응?”
사리야가 계속해서 파우스트 곁을 어슬렁거렸던 이유. 그건 페넥스가 꺼낸 한마디 말 때문이었다.
– 나리랑 가까워지면 또 모르지. 나리가 허락해 줄지도?
그날부터 사리야는 집요하게 파우스트의 곁을 맴돌았다.
무언가 행동을 취한 것도, 말을 건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근처에 가만히 서 있었다.
사실 그녀는 누군가와 가까이 지낸다는 것의 정의도 방법도 잘 모른다. 마음을 나눌 친구도, 정을 나눈 연인도 제대로 사귀어 본 적 없었다.
로제르 가문의 여인으로 다른 유력 가문과의 정략결혼에 쓰일 운명이었으니, 가문의 어른들이 그녀를 지독하게 폐쇄적인 곳에서 성장하게 한 탓이다.
새장 속에서 살아갈 운명이었던 그녀가 갑자기 사정이 급변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으니 당연히 이런 자잘한 문제들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오늘은… 정말로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발레시오 패거리에게 희롱당할 뻔했거든요.”
“발레시오가 누구야? 내가 혼내줄게!”
“그러지 않아도 돼요. 알 님께서 저를 곤경에서 구해주셨거든요.”
“응…? 파… 아, 알이?”
“예.”
페넥스는 그가 알고 있는 파우스트의 행동 방식과 사리야가 인지하는 파우스트의 행동 방식이 무척 다른 것을 느끼고 잠시 혼란스러워했다.
“어떻게? 자세히 얘기해 봐.”
“그건….”
사리야가 식당에서 있었던 일을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주르륵 읊었다. 이 와중에도 ‘수려하신’이나 ‘영웅적인 면모로’ 등과 같은 수식어를 자꾸 갖다 붙이는 그녀.
페넥스는 이야기를 다 듣고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냥 자기가 귀찮아서 물리친 것 같은데?’
식사를 함께한 시간도 무척이나 짧았던 것 같고.
‘하지만….’
그렇게 아픈 사실을 얘기할 수는 없었다. 사리야가 얼마나 용기를 내서 파우스트와 친해지려 했는지 페넥스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역시, 그간 노력한 게 성과가 있었네!”
“그, 그런가요? 다행이에요….”
“그럼 훈련도 허락받았어?”
“그건 아직… 어떻게 운을 떼야 할지 몰라서요….”
사리야는 요 며칠, 페넥스에게 짧은 시간 검술에 대해 배우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만으로도 실력이 쭉쭉 성장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더더욱, 페넥스와 함께 있는 시간을 늘려야겠다고 다짐하는 그녀.
“내일은 더 열심히 해볼게요.”
“오오!”
* * *
훈련 종료일.
드디어 지루한 훈련이 끝이 났다.
보름밖에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자유가 억압된 공간에서 이뤄지는 모든 건 그 수 배의 시간을 소모하는 느낌이다.
“여! 여길세, 알!”
“…….”
“여기 자리 맡아뒀네!”
식당에서 시끄럽게 아는 체를 해오는 로데릭. 다른 이들의 이목이 이곳으로 쏠리니 어쩔 수 없이 그의 앞에 가 앉았다.
‘그날 이후로 험담은 들리지 않는군.’
나름 지혜를 짜내 최대한 소란스럽지 않게 무뢰배 무리를 물리쳤는데도 어째선지 다음 날부터 그 사건이 이상한 소문으로 와전되어 있었다.
“칼을 들고 협박했다며? 사리야를 건들지 말라고?”
“엥? 아니야. 포크로 미간을 찍어버렸다고 들었는데. 피바다가 됐다고 들었는걸.”
“다들 잘못 알고 있어. 알 경은 그냥 말로 해결했거든?”
그나마 정상인 소문도 돌고 있다.
“말로 몇 마디 했더니 그 발레시오 패거리들이 네 발로 식당을 기어나갔잖아.”
여기도 정상이 아니었구나.
깜빡 속았네.
저벅…
저벅…
마침, 때맞춰 등장한 발레시오 패거리가 이쪽과 눈을 마주쳤다.
‘타이밍도 참….’
움찔…
그들도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멀리서 머뭇머뭇하다 한참이나 떨어진 자리에 조용히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이제 저 녀석들과 앞으로 엮일 일은 없을 것이다.
‘대신 더 귀찮은 녀석이 곁에 머물게 됐지.’
“아하하하! 드디어 식사를 함께하는군! 미진한 개인 훈련을 하느라 좀처럼 식사 시간이 맞질 않아서 말이지.”
“…….”
로데릭은 사람 좋게 웃어 보이며 내 안색을 살폈다. 나는 딱히 표정을 드러내지 않으니 내 기분이 어떤지는 모를 것이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이 험난한 솔라리아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내게 있어, 식사를 누구와 하느냐는 크게 중요한 게 아니다.
‘다만… 이런 자리는 좀 그렇군.’
이 자리에는 로데릭뿐만 아니라 오만의 특작대 전원이 모여 있었다.
달그락…
들그락…
스푼과 포크 소리만 가득.
“내일 드디어 임무네.”
“말라시스 밖으로 나가는 건 오랜만이야.”
오랜만?
아니, 처음인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귀족 가문 중 일부는 말라시스 밖을 마치 오염된 세상처럼 여기기도 하니까. 그런 가문에서 성장했다면 성년이 된 나이에도 밖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
일단 지금 옆에서 우물쭈물하는 사리야는 그래 보였다. …왜 또 내 옆자리야, 이 친구는.
“사리야! 그대가 특작대의 대장이니 잘 부탁한다네!”
“아… 예….”
누가 봐도 로데릭이 특작대의 대장으로 적임이었지만, 성적은 사리야가 압도적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임무의 책임자는 보통 로제르 가문이 맡으니까.’
코어를 다루는 힘과 지식.
오직 그것만으로도 조율자의 위치에 있으니, 로제르 가문의 인물들은 보통 무력 단체의 수장을 맡았다.
로데릭, 사리야, 아담, 카세, 니카, 브란딜, 왈디프.
그리고 나 알 아르칸드.
특작대의 구성은 모두 여덟 명.
서로가 어느 정도의 실력인지는 알 수 없다. 전투 훈련은 거의 이론만 배웠고 이들의 사역마는 구경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주의 깊게 봐야 하는 건, 로데릭과 사리야… 그리고 아담인가.’
셋은 칠죄종의 가문이다.
로데릭은 분노의 마르퀴스.
사리야는 오만의 로제르.
아담은 나태의 웨커.
모두 장래가 촉망되는 가문의 후계자들이기도 하지만, 내게 있어선 칠죄종이 스며들게 한 간자일 수도 있으니….
‘카세와 니카는 평민 출신, 브란딜과 왈디프는 약소 귀족.’
만약 아르칸드 가문이 건재했다면 여기서 중위권 정도는 했을 것이다.
“대장, 뭐 전달받은 거 없어? 임무 내용이라든지….”
“예? 아….”
“카세, 대장을 곤란하게 하지 마. 하달받은 게 있더라도 말할 수 없는 거 알잖아.”
“칫… 그냥 물어본 거야.”
“말라시스를 떠나니까 들뜬 건 알겠지만….”
“됐어, 됐어. 어차피 내일 되면 알게 될 건데.”
카세는 얼굴에 주근깨가 있는 청년이었고, 니카는 양 갈래로 머리를 땋은 여성.
브란딜은 키가 상당히 컸고, 왈디프는 젖살이 덜 빠진 소년 같아 보였다.
아직 군인으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자들. 이런 핏덩이들까지 전쟁에 나서야 한다는 게 마족의 현실이었다.
* * *
출소 당일.
긴장된 표정으로 모인 여덟 명.
직인이 찍힌 두루마리를 품에 넣은 사리야가 말라시스의 내문에서 우리를 보고 말했다.
“이번 임무는, 로슈 사막의 침습 지대를 재정비하는 거예요.”
카세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이다. 쉬운 일이잖아.”
“인공 코어를 사용해 침습 지대를 재정비하고 무탈하게 귀환할 수 있도록 해봐요.”
리더라기엔 조금 어설퍼 보였지만, 뭐 그런대로 다들 잘 따르니 다행이다.
“역시 사막이라 낙타를 지급한 거구나.”
“로슈 사막이라면 모어 강을 끼고 있는 거기죠?”
“맞아요. 모어 강은 말라시스의 귀중한 식수원 중 한 곳이고 가장 깨끗한 물이 흐르는 강이에요.”
지도로 위치를 확인해 보니 더더욱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제국이 모어 강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사막의 침습을 정비하는 거군.’
식수원을 오염시켜 적국에 대량의 피해를 만들어 내는 건 상당히 고전적인 방법이다. 그만큼 잘 쓰이기도 하고.
과거에 말라시스는 이런 식의 공격을 받아 식수원을 몇 개 잃었지만 모어 강의 경우엔 사이에 사막을 끼고 있어 방비가 수월했다.
우리는 말하자면, 철책이나 점검하고 오라는 의미.
‘상당히 맥 빠지는 임무긴 하다만… 첫 임무부터 죽는 자가 나오는 것보다는 낫겠군.’
드드드드드드…
쿠우웅-!
말라시스가 새로운 정박지에 도착하는 소리다.
“그럼, 출발해요.”
“오우! 첫 출진인가! 하하하하하!”
“로데릭은 좋겠어. 뭐든 저렇게 긍정적이니까.”
“맹우들과 함께 전장에 나서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나!”
내문을 거쳐 외문 밖으로 빠져나와, 짧은 토굴을 통해 지상으로 빠져나왔다.
“윽… 더워.”
“가계낭에 식수를 잔뜩 챙기길 다행이네. 조난해도 죽지는 않을지도.”
“왈디프… 그게 무슨 말이야.”
“최악을 가정하는 거지.”
“끄응….”
준비한 천을 터번처럼 두르고 코와 입을 가렸다. 그것만으로 뜨거운 공기가 기관지를 통해 들어오는 걸 어느 정도는 식힐 수 있었다.
사역마들은 전부 가계낭에 두었다.
굳이 행군하는 과정에서 체력을 빼둘 필요가 없었다. 만약 위급한 순간이 오면 다른 여섯이 방진을 짜고 남은 둘이 가계낭을 열어 사역마들을 꺼내는 대응 방법이 매뉴얼로 있다.
사막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날씨가 정말이지….”
“땀이 비 오듯 흐르는군. 하하하하!”
“알! 알은 멀쩡해 보이는데?”
“오? 정말 그러하군! 이유를 알 수 있나?”
“…참는 거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등에 멘 설원이 계속해서 내게 한기를 전달해 줬다. 덕분에 열기에 몸이 지배당하지 않는 거고.
‘얼마나 가려나….’
말라시스가 임무를 위해 우리를 이곳에 내려준 게 아니라, 말라시스의 행로에 맞춰 우리의 임무가 주어진 것이다.
그렇기에, 목적지까지는 얼마나 멀지 모른다.
“하루 꼬박… 가면 될 거예요.”
“거참… 듣기 좋은 말이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생각보다는 일찍 목적지에 도착했다.
모어 강 인근에 조성된 마을.
“마족의 용사분들이시군! 잠자리는 넉넉하니 편안히들 쉬었다 가게!”
“배려에 감사드려요.”
촌장이라는 자는 우리를 상당히 반겼다. 덕분에 땀에 전 몸을 푹신한 곳에서 회복할 수 있었다.
다음날이 되자, 우리는 이른 아침부터 움직였다. 해가 중천에 뜨기 전에 나서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그 판단이 옳았다는 걸 정오쯤이 되어 확신할 수 있었다. 좀 더 수월하게 임무가 진행될 지역까지 도착한 것이다.
툭-.
사리야가 나를 포함한 7인에게 작은 보석을 건넸다.
“이것으로 인공 코어를 만들어 내 각자가 맡은 구역의 던전 코어와 교체하면 돼요.”
“사리야, 코어가 8개다. 그걸 전부 자네가 조율할 수 있는 건가?”
“문제없어요. 침습은 일정한 파장을 내보냈을 때 더욱 빨리 효과를 보이니 여러분들은 각자 맡은 구역을 수호하는 데만 신경 써주세요.”
“기간은 며칠로 잡았지?”
“일주일. 일주일 정도면 침습의 보강이 완료될 거예요.”
로데릭이 소리쳤다.
“다들 들었는가? 일주일 뒤에 보자고!”
“던전에서 일주일이나 보내야 한다니… 우울하네.”
“오랜만에 사역마들이랑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지 뭘 그래.”
사리야는 코어를 통해 연락을 취할 수 있으니 자잘한 의사소통은 코어를 통해서 하자고 말했다.
특작대는 곧장 흩어져 자신들이 맡은 인공 던전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넓군.”
던전의 심처에 도달해 곧장 인공 코어를 형성했다.
휘오오오오오…
손바닥 위에서 마력의 소용돌이가 일어나더니 금세 커다란 구체가 만들어졌다.
‘아직 미숙하군, 좀 더 부드럽게 할 수 있을 텐데.’
좀 투박한 느낌이 들지만, 이 역시도 하다 보면 익숙해질 것이다.
‘이게 원래 있던 코어인가?’
코어의 불빛이 위태롭게 깜빡였다. 수명이 다한 형광등처럼.
“고생했다.”
툭…
코어 교체 과정은 순식간이었다.
“사리야, 들리나?”
치지직…
코어를 통해 사리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들려요, 코어의 배치가 완료됐나요?
“그래.”
– …제일 빠르시네요. 확인했어요. 수호에 집중해 주세요.
던전에 오자, 코가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내 집 같군.’
아무래도 던전 체질이란 게 실존하는 걸지도.
휘오오오오오오-!
작은 가계낭을 열자 그 안에서 모든 악마가 빠져나왔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군.”
“던전 냄새가 나길래 와 봤다. 제법 쾌적하구나.”
아몬이 일주일 동안 머물게 될 던전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UI를 만져 루시퍼를 제외한 배치를 끝마쳤다. 이 전력으로 초월자까지 상대했으니, 별문제는 없을 것이다.
일주일을 굴러다니며 지낼 생각을 하니 벌써 몸이 찌뿌둥해 왔다.
‘다음에는 가계낭에 가구들을 들여놔야겠군.’
앞으로 이런 침습 임무가 많아질 텐데, 그때마다 배급받은 퀴퀴한 냄새가 나는 침대에서 자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일주일은 길다.
뭘 해야 할지 정하지 않으면 지루함에 잠식될 게 뻔하다.
‘자료를 챙겨오길 다행이군.’
지프에게 받았던 자료 중 아직 읽지 못한 것들이 좀 있었다. 그것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파락…
파락…
몇 시간 동안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만 계속될 뿐. 아몬은 진작 곯아떨어졌다.
나도 자연스럽게 눈이 감긴다.
스르륵…
……
– …급 상황! 7번 코어가 파괴됐어요! 브란딜 대원의 코어에요! 문제가 생겼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