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106
제106화
“알 경! 무사한가?”
“보다시피, 방금 막 전투가 끝났다.”
로데릭이 내게 별 피해가 없는 것을 보고 가슴을 쓸어 넘겼다.
“다행이네, 정말로 다행이야.”
“진짜로 어떻게 되는 줄 알았어.”
“알이 무사해서 다행이야. 하마터면….”
특작대원들의 반응이 이상하다는 건 처음부터 느꼈다.
‘한 명이 보이지 않는군.’
브란딜이다.
코어의 반응이 가장 먼저 끊어진 곳.
“교신은 어째서 받지 않은 건가요?”
“…….”
사리야가 질문하며 내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난 그녀의 눈을 보는 대신, 손을 보았다.
손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떨렸다.
심적으로 내몰린 상황.
‘브란딜은 죽은 건가….’
사리야에게 설명했다.
“교신에 응답할 만한 여유는 없었다. 보다시피 습격자들과 전투를 벌여야 했으니.”
“으음… 이해하네, 아니 오히려 미안하군. 내가 좀 더 빨리 눈치챘더라면 자네 혼자 이 많은 적을 감당하게 두지 않았을 텐데 말이지.”
로데릭은 정말로 정이 넘치는 마족이다.
‘실력이 없으면 가장 먼저 죽을 녀석이다.’
반대로 말하면 실력이 있으니 멀쩡히 살아있는 거고.
“아담! 내가 뭐라고 했나! 알이 일부러 지원을 오지 않은 건 아닐 거라 말했지!”
“그래요, 그래. 내가 죽일 놈이야. 로데릭.”
“하하하! 뭐 그냥 해본 말이네!”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야 했다.
“사리야, 이곳 말고도 습격이 있었나?”
“브란딜 경의 던전에도 이곳과 마찬가지로 언데드들이 습격해 왔어요. 이곳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막지 못했군.”
“…….”
짤랑…
사리야가 브란딜의 인식표를 보여주었다.
브란딜은 죽었다.
“시체는? 사기에 오염되었을 텐데?”
“아담이 처리해주었네.”
“깔끔하게 보내줬어. 행여 좋지 못한 마무리가 될까 봐.”
“…수고했군.”
대처는 나쁘지 않았다.
가장 좋은 건 역시 브란딜이 죽지 않는 거였겠지만.
“너는… 넌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왈디프 경이 온몸을 떨며 내게 물었다.
“왈디프 경….”
“브란딜은 죽었다고… 그런데 넌 어째서….”
“지나치게 흥분했군. 이봐….”
뭐, 다른 이유가 있을까.
“약하지 않아서다.”
“……뭐?”
“이런 허술한 습격에 휩쓸려 죽을 정도로, 난 약하지 않으니까.”
“지금 그 말은 브란딜은 약해서 죽었다는 거야?”
스윽…
왈디프가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날 압박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어림없지.’
그에게만 집중되도록 위압감을 떨쳤다.
“그것 외에 다른 이유가 있는가?”
휘오오오…
“그것 외에… 습격을 막아내지 못할, 다른 이유가 있었는가?”
움찔…
“…제, 제기랄.”
왈디프의 낯빛이 창백해지고 그의 턱선으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낌새를 느낀 로데릭이 중재에 나섰다.
“왈디프 경, 자네가 과했네. 이러는 건 화풀이밖에 되지 않아.”
“…알아, 안다고.”
왈디프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미안하군, 알. 내가 과했어.”
“…이해하지. 소중한 이를 잃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
파우스트에게 그런 경험은 없다.
하지만, 김서진에겐 있었다.
‘…응?’
어쩐지 다들 날 보는 눈빛이 이상하다. 뭐랄까… 슬픈 드라마의 주인공을 보는 것 같은 눈빛이다.
‘아… 그런가.’
방금 내가 한 말을 아르칸드 가문의 비사와 엮어서 이해한 모양이다.
툭-
로데릭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렇군… 자네가 모를 리가 없었어. 그만큼… 노력했기에 지금의 자네가 있는 거겠지.”
“…….”
“왈디프 경, 알 경은 그 누구보다 당신을 이해하고 있는걸요.”
“미안… 나도 한순간 망각했어.”
저들끼리 뭔가 막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내버려 두지, 뭐.’
알 아르칸드의 역할을 실수 없이 해내고 있다고 봐도 될지도.
“자잘한 이야기는 제쳐두고, 앞으로의 일에 관해 얘기해보지.”
꿀꺽…
모두의 주목이 사리야에게 모였다.
“임무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침습은?”
“그건….”
평민 출신인 카세가 끼어들었다.
“당연히 임무는 중단이지, 여기선 위에 보고하고 돌아가는 게 맞잖아? 우리 역량을 벗어난 일이라고.”
“카세, 함부로 결정할 일이 아니야. 여기선 특작대 대장의 판단이 가장 중요하다고.”
“니카! 너도 봤잖아!? 브란딜이 어떻게 죽었는지! 브란딜은 나보다 훨씬 강했다고. 녀석들 표적이 나였으면 내가 죽었어!”
“끄응… 진정해. 일단 얘기를 나눠보고 결정해야해.”
카세의 판단은 최악을 피하는 방법이다.
최악은 당연히 임무 중 목숨을 잃는 것. 그러나 목숨을 보전하겠다고 첫 임무부터 실패해 물러나는 건 최악은 아니더라도 차악일 뿐이다.
“이번 임무를 실패하게 되면… 사실상 앞으로는 상층부로부터 제대로 된 임무를 받기 힘들 거예요.”
정확한 분석이다.
이미 침습이 완료된 지역의 보수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특작대는 앞으로 후방의 민간 지원 같은 일을 맡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건 싫군.’
이래저래 침습은 전공이 되지만, 민간 지원을 전공으로 인정해주는 군은 없다.
“그럴 리가… 상층부도 이해할 거야. 언데드들이 습격해 왔잖아?”
“저희가 말라시스로부터 이곳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았으니 말라시스가 이 근처에 다시 정박하려면 시간이 필요해요. 만약 저희가 임무를 포기하면 말라시스는 이동 계획을 틀어 이곳에 정박하거나 근방의 다른 특작대가 있다면 그들을 불러올 거예요.”
그렇다.
어느 쪽이든, 말단 중의 말단인 우리에게 있어서 큰 부담이다. 이 일은 우리 선에서 해결되었어야 하는 일이니까.
“…어쩌자는 거야, 그럼. 다 죽자는 거야?”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제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언데드들이 어디서, 어떤 이유에서 우리를 습격해왔건 우리에게 중요한 건 그들이 아니에요.”
“…뭐?”
“특작대에게 주어진 임무는 언데드를 구제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중요한 건 ‘침습의 보수가 가능한가, 불가능한가.’예요.”
사리야가 핵심을 잘 짚었다.
우리는 언데드의 출현을 보고하면 될 뿐이고, 침습의 임무만 해내면 된다.
‘다만… 언데드들이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볼 것 같지는 않다는 게 문제지.’
녀석들은 다시 올 것이다.
아마도 사기가 기운이 충만해지는 밤에.
“이틀… 이틀을 버티면 보수는 끝나요.”
“이틀이나 언데드들을 막아낸다고? 불가능해!”
“가능해요!”
“가능…하다고?”
사리야가 양손을 펼쳐 빛무리를 만들었다.
‘매우 작은 코어를 동시에 여러 개 만들어낸 건가?’
상당히 신기한 재주다.
모르고 봤을 때보다 알고 봤을 때 그녀의 코어를 다루는 힘이 얼마나 깊이 있는지 느껴졌다.
“던전의 형태를 바꾸는 거예요.”
“던전의 형태를?”
“어제까지는 코어를 이런 식으로….”
치지직…
그녀의 손에서 코어를 흉내 낸 빛무리로 어제 특작대가 시행한 작전을 구현했다.
치직…
여덟 개의 코어가 작은 선으로 연결되어 일렬로 늘어서 빛을 뿜어냈다.
“일정한 파장으로 침습 지역에 마력을 흘려보내는 방법이었어요. 하지만 이젠 이 방법을 사용할 수 없어요. 코어가 하나 줄었고, 언데드의 습격에 취약하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파지지직-!
그녀의 손안에서 빛무리가 변형했다.
여섯 개의 빛이 동그랗게 모여 있는 모습.
“이건….”
“이해했네. 코어를 병렬식으로 연결한다는 거겠지?”
“…맞아요.”
“침습이 가능한 구조인가?”
“새로운 침습은 무리지만, 기존 침습 지역을 보수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어요. 아니… 오히려 임무 목표에 도달하는 시간은 더 짧아져요.”
“내 말은….”
로데릭이 걱정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사리야 자네가 가능하냐는 말이야.”
“…….”
“다수의 코어를 높은 출력으로 유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거 알고 있네. 그대가 방금 제시한 방법은 로제르 가문에서도 극히 일부만 실전에서 사용한 전례가 있을 뿐이야.”
“…할 수 있어요. 이전까지 해본 건 다섯 개까지였지만….”
사리야가 입술을 깨물고 끄덕였다.
“반드시 해낼게요. 믿어주세요.”
“…그렇다면 나는 자네를 믿네.”
모두 고민이 많은 듯했다.
섣불리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으니.
‘그럴 만하지.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다. 로데릭이 특이한 거니….’
그녀의 시연을 보며 궁금한 게 생겼다.
“빛은 여섯 개였는데, 이유가 있나?”
남은 특작대는 일곱이니 당연히 코어는 일곱이어야 했다.
“아직 코어 일곱 개를 동시에 다룰 수는 없어요. 또… 만약 일이 잘못되더라도 누군가는 상부에 언데드의 존재를 보고해야 하니까요.”
즉, 말라시스에 정보를 보내고 구원을 요청할 인원 한 명은 이 작전에서 빠진다는 얘기다.
누군가는 작전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살아남을 수 있다.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죽음을 두려워하던 카세에게로 향했다.
“나? 내가…?”
“그래, 카세. 네가 빠져. 이 말만 많은 놈아.”
“뭐? …니카, 네가 가.”
퍼억-!
니카가 카세의 어깨를 후려쳤다.
그녀의 몸집치고는 주먹이 매워 보였다.
“멍청이가… 이럴 땐 적당히 챙겨줄 때 슬그머니 빠지는 거야. 알았어?”
“…니카는 남을 거야?”
“코어는 여섯이야. 나도 여기서 코어를 지킬 거야.”
“…미안해.”
“미안해할 것 없어. 같은 대원인데.”
로데릭이 카세의 등을 두들겼다.
“카세, 우리가 처한 상황을 말라시스에 시급히 전해주게. 한시가 급한 일이니 바로 출발해야 할 거라네!”
“…부탁드려요.”
카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았어. 모두… 무사히 있어 줘.”
그는 그렇게 떠났다.
“아, 시끄러운 놈 가서 이제 좀 살겠네. 다들 그렇지?”
“하하하….”
“…….”
니카가 괜히 너스레를 떨었지만, 분위기는 축 처져 있었다.
여기서 다시 의문.
“던전의 형태는 어떻게 되는 거지? 코어 여섯 개를 모든 인원이 수호하게 되는 건가?”
“맞아요. 다만, 던전 코어가 가진 힘이 여섯 배가 되는 건 아니라 배치할 수 있는 사역마의 숫자도 제한을 받을 거예요.”
“요컨대 여섯이 힘을 합해 수호하지만 실제로는 그 전력의 절반도 내기 어렵다는 건가? 그렇다면 언데드들을 과연 막아낼 수 있을지….”
“디트리히 전투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역사서에도 나와 있지. 디트리히의 4천왕 말이야.”
디트리히 전투.
그리고 4천왕.
디트리히라는 지역의 침습을 두고 마족과 인간이 충돌, 그 전투에서 당시 칠죄종 중 오만이 사용했던 던전의 이름이 4천왕이다.
어째서 4천왕이라는 이름이 붙었는가 하면, 4천왕 던전은 던전의 전반부가 심처까지 네 갈래 길로 나뉜다. 그 네 갈래 길의 수문장을 모두 격파하지 않는 이상 심처로 향하는 문은 열리지 않기 때문에 4천왕 던전이라 불리며 길목을 지키는 수문장들 역시 4천왕이라 칭한다.
디트리히 전투에서 오만은 이 던전을 활용해 마족의 지원까지 버텨냈고, 결국 마족이 디트리히를 차지했다.
“같은 전략을 쓸 거예요.”
“던전의 구조는?”
“병렬 코어형 던전은 침습 지역에 기본적으로 한군데씩 만들어져요. 아마 이곳에선 한 번도 사용되진 않았겠지만, 존재하는 걸 확인했어요.”
“그렇군! 정말로 다행이야. 그럼 이제 가장 중요한 4천왕을….”
아담이 로데릭의 말을 끊으며 나섰다.
“로데릭, 4천왕 던전은 4천왕이 핵심이 아니야. 오히려 4천왕은 공격 측의 시간을 질질 끌기 위함이지.”
“하면?”
“가장 중요한 건, 공격 측이 4천왕을 돌파한 후 맞이할 장군이야. 실제로 디트리히 전투에선 오만의 수관이셨던 플랑베르트 경께서 장군으로 활약하셨지.”
“흐으음….”
“장군은 만약 네 갈래 길이 모두 뚫린다면 그곳에서 쏟아져 들어온 적들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역할이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최선이지만… 만약 4천왕 모두가 패한다면 결국 장군에게 부담이 가겠지. 그래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기도 해.”
“…장군은 가장 강한 자가 해야겠지?”
“그래. 우리 중, 가장 강한 자가 장군을 맡아야 해.”
모두가 눈치를 살피고 있다.
다들 감춰둔 힘이 있으니 누가 이 중 가장 강할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때, 로데릭이 나와 시선을 마주치며 말을 꺼냈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