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107
제107화
“나는… 우선 모두가 서로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네.”
로데릭이 턱을 긁적이며 계속 말했다.
“이 특작대는 어디까지나 전투가 주가 아닌, 후방 경계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봐도 되겠지.”
틀린 말이 아니다.
다들 이런 임무가 될 줄 꿈에도 몰랐겠지.
“하지만 그건 어제까지의 일이네. 우린 이제부터 수개월 이상 호흡을 맞춘 다른 특작대들과 마찬가지로 함께 전투 임무에 나서는 거지.”
수개월의 간극.
나와 이들은 다른 특작대와는 달리 서로가 어떤 식으로 전투를 치르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사리야가 제시한 4관문 병렬 코어 던전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우리가 서로를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각자가 어떻게 전투를 펼치든, 서로 연계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던전이다.
물론 던전 구조가 이렇다는 것이고, 지금 로데릭의 말에는 일부 동의한다. 우리는 서로를 너무 모른다.
“지금부터 우리가 하려는 건 사실상 목숨을 건 도박이네. 일생일대의 도박이니만큼 내 패가 무엇인지 정도는 알 권리가 있지 않겠나?”
구구절절 옳은 말.
나로서는 모든 정체가 드러나는 것은 반기지 않지만, 적당 선에서 그들에게 신뢰를 주는 정도까지는 괜찮다고 생각되었다.
“우선, 하나 묻지. 신성력을 가진 사역마를 거느리거나 신성 병기를 보유한 자가 있는가?”
“…….”
서로 눈치를 보기 바빴다.
‘신성력은 흔하지 않지….’
특히나 마족은 신성력보다 순수한 마력에 더 친화적인 종족이었으니.
다행히, 누군가 질문에 답하기 위해 슬며시 말을 꺼냈다.
“…함정이라면 있어요.”
특작대의 대장인 사리야였다.
“호, 그거 희소식이군. 어떤 원리지?”
“압력식이고 주변 지역에 강한 신성력을 발휘하는 마법진을 형성해요.”
설명만 들어도 5성급은 되어 보였다. 언데드를 상대로 신성력은 완전한 상성 관계이기 때문에 적어도 1성 정도의 등급은 보정된다고 봤을 때, 그 화력은 6성급에 준하지 않을까?
‘칠죄종의 후계자답게 가문의 지원을 받은 거로군.’
절대로 평범하게 볼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이제 막 특작대에 들어온 초출이 가지고 있을 확률은 한없이 0에 가까운 물건.
“하지만… 단발성이고 딱 하나뿐이에요.”
“그렇다면 적들이 장군의 앞까지 왔을 때 사용하는 게 최선이겠군.”
“저기, 그런 거라면 나도 하나 있어.”
촤르륵…
아담이 꺼내든 건 저주 부적이었다. 흰색 나무 조각이 한 묶음으로 연결된 부적.
“저주 부적인데, 뭐 썩 대단한 건 아니야. 그래도 언데드 한정으로는 압사의 저주보단 쓸만할 거야.”
투박하게 평하긴 했지만 이런 대규모 전투에서 압사의 저주를 누를 만한 저주라면 분명 평범한 저주가 아닐 것이다.
‘이래서 정보가 중요한 거로군.’
침입자의 정체가 확실하다면, 저주 부적의 효과는 말도 안 되는 효율을 보여준다.
‘이번 전투에서 그걸 확인하게 되겠군.’
아담 역시 칠죄종의 후계자 중 한 명.
전부 제 자식들이 개죽음당하게 하지 않기 위해 애쓴 모양이다.
“다루는 사역마도 미리 간단하게라도 알아두면 좋겠군. 장군을 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니까.”
드래곤을 사역마로 부리는 자와 고블린을 사역마로 부리는 자 중 어느 쪽이 신뢰받을지는 뻔했다.
‘나야 뭐, 4천왕이든 장군이든 상관없다.’
어느 쪽이더라도 막아낼 자신이 있었다. 이미 초월자와도 겨뤄본 전투 경험이 있으니….
‘이 몸에 경험이 한 번 새겨지면, 잊혀지지 않는다.’
초월자와 한번 겨뤄봤으니 이제는 상대가 초월자라 하더라도 파우스트는 그 움직임을 따라갈 것이다.
“난 거대 곤충 쪽이다. 주무기는 독이야.”
왈디프의 사역마는 이번 전투에서 큰 기대를 하기 어려울 것이다. 절절 끓는 독이 아니라면 망자들에게는 크게 통하지 않으니. 그래도 그 거대한 몸집으로 시간을 버는 것 정도는 가능할지도.
“나야? 난가?”
니카가 본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유령과 조각상을 주로 다뤄. 미안하지만 아마도 내가 구멍인 것 같네.”
로데릭이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미안할 게 어딨나! 특작대는 하나인 것을.”
니카 쪽도 언데드를 상대하기엔 살짝 애매한 사역마. 그나마 조각상 쪽은 강력한 물리력이 장점이었으니 망자들을 어느 정도는 으깨줄 것이다.
다음은 아담의 차례.
“나는… 이것저것 사용하는 편이라… 그래도 주력은 마력 집행관 쪽일까…?”
“세상에… 그 한 기에 수천만 골드짜리?”
“내 건 구형을 물려받은 거라 그렇게까지 비싸진 않아.”
“그래도 수백만 골드는 하겠지. 대단하다, 나 처음 봐.”
“…뭐, 내 마력으로는 집행관을 온전하게 다루긴 무리고 적당히는 운용할 수 있어.”
마력 집행관.
그 주인에게서 마력을 전달받아 움직이는 기계 장치다.
전투 로봇이라고 보면 된다.
마족은 사역마뿐만 아니라 마도 공학에도 정통했는데, 집행관은 말라시스를 돌아다니는 전차와 비슷한 원리의 기계라고 보면 된다.
‘수백만 골드라니… 상상도 안 가는군.’
수백만 골드면 전부 녹여서 내 던전에 금칠해도 충분했을 것이다.
“내 차례군.”
로데릭이 조금 멋쩍어하며 말했다.
“내 주력 사역마는 마검이다. 다른 사역마들도 있긴 하지만… 역시 자랑할 만한 건 이것뿐이야.”
들어본 적 있다.
분노의 마르퀴스 가문은 그 극한에 다다른 육체에 어울리는 마검을 벼려내 사역한다는 얘기를.
“마검이라면… 평생 피를 먹여 성장시킨다는?”
“하하하… 물론 그렇게 알려져 있기는 하지. 일부는 사실이고 말이야. 그 때문에 가문의 어른들 중엔 평생 검 한 자루만을 사역하신 분도 계시지만, 지금 세대는 다양하게 사용하는 편이야.”
스윽…
로데릭의 눈빛이 변했다.
“이번에 꺼내 들 마검은, 신성력을 머금고 있다.”
“…뭐?”
“그게 정말이야? 그러면….”
“기대할 만큼은 아니라네. 아직 인식이 깨어나고 있는 정도의 수준이라… 그러니까, 지금 막 걸음마를 뗀 아기라고 보면 된다.”
“흐으음….”
그래도 상당히 고무적인 내용이었다. 적어도 로데릭 정도는 언데드에게 쉽게 당하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자, 남은 건 사리야와 알이로군. 누가 먼저 말하겠나?”
“전… 참회자를 주력으로 사용해요.”
대답한 것은 사리야.
꽁꽁 얼어붙은 것은 특작대원들의 분위기였다.
“뭐… 뭐라고?”
“참회자라면… 범죄자들 아니야?”
“징역 대신 사역마 계약을 맺은 자들일 텐데….”
사리야는 당당했다.
“맞아요, 그 참회자.”
마족들에게 있어 참회자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았다. 아무리 강자들 중에서 선택된 일부만이 참회자의 길을 걷는다지만 그들이 범죄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으음… 뭐, 사리야는 코어의 조율 때문에 어차피 심처를 지켜야 하니… 만약 그 순간이 오면 그들이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해내기를 바라야겠지.”
참회자는 기본적으로 4성과 5성 그 언저리다.
4성 미만의 참회자는 없다.
강함이나 재능을 인정받지 못한 자들일 테니, 참회형을 받지 못한 것.
‘…아, 나로군.’
모두가 날 쳐다보고 있다.
‘주력은 악마다.’
…라고 말했다간 모두 졸도할지도 모른다. 악마란 칠죄종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계약한 존재들이었으니.
“요마족과 계약했다.”
흠칫-!
사리야가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결국 입을 꾹 다물었다.
‘…이 여자, 뭔갈 알고 있나?’
의문이 들어 물었다.
“…왜 그러지?”
휙- 휙-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 사리야.
“요마족이라… 흐음….”
요마족은 기본적으로 마족의 피가 섞인 종족이라 마족들 사이에서도 그들을 사역마로 다루는 건 약간 꺼려지는 일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악마의 특징을 모두 지우고 나면 인간 혹은 요마족으로 보일 게 뻔한데, 인간보다는 요마족인 편이 나았다.
“로데릭, 난 네가 장군을 맡는 편이 나을 거라고 봐.”
“동의, 신성력을 가진 마검에 로데릭의 신체 조건이라면….”
“아담, 자네의 마력 집행관도….”
“아까도 말했듯이 내 마력 집행관의 성능을 아직은 내 마력이 못 따라가. 또, 언데드를 상대로 그렇게 좋은 상성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흐음….”
이대로라면 로데릭이 장군의 역할을 맡을 것 같았다. 나 역시 불만은 없었고.
그런데 바로 그때,
“아, 알의 사역마가 가장 강할 거예요!”
사리야가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
“…뭐?”
“사리야, 방금 뭐라고 말했어?”
“아… 알의 요마족이… 가장 강해요….”
“그게 무슨….”
황당한 상황이지만, 나로서는 조금 더 나아가 경계가 되는 말이다.
‘…이 여자가 그걸 어떻게 알지?’
스으윽…
고개를 돌려 심처쪽을 바라보자, 페넥스가 벽 뒤에 숨어 빼꼼 고개를 내밀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너였냐?’
하아…
“사리야, 그대가 그걸 어떻게 알지?”
“알 수 있어요… 직접 확인했거든요.”
“뭐라?”
“전력을 다한 절… 가볍게 제압했어요.”
“뭐?”
“뭐라고?”
사리야의 검술을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이들 사이에선 상당히 고평가되고 있는 모양이다.
‘하긴 코어를 잔뜩 떠올린 사리야가 휘두르는 검이라면….’
약할 것 같지는 않다.
“으음… 말로만 들어서는 믿을 수 없군.”
부우웅-!
로데릭이 거검을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알! 나와 겨뤄보세.”
“…뭐?”
페넥스가 아닌 나랑?
“내가 궁금한 건 알, 자네야. 계약자를 보면 그 사역마의 수준도 가늠할 수 있는 법.”
“…….”
“어서, 장군이 정해져야 내일 밤을 버틸 수 있네!”
휘오오오오…
로데릭이 불이 붙은 듯했다.
투기가 절절 끓듯 끓어오르는 게 누가 보아도 마르퀴스 가문의 자제다.
‘어느 정도 수준으로 상대해야 하지?’
지프 때도 그렇고 일부러 무력의 수준을 속이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특히 파우스트의 몸이라 더더욱….’
천재는 범재들을 이해할 수 없는 법.
어쭙잖게 추론해서 흉내 내는 정도다.
‘다섯 합 정도면… 괜찮겠지.’
이후를 생각한다면 로데릭보다는 조금 강한 정도가 최우선일 것이다.
스으으으…
자세를 잡고.
로데릭을 노려보고 천천히 설원을 손에 쥐었다.
철컥-
“졌네.”
“…뭐?”
“못 이기겠군. 투로를 읽기는 했는데, 눈알이 빠질 뻔했어.”
…마르퀴스의 핏줄은 그런 것도 가능해?
“이건 특작대 중 누구도 못 이겨. 자네… 정말로 특작대에 온 건….”
이런… 의심을 산 건가?
“크흡… 알 아르칸드! 이렇게 강해지기 위해 지난 시간, 정말로 괴로운 나날을 보냈겠군!”
“……뭐?”
“정말로… 크흡… 그래, 이곳이라면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을 걸세. 분명히….”
로데릭이 갑자기 눈물을 터트렸다.
“야야, 저 감수성 거인 좀 끌어내!”
“자, 로데릭. 울 거면 저쪽에 가서 혼자 울도록 해요. 그 덩치로 울면 달래주기도 겁나거든요.”
“크흑…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만한 실력을 지니고도 이곳에 올 수밖에 없었다니.”
의심은 해결된 것 같지만, 뭔가 큰 오해가 생긴 것 같다.
로데릭이 끌려나가며 소리쳤다.
“알! 자네가 장군이야! 자네에게 모든 게 달린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