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11
제11화
“으으….”
드디어 깨어났나 보군.
“정신을 차렸나?”
지금 차마르는 심처에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석순, 그곳에 밧줄로 꽁꽁 묶여있었다.
녀석이 상황 파악이 덜 되었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차마르라고?”
“내, 내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지?”
촤르륵…
“모험가 패, 소지품에 있더군.”
“…마족 새끼, 날 속였구나. 그 마족 노예 녀석과 짠 거냐?”
마족 노예?
‘이런, 내가 모르는 게 있군.’
의문을 표정에 드러내선 안 된다.
가능한 일이다.
파우스트의 【냉정】은 이런 때에도, 빈틈을 보이지 않을 수 있으니까.
“아, 그 녀석은 관련 없다.”
차마르는 아그네아의 산성 맹독에 신체의 절반이 녹아내린 후였다. 끔찍한 고통이 따라올 테지만 아직은 아그네아의 마취 실에 전신이 한참 묶여있던 탓에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모두 네가 꾸민 일이었어.”
“눈치채는 게 조금 늦은 감은 있군.”
옥좌에 앉아 누군가를 심문하는 일이, 마치 천직이라도 된 것처럼 몸이 자연스러웠다.
상대는 피와 점액, 녹아내린 피부로 흉측한 몰골을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담이 세진 건지, 원.’
스윽…
“하나 묻지.”
“망할 자식….”
“동료가 있나?”
움찔…
그러나 머뭇거리는 대답.
이런 반응 하나하나가 후에 가선 내 판단에 확신하도록 만든다.
“…당연하지, 내가 이곳에 붙잡혀 있는 걸 눈치챘을 테니 곧장 구하러 오고 있을 거다.”
…이 대답은 진실일까?
이게 진실이면 꽤나 곤란해진다.
더는 무자본 고효율로 침입자들을 막아주는 아그네아라는 중립 우두머리가 없으니까.
‘구체적인 질문으로….’
흥미롭다는 듯 턱을 살짝 들며 물었다.
“그렇다면 몇이지?”
“…뭐?”
“동료의 머릿수 말이다.”
“…….”
여기서 한 번 더 주저한다는 건…
다음 대답은 거짓일 확률이 높겠군.
“왜 대답하지 않지?”
“그건….”
알고 있어.
머리가 굴러가는 게 느껴진다고.
얼마나 부풀려야, 내가 위축될지 고민하는 거겠지.
“서… 서른이 넘는다!”
“…서른?”
“피바람 용병단이라고 들어는 봤겠지? 다들 하나같이 칼밥 좀 먹은 놈들이니 이런 쓰레기 던전쯤은 금방이라도 격파할 거다!”
자신이 넘치시는군.
‘피바람 용병단이라… 이 녀석이 그쪽 패거리일 리는 없다.’
피바람 용병단은 아무 쭉정이나 거두는 허접한 용병단이 아니니까.
그래도 나름의 검증은 필요하겠지.
“과연… 제법 규모가 있는 용병단이군.”
“날 풀어준다면 동료들에게….”
“그런데….”
녀석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상하지 않나?”
“뭐, 뭐가 이상하다는 거냐?”
“그렇게 대단한 동료들이 있다면, 이런 던전쯤은 금방 공략할 수 있었을 텐데 어째서 혼자 움직인 거지?”
꿀꺽…
“던전의 재물을 탐냈던 모양이군. 보물을 독점할 생각이었나?”
“크윽…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지? 중요한 건 동료들이 나를….”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부분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아서 말이다.”
손바닥 위에, 차마르를 올려놓고 마치 장난감처럼 데굴데굴 굴리는 기분이다.
파우스트가 되면서 성격이 나빠진 걸까?
“그런 대단한 용병단이 과연 너 하나의 수색을 위해 노력할까?”
“…….”
“서른이 넘는 인원의 용병단이라면 사람의 가치를 잘 알겠지. 이쪽이 판단한 네 가치는….”
“우리는 동료를 버리지 않는다! 뭘 모르는….”
뭘 모르는 건 네 녀석이고.
피바람 용병단은 애초에 신의와는 상관없이 돈만 받으면 뭐든 하는 쓰레기 집단이다. 동료애를 찾기엔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았지. 심지어 그들의 활동 구역은 대수림도 아니다.
‘어느 정도 결론은 난 것 같지만….’
피바람 용병단에 대한 정보를 굳이 지금 파우스트의 입으로 나불거리는 건 그다지 좋은 그림이 아닐 테니.
“네가 침입한 통로는 확인했다. 보수를 마쳤으니 네가 이곳에 온 흔적은 사라졌다.”
“……뭐?”
거짓말이다.
보수는 무슨.
“아마 외부에선 그곳에 틈이 있었던 것조차 모르겠지. 넌 말 그대로 증발한 것처럼 보일 거다.”
보수는 금방 이루어지겠지만, 이렇게 빨리는 무리였다. 이틀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이 녀석은 그걸 모를 테지만.
“네 희망이 담긴 가정이긴 하다만, 네 흔적이 끊어진 것을 알고 네 동료들이 수색을 시작한다면… 그게 얼마나 갈까?”
무표정한 얼굴로, 관심 없는 듯한 말투로 녀석의 희망을 짓밟았다.
“그래, 너 같은 무가치한 녀석을 위해서 말이지. 아마… 하루, 이틀….”
“그, 그런….”
자, 사실대로 말해라.
꿀꺽…
그래, 뜸 들이지 말고.
“살려줘….”
“…….”
빙고.
“나, 난 애초에 이곳에 원해서 들어온 게 아니야!”
“흐음….”
“빌어먹을 새끼 마족이 나를 여기로 떨어트렸다고!”
아, 이 녀석이 말했던 노예 마족이 이걸 말한 건가.
‘던전의 수색 용도로 소모하는 경우가 많다고 알기는 했지만 그건 게임 속 얘기였다고.’
이렇게 현실감 있게 다가오다니.
“빌어먹을 자식이 구덩이로 날 끌어들이지만 않았어도….”
“그렇다고 할지라도, 네가 던전의 재산에 손을 댄 건 변하지 않는다.”
“재산? 난… 아, 이봐. 봐달라고. 고작해야 고블린 몇 마리 치운 것 정도로….”
고작?
‘이런 빌어먹을 자식이, 내 전 재산의 반을 작살 내놓고 한다는 소리가….’
움찔…
“그런데 잘못 본 게 아니었군. 저 뿔….”
“…….”
녀석이 시선을 루시퍼에게 향하는 게 느껴졌다.
“설마… 저 모습은… 악마냐? 그렇다면, 너… 칠죄종과 무슨 관련이냐?”
이 녀석이 말하는 칠죄종이라는 건, 마왕이다.
일곱 죄악의 마왕.
내가 깃든 이 몸, 파우스트를 탄생시킨 마족 반란군의 수뇌부.
‘그 잘난 녀석들에게서 버림받았으니, 관련이 있다고 해야 할지 없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녀석들에게서 버림받아 단두대에 장식된 배신감은, 그 서늘한 칼날을 등져본 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을 테지.
“그… 그래! 네가 치, 칠죄종과 관련 있는 거라면 솔로몬께서 나를….”
“헛소리가 슬슬 지겹군.”
스륵…
품에서 단검을 꺼냈다.
“이봐, 자… 잠깐! 설마….”
“내게 자비를 바라지 마라.”
“이 개자식이!”
저벅…
저벅…
팟-!
칼날이, 녀석의 가슴 앞에서 멈추었다.
…아뿔싸.
“큭… 어… 어라?”
“…….”
계획대로라면 여기서 녀석의 심장을 찔렀어야 했는데.
“…설마, 너 못 찌르는 거냐?”
“…….”
“큭… 크하하하! 완전 애송이였잖아? 너 사람 죽여본 적… 없는 거지?”
사람.
녀석이 그 단어를 토해내는 순간, 머리가 뜨거워졌다.
파우스트의 냉정이 가로막고 있던 혈기가 장벽을 부수고 뇌로 흘러드는 느낌.
녀석은 내게 해를 입혔고, 이 시대에 마족이 인간을 죽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녀석을 살려주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래, 녀석을 죽여야 해.
…어째서?
‘그야 나는 마족….’
마족이니까?
‘잠깐… 나는 마족이… 난….’
난 김서진인데….
난… 뭐지?
…난 누구야?
“어서 이것 풀어! ”
틈을 보이자 태도를 바꿔 애원하는 녀석.
“…파우스트 님.”
루시퍼가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이 이상 지체하면 루시퍼가 내 존재에 관해 의문을 품겠지.
찔러야 한다.
그러나 찌를 수 없다.
사면초가다.
…하지만.
‘이런 일도 있을지도 모른다고 예상했지.’
파우스트의 냉정은 이러한 결과 또한 대비하고 있었다.
녀석을 심문하기 전 꼭,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그 숨을 끊는 건 당장에라도 가능하지만, 굳이 네 천한 피로 이 손을 더럽힐 필요는 없지.”
“뭐?”
따아악-!
손가락을 튕겼다.
자연스럽게, 미리 준비해둔 수를 꺼낸다.
“…들어오도록 하라.”
끼이이이이익…
털썩…
– 케르르륵…
즉사한 고블린 졸개의 사체를 들고 나타난 고블린 투석병. 녀석은 사체를 문 앞에 내려놓고 내게 다가왔다.
– 케륵! 케르르륵!
분노에 가득 찬 고블린이 애원하는 듯한 표정으로 내게 성토하고 있었다.
“…네 염원을 들어주도록 하지.”
– 케르르륵!
털썩…
내가 다가서자, 녀석이 고개를 처박고 양손으로 하늘을 떠받치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툭.
고블린의 손에 단검을 얹었다.
“형제의 목숨을 앗아간 녀석이다. 자비를 베풀지 마라.”
“이, 이봐! 아니지? 잠….”
흐우우… 흐우우…
분노에 잠식되어 침을 흘리며 일어나는 고블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 녀석의 모습을, 앞에서 바라보는 심정과 뒤에서 바라보는 심정은 매우 다를 것이다.
– 키이아앗!
타다다닷!
작은 체구가 날 듯이 뛰어 석순에 묶인 차마르의 가슴으로 달려들었다.
푸우우우욱-!
검이 깔끔하게 살가죽을 파고들었다.
– 꺼어억… 커억…
그러나, 이내 지저분한 동작으로 이어진다.
푸지이익!
푸지이이익!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가슴을 찌르는 고블린의 신형 너머로, 차마르의 시선이 느껴졌다.
오연하게 녀석의 시선을 감당했다.
죽어가는 차마르의 눈이 필사적으로 나를 시선으로 더듬었다.
“으… 어….”
마치 저주라도 내리듯.
앞으로 다가올 일들에 대해, 파우스트의 미래에 대해.
웃기지도 않는군.
– 케르륵…
고블린이 고개를 돌려 내게 웃어 보였다. 나름의 감사인가.
“완성될 화원에 거름으로 써라.”
* * *
루시퍼를 곁에서 물렸다.
재생의 화원의 상태를 점검하라는 하찮은 핑계로.
지금은 혼자 있고 싶었다.
정리가 필요할 때라고 생각했으니까.
‘어째서… 녀석을 단박에 죽이지 못했을까?’
아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그야 난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다.
제아무리 파우스트의 냉정이 내 정신을 보호하고 최선의 판단을 내리게 할지라도 사람을 일말의 거리낌도 없이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 현실감이라니….’
고블린이 차마르를 몇 번이고 찔렀다. 피가 사방에 흩뿌려졌고 피가 빠져나가는 사이 차마르는 죽었다.
그가 죽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죽고 죽이는, 내가 살기 위해서는 다른 이를 죽여야 한다는 걸.
그리고 그 대상이, 몬스터도 마족도 아닌 김서진과 같은 인간이라는 걸.
‘파우스트라면, 망설이지 않았겠지.’
파르르…
손이 떨린다.
이 모든 혼란은, 내가 완전한 파우스트가 아니기에. 또한 완전한 김서진도 아니기에 벌어진 혼란이다.
알고 있다.
차마르를 죽여야 한다는 걸 그리고 앞으로도 수많은 인간을 죽여야 한다는 것도.
아는데, 망설였다.
마치 습관처럼, 브레이크라도 있는 것처럼 내 안의 뭔가가 소리쳤다.
죽여선 안 돼.
인간을 죽여선 안 돼.
어째서냐고 되묻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그 이유를 안다면, 분명 선택할 수 있었을 텐데.
“…반쪽짜리군.”
루시퍼도 온전히 신뢰할 수 없는데, 앞으로 거느리게 될 악마들이 나의 이런 꼴사나운 모습을 보면 어떻게 반응할지 예상하기 싫어도 예상이 되었다.
‘최악의 경우엔, 찬탈이다.’
멀리까지 갈 것도 없다.
당장, 이후 찾아올 첫 번째 에피소드만 하더라도 선택의 기로에 선다.
죽느냐, 죽이느냐.
‘…선택해야 해.’
그때에는, 미룰 수 없다.
나는 선택해야만 한다.
김서진으로서 죽을 건지 아니면…
파우스트로 살 것인지.
그 순간이 오면 망설이지 않을 생각이다.
* * *
[재생의 화원 건축을 완료합니다.] [재생의 화원에 노동력을 투입할 경우, 지금보다 회복에 소모되는 시간이 감소합니다.] [Tip: 사역마의 레벨이 오를수록, 부상의 정도가 심각할수록 회복이 오래 걸립니다.]저벅…
“화원은 무사히 완성되었습니다, 파우스트 님.”
“그래.”
재생의 화원.
이곳의 대지에 내 목숨을 구했던 고블린 무투가를 눕혔다.
촤르르륵…
화원의 대지에서 넝쿨이 솟아올라 고블린의 몸을 칭칭 동여맸다. 아마, 이 상태로 시간이 흐르면 치유가 될 것이다.
불청객 차마르는 던전을 혼돈으로 몰고 갔지만, 나름 적잖은 이득을 안겨주었다.
첫째로는, 개구멍의 확인이다.
이것은 페넥스가 회복하는 대로 답파를 지시해 하루 이틀이면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그 안에 혹시라도 차마르의 동료가 개구멍을 발견한다 해도… 이쪽도 나름의 방책이 있다.’
아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지만, 불시의 기습을 겪고 난 후에 난 늘 최악을 염려하기 시작했다.
이것도 나름, 긍정적인 영향인가?
이득의 둘째로는, 녀석이 안겨준 마석이다.
돌발 침입 이벤트답게, 무려 1,500 마석!
300 마석이 단챠, 즉 1회 뽑기를 할 수 있으니 1,500 마석이면 무려 5번이나 뽑기를 할 수 있었다.
‘그 녀석 때문에 무리를 했던 걸 생각하면 그리 대단한 보상도 아닌가?’
아무튼.
그리고 마지막.
아그네아라는 영역 주인의 이른 제거다.
레메게톤에서 아그네아는 보통, 던전의 핵심 시설들을 답파하고 그 후에 안정적으로 제거하는 편이었다.
던전 개발에 시간이 걸리니 4일에서 5일 정도는 시간이 더 필요했을 것이다.
‘덕분에 던전 답파가 빨라지기도 했고….’
무려 3000 마석.
10연차!
앞서 얻은 차마르의 마석과 합치면 15연차가 가능한 마석량이다.
가챠가 평균 정도의 성과만 거두어도 튜토리얼 수준의 던전이 순식간에 급성장할 것이다.
4에서 5가 되는 차이는 크지 않지만 1에서 2가 되는 차이는 크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그네아가 준 선물 중 가장 큰 건….
‘역시, 이거지.’
[아그네아는 대단한 보물을 품고 있었습니다.] [심처에 귀속된 물품을 확인해야 합니다.]분명, 아그네아를 사냥했을 때 떠오른 메시지 중 이런 게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물건은 내 손에 살포시 놓여 있었다.
영롱한 광채를 발하는 보석.
6성 악마 선택권인 악마석과도 흡사한 형태.
그러나 보석의 내부에서 드러나는 문양은, 악마의 날개가 아닌 병기의 형태였다.
검과 도끼, 지팡이와 낫.
문양은 계속해서 모습을 바꿔가고 있었다.
“지옥석.”
통칭 지옥석.
6성급 전용 무기 선택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