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110
제110화
“너무 빨리… 진입을 허락했어요.”
“…….”
“시간은….”
“아침까진 멀었습니다, 아가씨. 그것보다 마르퀴스의 아이는 쓸만하군요. 좋은 인재입니다.”
사리야의 곁에는 복면을 쓴 마족 남자가 서 있었다.
참회자다.
옷에 매달린 표식.
참회의 형을 지내고 있는 복역자라는 의미다.
“언데드의 전력이 예상보다 몇 배는 강해요… 어째서 이런 일이….”
“스켈레톤 킹과 리치… 거기다 방금 막 던전에 들어온 녀석까지, 모두 흔히 보기 어려운 언데드군요.”
이들은 언데드 중 서열 최상위에 놓이는 언데드 드래곤과 같은 위치는 아니지만, 분명 상대하기 어려운 마물들이다.
특히나 특작대의 수준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조차 입이 아플 정도.
“아침이 올 때까지 막을 수 있을까요? 아니… 설령 우리가 여기서 죽더라도 침습은 해내야만….”
“진정하십시오, 아가씨. 지휘관이 겁을 먹어서야 다른 이들도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장군이 남아 있습니다.”
“둘… 둘뿐이라고요. 요마족과 마족 둘. 단둘만으로 어떻게….”
사리야는 페넥스의 실력을 믿었지만, 그녀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는 알지 못했다. 아마도 여기서 그 한계가 드러날 것 같다고 여기기도 했고.
“아가씨께는 아직 이르군요.”
“뭐가 말인가요?”
“눈… 상대를 가늠하는 눈, 제가 동방에 있을 적에 배운 재주입니다.”
“그럼 말해줘요, 루츠. 알 아르칸드 남작과 리엔이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까요?”
“그렇게까지 자세한 것까지는….”
“…그럼 뭘 알 수 있는데요?”
코어를 통해 흘러나오는 파우스트와 페넥스의 모습.
“저들이 쉽게 지지는 않을 거라는 걸.”
참회자 루츠는 방금 한 대답에 대해서 잠시 생각했다. 역시 좀 더 과감하게 답했어도 됐을 것 같다.
* * *
철컥-
스으으으으으…
[파우스트의 기본 능력: 생기 흡수가 발동합니다.] [설원의 소유자가 전장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적들은 생기를 빼앗깁니다.] [지속적으로 넓은 범위의 모든 적의 생기를 조금씩 빼앗습니다. 원한다면 아군의 생기도 빼앗을 수 있습니다.]철컥…
화르르륵…
[페넥스의 기본 능력: 타오르는 불꽃이 발동합니다.] [페넥스는 전투가 종료될 때까지 지속해서 생명력을 회복합니다.] [잃은 생명력에 따라 효과가 증가합니다.]‘이럴 줄 알았으면 열기 전이까지 챙겨둘 걸 그랬나?’
페넥스의 스킬셋은 아직 다대일보다 일대일에 특화되어 있었다. 상대에겐 불씨 상태를 해제할 수 있는 자가 없어 보이니 아마 열기 전이를 가져왔다면 손쉽게 승리했을 것이다.
‘뭐, 내가 있으니.’
설원의 근간인 생기 흡수가 다대일의 전투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니, 크게 상관은 없을 것이다.
– 가소롭기는…
휘오오오오오…
[뉘르기트가 불시의 뼈를 사용합니다.] [높은 강도의 뼈가 지속적으로 생성되어 적을 노립니다.]스켈레톤 킹이 사기를 이용해 능력을 사용하자, 그의 주변으로 뼛가루들이 은은하게 맴돌았다.
– 뉘르기트, 서둘러라.
– 내게 명령하듯 하지 마라. 오직 존귀한 귈나프만이 내게 명할 수 있다.
리치와 스켈레톤 킹의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
페넥스가 나를 쳐다보며 표정으로 물었다.
끄덕-
슬슬 시작하자는 표현을 끄덕임으로 대신했다.
파아아앗-!
파아아앗-!
그녀가 먼저 앞서 나가고 내가 뒤에서 보조했다.
휘오오오오오…
불길한 빛을 뿜어내는 구체가 리치의 손에서 뿜어져 나와 페넥스를 노렸다.
쩌저저저적-!
[싸늘한 참수를 사용합니다.] [대상 혹은 영역을 지정하여 냉기 피해를 주는 참격을 가합니다.] [피해량은 전투 중에 흡수한 생기에 비례합니다.]생기 흡수와 연계된 능력.
쩌저저적-!
검은 구체가 얼어붙어 공중에서 멈추었다.
쉬릭…
카가가가각-!
스켈레톤 킹과 페넥스가 격돌.
화르르륵-!
[페넥스가 초열 절단을 사용합니다.] [단일 대상에게 폭발적인 베기 피해를 줍니다.]치이이익-!
스켈레톤 킹의 대검을 녹일 듯이 들끓는 열기.
– 하!
다그락…
녀석의 뼛가루가 뼈 창을 만들어내 페넥스를 전방위로 노렸다.
휘리릭-!
빠가가각-!
공중에서 회전하며 뼈 창을 모두 잘라내는 그녀.
난 주변에서 그녀를 노리고 달려들던 살덩이 골렘들을 모두 얼어붙게 한 후, 이번엔 스켈레톤 킹과의 전투에 합류했다.
끼리릭-!
콰아아아앙-!
묵직한 감각.
스켈레톤 킹의 근력은 보통이 아니다.
‘하지만, 힘을 온전히 전달할 만큼의 시간을 주지 않으면 그만이야.’
후우웅-!
재빨리 내 옆에 따라붙어 공세를 이어받는 페넥스.
까아아앙-!
쩌저저적…
까아아아아앙-!
화르르륵…
번갈아 열기와 한기가 침습하니 스켈레톤 킹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 라흐고크!
[라흐고크가 시체 파도를 사용합니다.] [주변의 시체를 이용해 파도를 만들어냅니다.] [적중한 대상은 둔화하며 높은 죽음 피해를 받습니다.] [적중한 대상은 무작위 저주에 걸리게 됩니다.] [언데드는 이 시체 파도에 면역입니다.]– 끄으어어어어어어어-!
조각난 시체들이 물결을 일으키며 전방위를 휩쓸었다. 끔찍한 비주얼에, 스치기만 해도 생명력이 뭉텅 깎여나갈 것만 같은 힘.
먼저 움직인 건 나다.
파아아앗-!
높게 뛰어오르며 내 설원과 스켈레톤 킹의 대검을 맞부딪혔다.
카아아아아앙-!
그 반탄력으로 높이 떠오르자, 뭔가를 눈치챈 페넥스 역시도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 저 머저리가…!
– 라흐고크! 어쩔 수가 없다! 무시할 수 없는 공격이다!
삐걱대는 둘의 호흡.
이대로 승기를 잡으면 될 듯한 상황에서,
휘리리릭-!
‘기습!’
따아아앙-!
쩌저저적…
“호….”
재빨리 날아오는 무언가를 쳐내고, 바닥에 내려와 방금 날아온 그것이 무언인지 확인했다.
‘…천?’
뭐랄까, 질감이 굉장히 이상한 느낌의 천이었다.
꼭 붕대 같은.
“피할 줄이야….”
– 파르고르! 네놈! 귈나프 님의 명을 따르지 못할까!
“지금, 성실하게 임하고 있지 않나?”
– 노오오오옴….
“그것보다, 상황이 어려운 것 같은데? 이런 벌레들도 해결 못할 수준인 거였나?”
지금 떠들어대고 있는 녀석은 갓 무덤에서 튀어나온 미라처럼 보였다.
얼굴은 부패했지만, 그나마 전신을 휘감고 있는 붕대가 다른 곳의 혐오스러운 모습은 가려주고 있었다.
‘저 치렁치렁한 붕대로 공격하는 모양이군.’
– 뉘르기트가 형편없기 때문이다!
– 전부 나서라,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뉘르기트, 스켈레톤 킹이 머미, 그러니까 미라 쪽을 바라보고 말했다.
“나는 이 반반한 마족을 맡지. 이 녀석의 얼굴 가죽을 받아 가야겠어.”
파아아악-!
전투가 진행됐으니 페넥스 쪽에 신경을 써줄 순 없다. 머미 쪽도 만만치 않은 사기가 느껴졌으니, 각자 눈앞의 상대에게 집중하는 게 최선이라는 판단에서다.
쒜에에엑-!
붕대가 날카롭게 얼굴을 노리고 찔러왔다.
슥-
고개를 한쪽으로 틀어 피했는데, 붕대가 기묘하게 꺾여들어와 살갗을 조금 베어냈다.
핏-!
핏물이 붕대에 튀었다.
휘리릭-!
붕대를 회수한 머미가 피묻은 붕대를 입에 물었다.
“역시, 산 자의 피는 맛있군.”
치이이이…
내가 흡수한 생기가 방금 얼굴에 난 작은 상처를 빠르게 아물도록 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머미가 기분 나쁘게 광소하며 덤벼들었다.
“그 얼굴을 찢고 뜯으며 가지고 놀아주마!”
후욱…
‘…이쯤이면 됐던가?’
에켈라르트와의 전투 이후, 종종 집중했을 때 시간이 느려지는 것 같다는 착각에 빠졌다.
‘정말 시간이 느려진 건 아니고….’
일련의 흐름이 보인다고 해야 할까.
전투가 내가 원하는 흐름대로 흘러가는 느낌을 받았다.
파아아아앗-!
‘양쪽으로 붕대를 사출….’
아마도 노리는 건 몸통 쪽.
약간 각도가 바깥으로 향했다고 해서 어긋난 게 아니다. 저 붕대는 언제든 안으로 꺾여 들어올 수 있었다.
선택지는 두 가지.
회피에 집중한다.
혹은, 그대로 숙이며 파고든다.
당연하게도 후자다. 수적으로 불리하니 어떻게든 상대를 하나라도 줄여야 한다.
숙이며 파고들면,
‘녀석은 아마도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공격을 해올 것이다.
파아아앗-!
‘…역시나!’
모든 것이 생각대로다.
마치 전장의 신이 된 것처럼, 사고와 흐름이 읽혔다.
머미의 무릎에서 붕대가 풀려나와 마치 칼처럼 내 심장을 노렸다. 몸은 이미 숙였고 무게 중심과 관성 때문에 속력을 줄일 수도 없는 상황.
‘얼리고.’
[싸늘한 참수를 사용합니다.] [대상 혹은 영역을 지정하여 냉기 피해를 주는 참격을 가합니다.] [피해량은 전투 중에 흡수한 생기에 비례합니다.]타닷…
끝까지 파고들면 상대는 한쪽으로 틀며 물러날 것이다. 어째서냐고 물으면 쉽게 답할 수 있다.
‘사기가 한곳으로 흐르고 있다.’
리치.
녀석의 마법이 완성됐다.
파아앗-!
‘역시.’
미라가 몸을 뒤트는 순간, 사각에서 서서히 리치가 보였다.
타닥.
탁.
땅을 디딘 모든 이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불필요한 노이즈를 걸러내고 호흡으로 상대의 의도를 짐작한다.
이 순간이다.
이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승패는 결정된다.
나와 같은 눈높이로 전장을 이해하는 자가 존재함에 따라.
“나리!”
“지금!”
리치가 마법을 멈췄다.
나와 리치 사이에 장애물이 놓였기 때문에.
– 뉘르기트! 안돼!
끼릭…
몸을 회전하자, 내 등에 누군가의 등이 맞붙어 회전력을 더했다.
서로가 다음 일격을 위해 상대를 이용했다. 페넥스와 내가 교차하고, 상대 역시 뒤바뀐다.
‘그래… 여기다!’
– 무슨…!
– 조심하라! 초월자들이다!
리치의 말은 틀린 정보이기도 했지만, 애초에 너무 늦었다. 승패는 나와 페넥스의 등이 맞붙는 순간 결정됐다.
[냉기 폭발을 사용합니다.] [대상 혹은 영역을 지정하여 암흑 피해를 주는 참격을 가합니다.] [피해량만큼 생명력을 흡수하며, 전투 중에 입힌 냉기 피해만큼 피해량이 상승합니다.]콰지이익-!
– 끄아아아아아아!
휘오오오…
설원이 스켈레톤 킹의 머리를 반으로 잘라내고 그 안에 갇힌 영혼을 깨부쉈다.
[페넥스가 초열 절단을 사용합니다.] [단일 대상에게 폭발적인 베기 피해를 줍니다.]서거어어억!
화르르륵-!
– 끄으아아아아아아!
반대쪽에선 머리를 잃은 채로 불타는 머미.
– 뉘르기트! 파르고르!
콰지이이익…
페넥스가 머미의 몸에 검을 박아넣자 붕대와 함께 머미의 몸이 타오르며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이제, 남은 건 리치뿐.
잔챙이들은 이미 저주 부적에 의해 타버리거나 남은 생명력마저 내 설원의 먹이가 되었다.
후우웅…
설원을 녀석의 목에 가져다 대자, 녀석의 턱에 살얼음이 끼었다.
쩌저저적…
– 흐흐흐… 죽여라, 나의 죽음은 다시 너희의 재액이 되어 타오를 테니!
임무는 여기서 끝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궁금증은 여기서 멈추지 말라 말한다.
‘전장의 생명력을 잔뜩 머금은 지금이라면….’
휘오오오…
모든 기운을 위압감으로 변환해 리치에게 향했다.
– 아… 아아…
공포를 느끼지 않는 언데드조차, 이 힘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시동어는…
침습.
“침습을 방해한 이유가 있나? 사실대로 대답해야 한다.”
꼭두각시 술법이 여기서 쓰일 줄이야.
– 마족을… 죽여라….
리치가 고개를 떨군 채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