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111
제111화
리치 라흐고크가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리는 말.
– 마족을… 죽여라….
‘흐음….’
– 침습을… 막아라….
정보가 파편화되어 있다.
리치의 정신이 온전하지 않다고 보는 게 맞겠지.
‘그렇다면….’
찾는 물건을 어디에 두었었는지 떠올리는 방법은, 과거부터 역순으로 되짚어가는 것이다.
“알 경! 대체….”
“쉿… 아가씨, 중요한 순간인 듯합니다.”
모든 일이 정리되자 심처에서 나온 사리야와 그녀의 사역마로 보이는 자.
‘저자가 참회자인가?’
참회자의 표식이 썩 잘 보이는 곳에 있으니, 아마도 맞을 것이다.
끄덕…
참회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던 걸 마저 하라는 의미겠지.
“너희는 누구지? 어떻게 언데드가 된 거냐?”
리치가 중얼거렸다.
– 우리는… 사막을 떠도는 용병단이었다…
리치 라흐고크가 과거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이봐, 라흐고크! 불 좀 잘 조절해 봐!”
“파르고르, 그 입 안 다물면 이 불덩이를 네 입안에 처 넣어주마.”
“매번 협박을 해대니… 대장, 우리 마법사 새로 모집하죠?”
“파르고르, 새 마법사는 그럼 네가 구해오는 거냐?”
“…힘들겠죠?”
“라흐고크처럼 특이한 녀석이 아니면 아무도 이런 용병단에 오지 않는다고.”
“…라흐고크! 아깐 내가 미안했다! 불 좀 잘 조절해 볼래?”
“결국에 똑같은 얘기잖아! 이 자식이….”
화르륵…
말은 험악하게 했지만, 불덩이를 조절해 앞을 비춰주는 라흐고크.
이들이 속한 용병단의 규모는 스물이 넘는다. 물자가 부족한 사막에서는 나름 대형이라고 봐도 무방한 규모.
모어 강의 강줄기를 따라 약탈과 호위, 습격과 탈환까지 가리지 않고 의뢰를 맡았다.
“정말 여기가 고대 마족의 무덤이라는 거지?”
“지금 이 유적이 그 증거 아니겠어? 쓸만한 것들은 전부 챙겨 나올 생각이나 해.”
“흐흐흐흐… 이 무덤엔 보물이 가득하겠지. 벌써 심장이 간질거린다고.”
용병들은 지하 깊숙한 곳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경계를 늦추지 마라. 함정이 있을지도 몰라.”
“옙, 대장.”
“딱 보기에도 수백, 수천 년은 지난 것처럼 보이는 곳인데 함정이라고 멀쩡할까요?”
“그래도 모르는 일이야. 기껏 여기까지 고생했는데 모두 한몫 단단히 쥐어야지 않겠어?”
“키야-! 역시 우리 생각해주는 건 대장뿐이라니까.”
“이번 일이 끝나면, 모두 사막을 뜨자. 이 황량한 사막에서 마족들에게 치이고 살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잖아?”
“맞는 말이야!”
용병단은 어느새 무덤 최하층에 도달했다.
“마물의 기척도 없고… 함정도 없어. 뭐지?”
“이미 누가 다 털어간 거 아니야?”
“모래에 파묻혀 있던 입구는 우리가 발견했잖아. 흠… 주의하면서 가보자고.”
무덤의 외관을 장식한 온갖 금박과 조각들.
“히야… 이게 다 얼마야?”
“기둥 좀 보라고. 전부 금칠을 해뒀어.”
“이런 오래된 건 함부로 건드는 거 아니야. 이 무덤, 무너지면 어떡하게?”
“라흐고크가 알아서 해주겠지.”
“뭔 소리야! 난 기껏해야 하급 마법사라고. 그런 건 못해.”
“에잉… 쯧….”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주변에 금은보화는 물론 온갖 종류의 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꿈만 같아… 나 지금 꿈꾸는 거지?”
“떠들 시간 있으면 문제가 될 만한 건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이나 해.”
“…야, 다들 저거 보여?”
“허어….”
조각상들이 좌우로 길게 늘어서 있고 꼭 옥좌처럼 보이는 자리에 백골이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쓰러져 있었다.
“…조금 소름 돋는데.”
“분위기가 좀 이상하긴 하군.”
“함정이 있을 수도 있어, 조심해.”
“…대장?”
용병대의 대장인 귈나프가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천천히 옥좌를 향해 걸어갔다.
“대장을 막아! 뭔가 이상해!”
그 순간을 기점으로, 무덤이 진동했다.
드드드드드드드…
– 그에에에에에에…
– 끼아아아아아아아악!
“사기(死氣)! 사기야! 뭔가 온다!”
쿠우웅…
쿠우우우웅…
그들이 있는 방을 중심으로 망자와 끔찍한 살덩이들이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쩌어억…
쩌어어어억…
“나가, 여기서! 당장!”
“하지만 대장이….”
“귈나프! 이런 빌어먹을….”
귈나프는 어느덧 옥좌에 다가가 백골이 손에 쥔 홀에 팔을 뻗었다.
“안돼! 손대면!”
후우우웅…
검은 홀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기운이, 귈나프의 몸을 감쌌다.
휘오오오오오오오!
촤하아아아아악-!
귈나프의 몸에서 순식간에 피와 살이 흩어졌다.
휘오오오오…
그리고 뼈만 남은 그의 몸을 홀의 검은 기운이 대신 채웠다.
쩌저저저저저적…
검은 갑주가 귈나프를 뒤덮고, 어느덧 옥좌에 앉은 해골은 사라졌다.
그리고, 해골이 쥐고 있던 홀은 이제 귈나프의 손에 있다.
스으윽…
귈나프가 옥좌에 앉으며 말했다. 아니, 귈나프에게 저주를 떠넘긴 이전 옥좌의 주인이 마지막 말을 남겼다.
– 흐흐흐흐… 흐하하하하하하! 이제 저주는 내가 아닌 너희의 것이다! 비로소 해방이구나!
휘오오오오오오…
흑색 광풍이 용병대를 휩쓸었다.
* * *
“…저주라고?”
– 실로 악의에 가득 찬, 바라지 않는 영생을 구가하게 한 끔찍한 저주….
이들의 과거가 용병대였던 것도, 저주에 당해 그런 모습으로 변해버린 것도 크게 관심은 없었다.
“그게 너희가 언데드가 된 이유인가? 그 검은 홀에 담긴 저주가 너희를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했다는 건가?”
– …그렇다. 검은 홀은 마치 의지를 가진 것처럼 귈나프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것을 여러 차례 파괴하려 했으나, 귈나프는 이미 홀의 하수인이 되었다.
“너는 아니란 건가?”
– 우리는 모두 홀의 지배를 받는다. 강대한 힘을 약속받았지만 죽음을 허락받지 못했다. 파르고르와 뉘르기트 역시, 며칠이 지나면 다시 홀의 곁에 되살아나겠지. 아니… 이곳의 군세 역시 그렇다.
모든 병사가 되살아난다.
이번 침습이 성공할지라도, 며칠이 지나면 이 사막이 더는 마족의 땅이 아니게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말라시스에 알려야 해요!”
“…….”
“이대로라면… 언데드들이 결국 모어 강까지 영향을 뻗쳐….”
슥-
“…아가씨, 아직 심문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리야의 흥분을 가라앉히는 참회자. 제법 눈치 좋은 아군이다.
“저주에 당한 이후에 일어난 일을 설명해라.”
– 우리는 스스로를 잠들게 했다. 홀의 힘은 그 저주와 마찬가지로 강력했지만… 우리를 사막에서 벗어나게 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리치가 뜸을 들이다 말했다.
– 산 자가 무덤의 문을 열었다.
“…검은 홀을 노린 건가?”
– 남자는… 거래를 원했다.
“거래라고?”
– 이곳을… 나가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사막에서의 시간을 끝내게 해주겠다고 말한 것이다.
“…가능한 일인가?”
– 모른다. 다만, 홀은 거래를 수락했다. 우리는 죽음을 원했지만… 홀은 자유를 원했기에. 우리는 홀에 종속된 몸. 따를 수밖에 없었다.
“거래 조건은… 침습의 방해였겠군.”
– …그렇다.
이제 모든 일이 이해가 갔다.
‘누군가 이곳의 침습 보수 계획을 알고 저지른 일이다. …마족의 배신자인가? 아니면 제국의 간자?’
즉, 누군가 저주받은 무리를 이용해 우리의 침습 보수를 방해하려던 것.
“귈나프는 강한가?”
– 그대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귈나프도 그대를 압도하지는 못하겠지.
…딱 좋다.
‘문제에 비해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겠군.’
리치의 이야기를 듣던 도중에도 헛웃음이 새어 나올 뻔했다. 이 일이 생각보다 쉽게 풀릴 거란 기대 때문에.
“사리야.”
“…아닐 거예요.”
사리야가 고개를 휘저었다.
“설마, 그 무덤으로 향하겠다는 말은 아닌 거잖아요?”
“길게 말할 필요 없겠군. 그게 가장 쉽게 이 일을 마무리 짓는 방법이다.”
“던전은요? 이곳이 위협받으면….”
“요마족 둘을 이곳에 남겨두고 가지. 아마도 별일 없겠지만 만약을 위해서 말이야. 다른 이들과 사역마들이 재생의 화원에서 깨어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니, 마력이 부족하진 않겠지.”
아몬과 이포스라면, 내가 잠시 던전을 비운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진 않을 것이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결국 내가 리치가 말한 무덤으로 향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대신, 사리야도 양보하는 대가로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
“제 사역마도 함께 가야 해요. 루츠, 부탁해요.”
“명을 따르겠습니다.”
“루츠를 통해 무덤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 받을 거예요. 그 정도는 특작대의 대장으로서 요구할 수 있다고 보는데요?”
“…거기까진 말릴 수 없겠군.”
루츠는 사리야 옆에 꼭 붙어있는 참회자였다.
‘동방 출신인 듯한데, 뜨내기는 아니다.’
사리야의 입장도 이해가 가니,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의 대원인 내가 허락을 구하는 쪽이긴 했지만.
“사리야 님, 이것을.”
“이건… 뭔가요?”
짧은 대나무를 건넨 루츠.
“대나무가 갈라지면, 제게 문제가 생긴 겁니다.”
“…이해했어요.”
“그럼, 부디 무사하시길.”
아침이 오기 전, 서둘러 새로운 타격대를 꾸려 무덤으로 향했다.
* * *
꼭두각시 술법은 상당히 유용했다.
상대에게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주지 않고 원하는 정보만을 얻어내는 능력은 과연, 어마어마한 가치다.
‘리치 정도의 마물에게도 쉽사리 풀리지 않는 암시라니.’
이번 임무에서 귀환하면, 꼭두각시 술법에 대해 조금 더 파고들어 볼 필요성을 느꼈다.
– 서둘러야 한다. 아침이 오고 있으니….
“아침이 오기 전엔 도착할 수 있는 건가?”
– 무덤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타격대의 구성원은 루츠와 나, 페넥스. 그리고, 전혀 의외인 인물이 끼어 있다.
“솔직히 두근두근합니다.”
“…….”
…이번 타격대에 루시퍼가 따라붙은 것이다. 처음에는 그녀의 합류를 만류했지만, 그녀는 나름 타당한 이유를 가져와 나를 설득했다.
– 힘을 되찾는 데에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 한 문장만으로도 그녀를 데려가야 하는 이유는 충분했다.
‘전투는 조금 버거워도, 내가 신경 쓰면 되니까.’
루시퍼를 보호하는 건 루츠에게 맡겨두고, 전투는 나와 페넥스가 치르면 되는 일이다.
‘하마터면 얻은 것도 없이 끝날 뻔했군.’
타격대를 자처해서 나선 건, 뭔가 정의로운 이유가 있어서라거나 마왕군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직 나 자신을 위해서다.
실력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적과 보물, 그리고 수수께끼의 검은 홀과 언데드와 거래한 남자의 정보. 모든 게 이 이름 없는 무덤에 집약되어 있다.
당연하게도, 침습만을 완료하고 되돌아간다면 이를 얻을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
‘특별히 눈에 띄거나 마족에 반하는 행동을 할 것도 아니니, 루츠가 동행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도 아니고.’
“상당히 조용하신 분이군요.”
“루츠라고 했나?”
“예, 그렇습니다.”
“…동방 출신?”
“자란 곳이 동방의 산자락입니다.”
“그렇군.”
참회자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어떤 사연으로 참회자가 되었는가다.
당연하게도 난, 묻지 않을 생각이다.
‘관심 없으니까.’
이미 남의 사역마가 된 이의 사정을 알아 무엇하리.
스으으으으…
– 이곳이다.
리치가 가리킨 곳엔 지하로 향하는 통로가 있었다.
“들어가지.”
화르륵…
페넥스가 횃불을 들고 맨 앞에 서고 나와 루시퍼 그리고 리치가 중앙, 가장 뒤에는 루츠가 서서 이동했다.
“얼마나 깊이 들어가야 하지?”
–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아마… 큭… 크으윽….
리치의 반응이 이상했다.
– 크악… 크으으으으… 내가… 왜….
녀석의 눈이 다시 새빨갛게 물들려는 찰나.
철컥-
콰지지지직-!
쩌저저저저저적!
리치의 목을 베고 그 몸을 얼려버렸다. 그러자 과자처럼 부서지며 흩어지는 녀석.
“검은 홀의 범위에 들어온 모양이군.”
“쾌속하고 적절한 조치였습니다.”
루츠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행동을 칭찬했다.
우웅…
우우우웅…
계단을 내려갈수록 품에서 무언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스윽…
진동하는 물건을 꺼내 정체를 확인했다.
‘이건….’
폭식의 피가 담겨있는 용혈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