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112
제112화
우우웅…
‘…용혈촉이 반응을 보인다고?’
불현듯 떠오르는 사실.
용혈촉은 세 파츠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파츠 중 하나라도 소유하고 있을 경우 다른 파츠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다.
꼭두각시가 되어 죽은, 도망자의 쪽지에 적혀 있던 내용이다.
스윽…
다시 용혈촉을 품 안에 넣었다.
거의 미신에 가까운 물건이기 때문에, 아직은 그리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물건이다.
‘이곳에서 확인해 봐야겠군.’
용혈촉과 얽힌 비사가 사실이라면, 이곳에 다른 파편이 있겠지.
– 그으으어어…
“사기… 밑에서부터 올라오는군.”
후우우웅-!
루츠가 장창을 꺼내 붕붕 돌리더니 전방으로 나섰다.
[루츠가 선풍창을 사용합니다.] [모든 움직임에 바람이 뒤따릅니다. 바람이 일정량 이상 응축되면 바람이 대상에게 피해를 줍니다.]훙훙훙-!
쒜에에엑-!
페넥스가 나선으로 내려가는 계단 위를 불꽃으로 휩쓸자, 루츠가 뒤이어 휘두르던 창을 아래로 내리 그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불꽃이 마치 화포처럼 뒤바뀌어 계단 위를 싸그리 불태웠다.
치이이이이이…
화르르르르르륵-!
문제는 그 열기가 결국, 다시 위로 상승하려 한다는 것.
철컥-
쩌저저저적…
설원을 뽑아 일행을 열기로부터 보호했다.
“저희 호흡이 꽤 잘 맞는군요.”
“고맙군. 덕분에 익을 뻔했다.”
“뭐… 어쨌든 적들을 밀어냈잖습니까?”“그거면 된 거지. 그것보다….”
루츠의 행낭에서 횃대를 하나 꺼내 불을 붙였다.
화르륵…
“빛이 부족한 거라면….”
“아니. 잘 봐둬라.”
휙-!
나선형 계단의 중심.
밑으로 이어지는 통로로 횃불을 던지자…
사사삭…
“으음….”
저 시커먼 구덩이에서 사지를 사용해 계단을 타고 오르는 끔찍한 존재들이 가득한 게 잠시나마 보였다.
“끔찍하군요.”
“시간을 끌면 평생 여기 머물겠군.”
상대는 검은 홀의 권능으로 무한히 소생하는 언데드 군단.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사방이 언데드로 가득 찰 것이다.
“나리! 어떻게 할까?”
“음….”
그때, 루시퍼가 계단을 통해 이어지는 한곳을 가리켰다.
“알 님, 저곳.”
…과연.
루시퍼가 가리킨 방향으로 불쾌한 마력이 쭉 이어져 있었다.
“길이 한 곳으로만 이어진 건 아닌가 보군.”
뒤돌아보는 페넥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곳까지 돌파한다.”
“응!”
쿵…
쿵…
철그럭…
이곳엔 망자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철퇴를 든 목 없는 기사가 계단을 가로막았다.
“이런… 듀라한입니다.”
듀라한.
언데드 계열에서는 나름 상급 마물에 속하는 존재다.
만약 녀석을 가챠에서 봤다면 보랏빛에 환호했을 마물. 그러나 지금은 안타깝게도 적으로서 만났다.
듀라한이 품에 안은 녀석의 머리가 말했다.
“이곳을… 지나가게 둘 수… 없다….”
휘릭-!
따아아앙-!
루츠의 창이 듀라한의 철퇴를 밀쳐내고.
후우우우웅-!
콰지이이익-!
페넥스의 검이 듀라한의 갑주를 반으로 갈랐다. 단 일 합으로 듀라한 급 마물을 베어버린 것.
‘완전히 전차나 다름없군.’
그녀가 앞을 가로막는 언데드를 어렵지 않게 베어내는 모습이 꼭 전차와도 같았다.
쿠직…
쿠지지직…
“무슨 소리지?”
“내가 확인해 볼게!”
화르륵…
페넥스가 불덩이를 어둠으로 떨어트리자, 초록빛의 거대한 액체 거인이 계단에 붙어 기어오르고 있는 게 보였다.
“베놈!”
“알 님, 시간이 없어 보입니다.”
“리엔, 목표까지 멈추지 마라.”
“리엔? 아… 응, 나리!”
5성급 마물 베놈.
슬라임과 착각하기도 어려운 게, 그 수십 배는 달하는 덩치가 슬라임과는 현저히 다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 그으으어어어어어어…
던전에 침입했던 베놈은 이 녀석의 파편이었던 모양.
‘녀석이 위에 올라오면 단순히 곤란한 정도로 끝나지 않겠군.’
콰직…
치이이이…
콰지직…
치이이이…
산성을 띠는 녀석의 손이 벽을 두부처럼 파고들었다.
좁은 발판 위에서 녀석을 상대하기엔 거슬리는 상황.
화르르륵-!
콰아아아아아-!
페넥스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계단 위의 마물들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일부는 계단 밑으로, 일부는 구덩이로 떨어지며 길을 터줘야만 했다.
“…정말 대단하군요. 당신, 요마족이 맞습니까?”
“나? 어… 응! 맞아!”
“이 정도 실력이면, 요마족의 영웅들 중 한 명이겠군요.”
이 녀석… 나를 곤란하게 할 생각인가?
“루츠, 그런 소릴 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군.”
“…그렇군요. 저도 가세하겠습니다!”
쿠우우우웅…
취오오오오옥…
아래에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낌새.
[그린그라트가 산성 위액을 사용합니다.] [산성 위액을 토해내 일정 범위의 적과 아군을 모두 녹입니다.]“이런!”
루츠가 당혹성을 터트리는 사이, 위액은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에게로 날아왔다.
철컥-
촤아아아아악-!
쩌저저저저저저저적-!
설원으로 위액을 반으로 가르자, 위액이 얼어붙어 벽에 충돌했다.
쿠우우우웅…
큰 흔들림.
‘곧 무너질지도 모르겠군.’
“저깁니다!”
“으랴아아아아아아!”
페넥스가 위로 검을 올려 긋자, 스켈레톤들이 그대로 검게 타들어갔다.
파아아앗-!
“나리! 여기야!”
“레버를 찾아라, 리엔!”
“알았어!”
으지지직…
변수가 생겼다.
계단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파아아악-!
“꽉 잡아라.”
“…네.”
루시퍼를 한쪽 어깨로 안아 들고 달렸다. 그녀는 깃털처럼 가벼워 전투와 도주에는 큰 지장이 없었지만, 한 가지 변수가 더 생겼다.
베놈이 어느새 올라와 내가 가야 하는 진로를 머리로 틀어박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르르르륵…
콰아아아아아앙-!
타이밍 좋게 페넥스의 공격이 베놈의 머리에 명중하자 베놈이 벽에 박아 넣은 팔로 간신히 지탱하던 몸이 서서히 밑으로 가라앉았다.
콰지직…
콰지지지지직…
계단이 무너진다.
파아앗-!
파아아앗!
계단의 잔해를 밟고 여러 번 뛰어 문 안으로 들어갔다.
‘이게 정말 되네.’
만화에서나 보던 움직임이 실제로 가능할 줄이야. 새삼 파우스트의 경이로운 몸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쿠구구구구궁…
페넥스가 레버를 찾아, 그것을 당겨 문을 닫았다.
“후우… 큰일 날 뻔했군요. 일단 올라가는 방법은 나중에 궁리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두두두두두…
“…놈들이 이동하는군요.”
“아마 검은 홀을 지키기 위해 이동하는 거겠지.”
그 와중에, 루시퍼가 뭔가를 감지하고 내게 말했다.
“모든 사령체에 유물의 지배력이 미치고 있습니다.”
“그 말은….”
“검은 홀이 이들의 영혼을 세계에 붙잡아 두고 있는 겁니다. 만약, 검은 홀을 손에 넣는다면….”
“이들을 손에 넣는 것이나 다름없겠군.”
루츠가 조금 당황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홀을… 노리는 겁니까?”
“이 많은 언데드를 언제 다 쓸어버릴지 당장엔 떠오르지 않는군. 가장 빠른 방법은 검은 홀을 손에 넣는 거다.”
“하지만….”
“루츠, 그대는 사리야의 감시자로 이곳에 온 것이니 우리의 계획에 관여할 수는 없다.”
“……알겠습니다.”
명목상으로는 그녀가 동료가 걱정되어 함께 딸려 보낸 사역마였지만,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다.
‘녀석은 결국 사리야의 눈과 귀다. 이곳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보고받겠지.’
따라붙은 것도 신경 쓰이는 마당에 녀석의 말까지 들어줄 필요는 없다.
“알 님, 그것과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하라.”
루시퍼가 내게 무덤에서의 계획에 대해 귓속말했다.
– 홀의 처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검은 홀 말이군.
– 검은 홀은….
루시퍼의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로서도 딱히 불만은 없는 계획.
그것보다, 어서 움직이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속전속결이다. 시간이 많지 않아.’
특작대원 중 카세가 모어 강에 있는 민가로 떠난 지 벌써 하루가 지났다. 말라시스는 이번 일에 대해 알게 됐을 거고 어떤 방식으로든 지원군을 파견하겠지.
‘놈들이 오기 전에 일을 끝마쳐야 한다.’
무덤에서 벌어진 일은 아는 사람이 극히 적다. 나와 일행들, 그리고 사리야와 그의 사역마 루츠.
이 정도면 내가 정보를 컨트롤할 수 있는 규모다.
“그럼,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검은 홀을 손에 넣는다.”
“…그것뿐?”
“다른 계획이 필요한가?”
“…….”
“홀을 빼앗는 건 문제 될 게 없다.”
“어째서입니까?”
“우리가 더 강하니까.”
“뭐라고요…?”
루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적진에서 너스레를 떠는 모습에 대담한 자라 생각되었었는데, 아직 속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걸 보니 그 정도는 아닌 듯했다.
뭔가 대단한 걸 기대한 모양.
“무덤 심층부에서 느껴지는 이 힘… 상대는 분명 초월에 도달한 언데드입니다. 거기다 검은 홀의 힘까지… 당신은….”
거기까지도 생각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쪽이 우위에 있다.
긴말할 필요 없이 심층부에서 증명하면 될 뿐이다.
저벅…
저벅…
– 키이이이이…!
둥둥 떠다니는 유령들.
레이스라고도 불리는데 강한 개체는 낫을 들고 다닌다.
이런 형태의 마물들은 보통 검사들의 천적이나 다름없었지만…
화르르륵…
– 키이이이!
쩌저저저저적-!
– 키이…
검에 속성을 부여할 수 있다면, 그다지 어려운 상대도 아니었다.
유령들이 속수무책으로 우리 앞에 짓밟혔다.
검은 홀이 점차 가까워졌다.
마치 우리의 방문을 환영하는 것처럼, 음험한 마력으로 우리를 유혹했다.
“나리, 여기인 것 같아.”
“…그렇군.”
이 레버를 당기면, 최하층의 문이 열린다.
아마도 무덤의 심층부가 이곳이겠지.
끼긱-
쿠구구구궁…
우리는 심층부의 복층 테라스 공간으로 빠져나온 듯했다.
“마, 맙소사….”
루츠가 기겁할 정도로 끔찍한 풍경.
심층부가 언데드로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4성급 이상의 고위 언데드는 물론이고, 5성급에 달하는 언데드도 역시 보였다.
아까 전 보았던 베놈 역시, 빠져나갈 수 있는 공간을 틀어막고 있었으니.
저 멀리, 검은 홀을 든 언데드가 옥좌에 앉아 이곳을 보고 있었다.
묵빛 갑주에 초록빛 안광이 맺힌 투구까지.
“데, 데스나이트!”
루츠가 당황해 말까지 더듬을 정도로 놀란 듯했다.
데스나이트는 5성급 언데드긴 했지만, 그 존재가 상당히 희귀한 편이라 실제로 본 자들이 손에 꼽는다.
– 산 자가 어찌 이곳에 발을 디뎠는가….
소리로 들리는 게 아닌, 뜻으로 들린다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다. 데스나이트 귈나프는 무거운 목소리를 뇌리에 직접 전해왔다.
“누가 먼저 우릴 귀찮게 해서 말이지.”
– …그대들인가, 마족.
휘오오오오오-!
귈나프의 안광이 더욱 진해졌다.
“확실합니다. 검은 홀은… 죽은 사막의 악마 부알이 솔라리아에 남기고 떠난 그의 무기입니다.”
부알.
사막의 악마.
루시퍼가 이곳에 따라온 이유였다.
그 형태와 권능에서, 검은 홀이 전대 부알이 솔라리아에 남긴 유물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에서.
당연하게도 이에 따른 계획 역시 있다.
“저 홀이 악마의 무기였다고? 제기랄…!”
루츠가 입술을 깨물었다.
상대가 악마의 무기를 지닌 고위 언데드니 더더욱 이길 수 없을 거라 판단한 모양.
휘오오오오오…
귈나프가 검은 홀을 휘둘렀다.
– 죽은 자들이여, 저들의 삶을 빼앗아라.
[귈나프가 영속 부활을 사용합니다.] [전투가 지속되는 동안, 언데드의 회복 속도가 대폭 증가합니다.]고오오오오…
겉으로 보기엔 도저히 상대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전력.
하지만, 이쪽에도 패는 있었다.
“리엔.”
스르으응…
페넥스가 검을 뽑았다.
[페넥스의 개성 【늦게 핀 꽃】이 적용 중입니다.]……
화르르륵…
불굴이라는 제약을 떨쳐버린, 그녀의 새로운 힘이 세상에 풀려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