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113
제113화
해가 넘어가고 새해맞이 이벤트가 열릴 무렵, 레메게톤 유저와 개발사 사이에서 때아닌 밸런스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원래도 대악마를 비롯해 에피소드 보스까지 밸런스가 맞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는데 갑자기 무슨 밸런스 논쟁을? 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예상치 못한 밸런스 파괴의 주범이 갑자기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모든 유저는 겨울 축제 시즌에 픽업이었던 이포스가 앞으로 밸런스 파괴를 일으킬 거라고 예상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복잡한 스킬셋도, 다양한 스킬셋도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더 큰 문제가 이들과는 다른 단순한 스킬셋에서 터져 나왔다.
굳이 이 얘기를 꺼낸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 주인공은 페넥스다.
【불굴】
페넥스가 어떤 사역마든 간에 무조건 저평가할 수밖에 없는 개성.
그렇다고 스쿼드에 넣을 만큼 스킬셋이 좋은 것도, 화려한 것도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유저 대부분에게 외면받는 악마일 수밖에.
이때 유저들의 관심은 대악마에, 그것도 아니라면 새로운 기믹이 잔뜩 추가된 이포스에게 가 있었다.
그런데 이맘때쯤 【불굴】의 조건을 만족해 뒀던… 성능보단 외모를 중시해 페넥스를 채용하거나 압도적인 과금으로 모든 캐릭터 풀을 육성한 페넥스 유저, 일명 진성 페넥스 맘들이 마왕군 임무에 그녀를 동원하면서 예의 밸런스 문제를 발견한다.
【불굴】의 조건을 완수해야 비로소 얻게 되는 【늦게 핀 꽃】의 지속 효과와 【불굴】의 조건을 달성해야 개방되는 새로운 스킬 중 특정 스킬의 조합이 지나치게 강력하다는 것.
페넥스는 그 후 약 2주간 유저들 사이에서 신처럼 추앙받다 개발사의 스킬셋 리워크 순서의 가장 앞으로 오게 된다.
당연하게도 밸런스 문제를 야기했던 스킬은 너프의 칼질을 피할 수 없었고, 페넥스의 스킬셋 자체가 대단히 복잡하고 까다롭게 변모하게 된다. 그렇게 비로소, 마왕의 옥좌를 지키는 보스다운 보스가 된달까….
유저들 사이에서 게임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자리매김했던 불닭의 2주 천하.
내가 사막의 무덤에 와 있는 지금이 바로 그 2주에 속해있다.
휘오오오오오오…
[페넥스의 개성 【늦게 핀 꽃】이 적용 중입니다.] [적에게 화염 피해를 줄 때마다 공격력이 상승합니다.] [지속 피해에는 적용되지 않으며 상승한 공격력은 전투가 지속되는 동안 유지됩니다.]얼핏 보기엔 문제없는 개성.
오히려 뒷맛이 쓸 정도다.
‘【불굴】이라는 개똥 같은 개성을 겨우 버텼는데 감히 이런 걸 던져줘? 안 되겠다, 너흰 망하는 게 맞다.’ 이런 감정이 생기는 게 이상한 게 아니다.
“오, 옵니다!”
– 키르르륵…
– 키이이이이익…
비행이 가능한 마물들이 우리가 있는 2층 테라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마 우리가 가장 먼저 맞이하게 되는 건 이 녀석들일 터.
– 키이이이이익!
“와요!”
이 순간, 페넥스의 새로운 능력이 발동한다.
휘오오…
그녀의 손아귀에서 한 줄기 불꽃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화르르르르르륵-!
불꽃은 순식간에 크기를 키워 커다란 구체가 되었고 천장까지 솟구쳤다.
새빨간 구체.
[페넥스가 낮게 뜨는 태양을 사용합니다.] [【불굴】의 조건을 만족해야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타오르는 구체를 공중에 띄워 올려 넓은 영역의 적을 불태웁니다.] [구체는 영향권에 있는 적에게 5초마다 공격력의 3%의 화염 피해를 주며 태양력을 끌어모읍니다.] [태양력이 가득 차면 다음 공격이 공격력의 330%의 피해를 줍니다.]당연하게도 기본 패시브인 생명력 회복 효과의 타오르는 불꽃과 지속 피해 및 생명력 강화의 열기 전이까지 챙겨왔다.
[페넥스의 기본 능력: 타오르는 불꽃이 발동합니다.]……
[페넥스의 기본 능력: 열기 전이가 발동합니다.]……
지속 효과를 따로 챙겨 왔으니 페넥스가 직접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 기껏해야 한두 개.
화르르르르륵-!
– 키이이…
– 키이이이이이…
제작사는 스킬 설계 중, 한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낮게 뜨는 태양은, 지속 피해가 아니다. 계속해서 단발성 피해를 주변 영역 모두에게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늦게 핀 꽃】의 효과인 화염 피해를 줄 시 공격력이 상승하는 효과를 전투 내내 발동하는 것.
‘그것도 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의 적에게 말이지.’
대규모 전장에서, 말도 안 되는 초인이 탄생하는 것이다.
푸화아아아악-!
페넥스가 검을 휘두르자 날아들던 비행 언데드가 모두 후두둑 타서 떨어졌다.
“리엔, 계획을 잊지 마라.”
“응! 나리!”
파아아앗-!
1층으로 떨어진 그녀는 지금, 양 무리에 끼어든 늑대와 다름없었다.
그것도, 아주 굶주린 늑대.
철그럭…
듀라한 세 기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후우우웅-!
촤라라라라락-!
철퇴가 그녀의 어깨를 때렸다.
평소 같았으면 흘렸을 공격, 그러나 맞았다.
“리엔! 무슨….”
루츠가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 듯이 나서더니 페넥스가 단 일 합에 어깨가 부서질 줄은 몰랐을 것이다.
페넥스가 부서진 쪽의 반대쪽 팔을 휘둘러 세 듀라한을 모조리 휩쓸었다.
콰지지지직-!
듀라한의 갑옷은 상당히 단단하다. 유저가 사역마로 다룰 때도 속성 분류가 죽음, 강철이었으니까. 강철 속성이 들어간 사역마는 어지간하면 높은 방어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 듀라한이 갑옷 채로 으깨졌다. 무려 세 구의 듀라한이 전부 허리가 뭉개진 것이다.
화르르륵…
그것만이라면 일격을 주고받았다 볼 수 있겠지만, 이후에 페넥스의 지속 효과가 그녀를 치유했다.
부서졌던 어깨가 맞춰졌다.
“마,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이게….”
“루츠, 정신 놓지 마라. 온다.”
후우우웅-!
암흑의 파동이 그에게 곧장 날아왔다. 그러나 루츠 역시 참회자로서 제 몸 하나 간수하는 건 일도 아닌 강자.
훙훙훙-!
장창을 회전시켜 파동을 튕겨냈다.
“자기 몸은 자기가 지키는 걸로 하자고.”
“…좋습니다.”
루츠도 믿기지 않는 상황에 평정심을 잠시 잃었지만, 이곳이 적진이라는 걸 금방 떠올렸다.
“제가 뭘 하면 됩니까?”
“임무가 끝날 때까지 생존할 것. 나머진 알아서.”
“그거참… 널널한 조건이군요.”
“쉽지는 않을 거다.”
파아아악-!
루시퍼를 끌어안고 저 멀리 뛰었다.
“같이 갑시다!”
루츠도 날 따라 뛰었고.
굳이 유리한 위치를 포기한 이유는, 이런 페넥스에게도 한 가지 약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격을 받으면 회복할 틈도 없이 죽게 된다.’
가령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베놈 같은 녀석이 그 산성 육체로 페넥스를 녹여버리는 사태가 발생하면, 아무리 페넥스라도 죽는다.
그러니, 그녀에게 쏠린 다른 강적들의 위협을 분산시켜야 한다.
혹시나 페넥스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데스나이트 귈나프에게 죽임을 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은 없다.
– 그대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귈나프도 그대를 압도하지는 못하겠지.
리치 라흐고크가 남긴 말이다.
녀석은 나와 페넥스를 초월자라 평가했었으니, 귈나프 역시 초월자 초입 혹은 그보다는 약간 높은 경지일 것이다.
그 정도로는 절대로 지금의 페넥스를 단독으로 무너트릴 수 없다. 이 징그러운 언데드가 가득한 전장에서는 말이다.
“저 덩치는 내가 맡지.”
“그럼 전 시올라 양을 지키겠습니다!”
눈치가 빠른 녀석이다.
제 할 일이 무엇인지 곧장 잘 찾아내니.
철컥-
휘오오오오…
[기본 능력: 생기 흡수가 발동합니다.] [설원의 소유자가 전장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적들은 생기를 빼앗깁니다.] [지속적으로 넓은 범위의 모든 적의 생기를 조금씩 빼앗습니다. 원한다면 아군의 생기도 빼앗을 수 있습니다.]후우우우웅…
설원을 뽑자, 불타오르던 언데드들에게 자색 광채가 어른거렸다.
– 그으으아아아아…
– 그으어어억…
체급이 낮은 망자들부터 줄줄이 쓰러지고 있었다.
딱히 검을 맞댄 것도 아닌데, 페넥스의 낮게 뜨는 태양과 내 생기 흡수가 동시에 발동하니 모든 언데드가 계속해서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는 거다.
‘거기다, 낮게 뜨는 태양은 공격력 기반 계수라 【늦게 핀 꽃】의 공격력 상승효과로 계속 피해가 커지지.’
취오오오옥…
베놈이 양팔에 산성을 집중했다.
파아아앗-!
서둘러 베놈의 뒤로 이동했다.
이 녀석은 몸집이 크니, 더더욱 전장과 멀리 떨어트려 놔야 했다.
루츠와 루시퍼가 이 녀석의 능력에 휩쓸릴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여야만 하니까.
[그린그라트가 썩은 늪 강타를 사용합니다.] [공격력의 150%의 산성 피해를 주는 공격을 가합니다.] [공격 지점에 충돌 후, 파동을 일으켜 주변에 남아있는 적을 둔화합니다.]후우우웅…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공격.
콰아아아아앙-!
으지지지직…
파아아앗-!
공중으로 떠올라 베놈의 한쪽 손목을 노렸다.
쒜에에엑-!
칼날이 베놈의 손목을 절단했다.
촤아아아아악-!
산성 잔해가 사방으로 흩어지고,
쩌저저저저적…
잘린 단면이 얼어붙었다.
‘원소 저항이 낮다. 그렇다면….’
녀석을 베는 것보다, 얼리는 쪽이 빠를지도.
끼릭-
촤자자자자자자자작-!
공중에서 수 차례 회전하며 녀석의 팔에 참격을 먹였다.
쩌저저저저저적…
칼날이 파고든 자리가 얼어붙었다.
움찔…
녀석의 움직임에 제동이 걸린 상황.
– 그어어어어어…
파바박…
[부글거리는 시체가 껴안기를 사용합니다.] [대상을 껴안습니다.] [곧 폭발합니다.]툭 튀어나온 배가 꿀렁거리는 망자가 우르르 몰려왔다.
‘어림없지.’
움직임이 멈춘 베놈의 팔 위에서 내려가지 않자, 부글거리는 망자들이 멍하니 내가 있는 곳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순간 번뜩이는 생각.
파앗…
베놈의 등을 타고 내려가며 녀석의 양쪽 오금에 참격을 가했다.
[싸늘한 참수를 사용합니다.] [대상 혹은 영역을 지정하여 냉기 피해를 주는 참격을 가합니다.] [피해량은 전투 중에 흡수한 생기에 비례합니다.]촤하아아아아악-!
쩌저저저저저저저저적!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한파의 참격이 베놈의 오금을 절단했다.
‘말도 안 되는 위력이군.’
스스로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공격.
이 엄청난 수의 언데드가 모두 내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 그어어어어…
베놈의 몸이 뒤로 넘어가며 부글거리는 망자들을 깔아뭉갰다.
쿠우우우우우우웅-!
꾸지지지지직…
밑에 깔린 망자들이 내게 퍼부으려던 폭발을 애꿎은 베놈에게 가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치이이이이이…
베놈의 상체를 둘러싸고 있던 산성 용액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 그으어어어…
– 으으으어…
산성 용액을 뒤집어쓴 다른 언데드들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쩌저저적-!
설원을 휘둘러 용액을 쳐내며 루츠 쪽을 바라보았다.
푸화아아악-!
창으로 망자들을 꼬치처럼 꿰어 용액을 방어하는 루츠.
덕분에 루시퍼는 무사했다.
루츠가 막아내지 못했다면 결국 내가 나섰겠지만.
고오오오오오…
[귈나프가 시체 세척을 사용합니다.] [지배하에 있는 모든 언데드의 상태 이상을 제거합니다.]화르르륵…
검붉은 기운이 모든 언데드를 휘감았지만,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설원의 생기 흡수와 페넥스의 낮게 뜨는 태양은 디버프가 아니니까.’
한쪽은 칼 그 자체가 본체고 한쪽은 시전자인 페넥스를 쓰러트리지 않는 이상 계속되는 힘이다.
‘슬슬….’
저쪽 전투도 누가 우세한지 결정될 시간이었다.
…콰아아아앙-!
푸스스스스…
벽에 처박혔다가 곧바로 몸을 일으키는 귈나프.
그는 초월자임에도, 페넥스를 상대할 수 없었다. 이 전장에서 페넥스가 능력을 사용하게 한 순간, 그의 패배는 확정적이었다.
– 산 자는 내게 대항할 수 없다!
이대로는 불리하다는 걸 깨달은 건지, 귈나프가 검은 홀의 힘을 사용했다.
[귈나프가 복종하라, 죽은 자여!를 사용합니다.] [지배하에 있는 모든 언데드를 혼절 상태로 만들며 이들의 체력과 공격력을 10%만큼 빼앗아 옵니다.]휘오오오오…
촤라라라라락-!
언데드들이 검은 사슬에 휘감겨 그 자리에 멈췄다.
고오오오오오오…
귈나프에게로 모여드는 힘.
‘체력과… 공격력?’
아마, 【늦게 핀 꽃】의 효과로 공격력이 무식하게 강해진 페넥스의 검격을 받아내는 게 점차 힘들어졌기에 선택한 방법인 듯했다.
하지만….
“귈나프가 점차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스윽…
페넥스의 곁에 서며 루츠에게 말했다.
“거기서 가만히 지켜보도록.”
잘 쓰러지지 않는 초월자.
반면, 이쪽은 계속해서 늘어나는 공격력.
그야말로 아주 훌륭한…
‘샌드백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