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12
제12화
레메게톤에는 특이하…다고 말하기에는 이미 많은 게임이 채용하고 있는 시스템이 있다.
바로 전용 무기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사역마 뽑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역마는 그 유형에 따라 다양한 무기를 착용할 수 있고 무기의 등급과 특성에 따라 능력치가 강화된다.
사실 능력치가 강화된다고만 표현하기에는 한참이나 부족한 게, 무기 시스템 자체가 레메게톤의 핵심 시스템 중 한 가지였다.
핵심 시스템답게 무기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플레이어에겐 큰 이점이 있었다.
우선, 앞서 언급한 대로 능력치 향상은 물론이고 착용한 무기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 달라진다.
그건 비단, 낮은 등급의 사역마뿐만이 아니다.
이 무기 시스템의 가장 화려한 꽃은 바로 전용 무기 시스템!
6성급 악마가 전용 무기를 사용했을 때 특별한 효과를 발휘하는 시스템이다.
전용 무기를 사용하는 6성 악마는 일반적인 무기를 사용했을 때보다 더 강하고, 더 다양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전용 무기를 착용한 악마와 그렇지 않은 악마는 아예 다른 존재라고 봐도 될 정도다.
뭐, 이렇게 말하면 마냥 좋기만 한 시스템처럼 들리겠지만 당연히 이 시스템의 문제점 역시 존재했다.
문제점 중 하나는 전용 무기 역시 가챠로 얻어야만 한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이 전용 무기 시스템이 얼마나 음흉하냐면, 한때 6성 악마를 뽑기 위해 들어가는 과금보다 해당 악마의 전용 무기를 뽑기 위해 들어가는 과금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불만이 쏟아졌었다.
그만큼 원하는 악마에게 전용 무기를 쥐게 한다는 것 자체가 지독한 고난의 길.
그러니 악마의 전용 무기를 확정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이 지옥석의 값어치는 가히 악마석에 비견될 만했다.
심지어 경우에 따라선, 전용 무기가 급한 쪽은 악마석보다 지옥석의 가치가 더 올라가기도 할 정도다.
원하는 걸 ‘확정’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조건이 플레이어들에게 어떤 느낌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아무튼 이 무기 시스템은 그야말로 유저들의 과금을 유도하기 위해 편성된 악의적인 뽑기 모델이지만…
재밌는 건 무기 시스템을 채택한 여타의 다른 게임들과는 달리 의외로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레메게톤에만 있는 한 가지 중요한…
“파우스트 님.”
루시퍼가 내 상념이 이어지는 것을 멈췄다.
아, 슬슬 시간인가?
“…페넥스는?”
“휴식 중입니다. 호출을….”
“아니, 되었다.”
페넥스는 중대한 전투를 마치고 휴식 중이다. 굳이 불러낼 이유도 딱히 없고.
“그럼, 예정대로….”
“…그래.”
스윽…
“지옥문으로 간다.”
지금은, 던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때다.
* * *
오직 측근인 루시퍼만을 대동하고 다시 찾은 이곳.
던전의 지하, 지옥문이 있는 곳이다.
지옥문의 자아를 도맡고 있는 최초의 마왕 아제룹의 해골이 말을 걸어왔다.
달그락…
“왔느냐? 위가 시끄럽길래 조만간 올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느니라.”
스윽…
“루시퍼.”
“예.”
철컹…
철컹…
루시퍼가 내려놓은 물건은 마석이 가득 담긴 궤짝 하나와 절반만큼만 담긴 궤짝이었다.
차마르의 소지품에서 얻은 1,500 마석 그리고 아그네아를 사냥하고 얻은 보상인 3000 마석을 합친 4,500 마석이다.
15연차.
많다면 많고 적다면 한없이 적은 횟수.
무슨 15연차에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냐 싶겠지만, 무과금에게 15연차는 의미가 부여될 수밖에 없는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개발사의 공지가 날아오는 우편 기능도 없으니 사료 수령은 제로.
당연히 각종 픽업 이벤트나 출석 이벤트를 누릴 수 있을지도 미지수.
즉, 지금 이 4,500 마석이 어쩌면 당분간 얻을 수 있는 최후의 마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쩍 들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아직 확인되지 않은 부분도 있고 말이지.’
뭐 그 부분은, 일단 15연차가 전부 끝난 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제물은 충분하군…. 이 정도의 마석이라, 어쩌면 지옥에 내 눈이 닿을지도 모르겠군. 찾는 녀석들이 있나?”
그래, 안 그래도 그게 중요했다.
레메게톤이 처음 오픈한 후, 한동안 초보자들을 배려하기 위한 픽업 이벤트를 진행했었다.
초보자들이 통상 뽑기로만 그럴듯한 던전을 꾸리기엔 무리가 있다는 걸 이미 제작사들이 알고 있었기에 진행된 이벤트.
숲, 불, 번개, 물.
4가지 속성의 필드에 해당하는 사역마와 오브젝트를 저격할 수 있는 픽업이었다.
아무튼, 초보자가 꽤 완성도가 있는 하나의 필드를 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초보자 뽑기의 이점은 대단했다.
숲과 불.
그리고 번개와 물.
이 중에서 내가 선택할 속성은….
“숲. 숲에 머무는 녀석들을 찾아줬으면 한다.”
“숲… 숲이라! 소심하고 음침한 녀석들 말이군!”
심장이 어쩐지 조금 빨라진 것만 같은 느낌.
끼기기기긱…
지옥문이 초록색 빛의 테두리를 휘감았다. 초보자 픽업 이벤트가 적용된 거다.
철컹…
10회분의 마석이 담긴 상자가 지옥문에 의해 거두어졌다.
아제룹의 코로 마석의 광채가 빨려 들어가는 모습에 심장이 옥죄었다.
“크하하하! 들여다봐 주마. 세상 저편의 진귀한 보물과 끔찍한 녀석들을! 자아!”
휘오오오오……
드드드드드드드드!
이쪽 세계에서 10연차는 이쪽도 처음이다.
‘굉장한 떨림이… 응?’
드드드드드!
어째, 이상하다.
저 녀석 왜… 눈이…
“크아아아아앗!”
아제룹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
놀랍게도… 그리고 믿기지 않게도 그것은 파란색이었다.
‘잠… 파란색이라면….’
[★★ 독화살 기관의 수색에 성공합니다.] [★ 흰 포자 독버섯 군락지의 수색에 성공합니다.] [★★★ 홉고블린 전사를 소환합니다.] [★★ 고블린 독침병을 소환합니다.] [★★★ 고블린 주술사를 소환합니다.] [★★★ 오크 도끼 전사를 소환합니다.] [★★★ 오크 방패 전사를 소환합니다.] [★★ 피를 머금은 나무꾼의 큰 도끼의 수색에 성공합니다.] [★★★ 사슴뿔 주술 지팡이의 수색에 성공합니다.] [★★ 재조명의 저주 부적의 수색에 성공합니다.]쿠우우우우우웅-!
빛과 함께 차례차례 기물을 토해내던 지옥문이 한 차례 진동 후에 잠잠해졌다.
“…….”
“…….”
장난이지?
…장난하지 마.
이 상황, 어쩐지 경험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페넥스를 뽑았을 때였던가.
하하… 왜 이렇게 오래된 것 같…
“…파우스트 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지 않아.
전혀 괜찮지 않다고!
스윽…
루시퍼에게 시선을 보냈다.
지금 내 표정이 혹시 썩어 있었던 건가? 아니길 바란다. 그럼 여태까지 내가 해 온 연극이 다 소용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 어떤 무표정한 사람도 가챠 폭사에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는 게 정상이다.
“사역마들을.”
“알겠습니다.”
루시퍼가 사역마 다섯을 한쪽으로 통솔했다.
– 킁킁…
– 키이이…
그녀가 최강종인 악마라는 것을 느낀 것인지, 계약으로 소환된 존재라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별 저항 없이 이동하는 사역마들.
‘…빌어먹을! 하필 초반에 폭사를!’
10연차의 수확은 끔찍하게 조촐했다.
3성 이하의 사역마 다섯.
함정 하나에 지형 하나.
무기 둘에 저주 하나.
‘그래도 재조명의 저주가 곧바로 나와준 건… 그렇게 나쁜 건 아니야.’
2성에 불과한 재조명의 저주는 숲 속성 저주로 초반에 상당히 유용한 저주다. 페넥스 같은 애매한 6성 악마를 가진 내 사역마 풀을 생각하면 에피소드 1막의 보스를 상대로 상당히 유용하게 쓸 수 있기도 하고.
‘그래도 나름… 균형감 있게 뽑기는 했다만….’
지형과 함정, 무기도 밸런스 좋게 나와줬다.
‘문제는… 등급이다.’
아직… 아직은 섣부르게 판단할 일이 아니다.
5회의 뽑기 기회가 남아있으니.
“다음, 시작하지.”
“클클… 그래! 이번엔 조금 괜찮은 녀석을 찾아보도록 하마.”
드드드드드…
마석의 기운이 아제룹의 코로 천천히 빨려 들어갔다.
연차와는 달리 차분하게 이어지는 소환.
회색.
[★ 고블린 졸개를 소환합니다.]파란색.
[★★★ 장난꾸러기 나무 정령을 소환합니다.]좋아! 이어서…
…파란색.
[★★★ 고기 먹는 나무의 수색에 성공합니다.]파란색.
‘죽인다?’
[★★★ 융화의 비의 수색에 성공합니다.]‘제발… 제발 하나라도….’
파츠즈즈즈즛…
‘보라색! 드디어!’
[★★★★ 흑요정 암살자를 소환합니다.]* * *
“파우스트 님, 차를 준비할까요?”
“…되었다.”
상당히… 큰일이 나버렸다.
운이 좋지 않을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가챠를 한두 번 해봤던 것도 아니고 레메게톤을 즐기는 내내 꽤 무겁게 과금했었으니까.
‘4성 하나에 전부 3성 이하라….’
있을 수 있는 확률이다.
가챠가 그런 거라니까?
운이 좋은 순간이 있고 운이 나쁜 순간이 있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오늘은… 뒷면이 나왔을 뿐이다.
근데 그게 왜 오늘이고, 왜 나냐고!
후우…
‘그나마 다행인 건….’
스윽…
4성 등급의 흑요정 암살자가 나와준 것이다.
첩보에 능한 종족인 흑요정.
자체 종족 보정이 높은 편이라 고등급의 사역마가 가득이다.
한쪽 무릎을 땅에 대고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녀석.
나머지 사역마들은 전부 내가 시킨 일을 하기 위해 이동해 있었다.
이 녀석만 곁에 남겨둔 이유는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빌.”
“…….”
“네 이름이다.”
“황송합니다. 빌, 저의 이름.”
이 녀석은 한동안, 내 남은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 움직여질 거다.
‘하아… 큰일이다.’
이번 15연차는 마치 초등학생이 부모님에게 받은 학원비 같은 의미였다.
절대로, 헛되이 잃어버리면 안 되는 큰 금액. 잃으면 눈앞이 깜깜해질 만한 무게.
근데…
‘잃어버렸다. 망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성공적인 첫 가챠의 기준치를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보스급 사역마를 못 뽑았다.’
던전이 맞이한 중차대한 문제.
바로, 페넥스처럼 던전의 허리인 중간 보스 역할을 해줄 사역마가 없다는 것이다.
던전의 보스는 보통 5성급 이상을 사용한다. 4성급과 3성급을 사용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그땐, 특수한 조건이 붙거나 초보 유저일 때다.
‘골치가 아프군… 더는 마석도 없는데.’
사실 페넥스가 범용성 좋은 다른 악마였다면, 쉽게 해결되었을 문제다.
애초에…
‘아니,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다. 방법을 찾아야지.’
하나 다행인 건, 보스급 사역마를 제외한 나머지 가챠는 의도대로 되었다는 것이다.
초보자 뽑기에서 일부러 숲 속성을 택한 이유다.
‘숲은 실패하지 않지.’
2성에서 4성급의 중견진이 매우 탄탄하며, 각 사역마끼리의 연계도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또한, 숲 필드를 구성했을 때의 시너지는 다른 속성 필드를 구성했을 때보다 초보자에게 더 매력적인 옵션을 제공한다.
이는 나중에 던전이 제대로 형성되었을 때 확인해 볼 수 있다.
‘고민이 줄었으니 그나마….’
끼이이이익-!
갑자기, 심처의 문을 열고 페넥스가 나타났다.
“나리! 대발견이야!”
이 녀석은 언제나 예고 없이 등장한단 말이지. 그래도, 이번엔 문을 발로 차진 않았군.
“…자고 있던 거 아니었나.”
“응! 아까, 일어났어. 처음 보는 녀석들이 잔뜩 청소하고 있는 것도 봤는걸!”
새로 뽑기에 성공한 사역마들에 대한 얘기다. 그들은 잿더미가 된 아그네아의 둥지를 청소 중이었다.
굳이 청소에 애꿎은 자원들을 전부 투입한 것은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대체 거기엔, 무슨 시설이 있는 거지?’
던전의 각 구역을 답파하면, 시설을 건축하거나 개방할 수 있다.
아그네아가 있던 곳.
그곳의 시설만큼은 여태 오리무중이었다.
대체 어떤 시설이 잠들어 있는 것인지…
“뭔가, 나왔어.”
“…뭐?”
“커다란 나무통! 나왔어, 나리.”
…나무통?
“자세히 설명해 봐라.”
“그러니까, 이렇게 생기고 이만큼 큰….”
뭔가… 알 것 같기도.
파악…
“설마….”
“파우스트 님?”
“직접 확인해보겠다.”
설마…
설마!
아그네아가 불타 죽은 예의 그곳은, 어느새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아마도 녀석의 실에 휘감긴 채로 오랜 시간 잠들어 있었을 게 분명한 커다란 나무통만을 남기고.
난… 저 나무통을 뭐라고 부르는지 알고 있다.
저벅…
저벅…
“우체통…인가.”
끼이익…
우체통을 열자 편지 2개가 쏟아졌다.
손이… 손이 떨려온다.
왜냐하면, 레메게톤의 던전 시설 중 우체통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체통은… 유저가 사용하던 인터페이스에나 존재했다. 보통 그 용도는…
찌익…
편지를 뜯어 그 내용을 확인했다.
[공지: 레메게톤 오픈 기념 이벤트!]– 안녕하세요, 신참 마왕 여러분! 72 악마 레메게톤이 여러분의 관심 덕분에 성황리에…
‘그래, 이건….’
공지다.
아니, 사료다.
온몸을 타고 흐르는 전율!
찌르르한 감각이 전신을 타고 날 장악하고 만다.
[3,000 마석을 수령합니다.] [마석은 심처에서 획득할 수 있습니다.]“하….”
어쩌면 내 생존 확률은, 지금도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