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13
제13화
저벅…
저벅…
“오, 놓고 간 물건이라도 있는가?”
아제룹 녀석, 뭐가 그리 좋은지 낄낄대고 있다.
“있다, 놓고 간 거.”
까딱.
고개를 슬며시 끄덕이자, 이번엔 홉고블린이 묵직한 궤짝을 들고 와서 내려놓았다.
쿠우우웅-!
“큭큭큭… 제물이 더 있었던 모양이군. 좋아, 어디….”
“잠깐.”
예측하지 못했던 사료.
3000 마석.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보상이다.
나는 절대로 이 마석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소환 의식을 천천히 진행하겠다.”
“흐음… 그러시던지. 나야 제물만 있다면 상관없다.”
단챠를 하는 것보다 10연차를 때려버리는 게 뽑기 성공률이 더 높다는 공공연한 미신이 있다.
나는 이를 무시할 생각이다.
‘어차피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 된다. 그런 게 뽑기야.’
체면이고 뭐고, 지금은 그런 게 하등 중요하지 않아.
이쪽은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 된다고. 사느냐 죽느냐가 달렸으니까.
‘단챠를 진행하면서, 실시간으로 가챠 계획을 수정하겠다!’
목표는 보스급 사역마.
5성 이상의 숲 속성 사역마다.
‘이번에도 뽑히지 않으면….’
아니.
‘뽑는다. 무조건!’
총성 없는 전쟁이다.
사실, 물리니까 오만 잡생각이 다 드는 걸 수도 있다.
후우우웅…
“질 좋은… 마석이군.”
소환을 시작한다.
파츠즛…
첫 시작은…
파란색!
[★★★ 헛된 고취의 향기의 수색에 성공합니다.]‘이건… 좋다.’
하지만 급한 건 아니었어.
급한 건 사역마 쪽이다.
파츠즛…
파란색.
[★★★ 감쪽같이 위장한 이끼 미믹을 소환합니다.]‘이것도 좋아! 하지만….’
아직이야.
아직 부족해.
뭔가가 더…
파츠즈즈즈즛-!
‘보라색!’
[★★★★ 도플갱어를 소환합니다.]보랏빛 광채와 함께 나타나는 사역마.
“흐히히… 실례지만 당신의 얼굴, 빌려도 되겠습니까?”
검은색 구정물의 형태에서 변할만한 형체를 찾지 못한, 미완성의 모습이다.
훌륭하다.
이 녀석은 앞으로 반드시 필요해.
하지만… 역시 내가 원하는 것보다 급하진 않아.
꾸물럭…
도플갱어가 내 쪽으로 다가오려 했다.
휙.
내가 손을 휘젓자, 루시퍼가 앞으로 나와 녀석을 한쪽으로 치웠다.
“으응? 그래, 네 모습이라도… 허헉-! 아, 악마! 악마가 여기에…!”
“조용히 한쪽으로 비켜 주시기 바랍니다. 파우스트 님께 방해이니.”
“…….”
말은 정중했으나, 제안을 거절하면 곤란해질 걸 암시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평범한 던전이었다면, 도플갱어가 이렇게 홀대를 받을 리 없었지만 지금 내 던전은 전시 체제다.
…전투원보다도 사령관이 필요하다고.
파츠즈즛-!
또 한 번, 보라색!
[★★★★ 숲 트롤 방랑자를 소환합니다.]쿠우우웅-!
아름드리나무로 집을 만들면 이만큼 거대할까. 4성급 사역마답게 무시무시한 덩치를 가진 트롤이 소환되었다.
“그에에에에… 배고프다아아….”
트롤이 멀뚱멀뚱 지옥문 앞에 서 있었다.
‘비켜, 방해된다고.’
휙-!
손을 휘젓자 루시퍼의 안내를 받아 머리를 긁적이며 물러나는 숲 트롤.
악마의 존재감은 참으로 편리했다.
하나, 지금은 그런 사소한 감상을 표현할 겨를조차 없을 정도로 불안함이 엄습해왔다.
흔히들 과금형 모바일 게임에서 말하는 천장을 친다는 표현.
지정된 횟수만큼 가챠를 시도했음에도 해당 캐릭터를 뽑지 못했을 때 확정적으로 해당 캐릭터를 지급할 때 하는 표현이다.
당연하게도, 레메게톤 초보자 뽑기에도 천장이 존재했다.
뭐, 초보자 뽑기답게 6성이 아닌 5성 지급이지만 40회라는 낮은 천장이 강점이었다.
다른 픽업에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이지, 가챠 횟수 40회 동안 5성급 사역마를 얻지 못한다는 건 무과금 상태로 게임 속에 들어온 내게 굉장히 치명적이었다.
거기다 지금이 게임 초반부였으니… 여기서 천장을 치고 폭사한다면 미래는 처참할 게 뻔했다.
불안감이 솟구칠 수밖에 없는 상황.
후우우우웅…
‘…어라?’
지금까지와는 명백히 다른, 조금 무거운 분위기.
“으으… 으으으으으….”
아제룹의 해골이 반응을 보였다.
이 반응은, 내가 익히 아는 것이다.
‘5성! 5성 이상이다!’
파츠츠즈즈즈즈즈즛-!
찬란한 주황빛이, 아제룹의 텅 빈 눈구멍에서 쏟아져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바라던 순간이 온다.
파지지지직-!
벼락이라도 친 듯한 굉음과 함께, 구릿빛 피부의 요정족이 그 자리에 나타났다.
수수한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는 나뭇잎으로 된 왕관을 쓴 여인.
[★★★★★ 흑요정 여왕을 소환합니다.]그녀가 날 똑바로 응시하며 말한다.
“당신의 숲은… 어디에 있나요?”
말에, 힘이 있었다.
게임 속에서는 그저 단어의 나열과 속삭임에 불과했지만, 지금의 내겐 다르다.
그녀가 말을 할 때의 마력의 떨림, 특이한 기운까지 전부.
다르게 다가온다.
그 모든 것이 줄곧 주먹에 깃들어 있던 힘을 스르륵 풀려버리도록 만든다고.
그래, 해냈다.
“소환을 멈춰라.”
* * *
[성장의 제단 건축을 완료합니다.] [성장의 제단에 노동력을 투입할 경우, 지금보다 사역마의 경험치 획득 효율이 증가합니다.] [Tip: 사역마의 성장은 던전의 성장과도 직결됩니다.]……
[마석 광산 건축을 완료합니다.] [마석 광산에 노동력을 투입할 경우, 지금보다 일일 마석 채굴량이 증가합니다.] [Tip: 마석 채굴은 일찍 시작할수록 좋습니다.]……
[던전이 모든 핵심 기반 시설을 갖추었습니다.] [언제라도 던전의 코어와 보물을 노리는 침입자들이 습격해올 수 있습니다.] [그들이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도록 던전을 방비해야 합니다.]비로소, 썩은 뿌리의 제1구역 핵심 기반 시설의 답파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아그네아의 영토를 온전하게 흡수하지는 못했지만, 그건 시간이 부족했을 뿐이지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영토를 흡수할 수 있게 될 거다.
끼이이이익…
우체통을 뒤적거렸다.
‘분명히… 왔을 텐데….’
사락…
역시.
새로운 편지가 손에 잡혔다.
그 내용은…
[신참 마왕을 위한 선물!]– 안녕하세요, 신참 마왕님!
오늘도 악독한 침입자의 무리로부터 던전을 수호하기 위해 수고가 많으시죠?
썩은 뿌리 던전의 제1구역 핵심 기반 시설을 모두 개방하셨으니, 앞으로는 던전의 보물을 노리는 침입자들이 계속해서 쏟아질 거예요!
두근두근하고, 또 걱정되기도 하실 거예요. 저희 개발진들이 신참 마왕님을 응원하는 의미에서 선물을 보냈어요!
심처를 확인해보세요!
[심처에 귀속된 물품을 확인해야 합니다.]심처로 되돌아가며, 뇌리에 남은 의문을 되짚어 보았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게임 속일까? 어쩌면 레메게톤의 무대가 되는 솔라리아와 똑같은 다른 세계인 건…
‘뭐 어느 쪽이든 같나.’
그렇다면, 이 게임을 만든 개발자들이 나를 이곳에 집어넣은 건가? …어째서?
그리고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그들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신이라도 된다는 건가?
심지어, 나는 핵심 개발자 중 한 명도 알고 있다고.
‘…승아.’
…그녀를 떠올리는 건 관두자.
결국엔 우울한 끝맛이 뒤따를 테니. 그리고 아무리 고민해봐도 확인할 방법은 없다는 게 방금 내가 내린 결론이다.
심처로 되돌아와, 개발진들의 선물이라고 보내진 물건을 확인했다.
끼이익…
조금은 추레한, 투구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가면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뭔가가 드러났다.
음… 그러니까, 이 가면은 역사가 깊은 물건이다.
파우스트, 그러니까 주인공 캐릭터만 사용할 수 있는 물건 중에 치장 아이템이라는 것이 있다.
말하자면 스킨인데, 아무런 능력도 없이 그저 파우스트를 꾸며주는 게 전부인 물건이다.
개발진들은 아마도 이 첫 치장 아이템을 빌미로 스킨에 유저들을 발 담그게 해 앞으로도 이 쓸모없는 치장 아이템을 구매해주기를 바랐을 테지.
그리고 실제로도 그게 꽤 먹혔었던 기억이 있다. 시즌별로 줄줄이 내던 것들이 꽤 잘 팔렸다고 들었었으니까.
뭐, 그렇더라도 난 딱히 스킨에 돈을 쓰지 않았다.
돌고 돌아 순정이라 했던가.
스윽…
내 파우스트는 이 가면을 서버 종료까지 썼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기이한 감정이 발아했다.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 혹은 아련함 같은.
지금의 파우스트에게도 어쩌면 이 가면이 미래엔 다른 의미가 되어줄 것만 같은.
‘…한번 써볼까.’
스으윽…
“잘 어울리십니다.”
!!!
“…있었나?”
…깜짝이야.
뭐, …부끄러운 상황도 아닌데 괜히 뜨끔했잖아.
“전 항상 파우스트 님 곁에 있습니다.”
“…….”
아무튼 좋으니 기척은 내라고.
것보다, 이 가면 불편하진 않네.
딱 맞아.
“아앗! 염소다!”
“…페넥스.”
너까지냐.
저 녀석이 내 얼굴을 향해 삿대질을…
“나리, 염소 가면이다! 히힛!”
염소의 해골처럼 보이지만, 나름 사탄의 형상이라는 가면.
뭐 새삼스레 생각이 나서 한 번 써본 거다.
스윽…
가면을 벗고 말했다.
“심처에 모든 사역마를 소집하라.”
“예.”
잠시 후, 심처가 숲 내음이 물씬 풍기는 녀석들로 가득 채워졌다.
쿠우웅…
쿠우우웅…
“배고파아아아….”
숲 트롤은 이곳에 온 이후로 줄곧 저 말만 내뱉고 있었다. 식당에 배정한 사역마를 둘이나 늘렸는데도 말이다.
아마, 실제로 배가 고파서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아는 단어가 저것뿐인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스으윽…
좌우로 한 줄씩 옆으로 늘어서서 고개만 이쪽으로 향하고 있는 사역마들.
각기 고블린 종 다섯.
오크 종 둘.
흑요정 둘.
나머지는 뭐 기타 등등.
던전 하나를 구성하기에는 조금 열악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난이도가 종종 널뛰긴 하지만, 초창기 에피소드는 던전 구색만 갖추고 있어도 클리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으니까.’
무과금들에게도 과금 없이 이어지는 컨텐츠들에 도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그리고, 내가 첫 필드로 숲을 선택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숲 지형에 알맞은 사역마들과 함정이 배치되었습니다.] [조건이 충족되어 숲의 환경 효과가 활성화됩니다.] [환경 효과: 생명의 요람이 활성화됩니다.] [숲 지형에서 적대적 대상이 사망하였을 경우, 숲에 머무는 사역마가 높은 확률로 성장하거나 번식합니다.]그래, 바로 이것.
‘숲은 성장하고, 번식한다.’
파우스트는 항상 최악을 대비한다.
만약 보스급 사역마를 뽑지 못했다면?
만약 가챠가 폭사해 전부 2성과 3성짜리 사역마로만 필드를 구성해야 했다면?
‘다른 필드로는 답이 없지. 에피소드 초반부는 어떻게든 넘어가겠지만 결국에 가챠에서 홈런을 쳐야 힘을 받는 특성상 결국 한계에 부딪힐 거야.’
레메게톤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늘 새로 시작하는 뉴비에게 이렇게 말했다.
– 숲.
– 그냥 숲 해.
– 숲 뽑아, 돈 많으면 불 뽑고.
– 이 겜 하지 마. 돈 빨아먹는 쓰레기 겜임.
…등등.
즉, 숲 속성을 기본 필드로 구성하는 건 꽤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전통 같은 거라 말하고 싶다.
이들은 초기엔 미약하지만, 이내 울창한 대수림을 이곳 썩은 뿌리에 만들어 낼 것이다.
“너희는 앞으로 이곳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
“따르지 않을 자가 있다면, 지금 말하라.”
마족의 언어를 이해 못 할 염려는 없었다. 장난꾸러기 나무 정령이 주위를 쉴 틈 없이 오가며 내 얘기를 전달했다. 녀석은 통역에 능하다.
저벅…
저벅…
흑요정 여왕이 앞으로 나와 고개를 살짝 숙였다.
“뜻에 따르겠어요. 이곳의 숲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고….”
슥…
여왕이 슬쩍 내 옥좌 옆에 찰싹 붙어있는 페넥스와 루시퍼를 곁눈질하며 말했다.
“악마를 부리는 자를 거역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아리엘.”
그녀의 이름은 아리엘.
내가 지어준 이름은 아니고, 그녀의 원래 이름이었다고 한다.
“흐히힛… 누가 내 의견도 좀 물어봐 주지 않으려나?”
“…넌.”
못 보던 흑요정이 한 명 늘어나 있었다. 녀석이 누군지, 단박에 알아챘다.
“흑요정의 모습을 훔쳤군.”
“이렇게 조용한 곳에만 박혀 있는 건 괴로운 일이라고요.”
기억났다.
도플갱어는 굉장히 특수한 능력을 가진 대신, 종종 플레이어에게 위험한 짓거리를 하기도 했다.
가령, 침입자에게 함정을 경고한다든지 정해진 곳까지 자신이 죽인 파티원으로 위장해 함께 던전을 답파한다든지 하는.
그럼에도 이 녀석이 상당히 쓸모가 있는 부분은 존재했다.
“넌 이곳에 머물지 않는다.”
“…으잉?”
“넌, 빌과 함께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빌이라면, 이 흑요정 말이군요. 흐음… 그 일. 재밌는 일일까요?”
“지루하진 않겠지.”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도플갱어가 훔친 흑요정의 얼굴로 웃었다.
털썩.
녀석이 무릎 꿇고 말한다.
“저, 이름을 받아도 되겠습니까?”
“모리. 가져라.”
“모리. 히히… 갖겠습니다.”
그날부터, 아니 그 순간부터 던전은 단장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답파가 끝난 구역은, 던전의 숨겨진 입구로부터 심처까지 총 3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입구에서 심처를 향할 시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건 숲 지형.
가장 크며, 첫 번째 보스 전투까지 이곳에서 치러질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두 번째 보스 룸.
이곳은 아직, 제대로 꾸며지지 않았다. 그저 퀴퀴한 공동처럼 보이는 곳이다.
‘여기까진… 여력이 없거든.’
이곳을 담당할 전력이라고 해봐야 페넥스 정도일 텐데, 그녀를 위해 불 속성 지형을 갖추는 건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아직, 페넥스가 제 역할을 하기에도 힘들고.
그리고 마지막이 심처다.
이곳엔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곤 내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썩은 뿌리 던전의 프로토타입은 대략 그러했다.
던전 시공에 착수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융화의 비를 적절한 위치에 설치한 것이다.
고블린과 숲 오크.
통칭 그린 스킨이라고도 불리는 이 녀석들은 공통점이 많지만, 같은 서식지를 두고 경쟁하기 때문에 앙숙 관계를 유지했다.
침입자들이 이를 이용해 숲 필드를 돌파하기도 할 정도니까.
[★★★ 융화의 비를 배치합니다.] [융화의 비 주변 넓은 영역의 사역마들이 극적으로 화해합니다.]가챠에서 등장했던 융화의 비.
더 높은 등급의 비슷한 역할을 하는 오브젝트도 있지만 역시 아직 크지 않은 사이즈의 던전에는 이게 제격이었다.
이 비석을 부수지 않는 이상, 숲 필드의 오크와 고블린은 서로 다투지 않는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이점이다. 녀석들이 합공을 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습격자는 골치가 아플 테니까.
쿠우웅…
쿠우우우웅…
“배고프다아… 그에에에….”
숲 트롤은 방랑자라는 다른 이름 그대로, 숲 전역을 불규칙적으로 순찰했다.
지능이 높지 않아, 통제가 제대로 먹히지 않는 게 녀석의 단점이었지만 그래도 동급의 다른 사역마들보다 체급이 더 좋으니 감수할 만했다.
– 키이이!
– 키이이익…
고블린들은 나무줄기와 썩은 가지를 엮어 부락 비슷한 것을 만들어 냈다.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동굴엔 오크 한 쌍이 둥지를 틀었고.
저마다 자리를 잘 잡은 듯했다.
남은 건 함정과 환경 오브젝트의 배치다.
[★★★ 헛된 고취의 향기를 배치합니다.] [★★★ 감쪽같이 위장한 이끼 미믹을 배치합니다.]‘…미믹은 사역마잖아? …맞지?’
이 녀석은 함정인지 사역마인지 가끔 헷갈리긴 하는데, 사역마가 맞다.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게 함정과 같아 저런 문구가 뜨는 거겠지.
뭐, 이쪽은 마무리됐고.
마지막 함정은… 저기쯤이 좋으려나?
“걸어봐라, 빌.”
“…예.”
빌은 내 명령이라면 군말 없이 수행했다.
저벅…
저벅…
지금, 미믹으로부터 빌이 몇 걸음을 걷는지 세고 있다. 미믹의 기습을 대처한 습격자들은 여기서 아마도 빌처럼 이동할 것이다.
“좀 더.”
저벅…
그래, 여긴가?
이쯤이면 방심할 것 같은데.
“이쯤이면 되겠군.”
[★★ 독화살 기관을 배치합니다.]돌아 나올 때만 발동하도록 설정해둬야겠군.
[★ 흰 포자 독버섯 군락지를 배치합니다.]…이건 뭐, 걸리면 좋고 아니면 말고다.
‘끝났나?’
비로소, 모든 단장이 끝이 나고 던전의 입구 앞에 서 있다.
후우우웅…
콰지이이이익!
마력을 조금 흘리자, 입구를 틀어막고 있던 결계가 형편없이 부서졌다.
결계가 부서짐으로써, 이야기는 흐른다.
[던전: 썩은 뿌리가 개방되었습니다.]“…시작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