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14
제14화
칼헤일 인근의 대수림.
천혜의 자원과 모험가들의 발길을 기다리는 유적으로 가득한 곳.
대수림의 크기가 오히려 칼헤일의 크기를 압도할 정도로 거대했지만, 오히려 대수림의 크기가 너무 거대했기에 보통 대수림의 앞에 지역 이름을 붙여 말한다.
칼헤일의 대수림은 이 드넓은 숲의 극히 일부분만을 나타낸다는 의미다.
칼헤일의 대수림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호황을 누렸다. 다른 지역의 대수림과 비교했을 때 수림 초입에 나타나는 마물들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기에 모험과 자원 채취를 위해 인파가 모여들었었다.
그러나 그 호황도 잠시, 최근 말타니 지방에서 대수림으로 통하는 길이 뚫리면서 대부분 그곳으로 옮겨간 상황이다.
덕분에 대수림이 목적이 아니라면, 칼헤일에서도 변방인 이곳이 외면받게 되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한창 고고학자들의 발굴 작업과 모험가들의 던전 답파 물결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후라, 이곳에 남은 건 그들을 상대로 장사하여 생계를 이어가던 촌민들과 혹시 흘리고 간 것은 없나 살펴보러 온 뜨내기 모험가들뿐이었다.
이런 처지의 마을이 칼헤임 인근에 꽤 여럿인데, 리우디라 역시 그랬다.
최근 이곳에서, 신출내기 모험가 파티가 의뢰를 받고 대수림으로 들어갔다.
그것이 바로 며칠 전이었다.
“아~무리 찾아도 없는걸? 진즉에 야생 동물이나 마물 똥이 돼서 나온 거 아니야?”
“초입에서부터 죽어 나자빠질 거라면 대수림에는 왜 발걸음한 지 모르겠네?”
“레미 말대로 이미 죽은 것 같은데?”
파티는 후위로 신관, 마법사, 궁수.
전위로 전사와 도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흠… 겸사겸사 챙겨온 다른 임무는 어떻게 해결됐는데 말이지.”
“그건 돈이 안 돼. 이런 궁벽한 곳에 뭐가 있겠어? 그나마 돈 될 만한 건 이 실종자 수색뿐이야.”
“마족 노예 한 마리랑 대수림 초입에서 사라졌다는 게 유일한 실마리라니.”
“사랑의 도피인 거 아니야?”
“의뢰인들 앞에서도 그렇게 물어봤으면 내가 진지하게 답해주지.”
“아, 농담이니까 열 내지는 마.”
후위를 맡은 노년의 궁수가 말했다.
“복종 작업을 허술하게 치렀을 수도 있겠군.”
“돈을 아끼다가 마족 노예에게 슥-삭?”
“그게 가장 확률이 높지.”
“싸구려 노예들은 좀 위험 부담이 있는 편이지. 저번에 써먹었던 노예 하나도….”
“안다, 함정으로 널 끌고 갔었지?”
“그래서 머리통을 으깨주기는 했지만… 아직도 분이 안 풀린다고.”
신관인 실론이 중얼거렸다.
“이곳은 대수림이니,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이해할 수 있어요.”
“엥? 기껏해야 하급 마물들이나 어슬렁거리는 곳이?”
트로아라는 이름을 가진 궁수가, 대신 답했다.
“레미. 네가 아는 대수림은 극히 일부분이다. 대수림은 워낙에 넓고 안으로 갈수록 강한 마물들이 들끓지. 얼마나 지독하면 솔로몬께서도 그 깊숙한 곳까지는 정벌을 포기하시고 인간의 발길을 금하셨겠느냐?”
“패권전쟁 이후 마족의 고위 귀족… 사라져버린 칠죄종 중 한 명이 대수림으로 숨어들었다는 소문도 거기서 파생된 거예요.”
“알았어. 나름 긴장하고 있다고. 둘 다 그만해. 나 노력하고 있다니까?”
전위를 맡은 전사 갈렉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슬슬 돌아갈 생각을 해야겠군. 너무 깊게 들어왔어. 이대로면 초입에서 더 깊숙이 들어가 버린다고.”
“그래선 안 되지.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이 되면 돌아가는 편이 좋겠지. 슬슬 잠자리를 찾아봐야….”
그때, 도적인 블렛이 말했다.
“…모두 저기를 볼래?”
그의 경직된 자세가 모두를 긴장하게 했다.
“뭐길래 그… 어?”
“저건….”
시커먼 내부를 드러내고 있는 암굴.
거대한 나무의 몸통에 만들어진 기이한 입구가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다섯의 눈빛이 변했다.
“트로아, 확인해 봐.”
“기록에 없군. 미발견된 던전이야.”
“던전은 맞지?”
“느껴지잖아. 안에서 풍겨오는 쓰디쓴 마력의 잔향이.”
신관 실론이 말했다.
“아직 미발견된 던전이라면… 보고는 어떻게 할까요?”
“설마… 보고할 생각은 아니겠지?”
“음….”
“그렇잖아! 미발견 던전이랍시고 보고를 했다간… 중앙에서 던전 측량을 위해 상위 모험가가 파견되어야 하고… 여기는 중앙에서도 거리가 멀고 업무량도 밀려 있어서 한참이나 걸릴 텐데….”
“실종자가 혹시 던전에 휘말렸다면, 그사이에 죽을 가능성도 있다는 걸 말하려는 건가요?”
“그, 그래! 바로 그거야!”
마법사 레미의 말에 실론이 코웃음쳤다.
“레미. 그냥 보상을 독식하고 싶다고 말해.”
“그렇게 솔직해도 되는 거야?”
“나쁠 거 없지.”
“근 몇 달 제대로 된 실적도 없고… 이대로 구정물만 마시다가 굶어 죽겠다고.”
“네 말은 일리가 있다. 모두 어때? 나도 레미와 같은 의견이야. 현상 유지나 하려고 이 파티에 들어온 건 아니거든.”
“들었지, 다들? 실론도 찬성했다고.”
도적 블렛이 찜찜한 표정으로 말했다.
“보고가 되지 않은 던전은… 위험할 수 있다.”
“누가 몰라? 살펴만 보는 거야. 우리 실력이면 여차할 때 도망칠 수도 있고.”
“그래도 난 반대다.”
찬성 둘, 반대 하나.
“난 들어가겠다.”
전사 갈렉이 찬성함으로써 과반이 던전에 진입하는 것에 동의했다.
“그럼… 들어가자고.”
나무 둥치의 벼락이라도 맞은 듯 뚫린 구멍이, 그들을 반겼다.
저무는 해와 함께, 그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 * *
[침입자의 출입을 확인합니다.] [이 순간부터 던전 수호가 진행됩니다.]“진입했군.”
추후, 공격대 던전 컨텐츠가 업데이트되기 전엔 던전에 입장할 수 있는 인원이 5인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제작사가 그렇게 설계한 것도 있고 이 세계에선 과거, 모종의 사건을 이유로 모험가들의 파티 기본 인원이 5인으로 암묵적으로 결정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때문인지 대부분의 던전은 5인이 입장하면 입구가 닫힌다.
‘딱 다섯인가.’
던전의 입구로 다섯이 줄지어 들어온다.
던전의 심처에서 내가 바라보는 화면에, 그들의 정보가 표시된다.
전사 갈렉을 비롯하여 마법사 레미까지.
[Tip: 아직 첩보 활동이 활성화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표시되는 정보보다 정확하고 상세한 정보를 확인하고 싶다면, 첩보 활동을 활용해야 합니다.]그 와중에 상냥하게 팁까지 전달해준다.
“나리, 그런데 왜 지켜만 보는 거야? 침입자는 전부 죽여야 하잖아?”
“페넥스, 파우스트 님께서는 휘하에 들어온 새로운 사역마의 힘을 확인하고 싶으신 겁니다.”
“…아!”
루시퍼가 나를 대신해 답해주니, 나는 그대로 화면 속 침입자 녀석들만 신경 쓰면 되었다.
장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낡은 갑옷과 비교했을 때, 얼굴은 너무 긴장하고 있었다.
‘풋내기들이야.’
녀석들이 숲으로 진입했다.
썩은 뿌리의 숲 필드는 아그네아가 자리 잡았던 둥지 2배 이상의 크기.
– 어, 엄청나잖아? 지하에 이렇게 거대한 숲이 또 있다고?
– 별천지로군.
– 차마르인지 뭔지 그 녀석도 아직 여기에 떠돌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이 녀석들은, 아직 이곳을 우습게 보고 있다.
– 블렛, 트로아. 뭐 느껴지는 것 없나요?
– 글쎄… 이곳이 무척 넓다는 것 정도는 느껴지는군.
– 그건 우리도 알아. 길은… 외우고 있는 거지?
– 표식을 남기고 있다. 돌아가는 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잠자리나 걱정하도록.
– 하긴, 들어올 때 이미 밤이 깊었으니… 수색보다 우선 오늘 밤이나 걱정하는 게 맞겠네.
‘야영 이벤트인가….’
모험가들이 던전에 진입한 시각에 따라, 이벤트는 달라진다. 대표적으로 늦은 밤 던전에 진입하면 모험가들은 일반적으로 야영을 시도한다.
‘그때도 나름 현실적이라고 느끼긴 했는데… 진짜 현실은 또 다른 느낌이군.’
밤이 됐으니 휴식을 준비한다.
너무나 당연해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걸.
– 저기! 저기 어때?
– 언덕이군. 적당한 고지대에 이쪽에서는 밑을 내려다볼 수도 있다. 적당하겠어.
자리를 잡고 불을 피우는 모험가들.
마침, 독버섯 함정을 준비해둔 자리 근처였다.
– 응? 여기 좀 봐봐.
– 함박눈 버섯이잖아? 좀 챙겨갈까?
– 트로아, 확인 부탁해.
– 음… 이건 안 돼.
– 어째서?
– 흰 포자 독버섯이다. 함박눈 버섯과 흡사하게 생겨서 많이들 착각하곤 하지.
[궁수 트로아가 ★ 흰 포자 독버섯 군락지 함정을 간파했습니다.]1성 함정답게, 손쉽게 간파당한 건가?
그래도 수확은 있었다.
‘모험가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기록에 남는군. 나중에 분석에 요긴하게 사용될 거야.’
함정의 성공률은 단순히 등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함정 역시 강화가 가능했고 강화 수치와 모험가 파티의 구성과 파티의 상황에 따라 또 성공률이 달라진다.
‘도적이나 궁수 같은 예민한 직업군이 없었다면 오히려 무난하게 먹혀들었을 수도 있겠군.’
이곳은 던전이다.
수많은 덫을 깔아둔 상황이니 이 중 단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먹혀든다면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
한참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가는 도중, 루시퍼가 말을 걸어왔다.
“파우스트 님, 침입자들이 휴식에 들어간 것 같은데 파우스트 님께서도….”
“되었다. 녀석들의 최후까지 지켜보겠다.”
“그럼, 차를 준비할까요?”
그녀의 친절이 조금 신경 쓰였다.
“차를 좋아하는 모양이군.”
“좋아합니다. 그래서 모시는 분께서도 부디 좋아해 주셨으면 하고요.”
“…….”
차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곳에 와서는 더더욱 그랬다.
그리고 만약 내가 이곳에서 살기 위한 섭취가 아닌, 행복을 위한 섭취를 하는 날이 온다면…
그날은 조금, 쓸쓸할 것 같다.
‘인간 김서진이 여기에 혼자 남겨졌음을 받아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적응해나가기를 다짐한 것과 같으니까.
그러니 차까지는, 무리다.
시선을 다시 화면으로 돌렸다.
‘시작됐군.’
– …….
– 키이이…
– 무, 무슨 소리지?
– 야습이다, 모두 무기를 들어. 고블린인 것 같다.
피이익-!
– 독침! 독침이야! 블렛, 같이 방패를 들어줘!
– 자, 마법 간다! 이 녀석들아.
화르르륵-!
퍼어어엉!
새카만 어둠 속에서 이뤄지는 전투.
– 그이이이이이!
홉고블린이 날 듯이 뛰어 신관을 기습하려 했다.
– 어딜!
피이이이이잉-!
‘호….’
늙은 궁수 녀석.
제법이다.
그 와중에 화살로 홉고블린의 두개골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 허억… 허억…
– 괜찮나?
– 고, 고마워요. 덕분에 살았어요.
모험가 파티는 제법 잘 싸웠다.
‘아니지. 그보다는… 현재 고블린의 구성이 너무 빈약한 것이겠지.’
숲 필드의 장점은 조화다.
보병 하나는 약하지만, 보병대는 다르다.
물량을 쏟아내 파티를 분쇄하는 게 숲 필드의 장점이지만, 아직 초반인데다가 사역마의 수도 너무 적었다.
‘주술사도 곧 죽겠군.’
– 블렛! 멀리 가지 마!
– 잡았다! 이 망할 자식!
푸화아악…
고블린 주술사가 도적에게 목을 베였다.
‘3성급 사역마 둘이라고 할지라도 제대로 응수하지 않으면 초보 모험가들에게도 당하는군.’
홉고블린은 궁수의 행운이 가미된 화살에, 고블린 주술사는 홀로 고립되어 도적에게 살해당했다.
그러나 그들은 던전 수호가 성공했을 때, 재생의 화원에서 다시 회복할 것이다.
던전 코어의 힘은 그만큼 절대적이다. 목이 베어도, 되살려내는 힘이라니….
– 블렛, 어깨에 그거….
– 독침인 것 같다. 괜찮다, 나는 독에 일가견이 있어. 그냥 하루 불편한 정도의 미약한 독이다. …별거 아니야.
이들의 대화를 듣는 건, 게임에서도 가능한 일이었기에 별로 괴리감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문장으로 보이던 것이, 귀로 들리는 것의 차이 정도.
‘그건 그렇고… 그 독, 과연 별 게 아닐까?’
던전 답파는 살얼음판을 걷는 행위와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심한다면 무사히 건널 수 있지만, 한 번이라도 실수한다면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
– 그럼 다행이야. 그보다, 이 녀석들은 어디서 쏟아져 나온 거지?
– 이 녀석이 도망친 방향에, 부락이 있는 것 같았다.
– 그래? 트로아.
– 멀지 않은 거리야. 기척도 없다.
– 잠은 다 잤군. 그곳까지만 확인해 보자고.
사박…
사박…
고블린 부락에 도착한 모험가들.
이곳엔, 두 번째 함정이 있다.
‘이번에도… 막을 수 있을까?’
모험가들이 앞으로 어떤 상황을 맞이할 것인지에 관심이 갔다. 그래, 마치 덫을 놓고 기다리는 사냥꾼처럼.
– 저기! 여기로 와 보지 않을래? 뭔가 발견한 것 같은데!
[★★★ 헛된 고취의 향기 함정이 발동합니다.] [함정이 일정 범위 내의 침입자의 탐욕을 자극합니다.]– 사, 상자다… 보물 상자야.
– 열자! 블렛!
– 이미 열고 있다.
‘걸렸나?’
– 잠깐! 모두 물러나! 미믹일 수…
[궁수 트로아가 ★★★ 감쪽같이 위장한 이끼 미믹의 위장을 간파했습니다.]쨍그랑-!
– 됐다! 자물쇠를 부쉈….
쩌어어어억-!
보물 상자로 위장한 마물, 미믹이 거대한 입을 벌려 한입에 도적인 블렛을 삼키려 했다.
피유유융-!
퍼어어억!
트로아의 화살이 미믹의 입속을 헤집었다.
– 갈렉! 지금이야! 찔러!
– 아, 알았다!
콰지이익!
미믹은 정체가 드러난 이상,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못했다.
‘저 늙은 궁수가 문제군….’
– 정신들 차리지 못해?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 화, 화 좀 그만 내! 알았다고!
– 모두 예민해져 있어. 휴식이 필요하다. 우린 며칠 동안 대수림을 헤매다 이곳에 왔다고.
– 돌아가자, 아까 그곳으로. 짐을 놓고 왔잖아.
화면에 그들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익숙한 길이다.
‘사전에 빌과 같이 준비한 길이지.’
준비된 함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철컹…
[★★ 독화살 기관이 발동합니다.]– 무, 무슨 소리야!
– 숙여! 함정이다!
– 꺄아악!
피피피피피피핏-!
– 커억!
고작해야 2성급의 간단한 함정.
– 제기랄! 블렛! 왜…
– 비, 빌어먹을… 몸놀…림이 두, 둔해져서…
도적이 고슴도치가 되어 죽었다.
고블린의 마비 독에 적중당한 순간부터 예정된 죽음이다.
– 꺄아아아아아악!
– 주, 죽었어요. 블렛이….
– 살려내, 실론!
– 무, 무리예요. 제게 그런 힘은….
아까도 말했듯, 던전 답파는 살얼음판을 걷는 행위와 같다. 한 번의 실수가 곧 치명적인 파멸로 이어질 수 있다.
– 이 멍청이들이! 누가 멋대로 큰 소리를…
늙은 궁수만이, 이어질 상황을 직감한 듯했다.
쿠우웅…
쿠우우웅…
– 이, 이게 무슨 소리예요?
– 뭔가가… 오고 있어.
파티는 내 예상보다, 훌륭하게 나아갔다. 늙은 궁수가 내 예상을 뛰어넘어 파티를 두 번이나 구했으니까.
하지만.
– 그으으으… 배고프다아아…
“…세 번은 없다.”
모험가의 제1원칙, 던전 답파 중에는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 도, 도망쳐어어어어어!
예고된 파멸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