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17
제17화
어제까지만 해도 정보 수집에 난항을 겪을 거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리려는 징조가 있었다.
어젯밤, 리우디라 인근 마을인 테첸에서 칼 쿠르소에게 살해당한 걸로 추정되는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소문을 접했다.
시체의 주인은 마을 지주의 딸이었다. 이 때문에 인근 주민들의 칼 쿠르소에 대한 공포심과 증오가 동시에 차오른 상황이다.
“그래서… 어디 있는 거냐, 넌.”
칼 쿠르소는 레메게톤의 에피소드 1막 보스다.
유저는 10개 언저리의 모험가 파티로부터 던전을 지켜낸 후에, 칼 쿠르소를 맞이하게 된다.
당시에는 그래도 레메게톤이 꽤 인기가 많았었으니, 그만큼 플레이하는 유저 층도 다양했다.
그런데, 그 많은 인원이 하나의 컨텐츠를 즐긴 후에 느끼는 감상은 보통 다양한 게 정상이건만 에피소드 1막만큼은 예외였다.
칼 쿠르소가 있는 에피소드 1막의 최종장까지 도달한 유저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무과금 절단기….’
에피소드 1막의 보스, 칼 쿠르소.
녀석은 무과금 절단기였다.
칼 쿠르소의 출시 난이도는 높아도 너무 높았다.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던전, 던전 보스의 강화를 제대로 하지 않은 던전은 예외 없이 갈려 나갔다.
이 과정에서 개발사를 향한 유저들의 황당함과 분노는 극에 달했는데, 가뜩이나 매운 뽑기 확률 때문에 과금 강제가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강하게 성토할 정도였으니… 뭐, 반발이 극에 달했으니 개발사에서도 답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근데, 이후에 벌어진 일은 꽤나 재밌다. 개발사의 답변 내지는 해명이랍시고 올라온 공지 하나에 유저들이 일제히 불탔으니 말이다.
‘당시 공지가 아마….’
[공지: 에피소드 1 최종장 칼 쿠르소 파티의 버그 제보에 관한….]개발사의 답변은 심플 그 자체.
요점이 아마….
‘칼 쿠르소 파티의 난이도는 의도된 것이며, 모든 유저가 상대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주어진 것을 잘 활용한다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라 했던가.
‘결과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었지.’
당시엔 워낙 정보가 부족했으니까. 오히려, 이후에 밝혀진 정보들로 난이도에 대한 평가가 뒤집혔다.
‘칼 쿠르소의 난이도는 잘못 설계되었다’에서 ‘칼 쿠르소의 난이도는 꽤나 적절하다’로.
단, 전제조건은 유저에게 주어진 것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발사가 말한 유저에게 주어진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인데 다행히…
‘난 그 전부를 알고 있다. …하지만 당장 활용할 수 있는 건 그중 몇 가지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네.’
리우디라에 굳이 하루 묵은 이유 역시, 언젠가 찾아올 칼 쿠르소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첩보 활동을 통한 칼 쿠르소의 정보 수집.
유저에게 주어진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다.
비록 아직 그가 등장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남았지만, 그래도 미리부터 준비해둬서 나쁠 건 없었다.
“뭐… 그래서, 칼 쿠르소야….”
넌 어디 있는 거냐?
끼이이이익…
생각을 대충 정리하고 방문을 열고 나섰다.
여관에 딸린 1층 주점에 내려와 주인장에게 아침 식사를 주문했다.
“계란은 하필 지금 다 떨어졌는데, 없어도 괜찮을까?”
“괜찮습니다. 가능한 걸로 주십시오.”
…어차피 살고자 먹는 것이니.
삐걱…
‘…음?’
삐걱…
위층에서 한 무리가 내려왔다.
‘…모험가들인가?’
하아암…
“진짜 어젯밤 코를 엄청나게 골더라니까?”
“네 숙부님이?”
“아니? 숙부님이겠어? 저기 저 자식이지.”
“뭐야? 나 코 골았어?”
복색이 모험가가 분명했다.
‘남자 셋, 여자 둘. 도합 다섯… 맞네.’
단물이 다 빠진 리우디라까지 흘러들어 올 정도의 모험가들은 보통 그렇게 실력이 뛰어난 편은 아닌데, 다섯 중 유독 한 명이 눈에 띄었다.
‘저 중년인가.’
슬쩍 곁눈질하는 사이에도, 대화는 계속 진행됐다.
“…마루스 님, 혹시 제 잠버릇 때문에 밤사이 시끄러웠다면 죄송합니다.”
“이해하네. 여정이 피로했을 테지.”
“숙부님이 인자하셔서 다행이지! 암튼, 오늘 아침은 네가 사.”
“이 자식… 그게 목적이었냐? 그래. 그럴게.”
파티는 적당히 떨어진 자리에 앉아서 자기들끼리 떠들어댄다.
“들었어? 우리가 떠난 날 칼 쿠르소가 테첸에 나타났다고 하더라고.”
“아, 어제 들었어. 떠들썩하던데?”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쳐요, 정말. 그런 괴물이 어째서 아직도 붙잡히지 않은 걸까요?”
“무서운 얘기해줄까?”
“또 뭔데요….”
중년의 조카로 보이는 남자가 이야기를 주도했다.
“사실, 어쩌면 우리도 테첸에 머무는 동안 칼 쿠르소를 마주쳤을지도 몰라.”
“히이익… 진짜! 그만해요!”
“하하하, 사실이라니까? 사실 시체가 발견된 게 우리가 떠난 이후일 뿐이지 살인 행각이 언제 벌어졌는지는 알지 못하니까. 어쩌면….”
스윽…
남자가 겁을 먹은 여성에게 얼굴을 들이민다.
“우리가 희생자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꺄아아악!”
“하하하! 놀리는 맛이 있다니까.”
“마웬. 자중하거라.”
“아… 숙부님, 좀 과했나요?”
“과했어요! 절대로 과했다고요!”
머리를 긁적이는 마웬이라는 남자.
머쓱한지 접시에 담긴 음식을 포크로 집어 오물거렸다.
쩝… 쩝…
“음… 음식이 빨리 나왔네, 어라? 근데 내 거만 나온 거? 아니, 그보다 난 아직 주문을 안 했는데?”
…어라?
‘저거 설마 내….’
여관 주인 대신 접객하는 소년을 바라보자, 소년이 별안간 헉 하는 소리와 함께 안절부절못하는 태도를 내비쳤다.
‘내가 먼저 왔는데… 음식이 저쪽부터 잘못 나간 거네.’
아마도 소년의 불안한 눈빛으로 보아하니 주인에게 꾸중을 듣거나, 손님에게 화풀이를 당할 거라 예상하는 듯했다.
“…이봐.”
그런데, 마웬이라는 남자가 생뚱맞게 내게 걸어와 말을 걸었다.
“아무래도 내가 당신 음식을 실수로 먼저 먹어버린 모양이야.”
“그런 것 같군.”
“사죄하는 의미에서 당신 아침은 내가 살게. 그걸로 눈감아주지 않을래?”
…이 녀석.
“그 정도면 충분하지.”
“고마워!”
툭툭…
녀석이 자리로 되돌아가며 점원의 어깨를 두드렸다.
첫인상과 달리, 생각보다 제대로 된 녀석일지도?
이후엔, 별다른 대화 없이 묵묵히 아침을 음미했다.
끼이이익…
얼마 지나지 않아 수상한 자가 여관의 문을 열고 나타나기 전까지는.
‘…음?’
얼굴을 가로지르는 큰 흉터.
몇 개 빠진 치아.
상당히 험상궂은 얼굴에 덩치도 거대한 남자였다.
녀석은 다짜고짜 여관 주인에게 다가가 그를 압박했다.
“이봐, 주인장. 요 며칠 이곳에 수상한 자가 나타나지 않았나?”
“…수상한 자라니?”
“잘 떠올려 봐. 중요한 일이니까.”
“뭔 소리인지 모르겠네. 당신한테나 중요하지, 나한테는 중요하지도 않은 일이….”
저벅…
“읏….”
“하지 마세요!”
불순한 낌새가 느껴지자, 아까의 점원이 주인장의 앞을 막았다.
“흐으음….”
갑자기 들이닥친 불청객 녀석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이곳에서 밥을 먹고 있던 투숙객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설마 지금 날 보는 거냐?’
저벅…
저벅…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이봐, 너.”
“……?”
“이 마을엔 언제 왔지?”
“…어제쯤?”
“호… 그렇다 이거지?”
이 녀석, 아무래도 나를 의심하는 것 같다.
‘누굴 찾길래 이렇게….’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인물.
‘…아하.’
아무래도 최근 인근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때문에 고용된 녀석인 듯했다.
나로서도 이런 만남은 반갑기 그지없다고. 사소한 정보 하나하나가 첩보 활동의 일환이니까.
“테첸의 돈 많은 집 아가씨가 죽은 모양이야. 덕분에 일 벌인 녀석을 잡아들이라고 나도 돈을 좀 받았고. 대충 알아들었지?”
알아듣긴 했는데, 딱히 협조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너, 이 지방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여긴 뭐 하러 온 거지? 일행도 없는 걸 보면….”
“모험가다.”
“그러시겠지. 통행증을 볼 수 있을까?”
스윽…
녀석이 품에 손을 가져갔다.
잘못 대응하면 곧장 피를 볼 듯한 긴장감.
‘…잘못 걸렸네? 너무 터프하잖아.’
이대로라면 첩보 활동은 시작도 못 해보고 리우디라에서 경계를 받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최악의 경우 실력 행사까지 각오한, 그때였다.
“에헤이! 무슨 일이야, 다들? 아침 댓바람부터.”
“…넌 뭐냐?”
“나? 마웬. 보시다시피 아침 먹고 있었어. 누구 때문에 체하기 직전까지 갔지만 말이야.”
“…일행인가?”
“아니.”
“그럼 어째서 이 녀석을 감싸는 거냐?”
“감싸기는! 댁은 칼 쿠르소를 찾고 있는 거지?”
“…….”
“테첸 일은 안타깝게 됐어. 우리도 거기서 왔거든. 아, 내가 지금 무슨 말이 하고 싶으냐면. 리우디라에는 칼 쿠르소가 없는 것 같다는 얘기였어.”
마웬의 말에 남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뭔 헛소리냐?”
“숙부님께서는 굉장하신 분이거든. 과거에 사자 혼 성기사단의 부단장까지 지내셨었어.”
“사, 사자 혼….”
“리우디라에 칼 쿠르소가 있었으면 아마 숙부님께서 먼저 알아채시고….”
“마웬. 그만 떠들도록 해라.”
“윽….”
저 중년이 사자 혼 성기사단 소속이었다고?
‘어쩐지… 무시할 수 없는 분위기였어.’
파우스트의 몸뚱이는 감이 좋은 건지, 강자를 알아보기 쉬운 듯했다. 감각이 저 중년을 조심하라 말하는 걸 보면.
“흠… 그런 사람이 왜 이런 변방에….”
“내 숙부님 되시거든.”
“큭… 그래서, 이 자는 칼 쿠르소와 관련 없다는 거냐?”
“바로 맞췄어. 그렇죠, 숙부님?”
스윽…
숙부라는 자와 눈이 마주쳤다.
‘고양이 앞에 생쥐 꼴이군.’
끄덕…
“봤지?”
“…알겠다. 다른 곳을 찾아보지.”
“너무 열심히는 하지 말아! 칼 쿠르소가 이 마을에 와 있다면 나와 숙부님이 가장 먼저 알아채고 처단할 테니.”
“흥.”
끼이이익…
후련하게 퇴장하는 녀석.
남겨진 나와 마웬이라는 작자가 어색하게 마주 봐야 했다.
“이걸로 아침은 안 사도 되는 거지?”
* * *
특이한 녀석들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이나 먹으려 했다가 별일을 다 겪는군.’
그렇다고 썩 기분 나쁜 일도 아니었다.
마웬과 그의 숙부, 그리고 그들의 일행은 친절했으며 그들 덕분에 휘말린 시비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 기분은 대체 뭐지? 음….’
친절한 이웃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어째서 찝찝함이 먼저 찾아오는 건지.
‘이유를 모르겠군.’
아침에 여관에서 마주쳤던 용병은 그대로 여관을 벗어나 칼 쿠르소의 흔적을 찾기 위해 마을을 들쑤시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오후가 한창인 지금, 곳곳에서 녀석에 대한 소문 아닌 소문들이 내 귀에까지 들어오고 있으니 말이다.
“덕분에 이쪽도 움직이기 어렵게 됐잖아.”
곤란하게 됐다.
칼 쿠르소에 대한 실마리를 찾는 건 녀석보다 내게 더 중요하다고.
그래도, 녀석이 이만큼이나 열심인데도 리우디라에서 별다른 흔적을 잡지 못한 것을 보면 아직 칼 쿠르소가 이곳에 방문하기에는 조금 일렀나 보다.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 칼 쿠르소가 등장하려면 적어도… 몇 달? 아니, 반년쯤은 시간을 보내야 할지도 몰라.’
혹시 모를 불안감에 이곳에 하루 더 머물렀지만, 어제 떠나는 편이 정답이었던 듯했다.
“먹을 것 좀….”
“…….”
“먹을 것 좀 주세요….”
시선이 닿는 곳에, 마차가 있다.
철창으로 둘러싸인 내부가 보이는 상자.
‘노예상이로군.’
불쾌한 디자인으로 기억에 남아있는 오브젝트. 이런 상자에 어린 노예를 실어 파는 노예상이 제국엔 수두룩했다.
그중에서도 마족 노예는 이곳처럼 변방에서도 수요가 있을 만큼 잘 팔려나갔다.
아니, 리우디라의 특수성 때문이기도 한가.
‘대수림 인근이니… 던전의 수색 용도로 사용하라는 거겠지.’
이곳에서 팔린 마족들이 수색을 마치고 되돌아올 확률은 얼마나 될까?
‘…많이 쳐줘봤자 3할이 넘지 않겠지.’
마족의 눈은 총기는커녕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삶을 포기한 자의 눈이지만, 조금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색을 되찾을 수 있을까.
부스럭…
소지품에 있던 토막 난 빵을 꺼내 철창의 마족에게 내밀었다. 딱히 의미는 없는 행동이다.
구원도, 조롱도 아니다.
으적… 으적…
허겁지겁 받아먹는 어린 마족.
순식간에 배를 채운 녀석이 다시금 철창 밖으로 손을 내민다.
손바닥을 보이지 않는 게, 감사 인사를 전하려는 듯했다.
가만히 그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을 때쯤, 누군가 소리를 냈다.
“더러운 손 치워라, 마족 녀석아.”
“…….”
마웬, 낮에 보았던 청년이 숙부와 함께 근처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네도 물러나, 마족은….”
알았다.
어째서 이들을 마주했을 때, 반가움보다는 찝찝함이 먼저 찾아왔는지.
“위험하니까.”
이곳에서 난, 마족이고 그들은 인간이다.
우리는 다르다.
“어서 그 손 집어넣지 못해!”
소란에 놀라 뛰쳐나온 노예상이 단단한 나무 몽둥이로 철창을 후려쳤다.
카아앙!
“이 망할 마족 새끼가! 손님 다 떨어트릴 생각이냐!”
겁먹은 마족이, 손을 다시 철창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래, 우리는 같지 않다.
마웬의 무리와 나는 보이지 않는 철창을 사이에 두고 대화하고 있었다는 걸 이젠, 알았다.
이 녀석들은 인간.
‘나는….’
마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