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18
제18화
마웬은 철창 속의 마족에게 서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경멸과 살의가 뒤섞인, 처음 보는 대상에게 보낼 만한 시선이 아니었다.
“마웬, 자중하라 했거늘.”
“…예.”
마웬이 한 발짝 물러나며 내게 말을 걸었다.
“형씨, 마족이란 녀석들은 온통 비열한 저질뿐이야. 가까이해선 안 될 종족이라고.”
그렇게 조언받는 나 역시 마족이었지만, 이들의 눈에는 철모르는 인간처럼 보이는 듯했다.
빌의 위장이 새삼스럽게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조카 녀석에게 사정이 있어서, 이해하게.”
“…이해하지.”
…나도 모르게 경어를 생략했다.
아니, 파우스트는 경어라고는 할 줄 모른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니까.
“외국에서 왔나 보군?”
“부모를 따라 상행을 오래 했다. 미안하군, 이곳의 예절은 모른다.”“굳이 모르는 걸 따를 필요는 없네. 편안하게 대하게.”
“숙부님, 저는….”
“마웬,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는 건 하수들이나 범하는 실수라 누누이 말하지 않았더냐.”
“…그 말이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조카와 숙부의 잔소리 시간이 끝나자 이들은 다시 내게 시선을 돌렸다.
“마루스라 부르게.”
“마루스, 반갑다. 사자 혼이라고 했었지?”
이쪽을 노려보는 시선.
그렇구나, 내 이름.
‘적당한 이름….’
파우스트라는 이름이 유명하진 않겠지만 어쩌면 칠죄종의 실험체로서 알려졌을 수도 있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다.
“폰이라고 한다.”
“그래, 폰… 음? 아아… 나에 관한 이야기는 자네 조카의 말을 들어 안 모양이군.”
“여관에서 대충 들었지. 사자 혼의 부단장이었다고.”
조카인 마웬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맞아, 숙부님께서는 젊은 시절부터 사자 혼에 몸담으셨었다고. 사실, 아마 조금만 더 전선에 계셨었다면 단장 자리도….”
“마웬. 나는 함부로 말하는 버릇을 고치라고 말했다. 혹, 이것도 잊었느냐?”
“읏… 죄송합니다.”
웃기는 녀석들이다.
갑자기 나타나서 또 자신들의 이야기만 늘어놓다니.
‘그럼, 소원대로 이야기라도 들어볼까?’
어차피 칼 쿠르소에 대한 정보 역시도 파편적이었고 얻을 수 있을지 확신도 없었다.
아마도 직접적인 첩보 활동은 오늘로써, 끝.
마을에 머물 수 있는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이제 제한된 시간 동안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이곳에서 가장 음식이 맛있는 식당의 위치나, 술집에서 파는 맥주의 평균 가격 혹은 이들에 대한 사담이 다일 테지.
어쩔 수 없이 이들과 노닥거리는 것 외에 달리 선택지가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마웬은 마족을 각별하게 싫어하는 것 같은….”
“그건….”
마웬 대신 마루스가 답했다.
“녀석의 아버지… 내게는 형님 되시는 분이 마족 저항군의 흔적을 쫓다 돌아가셨다.”
“마족은… 모두 쓰레기들이야. 아버지는… 아버지는….”
부모를 잃은 자식이 느낄 감정이야 뻔했다. 온 힘을 다해 그 원흉을 증오하는 것.
하나, 지금의 내게는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애초에,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잖아?’
심지어 마족과 인간의 패권전쟁은 인간 측에서 먼저 일으킨 일이다.
“마루스도 같은 생각인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상대에게 이렇게 말하는 건 역시 어색하다.
“마족에 대해서 말인가?”
“그래, 마족.”
어째선지, 이자에게 묻고 싶었다.
시종일관 태연해 보이는 저 태도가, 묘하게 내 이목을 끌었기에.
“끄응… 마웬이 싫어할 만한 대답일 텐데.”
“숙부님. 저는 괜찮습니다. 그리고 전 제가 아직 어리숙하다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러니….”
대충 해석하자면, 자신은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대화를 나누라는 뜻이다.
“그럼 말하지. 난 마웬의 생각과는 다르다네. 마족 역시 인간과 다르지 않아.”
“…숙부님!”
“마웬, 입으로 내뱉은 말은 지키거라. 그게 아니라면 설마 내 말까지 막을 것이냐?”
“크윽….”
“마족… 그래, 그들이 아주 오래전 솔로몬 왕의 치세 전에는 인류와 공존해왔다는 것 정도는 자네도 알고 있겠지?”
“알고 있다.”
레메게톤의 작 중 배경이기도 하다.
“과거엔 그랬다는 거지. 패권전쟁이 일어난 이후엔 이념도 선악도 의미가 없어졌지. 오직 승자와 패자만이 역사에 남았을 뿐이야.”
스윽…
마루스가 손가락으로 철창을 가리켰다.
“저 아이와 우리가 이렇게 철창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는 것도 그 때문일세. 저 아이가 특별히 악하거나 출생이 비천하거나 마족이기 때문일까? 아닐세, 그저… 승자와 패자로 나뉘었을 뿐이지.”
“…….”
마웬이 마루스의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마웬, 네 증오는 이해한다. 하지만 증오는 들불과도 같아. 허망하게도 잡초뿐 아니라 모든 들판을 태운다. 늘 명심하거라.”
“…유념하겠습니다.”
“네게서 여러 번 들은 말이다. 이번엔 지키도록.”
“…….”
묘한 기분이다.
이 세계관에서 의외로 새로운 시각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이가 있었다니.
“이 모든 게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인가?”
“무언가는 연관이 있었겠지. 하지만 이젠 더는 그런 것과는 멀어져 버린 걸세. …이 이야기는 그만하지. 썩 개운한 이야기는 아니니 말이야.”
마웬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내 등을 툭 쳤다.
“참, 그 소문에 대해서는 들었어?”
“소문?”
“못 들었나 보군. 칼 쿠르소 말이야.”
“그 녀석 말인가….”
“그래, 괜히 아침부터 널 곤경에 처하게 했던 그 녀석. 소문이 도는 모양이야.”
“어떤…?”
운이 좋다.
알아서 정보가 굴러들어 오다니.
“…악마라는 소문 말이야.”
“…악마?”
“푸하하! 놀랐지? 나도 처음 들었을 땐 놀랐어. 근데, 역시 신빙성은 음….”
“뭐 때문에 그런 소문이 퍼졌지?”
“시체의 눈을 훼손하는 점, 그리고 아직 잡히지 않은 점 때문이지 뭐. 악마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실마리조차 없을 거라고는 다들 생각하기 어렵지.”
“흐음….”
이 역시, 궁금하다.
어쩐지 마웬보다도 마루스가 내뱉는 말들이 내게는 더 도움이 되는 듯했기에.
“마루스는….”
“이런, 또 내 생각인가?”
“…….”
“악마라… 흐음….”
마루스가 피식 웃으며 내게 물었다.
“폰, 혹시 자네는 악마를 본 적 있는가?”
이 중년의 물음에 당혹스러움을 느꼈지만, 최대한 태연하게 답했다.
“없다.”
“음, 역시 그런가. 나는 있네.”
“…뭐?”
“악마를 본 적이 있다네.”
“숙부님, 일전에 들었던 그 얘기군요.”
“그래.”
무슨 얘기인 걸까?
“사자 혼에 몸담았을 무렵일세. 수십 년도 더 전이겠군. 당시 칠죄종 중 폭식의 마왕의 흔적을 발견해 단원들과 추격하는 도중, 기이한 상황을 맞이했네.”
“기이한… 상황?”
“우리가 들이닥친 시점에 폭식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고, 웬 뿔 달린 여인이 홀로 서 있더군.”
마루스의 눈빛이 변했다.
묘하게, 생기 넘치는 빛으로.
그 빛은 잠시 머물다 사라졌다.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도, 그처럼 아름다운 여인은 본 적이 없었다네. 그녀의 외모를 마주한 그 찰나에, 여인이 악마라는 걸 깨달았지.”
“이후는….”
“어떻게 됐을 것 같은가?”
“…….”
“단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단원이 그 자리에서 참살당했네. 그런 잔학무도한 일을 벌인 악마는 유유히 자리를 떴고 말일세. 어떤 죄책감도, 어떤 숨김도 없었어. 그녀는 당당했다네.”
“음….”
“그날, 그 현장을 목격하고도 살아남은 단원들은 나를 포함해 모두 직위를 내려놓았지. 그만큼….”
침을 삼키는 중년.
마루스가 하고자 하는 말을, 나 역시 짐작할 수 있었다.
“칼 쿠르소는 악마가 아닐세. 고작해야 한두 명의 생명을 빼앗고는 자취를 감춘다니… 악마가 할 법한 행동이 아니야.”
“…그렇군.”
“다만 칼 쿠르소가 뭐가 되었든, 빨리 붙잡혀야겠지. 그를 모방하는 자가 생겨날 수도 있고 하루빨리 위협이 사라지는 편이 제국민들의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줄 테니 말이야.”
마루스와의 대화는, 내가 가졌던 레메게톤의 세계관에 대한 인식을 더 크게 넓히는 느낌이었다.
그가 태양의 대륙, 솔라리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재해석하는 건 신선한 충격이었다.
뭐랄까… 시간만 넉넉했다면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정도로.
마루스라는 인물과의 접촉은 그저 흐릿한 색으로 칠해져 있던 이 세계의 뒷배경이, 사실은 뻥 뚫린 자유로운 공간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계기 같았다.
“어이! 마웬! 아, 마루스 님까지 계셨군요.”
마웬의 일행이 마차 근처로 오고 있었다.
“…아, 이런. 친구, 미안해. 가봐야 할 시간이야.”
그의 호칭이 낯설었다.
친구라니.
쿠르릉…
“음? 비가 올 모양인데? 아무튼, 다음에 볼 수 있으면 또 보자고.”
“…즐거웠다.”
* * *
쏴아아아아…
흐릿한 하늘이 결국엔 비를 쏟아냈다.
원래는 오후가 지날 무렵, 너무 늦기 전에 리우디라를 벗어날 생각이었지만 뜻밖의 호우에 발이 묶여버렸다.
끼이익…
방문을 열고 1층으로 내려가자 여관 주인장이 꾸벅꾸벅 졸면서 말을 걸어왔다.
“빗길인데, 돌아가는가?”
“일정이 있다.”
“먹고 사는 일보다 중요한 건 없지. 잘 가시게. 생각나면 또 들르고. 음… 저기 문 앞에 걸어둔 로브는 사용해도 좋네.”
“…고맙다.”
쏴아아아아…
호우는 순식간에 리우디라를 침묵하게 했다.
이런 작은 마을은 비가 오면 다들 밖에 나오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 시간이 늦었으니, 등불을 켜둔 곳도 몇 되지 않았다.
‘떠나기엔 최적의 시간대로군.’
다소 아쉬운 건, 직접 행동에 나선 것치고는 이렇다 할 정보를 얻지 못했다는 것.
‘그래도 여기 온 목적은 대부분 이뤘으니, 손해는 없는 셈이지.’
칼 쿠르소에 대한 뜬 소문만 존재한다는 건, 그만큼 아직 에피소드의 종장이 멀었다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당분간, 던전은 안전할 것이다.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이곳에 오래 머물렀으니 다행인 일이다.
아무도 없는 새벽.
장대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는 길거리를 홀로 우두커니 걸었다.
제법 운치가 있는 순간이라고 생각하던 도중, 무언가의 그림자를 보고 말았다.
“…사람?”
똑같이 우비의 역할을 하는 로브를 쓰고 제법 낯익은 길로 접어드는 그림자.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컥….”
비명.
이건 비명이었다.
팟.
몸을 숨긴 채로, 그림자가 방금 벌인 일을 최대한 들키지 않게 확인했다.
빗줄기 사이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피의 주인은 바닥에 널브러진 채로 쓰러져 있었다.
‘…저건!’
낮에 시비를 걸었던 그 녀석…?
칼 쿠르소의 행방을 들쑤시고 다니던….
“억….”
이번엔 다른 곳에서의 비명.
파아아앗-!
용병의 시체를 스쳐 지나가다,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이런.”
눈.
두 눈이 있는 자리를 횡으로 긋고 지나간 칼자국.
‘…설마!’
시체의 확인을 멈추고 재빨리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확인했다.
낮의 그 마차다.
어린 마족이 구속되어 있던.
노예상의 마차!
철퍽…
마차에서 무언가 굴러떨어졌다.
“…….”
눈이 훼손당한 마족.
낮의 그 굶주렸던 아이다.
아이를 떨어트린 그림자는 이쪽을 슬쩍 보고는…
파아아앗-!
빗소리와 함께 현장에서 사라졌다.
녀석을 쫓아야 할지, 상황을 지켜봐야 할지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웠다.
팟…
우선 아이에게 다가갔다.
숨은 붙어있었지만, 복부를 헤집은 검.
“끄르륵… 살려….”
투우욱…
순식간에 두 구의 시체를 마주쳤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다.
스으윽…
멀리서 이곳으로 향하는 빛.
“거기 누구야!”
이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까?
불가능.
파아아앗!
그대로 현장을 벗어나는 선택지 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거기 서!”
어디로…
어디로 도망가야 하지?
– 정문의 경계병들은 잠재워뒀습니다. 서두르십시오.
빌!
빌의 목소리다.
빗소리와 함께 곧 녀석의 소리는 파묻혔다.
생존 루트가 확보되자, 머릿속이 정리되며 오직 하나의 불안감으로 가득 채워졌다.
“칼… 쿠르소….”
에피소드 1막의 최종장에서나 등장하는 녀석이, 지금 리우디라에 왔다.
예정보다도 훨씬 일찍.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은… 날 찾아올 것이다.
어쩌면, 이 비가 그치기도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