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19
제19화
쾅, 쾅!
“숙부님!”
“웬 소란이냐?”
“그게… 죄, 죄송합니다. 상황이 급박해서….”
끼이이익…
마웬의 목소리에 마루스가 문을 열었다.
뚝… 뚝…
마웬의 로브에서 빗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무슨 정신으로 이 폭우에 밖에 나갔던 게냐?”
“노, 놈입니다. 놈이… 리우디라에 나타났습니다!”
“…놈이라니?”
마웬이 쇠가 갈리는 듯한 격정적인 목소리로 답했다.
“칼 쿠르소! 연쇄 살인마 녀석이 나타났습니다!”
“…목소리가 크구나.”
“죄송합….”
“확신하느냐?”
마루스의 물음에 머뭇거리던 마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진실된 반응에 마루스가 벽에 걸린 버클러와 롱소드를 챙겼다.
하루도 손질을 멈춘 적이 없는 장비들이다. 버클러는 거울처럼 번뜩였고, 롱소드는 떨어지는 빗방울도 벨 수 있으리라.
끼익…
끼익…
계단을 내려오며 숙부인 마루스가 마웬에게 물었다.
“랜턴은?”
“그… 급하게 오느라… 횃대라면….”
“이런 날씨엔 횃불도 소용이 없다.”
후우우우웅…
마루스의 손끝에서 신성한 빛이 풀려났다.
[마루스가 길잡이의 등불을 사용합니다.] [일정 범위를 밝힙니다.]“가자.”
“예! 놈이 아직 시내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게서 떨어지지 말거라.”
마웬은 든든함을 느끼며 끄덕였다.
“예, 숙부님!”
철퍽! 철퍽!
성기사로 오래 몸담았던 마루스조차도 달릴 때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골목 골목이 진창이 되어 있었다.
“저깁니다!”
마웬이 마루스를 데려간 장소는, 그가 간밤에 사체를 발견한 장소였다.
콰르르릉-!
한차례, 천둥과 함께 하늘이 번쩍이고….
비를 맞는 시체가 보였다.
“이 자는….”
“…네, 맞는 것 같습니다.”
“아침에 우리와 마주쳤던 자로구나.”
“칼 쿠르소를 쫓는다던 용병입니다.”
“…운이 좋지 않았군.”
마루스는 용병의 눈을 자세히 살폈다.
날카로운 무기로 한번 베인 흉터.
눈 양쪽을 길게 가로지르는 그 상흔은 왜 칼 쿠르소가 악마라 추측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끔찍했다.
누군가 봤다면 비명을 지를 만큼 흉했다.
다행히 이 자리에 있는 둘은 시체를 심심찮게 봐왔기에 상흔을 보고도 표정에서 동요를 내비치지 않았다.
“희생자가 한 명 더 있습니다.”
“가지.”
아주 조금 떨어진 위치에, 마웬이 말한 희생자가 누워 있었다.
비에 젖어 불어가는 피부로.
“그 마족 소년이구나.”
“……그렇습니다.”
“마웬, 어떻게 생각하느냐?”
“무슨 말씀이신지….”
“낮까지만 하더라도 너는 이 아이가 죽더라도 하등 아쉬워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나… 지금은 조금 다르게 보이는구나.”
“…맞습니다. 죽을 거라고는… 아니, 죽어도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걸지도요.”
“허망한 죽음이다.”
스윽…
마루스가 시체의 머릿결을 만졌다.
“죽음은 평등하다. 모든 이가 애도 받을 자격이 있지.”
“…미워할 수는 있었어도 그게 올바른 행동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숙부님.”
“미움은 보잘것없는 감정이다. 다스리고 다스려라. 정말로 중요한 너만의 기준을 정해라.”
“예.”
“촌장은 만나봤느냐?”
“프리아를 보냈습니다.”
프리아는 파티의 신관이다.
마웬과 마찬가지로 아직 뜨내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잘했군. 흉수의 흔적은?”
“그건 데일이….”
저 멀리, 파티의 전위인 데일이 달려왔다.
“허억… 헉… 헉… 마웬!”
“데일!”
“크헉… 헉… 헉….”
“숨부터 골라.”
“놓쳤어… 헉… 제기랄… 하필 비가 와서 흔적이… 허억….”
데일의 말에 마루스가 눈썹을 꿈틀했다.
“흉수를 쫓았던 게냐?”
“예. 하지만… 놓쳤습니다.”
“경계병들은 어쩌고?”
“그게… 사건 당시 모두 혼절한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깨워도 한참을 일어나질 않았습니다.”
“…계획적이군.”
“이미 이 마을을 빠져나갔습니다.”
“방향은?”
“…대수림입니다.”
쿵!
마웬이 바닥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제기랄! 빌어먹을 자식!”
“흐으음….”
“숙부님, 뭔가 실마리라도 찾으신 겁니까?”
“의심 가는 구석이 있기는 하다.”
“그게 정말입니까?”
마루스가 상황을 정리했다.
“촌장에게 사실을 전달하고 상황이 정리되면 내게 찾아오도록 해라. 너희 모두.”
“지금 당장에라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이 모든 게 나의 불찰일 수도 있으니.”
잠시 후, 한밤에 리우디라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사건은 곧 마무리가 되었다.
쿵, 쿵.
“들어오거라.”
“예.”
마루스의 방으로 우르르 들어오는 4인.
“촌장은 뭐라고 하더냐?”
“쉬쉬하는 분위기입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서. 이쪽이 도움을 주겠다는데도 막무가내로 축객령을….”
“그럴 테지. 칼 쿠르소가 이 작은 마을에 나타났다는 건 언제라도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하니까. 아마 대수림과 가깝다는 이점에도 외부인의 발길이 끊길 게 분명하다.”
“숙부님께서는 이 모든 게 칼 쿠르소의 소행이라고 판단하시는 겁니까?”
“녀석의 수법은 맞는 것 같구나. 물론 이것 역시 전에 있던 사건들에 대해 전해 들은 부분이니 확신할 수는 없다만… 묘한 구석이 있더구나.”
“묘한… 구석이라고요?”
찝찌름한 표정으로 말하는 마루스.
“그 검의 상흔, 전선에서 본 적이 있다.”
“전선이라면….”
“마족들에게 당했던 단원들에게서 비슷한 상흔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녀석들은 비슷한 검술을 익히고 있었지.”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다면….”
“칼 쿠르소의 정체는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가령… 마족이라든지….”
“마족….”
오리무중이던 사건의 실마리를, 마루스가 쥐고 있는 듯했다.
마웬과 마루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데일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마루스 님, 전에 짐작 가는 자가 있다고 말씀하셨던 걸로….”
“그래. 마웬, 눈치채지 못했느냐?”
“…무엇을 말입니까?”
“네게 한 가지 말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
“제게 숨기신 사실이 있다는 겁니까? 대체 영문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구나. 너와 마주했던 청년에게서 아무런 낌새도 느끼지 못했느냐?”
“…전혀요.”
충격을 받은 듯 동공이 크게 흔들리는 마웬.
“설마 폰, 그 녀석이….”
“녀석은 마족이다.”
“…….”
“…….”
순간, 장내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놈들과 칼날을 맞대 본 나는 알 수 있다. 녀석은 인간이 아니야.”
“저를 놀리시는 겁니까?”
“네게 말하지 않아 미안하구나. 네가 오랜 세월 쌓아온 혐오가 두 눈을 흐리지 않길 바랐다. 좋은 계기가 되어줄 거라 생각한 게 네게 말하지 않은 첫 번째 이유다.”
“…첫 번째 이유라는 건 제가 말하지 못한 다른 이유도 있으셨습니까?”
“그래, 이건 내가 경험한 과거와도 관련된 일이지.”
“어떤….”
마루스가 벌떡 일어나 비 오는 창을 닫았다.
끼익…
“악마를 처음 본 밤, 나는 그날 이후로 그 끔찍한 존재의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되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증오해 마지않는 존재의 실낱같은 흔적을, 성기사 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쫓고 있는 근거이자 나의 저주다.”
마루스는 악마의 냄새를 맡는다.
“하면….”
“폰, 그 아이에게서 악마의 냄새를 맡았다.”
“맙소사….”
“악마 추종자이거나, 혹은 마족 저항군과 연관되어 있겠지.”
“어째서 바로 제압하지 않으셨습니까!”
“녀석을 바로 제압했다면, 기회를 잃었을 것이기에.”
기회?
마웬은 눈에 불꽃을 피웠다.
“설마… 일부러 놓아준 것입니까?”
“그래.”
“악마를 쫓기 위해서?”
“그렇다.”
숙부의 결정에 마웬은 실망했다.
“어찌… 그 결정 때문에 두 명이나 허무하게 죽었습니다.”
“다르다. 더 많은 목숨을 살린 것이지.”
“…….”
“이대로 악마의 행방을 놓친다면 이 실수는 제국에 어떤 재앙으로 되돌아올지 모른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자들의 목숨을 외면하고서야….”
“너라면 다른 결정을 내렸을 거라 말하는 게냐? 그건 단순히 네가 편해지기 위한 결정에 불과할 텐데도?”
“……죄송합니다, 혼란스러워 실언했습니다.”
드르륵…
쏴아아아…
여전히 비가 오고 있다.
“확실한 것은 없다. 하지만, 지금을 놓치면 마지막 남은 기회조차 잃는다.”
“그러면….”
“짐을 꾸려라, 곧장 폰. 그 아이를 쫓을 것이다.”
어디로?
모두가 같은 이름을 떠올렸다.
“대수림으로.”
* * *
쏴아아아아…
철퍽…
철퍽…
며칠째 강행군.
빌에게는 리우디라에 남아있으라 말했다. 이미 내가 마을을 벗어난 이상, 이 비를 뚫고 단숨에 날 추격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칼 쿠르소라면… 가능하려나?’
만일 그렇다 하더라도 빌은 내 곁에 남을 필요가 없었다. 정말로 칼 쿠르소와 마주친다면 빌이 있더라도 참극을 면치 못할 테니까.
던전, 썩은 뿌리까지는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
이틀이나 같은 숲을 지나오면 길을 잃을 수도 있었지만, 던전과 연결된 몸은 잘도 헤매지 않고 목적지까지 다다랐다.
또한, 대수림이라고 하여 늘 같은 풍경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험가들의 손길이 닿아 협곡 지형에 흔들다리가 놓인 구간이나 표지석이 만들어진 장소도 중간중간 나타났다.
인간이란 것들은, 모든 걸 더 편리하게 만드는 걸 좋아했다.
그랬기에 이런 대수림 같은 곳에도 그런 정비들이 종종 이뤄진다.
다만 그런 정비들이, 최근에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기에 낡은 티를 벗을 수는 없었다.
“하아… 하아….”
비를 오래 맞아 몸살에 걸린 모양이다.
몸이 뜨겁다.
하필 이럴 때 긴 폭우가 쏟아지다니.
아니, 오히려 그 때문에 벗어날 수 있었던 건가.
‘…놈들이 오고 있어.’
마웬과 마루스 일행이 따라붙었다는 건 하루 전쯤 알게 되었다.
뒤쫓아온 자들을 먼 위치에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 다들 필사적으로 쫓아오고 있었다. 아마도 지금쯤, 꽤 가까운 거리까지 왔을 것이다.
‘녀석들은 나를 칼 쿠르소라고 생각한 건가?’
혹은,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이번 리우디라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은 그저 기폭제였을 뿐일지도.
“이 다리만 지나면….”
위태로운 흔들다리가 나타났다.
협곡 사이를 가로지르는 지름길.
이 다리를 우회하면 꼬박 하루 넘는 시간이 걸려야 던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모험가들이 만들어놓은 시설의 덕을 던전의 주인인 내가 보고 있으니 아이러니했다.
삐거어어억…
기분 나쁜 울음.
흔들다리에서 나는 소리치고는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삐거어억…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여 건너편에 도달해야 한다.
‘하필 비가 와서….’
낡은 흔들다리에 폭우까지 며칠째 쏟아지고 있으니 평소보다 더 흔들리고 더 불안했다.
삐거어억…
다리를 거의 다 건넜을 때쯤.
타아아아악-!
물 튀기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몸이 휘청였다.
“으읏…!”
중심을 최대한 앞으로 해서 다리의 잔해를 붙잡았다.
콰직…
“하아… 하아….”
가까스로 살았다.
천천히 잔해를 붙잡고 절벽을 기어올랐다.
스윽…
절벽 끝에서 누군가의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새하얗고, 미끈한 손.
손톱도 잘 정리되어 있었다.
“…루시퍼.”
“돌아오셨습니까.”
그녀의 손이 내 손을 붙잡아 당겼다.
“허억… 허억….”
“많은 일이 있으셨던 모양입니다.”
“그래….”
몸 상태가 안 좋다.
심장에서 불이 나는 듯했다.
어느 순간,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그런데 내가 왜… 도망쳐야 하지?’
분명 리우디라에서 사건은 벌어졌지만, 나와는 명백히 관련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눈치챌 수 있다. 내가 범인으로 지목당하는 순간, 죽음이 확정된다는 걸.
그리고 아무도 그 결과를 의심할 리 없다는걸.
어째서?
내가 마족이기 때문이다.
나는 새로운 세상에 마족으로 태어났고, 그것만으로도 죄를 범한 것처럼 되어 버렸다.
인간과 잠깐 부딪힌 것만으로도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찝찝한 감정의 근원을 반드시 이 자리에서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시퍼에게 무언가 지시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루시퍼가 떠나고 얼마 뒤 그녀는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부르셨나요?”
흑요정 여왕 아리엘이 던전을 빠져나와 홀로 내 곁에 서 있었다.
“이 숲에서 사람을 찾을 수 있나?”
“빠르게 움직이고 있나요?”
“아마도.”
“혼자인가요?”
“여럿이다.”
“찾았어요. 이 중에 어떤 자인가요?”
그녀에게 마웬의 인상착의를 말했다.
스으윽…
그리곤 손가락으로 내가 건너온 흔들다리 너머를 가리켰다.
“저곳으로, 녀석을 데려와다오.”
“길을 잃게 만들어야겠군요.”
스으으으으으…
아리엘의 마력이 대수림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이윽고, 건너편 대수림이 스산한 안개와 함께 기이한 힘을 뿜어냈다.
쏴아아아…
부스럭…
조금 기다리자, 숲을 빠져나와 부서진 흔들다리 앞에 선 남자.
“…폰?”
“마웬.”
녀석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그 눈빛에 의문을 잔뜩 담은 채로.
“숙부님께서 말씀하셨어. 폰… 네가 우리를 속였다고.”
“…….”
“네가 마족… 이라고. 아니지?”
스으으윽…
몸을 휘감은 불편한 기운을 털어내자, 동공과 머리칼의 색이 금빛에서 검정으로 변해갔다.
쏴아아아…
마치 색이 비에 씻겨 내려가는 것처럼.
“……속였구나.”
“그렇게나 중요한 문제인가? 내가 마족이라는 게.”
“그건….”
내가 마족이라고 한들, 리우디라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범인이라 여겨질 이유는 없었다.
마웬이 고개를 젓고 말했다.
“또 뭘 속였지? 날 우롱한 거냐?”
“내게 접근한 건 너다.”
“칼 쿠르소… 맞지? 네 이름 말이야.”
“…….”
“정곡을 찔린 표정이잖아?”
역시.
저들은 날 칼 쿠르소로 생각한다.
혹은, 누군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부추겼든가.
“혹시 아니라고 말하면 믿을 건가?”
“……악마와 만난 적이 있어?”
“…….”
이 질문.
– 혹시 자네는 악마를 본 적 있는가?
마루스가 날 향해 던졌던 질문이다.
조금, 기묘한걸. 왜 이 일을 악마와 엮는 거지?
“난 마을의 살인과 관련이 없다.”
“대답해! 넌 악마와 관련이 있어?”
악마와 관련이 있느냐는 얘기… 당연히 거짓으로 답해야 한다. 그런데, 그러기 싫어졌다.
“…그렇다면?”
내 대답에 뭔가를 확신한 것처럼 마웬이 몸을 부르르 떨며 경고했다.
“하하하! …그럼 역시 널 가만히 놔둘 수는 없겠네.”
그래.
내가 녀석을 이 자리에 불러낸 이유다. 왜 내가 저들에게 놀아나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마웬, 궁금한 게 하나 있다.”
“닥쳐! 감히 마족 따위가….”
“누가 네게 그런 힘을 줬지?”
“…뭐?”
“역겹기 그지없구나. 넌 그저 계속해서 날 심판할 이유만을 찾고 있었어.”
“그건 네가 우릴 속인….”
“마족이 인간 행세를 한 게 그토록 화가 날 일인가? 너와 대등한 대화를 나눈 게?”
“너, 너는 악마와 관련이 있고 마을의 살인 사건과 무관하지 않….”
“아니지… 아니야. 스스로를 속이지 마라, 마웬. 넌 그저 내가 마족인 게 싫은 것뿐이야, 안 그런가?”
마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멋대로 넘겨짚기는….”
“나는 리우디라의 살인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내 정체는 칼 쿠르소가 아니다. 이것으로 대답은 되었을 텐데, 그런데도 날 쫓겠는가?”
마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악마와 관련이 있다면. 네가 마족이라면.”
“…….”
“아니! 설령 악마와 관련이 없다고 한들, 넌 우리와 가야 해. 가서 네가 무해하다는 걸 입증해야 할 거야.”
“…웃기는군. 무슨 권리로?”
“인간의 권리로써, 마족을 심판하겠다.”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다.
마족과 인간은 패권전쟁 이후, 늘 이래왔다.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이 사뭇 다르다는 걸 지금 느꼈다.
결코 섞일 수 없는, 죽고 죽이는 관계.
“파우스트다.”
“…뭐?”
“나의 이름. 칼 쿠르소 따위가 아닌… 파우스트. 똑똑히 기억해 두는 게 좋을 거다.”
“…….”
으드득…
“네 유언이 혹여 다른 이름을 말하지 않도록.”
“폰!”
뒤돌아서며, 멀어진다.
쫓을 테면, 쫓아봐라.
너희 중 누가 칼 쿠르소일까.
…누가 됐든 상관없다.
“모두 죽여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