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2
제2화
스으윽…
정신을 차렸으니, 일단은 루시퍼의 무릎에서 머리를 일으켰다.
“으윽….”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욱신거렸다. 현실의 나였다면, 아마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조차 힘들었을 정도의 부상이다.
비척거리며 일어나는데, 루시퍼는 어쩐 일인지 아직도 무릎을 꿇은 채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째서 일어나지 않는 것인지,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눈을 깜빡이며 가만히 쳐다볼 뿐인 루시퍼.
‘내 지시를 기다리는 건가?’
착각이 아니다.
그녀는 별빛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뭔가를 기대하는 듯했다.
“일어나라.”
뭐?
난 방금 이 문장이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맞나 의심했다. 마지막으로 처음 본 상대에게 명령조로 말해 본 게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심지어 학생들에게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데….’
그런데도, 그 명령이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내 어조는 딱딱하고 차가웠다.
‘이거 설마 그것 때문인가?’
파우스트의 출생…이라고 해야 할까?
레메게톤의 주인공이자 유저가 플레이하는 파우스트라는 인물의 내력은 다소 특이했다.
아마 생각했던 것보다 엄한 어조로 말이 튀어나오는 것은 그 때문인 게 아닐까?
일단,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설명해라.”
싸늘한 태도로 일관하는 내게 어떤 반항기도 내비치지 않은 루시퍼가, 설명을 시작했다.
“파우스트 님의 기억이 어디서부터 단절됐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소실, 단두대부터가 기억의 전부다.”
“이런, 아마 인간들이 세뇌를 시도한 걸지도…. 지금부터 설명하겠습니다.”
스윽…
루시퍼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은발과는 대조되는 색의 동공이 반짝였다.
‘이런 비주얼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꼭 잘 만든 CG 같은… CG?’
CG라고 하니까 갑자기 생각난 게 있다.
그 단두대 말이다.
당시엔 몰랐지만, 그 순간이 돌이켜보면 낯설지만은 않았다. 꼭 어디선가 본 듯한 전개.
‘컷신이었나?’
컷신은 보통 필연적인 이벤트가 발생하는 장면을 영상처럼 보여주는 것을 일컫는데, 모바일 게임에서뿐만 아니라 스토리 게임에서도 자주 쓰인다.
‘그 단두대… 어쩐지, 그랬군.’
단두대에 사로잡힌 마족 여럿.
분명, 레메게톤의 유저는 그런 컷신과 함께 시작했었다.
다만, 이번엔 단두대를 위에서 바라보는 시점이 아니라 실제로 단두대에 구속된 채로 군중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나는 이를 눈치채지 못한 거다.
‘그러니까, 내가 경험한 게 튜토리얼 컷신이라는 거잖아?’
그러나 프롤로그의 컷신과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았다. 딱 하나, 불순물이 섞여 있었으니까.
“무슨 문제라도…?”
“…….”
이 여자다.
루시퍼라는 존재는 원래 튜토리얼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본래는 마족 진영의 결사대가 죽음을 각오하고 단두대를 습격, 단두대에 사로잡혔던 마족들은 그들의 희생을 뒤로한 채 도주한다.
그게 레메게톤의 프롤로그나 마찬가지다.
‘루시퍼, 넌 대체 어디서 온 거냐?’
루시퍼의 무표정한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쉽게 그 해답을 얻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상황 파악이 우선이다.
“시작하지.”
“시작하겠습니다.”
촤르륵-!
어디서 꺼낸 것인지 거대한 양피지가 허공에 펼쳐졌다.
악마 대부분은 타고난 마법사 혹은 마력 사용의 대가였다. 그들의 기행에 놀라기에는 앞서 겪었던 일이 너무 충격적이었기에 반응하지 못했다.
이제 코앞에서 대마법이라도 펼쳐지지 않는 이상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
“거대한 태양의 대륙, 솔라리아. 대륙은 인간과 마족을 포함하여….”
인간과 마족.
아마 그 얘기를 하려나 본데.
그 이야기까진 필요 없다.
전부 아는 내용이고, 배경일 뿐이니.
“그만. 그 부분은 건너뛰지.”
“…떠올리신 겁니까?”
“그래, 그쪽보다 달리 중요한 게 있다.”
이 게임의 배경은 어차피 한가할 때 실컷 물고 뜯으며 사색할 수 있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당장 집 천장에서 물이 새는데 국제정세와 환율 변동이 어떻고 한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나는 무엇이냐?”
“…….”
“다시 묻겠다. 루시퍼, 나는 무엇이고 너는 무엇이냐?”
“파우스트 님은 마족입니다.”
넌지시 던진 질문에 잠시 멈칫하는 루시퍼.
‘이것 봐라?’
한 번 더 기회를 주지.
속일 생각하지 마.
“그게 끝이 아닐 텐데?”
루시퍼가 답했다.
“파우스트 님은 일곱 마왕의 실패작입니다.”
“…….”
이제야 바른대로 말하는군.
좋아, 그 대답을 듣고 싶었어.
“인간 진영과의 결전 패배 후 간신히 살아남은 마족 중 가장 강한 힘을 지닌 7인은 마왕… 칠죄종이라 불립니다. 그들은 전황을 뒤집기 위해 하나의 실험을 했었습니다.”
아까 전, 루시퍼의 이야기를 건너뛰었기 때문에 이야기가 뚝뚝 끊어지는 감이 있다.
대강, 인간과 마족이 모종의 사유로 결전을 치렀고 마족은 궤멸 수준까지 밀렸다.
살아남은 수뇌들이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몇 가지 수를 썼는데, 그중 제일 하책이 바로 파우스트가 얽혀든 실험이다.
마왕 연성.
그들을 대신하여 후대의 마왕이 되어 인간에 맞설 실험체를 만들어 낸 것.
‘실패했지.’
루시퍼가 부연 설명했다.
“실험은 실험체들에 심각한 결함이 발견돼 실패했고… 파우스트 님을 포함하여 살아남은 실험체 모두 버려졌습니다.”
“그래서, 내가 깨어난 곳이 단두대인가?”
“그렇습니다. 다른 형제분들도….”
형제… 형제라.
‘웃긴 말이군.’
단두대 좀 같이 썼다고 형제면 그거야말로 말장난이다.
‘아무튼… 버림받은 헌신짝 신세라는 건 게임이나 이곳에서나 일치하는군.’
요는, 마왕군이든 솔로몬의 군대든 이 파우스트란 놈을 반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임의 설정과 완전히 일치한다.
‘마왕군 입장에선 한 번 버린 결함품이고, 인간 진영에서는 추적해 살해해야만 하는 마족이니….’
단두대에서 두 조각으로 분리되었어야 하는 운명, 파우스트여.
…대체 나 왜 살아있는 거냐?
구해주러 와야 하는 결사대는 다 어디로 간 거지?
스윽…
‘왜 네가 대신 온 거야?’
루시퍼를 노려보며 물었다.
“마저 답하라.”
“…….”
“루시퍼, 그대는 악마인가?”
“…실로 그렇습니다.”
“악마가 어째서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돕는 거지?”
“그건, 운명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운명?”
“오직 파우스트 님만이 제가 만족할 만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음을.”
…이건 뭔 헛소리인지 잘은 모르겠다만, 일단 거짓말은 아닌 듯했다. 애초에 거짓말이든 아니든 나를 구한 건 그녀였다.
‘단순한 오류일지, 혹은 꿍꿍이가 숨겨져 있는지는 나중에 밝혀내면 될 것이고 지금 중요한 건 생존이다.’
그러려면 도움을 구해야…
스윽…
루시퍼와 시선을 교환했다.
내 진정한 정체를 밝히면 그녀는 어떻게 반응할까?
지금 그녀의 앞에 있는 건 파우스트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는 김서진이라고.
순진무구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그녀는 어쨌든 악마다.
…그러니 그 결과를 딱히 알고 싶지 않았다.
이 게임의 악마들은 멀쩡해 보이다가도 가끔 이상한 행동을 하니까. 거기에 휩쓸리면 목이 날아간다고.
‘그건 그렇고, 대강은… 납득이 가는 상황이네.’
단두대도, 현재 상황도.
전체적으로…
‘내가 게임 속으로 들어온 것만 빼면 말이지.’
휙…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은 음습한 동굴 같았다.
“추격은?”
“떨쳐냈습니다. 아니, 쫓아올 수 없습니다. 초장거리 전이를 했으니.”
“…뭐?”
툭.
루시퍼가 그녀 자신의 이마에 난 뿔을 건드렸다.
‘어라? 그러고 보니 뿔이….’
루시퍼의 뿔은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검은색이었다. 그 검은 뿔이 지금은 탈색이라도 한 듯 완전히 새하얗게 되어 있었다.
“전이를 위해 모든 힘을 끌어 썼습니다. 아마도 꽤 오랫동안은 아예 힘을 쓸 수 없는 점 미리 사죄드립니다.”
“…짐이군.”
파우스트가 되더니 이제 독설이 입에 붙었다.
‘내 생각보다도 먼저 말이 튀어나오잖아?’
파우스트의 이러한 말투나 행동은 그의 천성과는 다른 문제였다. 지금 그는… 아니, 나는 불안정의 대명사라고도 할 수 있었다.
“…용서해주시길.”
루시퍼는 불쾌함을 느끼기보다는 정말로 면목 없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된다.
파우스트니까.
“이곳은 어딘가?”
대충 예상가는 장소이긴 하다만.
확인을 위해 물었다.
“칼헤일 지방의 대수림입니다.”
“단두대의 위치는?”
“호클라니 섬의 승전 성채였습니다.”
“확실히 추격자는 없겠군.”
이곳은 대수림 내부의 썩은 뿌리.
파우스트가 처음 거점으로 삼는 장소다.
잠시 턱을 괴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난 파우스트가 된 것 같다.’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환생인지 전생인지 빙의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고.
‘현실의 내 몸은 어떻게 됐을까?’
죽은 걸까?
그게 아니라면 돌아갈 수는 있을까?
‘…돌아간다고?’
피가 식었다.
마족의 피는 더할 나위 없이 차갑다는 레메게톤식 농담이 정말인가 싶을 정도로.
‘무엇을 위해… 돌아가야 하지?’
아내도, 아내의 흔적도 없는 삶으로.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반겨주는 이 없는 생활로.
‘아니, 왜 그런 생각을….’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스윽-
움찔…
찡그리며 미간에 손가락을 얹자 루시퍼가 긴장한 게 느껴졌다.
‘돌아가고 싶다든가 그런 문제보다… 살아남을 수는 있을까?’
우선 내가 가진 레메게톤의 정보를 떠올려야만 한다.
음…
음…
‘그다지… 좋지 않은 기억이 가득한데.’
종합한 레메게톤의 정보를 토대로, 앞으로의 결과를 도출해봤다.
‘최소한 내가 경험한 게임의 초중반부까지 파우스트의 사망 없이 도달할 수 있나?’
…불가능.
머릿속에 불가능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심지어, 이 게임은 조기 서버 종료를 앞뒀었으며 에피소드도 마무리되지 않았었는데도 말이다.
‘이곳에서 파우스트가 사망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게임에서는 분명 패퇴했다는 연출을 거쳐 생존했지만, 현실이 된 지금 그렇게 상황이 형편 좋게 흘러갈 것 같지는 않은데.
“루시퍼.”
“예.”
“던전의 상황은?”
내 말에 루시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답한다.
“이곳이 던전이라는 걸 알고 계셨습니까?”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상황은?”
“던전은 미답파 상태입니다. 속히 정리가 필요해 보입니다.”
“전력이 필요하겠군.”
이쯤 됐으면 대책을 내놓도록 해.
“다행히 전이 위치가 던전 코어와 가깝습니다.”
“안내하도록.”
“예.”
저벅…
저벅…
걸으면서 생각을 이어 나갔다.
앞으로 이곳에서 살게 될 텐데, 잘 적응할 수는 있을지. 지금이라도 거짓말처럼 꿈에서 깨어나지는 않을지.
만약 이곳에서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한다면,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놓치고 있는 것?’
생각났다, 한 가지.
팍…
느껴지는 감촉에 고개를 모로 슬쩍 돌렸더니 루시퍼가 내 등 뒤로 숨는 게 보였다. 그녀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몬스터입니다, 무리와 떨어진 아이들인 듯합니다.”
“……?”
“오늘만큼은, 저는 아무것도 도와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 그럴 것 같더라고.
튜토리얼의 연장이다.
아직 몇 단계를 더 거쳐야 하거든.
– 프키이이…
[썩은 뿌리 수액 벌레가 등장합니다.] [전투 중 조작은 기본적으로 자동으로 이루어집니다.] [언제든 조작을 수동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Tip: 기본 공격을 이용하여 게이지를 쌓은 후에, 무기 종류에 따라 다양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썩은 나무 수액 벌레.
꿈틀대며 나타나는 3마리의 거대 벌레들.
거대 벌레라는 것도 일반적인 벌레에 비해서 그렇다는 것이지, 짬밥 잘 먹은 시골 진돗개만 한 크기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그로테스크하긴 했지만.
현실의 김서진이라면 방충망을 뚫고 들어온 날벌레 한 마리에도 벌벌 떨게 뻔했지만, 파우스트는 다르다.
강제된 전투를 앞둔 지금,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전투라… 시험해볼 필요가 있다.’
전쟁터 한가운데에 떨어졌으니, 두려울 법도 한데 신기하게 조금의 떨림도 없었다.
‘그렇다면….’
실전 경험은 귀중하다.
리스크 없이 연습을 할 수 있는 귀중한 순간이다.
내가 만약 이곳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면, 이와 같이 훌륭한 기회는 좀처럼 없겠지.
아마도 다음엔 더 큰 괴물 혹은 노련한 인간과 맞서야 한다.
꿈틀…
몸을 곧추세우는 벌레들.
감정보다 파우스트의 신체가 어떻게 움직일지, 느끼는 게 먼저였다.
토오오옹-!
스프링처럼 움츠렸다가 튀어나오는 세 마리의 벌레들.
팟-!
‘몸이….’
살면서 이렇게 민첩하게 움직여봤던 적이 있나 생각할 정도로 기민하게 반응하는 몸.
동시다발적인 공격을 공중에서 회전하며 피했다.
수액 벌레는 썩은 뿌리 던전의 최하급 몬스터.
당연히 연계나 연타를 기대할 만한 스펙이 아니다.
후우우우웅…
‘굉장해….’
콰지이이익-!
파우스트의 몸, 그 탄력과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맨손으로 벌레를 짓이길 정도로.
피이이이잉-!
날카로운 뭔가를 뱉어내는 벌레들.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패턴이다.
팟…
당연하게도 가볍게 몸의 축을 틀어버리는 것으로 대응.
퍼어어엉-!
벌레 한 마리를 발로 차버리자,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녀석이 터져버렸다.
후두둑…
앞서와 마찬가지로 진액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지만, 파우스트… 아니 난 차분함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여기서는….’
이렇게 강하고 빠른 몸은 낯설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익숙해져야 했다.
앞으론 이게 내 몸뚱이일 테니까.
‘흐으읍…!’
손날로 벌레의 몸통을 쑤셨다.
푸우우우우우욱…
‘…느낌이 묘해.’
생생하게 전해져오는 벌레의 몸속.
그 불쾌한 온도와 질감이 이 상황이 결코 꿈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동시에, 생생한 현실감이 덮쳐와 묘한 흥분을 자아냈다.
“…….”
짝짝짝…
박수 소리.
“…과연, 파우스트 님. 훌륭하십니다.”
루시퍼의 건조한 칭찬과 함께 주르륵 올라오는 메시지.
[파우스트의 힘을 깨우쳤습니다.] [파우스트의 강점: 냉정을 확인합니다.] [파우스트는 감정적인 동요가 미비하며 전투 중에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파우스트는 상냥함을 알지 못합니다.] [Tip: 파우스트에겐 아직 밝혀지지 않은 강점과 약점이 있습니다.] [Tip: 강점과 약점은 메인 시나리오의 진행 상황에 따라, 혹은 파우스트가 특정 조건을 만족함에 따라 밝혀집니다.]‘…맞아, 이런 게 있었지?’
스토리를 진행하며 밝혀지는 주인공의 특징들.
그 중 첫 번째인 냉정.
쌀쌀맞다 싶을 정도의 성정은 여기서 기인한 것. 아마도 내가 지금 상황을 별다른 반발 없이 받아들일 수 있던 이유도 이것 때문이 아닐까?
‘말투는 또 다른 문제지만… 아무튼.’
강점이 있다면, 약점도 있는 법이다.
‘슬슬 그게 찾아올 때가….’
움찔…
“으으윽….”
“파우스트 님?”
한쪽 무릎을 꿇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몸이… 물먹은 스펀지처럼 무거워졌다.
‘역시… 반동인가.’
급격하게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파우스트의 약점: 무기력증을 확인합니다.] [파우스트는 신체에 선천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파우스트의 육체는 강건하지만, 쉽게 탈진합니다.] [파우스트는 선천적으로 난치병을 앓고 있습니다. 던전 코어와 감응하여 마력을 순환해야만 생명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탈진의 회복에는 별다른 노력이 없는 이상, 수일이 소모됩니다.]…뻐근하다.
이내 허리를 똑바로 세우기 어려울 정도로 몸이 둔해졌다.
‘칫… 이건 너무하잖아.’
왜 단두대에 버려졌는지 알 것만 같은 약점. 이 엄청난 몸이 고작해야 벌레를 상대한 것만으로도 피로가 쏟아졌다.
‘생각보다 페널티가 굉장한데….’
삐걱대는 몸을 억지로 움직이고 있자, 루시퍼가 눈치챘다.
“파우스트 님, 괜찮으십니까?”
멀리 물러나 있던 그녀가 다가왔다.
‘뒤로 물러나서 지켜만 봐놓고는!’
얄밉지만 어쩌겠어, 그녀의 몸 상태는 나보다 더 심각한 상태인걸.
“걱정은 됐다. 그보다… 목표로 했던 던전 코어는?”
“저곳입니다.”
탁한 빛을 뿜어내는 검은 기둥. 그곳에 결합된 검은 구슬.
던전 코어다.
어차피 이것 역시 튜토리얼의 일부이니, 일 처리는 순식간이었다.
두우우우웅…
[당신의 마력으로 던전 코어를 활성화합니다.] [던전: 썩은 뿌리를 개방합니다.] [파우스트의 심장과 던전 코어가 공명합니다.] [이로써, 던전이 살아 숨 쉬는 동안 파우스트 역시 그리할 것입니다.]츠즈즈즈즛…
기둥으로부터 시작된 검은 파동은 기둥에 맞닿은 뿌리부터 시작하여 던전 전체를 진동시켰다.
‘…시작인가!’
쿠구구구구구구구-!
[던전: 썩은 뿌리는 현재 미답파 상태입니다.] [던전: 썩은 뿌리를 완전히 개방하기 위해선 답파를 완료해야 합니다.] [던전의 답파는 사역마를 부려 시도할 수 있습니다.] [직접 답파는 권장하지 않습니다.]‘앞으로 여기가… 내 집인 거냐고.’
파우스트의 냉정은, 앞으로의 불투명한 미래를 떠올리는 것 정도로는 손톱만큼의 두려움도 떠올리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를 다른 생각이 채웠다.
‘귀찮잖아.’
귀찮다. 어떻게 설계된 몸인지 나는 필사적으로 귀찮아하고 있다.
파우스트라는 녀석은 두려움보다 게으름이 앞서는 놈이다.
‘살아…남는다라.’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라니.
그렇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하지?
…제법 뚜렷한 답이 정해져 있다.
“루시퍼.”
“명령을.”
아니, 아니.
명령이고 자시고.
“얼마나 남았지?”
“…예?”
“마석.”
냉정을 뚫고, 기이한 흥분이 자리한다.
그래, 참을 수 없는 거다.
‘곧… 시기다.’
초회 뽑기… 해야 하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