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20
제20화
“좀 진정이 되느냐?”
마루스가 마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예, 숙부님.”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
쏴아아아아아…
모두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쉬었다 가자꾸나.”
“수, 숙부님! 혹시 추격을 중단하실 계획이라면….”
“그럴 리가 있겠느냐? 잠깐이라도 쉬어 몸 상태를 회복하고 움직이는 게 옳다.”
“…예.”
파티의 전위인 데일이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저쯤이 좋겠군요.”
“그래 부탁하마.”
“별말씀을.”
마웬은 혼이라도 빠진 듯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고, 그의 숙부 마루스는 주변을 경계해야 했기에 숙영의 준비는 다른 일행끼리 준비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긴 했지만 셋이서 분담하니 비를 피할 장소를 만드는 것 정도는 금방이었다.
“찾았다! 장작으로 쓸 만한 나무야.”
“그거 희소식이네!”
타닥…
화르르륵…
숲에 모닥불의 연기가 피어올랐다.
“비가 그치진 않을 것 같고… 잠시라도 몸을 녹이고 회복하고 가는 게 좋겠구나.”
“옳으신 말씀입니다.”
타다닥…
쏴아아아아아…
모닥불의 온기가 미치는 영역 밖에서는 기분 나쁜 습기가 몰려왔기에, 옹기종기 모여앉을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얼이 빠져 있는 마웬.
아무도 침묵을 깰 생각이 없어 보였기에, 마루스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까 했던 말은, 모두 사실이겠지?”
“…예, 숙부님.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홀로 떨어져 나와 파우스트를 마주했던 마웬은 그곳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이미 한 차례 이야기했다.
“놈은… 더러운 마족이 맞습니다. 그 간사한 혓바닥으로 우리를 속여넘기며 즐거워했던 거지요.”
“…녀석이 마족이든 아니든, 그것보다 중요한 건 리우디라의 살인 행각이 녀석의 소행인지다.”
“그것도 물론….”
– 나의 이름. 칼 쿠르소 따위가 아닌… 파우스트. 똑똑히 기억해 두는 게 좋을 거다.
하지만 분명, 파우스트는 칼 쿠르소가 아니라고 했다.
“녀석이 악마와 관련이 있다는 걸 부정하지 않았다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 아이가 칼 쿠르소인지 아닌지는 이제 더는 중요치 않다. 그런 하찮은 살인마보다 더한 존재를 은닉하고 있다는 얘기나 다름없으니까.”
숙부는 악마에 광적인 집착을 보인다. 점잖다가도 이따금 놀랄 만한 태도로 변모하며.
마웬은 그 의문을 무시해야만 했지만, 이젠 그 참을성마저 흔들렸다.
“숙부님,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무엇이더냐.”
“어째서 숙부님은… 그렇게까지 악마에 집착하시는 겁니까?”
“…….”
“제게 말씀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그런가. 어차피 이곳에 좀 더 머무를 것 같으니 얘기를 해줘야겠구나.”
타닥…
탁…
쏴아아아아…
모닥불이 타오르는 소리, 비가 쏟아지는 소리는 마루스의 눈을 그윽하게 만들었다.
“악마를 마주하고부터 수십 년간… 이 내가 무엇을 했을 것 같으냐?”
“큰 충격을 받으신 뒤 직위를 내려놓고 은거하신 게 아닌….”
“은거? 누가 그렇게 말하더냐?”
“생전 부친께서….”
마웬은 갑자기, 생전의 부친이 마루스에 대해 말해줄 때 어쩐지 꺼림칙한 눈빛이었던 것을 떠올렸다.
“나는 포기한 게 아니었다. 그날 밤 이후로 계속해서… 악마를 쫓고 있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녀석들을… 동료를 그렇게 만든 존재를 나는 용서할 수 없었다.”
숙부의 정의감 넘치는 발언에 마웬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반면, 다른 일행은 마루스의 집착에 가까운 분노와 용암처럼 타오르는 눈을 보며 조금 섬뜩함을 느꼈다.
“포기한 게 아니었다. 그날 이후… 난 어떤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다시 악마와 대면하겠다 다짐했다.”
하지만, 다시 대면한다 해서 없던 방법이 솟아나는 것 아니다.
어찌 손 쓸 도리도 없이 사자 혼의 중추를 쓸어버린 그 악마다. 그런 악마를, 이제는 야인이 돼버린 숙부가 상대할 방법이 있을까?
“나로서는 10년… 아니, 100년을 수련한다 해도 녀석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겠지. 그 정도의 격차다. 하지만 인간과 악마와의 싸움이 늘 인간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건 실력과는 또 다른 이야기다.”
“그게 무슨….”
“이해다. 우리는 녀석들을 알지 못한다.”
악마는 인간을 안다.
인간은 악마를 알지 못한다.
그건,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들에 대해 알기를, 이해하기를 두려워한다.
“설마… 악마학에 손을 대신 겁니까?”
“…그렇다.”
마루스가 뭐에 홀린 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악마 숭배자들을 처단하고, 사자 혼을 비롯하여 많은 곳에서 연구된 자료들을 파고들었다. 오직 그 길에 답이 있을 거라 믿고.”
마웬은 이런 숙부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악마는… 마족의 사역마일 뿐이지 않습니까? 그들을 부리는 마족들이야말로 악의 주구이며 파렴치하고 치졸한….”
“마웬, 네가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다. 너와 이곳에 있는 아이들 역시 모두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를 절대로, 어디 가서 함부로 입 밖에 내지 말거라.”
꿀꺽…
“악마가 어떻게 이 태양 신이 축복한 땅, 솔라리아에 온 줄 아느냐?”
“그들은 지옥이라는 이계에 사는 존재들로 알고 있습니다. 패권전쟁 당시에 전황이 불리해지자, 마족들이 그들을 불러와 솔로몬 황제에게 대항했다고….”
흐흣…
마루스의 힘 빠지는 웃음.
“반쪽짜리 진실이다.”
흠칫!
모두 눈알이 번뜩인다.
역사를 부정하는 건, 위험한 행동이다.
“너희들이 알고 있는 진실은, 대다수의 제국민들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마루스는 그 진실을 뒤엎으려 한다.
“패권전쟁 당시 가장 많은 악마를 솔라리아로 불러온 것은 마족이 아니다.”
“그럼….”
“솔로몬 황제다.”
모두가 벌떡 일어나며 당혹성을 내뱉었다.
“이 무슨!”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크나큰 불경을….”
마루스가 손을 휘저어 진정하라고 신호했다.
“자세한 내막은 알기 어려우나 분명, 그 시기에 대량의 악마를 불러낸 것은 솔로몬 황제이다. 지금은 사라진 역사이긴 하다만….”
마웬은 숙부에게 반발하려 했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을 듣고 한차례 혼란이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솔로몬 황제의 업적이 가려지지도, 빛바래지도 않는다. 내가 하려는 말은 하나다.”
마웬은 마족을 증오하고, 마루스는 악마를 쫓는다.
“악마는 위험한 힘이며, 잘못된 자의 손에 들어가면 모든 게 잿더미가 된다. 사자 혼의 죽은 망령들처럼.”
“숙부님….”
“그러니, 막아야만 한다. 그 힘이 함부로 쓰이기 전에. 반드시!”
파티의 신관인 프리아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외람된 말씀일지 모르지만, 저희가 할 수 있을까요?”
“걱정하지 말거라. 이 마루스가 있다.”
톡톡.
마루스가 그의 관자놀이를 두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답했다.
“그 어떤 악마가 오더라도, 대처할 수 있다. 인간이 쌓아 올린 지식이란 그런 것이다.”
“숙부님만 믿겠습니다.”
“마루스 님을 따를게요!”
……
쏴아아아아…
타닥…
탁…
모두 며칠의 행군이 피로했는지, 따스함이 감돌자 이내 수마에 빠졌다.
크어어억…
며칠 전, 코를 곤다고 놀림 받았던 데일이 이번에도 코를 골았다.
그러나, 모두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깊은 잠에 빠졌다.
타닥…
탁…
오직 마루스만이, 불침번을 서며 모닥불을 뚫어지게 쳐다볼 뿐이었다.
화르륵…
불길이 한차례 일렁일 때마다, 아지랑이와 함께 환영들이 떠오른다.
불길 속에, 그날이 존재한다.
새벽의 비명이.
– 크아아아아악!
– 으아아악!
전쟁터를 떠나지 못하는 병사처럼.
마루스는 여전히 그곳에 머문다.
– 마루스… 도망쳐라.
어쩌면 영원히 그곳에 머물 것이다.
그 뿔, 그 눈.
– 너, 두려워하지 않는구나?
마루스는 그날,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한 발짝 악마에게 다가섰을 뿐.
“드디어… 찾았다.”
* * *
몸이 뜨겁다.
불을 집어먹은 것처럼, 속에서부터 뜨거워진다.
– 서진 씨, 괜찮아?
아, 괜찮지. 괜찮고말고.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출근해.
– 세상에 열 좀 봐, 이마가 뜨끈뜨끈하잖아. 가만있어 봐, 물수건 좀 짜올게.
내버려 두래도.
약 먹으면 금방 나아.
자기야말로 늦으면 큰일이잖아.
중요한 일 있다며.
파우스트 만나러 가야지?
행복하게 해줘야 하잖아.
– 피, 자기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가?
그럼 가지 마.
– …응?
승아야.
그렇게 걱정되면… 안 가면 안 되는 거야?
– …가야 해, 서진 씨.
나는 있잖아, 나는… 우유부단하고 주변에 곧잘 휘둘리지만 그래도…
– 서진 씨.
…….
– 행복해야 해.
가지 마!
“가지… 가지 마….”
파아악-!
무심결에 손을 내뻗었다.
잡히는 건, 누군가의 가녀린 손목.
어슴푸레 눈을 반개하니, 새하얀 피부의 손목이 보였다.
“파우스트 님.”
“…….”
“울고 계십니다.”
그제야 또르르 굴러떨어지는 눈물.
‘잠결에 승아 꿈을 꾼 건가?’
좋았던 기억을 꿈에서 만난다는 건 반가우면서 괴로운 일이다. 아픈 현실로 되돌아와야 하니까.
하지만, 그래도 계속 찾아와줬으면 싶다.
루시퍼의 손목을 잡은 건, 순간 그녀와 승아가 겹쳐 보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누구라도 내 옆에 있어 줬으면 했기 때문일까.
옥좌 귀퉁이에 있는 사탄을 형상화한 뼈로 된 염소 가면.
사료와 함께 지급된 물건이다.
가면을 손에 들고 잠시 쳐다보았다.
현실감이 묻어나는 그 기묘한 디테일에 마음이 가라앉는다.
이곳은 현실이다.
승아를 빼앗겼던 김서진의 삶에서 옮겨와, 이제는 파우스트의 삶마저 누군가에게 빼앗길 위기다.
난 늘 빼앗겨왔다.
세상에 미움받는 것이 분명해.
콰아아앙-!
갑작스러운 소음에 시선이 문 쪽을 향했다.
“나아리이이이!”
“페넥스, 문은 조심히….”
“이크….”
이미 뻥 차버린 문과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난 나와의 중간 지점에서 갈팡질팡하는 페넥스.
후우…
어째선지, 안도감이 찾아왔다.
“그게 아니라… 걱정이 돼서… 비 잔뜩 맞았다며! 페넥스도 비는 싫어하거든, 응! 몸살인 거야?”
“…괜찮다.”
“그래? 아핫핫! 그래야지! 나리가 몸살 따위에 무너질 리 없지!”
기운을 북돋는 말이지만, 공교롭게도 몸 상태는 좋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도 시시각각으로 내 목숨을 조여오는 자들도 있고 말이다.
“루시퍼.”
“예.”
“지시한 것은?”
“영토의 확장은 이뤄졌습니다.”
“숲은?”
“많은 영역을 할당했습니다.”
던전은 내가 없는 사이, 한 차례 성장했다.
숲 필드는 넓어졌고, 그에 따라 그곳에 머무는 사역마들은 더욱 강성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지금 던전을 향해오는 건 칼 쿠르소다.
무려 무과금 절단기, 개미 털기라는 악명을 떨쳤던 최악의 보스.
그 괴물이 에피소드의 스테이지를 훌쩍 건너뛰어서 나를 향해오고 있다.
“루시퍼.”
“예.”
“지옥문으로 간다.”
“준비하겠습니다.”
부산스럽게 움직이자, 페넥스도 그 흐름에 휩쓸려 날 바싹 쫓아왔다.
“어엇! 나도! 나도 갈래!”
소외당하기 싫어하는 원작의 성격 그대로다.
저벅…
저벅…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 지옥문 앞에 선다.
지옥문에 메달린 아제룹의 해골이 우리를 반겼다.
“클클클… 다급한 눈치인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
“있지, 문제.”
“호오….”
“그러니 해결책을 마련하러 왔다.”
“해결책이라… 제물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내어놓을 수 있지. 하지만… 제물은 보이지 않는데?”
그렇겠지.
오늘은 평소처럼 제물과 함께 오지 않았으니까.
“제물이 없다면….”
스으윽…
품에서 꺼낸 보석은, 매혹스러운 빛을 뿜어냈다.
‘결국엔… 이걸 사용하게 되는군.’
이 물건을 사용하기에 지금이 최적의 타이밍인가?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에 사용해야만 그다음이 있다는 건 잘 알았다.
“그건….”
“지옥석이다.”
지금이 바로 아끼고 아꼈던, 6성 악마의 전용 무기 선택권을 사용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