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21
제21화
지옥석.
던전의 첫 번째 중립 우두머리인 절름발이 아그네아를 토벌한 후 얻게 된 보상.
시시각각으로 형태가 변하는 무구의 문양이 새겨진 무지갯빛 돌이다.
그 가치는 무려 6성 악마 랜덤 뽑기권인 악마석과 비견된다.
원하는 6성 악마의 전용 무기를 고를 수 있다.
‘최대한 아끼고 싶었는데.’
가능한 한 사용할 일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이 지옥석은 미룰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사용할 시기를 미루는 게 가장 효과적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후에 점점 보유하게 되는 6성 사역마, 악마의 풀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보유한 악마 중 제일 강력한 악마에게 전용 무기를 하사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는 건 이견의 여지가 없기에.
하지만, 유저 대부분은 그 선택을 최후의 최후까지 미루지 못했다.
‘모두 칼 쿠르소 때문이지.’
지옥석을 언제 사용하는 게 좋냐를 묻는다면 당연히 앞서 말한 최대한 늦게 사용하는 게 좋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보통 언제 사용하느냐를 묻는다면 대답이 달라진다.
바로 에피소드 진행이 막힐 때다.
그리고 유저 대부분은 칼 쿠르소를 맞닥뜨렸을 때 벽을 느끼고 지옥석을 사용했다.
지금, 나 역시도 그들과 같은 선택을 내려야만 한다.
“지옥석을 사용하겠다.”
달그락…
“큭큭큭… 지옥에 잠든 보물을 원하느냐? 좋다. 그게 무엇이든 찾아주마.”
여기서 한 가지.
6성 악마도 유저가 느끼기에 등급이 나뉘어 있듯이, 6성 악마가 사용하는 전용 무기 역시 그 평가가 갈린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바엘, 다른 말로 바알이라고 불리는 대악마의 무기. 일명 악희다.
완전무결 그 자체.
얻기가 무척 어렵고 바알까지 보유하기가 별 따기의 난이도라 그렇지, 악마와 전용 무기 세트가 완성되기만 하면 스테이지를 그야말로 갈아버린다.
초반부에 이 모든 걸 얻었던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마저도 별 볼 일 없는 게임이 과금 효율마저 악랄한 수준이라고 말하며 떠나가기도 했고.
이 악희라는 전용 무기는 특수한 기능이 있었는데, 바알이 아닌 누군가가 이 무기를 사용하면 오히려 막대한 페널티를 떠안게 된다는 것.
‘그래도 언젠간 바알을 뽑을 수 있을 테고 그때가 되면 쓰겠지.’와 같은 안일한 생각으로 악희를 선택한 유저들이 피를 본 이유다.
두 번째, 세 번째로 떠오르는 것 역시 대악마의 전용 무기들.
악희와 마찬가지로 대악마의 전용 무기인, 벨레드의 타락.
대악마의 무기는 아니지만, 역시나 조건이 까다롭고 사용하기 힘든 제파르의 모욕.
‘확실히 대악마의 무기가 많긴 한데….’
전용 무기 자체의 체급이 매우 높고 순수한 강함만으로 나열하자면 이렇다는 것이고, 대부분은 해당하는 악마 없이 단독으로 소유하기엔 문제가 많은 것들이다.
‘그렇다면… 응?’
잘은 모르지만, 지옥석은 단순히 유저에게만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제물을 받는 악마에게도 가치가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페넥스가 이렇게 눈을 휘둥그렇게 뜰 리가 없을 테니까.
그녀의 눈이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빛났다.
“지옥석! 나리, 설마….”
“…….”
“…할아버지의 검을 찾으려는 거야?”
…아, 그게 있었지.
페넥스의 전용 무기.
작약(炸藥).
약칭 딸깍이 혹은 방아쇠라고도 불리었던 페넥스의 전용 무기다. 선대 페넥스가 사용하던 무기인데, 멸절의 한파를 막아내는 과정에서 그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하는 게 원래의 설정.
물론, 설정상 그렇다는 것이고 지옥문은 그런 것조차도 전부 찾아낼 수 있다.
‘작약이라….’
현재로서 선택해볼 법한 가장 무난한 선택지 중 한 가지다.
“흠흠… 작약은 할아버지가 썼을 때 가장 대단하지만, 그 후계자인 나도….”
보유한 악마 중 전투가 가능한 인원이라고는 페넥스 뿐이니 그녀의 전투력을 보강하는 차원에서 전용 무기를 손에 들려주는 것도 그렇게 나쁜 선택지는 아니겠지.
‘하지만… 그것뿐이다.’
이 방법은 하책은 아니지만, 상책 역시 아니다.
페넥스가 전용 무기를 얻는다고 해도 그녀가 가진 페널티 조건은 사라지지 않으며,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의 작약의 성능은 솔직히 말하자면 평범보다 밑이다.
“할아버지의 검을 보는 건 오랜만이라 조금 긴장….”
그렇기에 선뜻, 선택하기에는 망설여진다.
‘생각해라… 생각해.’
지금 만나서는 안 되는 최악의 적이 문 앞에 와 있다. 녀석이 저 문을 넘어오면 돌이킬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된다.
‘무엇이 최적의 답인가?’
언뜻 멀쩡해 보이지만 원작과는 다른 부분이 존재하는 뒤틀린 게임의 시간선.
단순한 착오?
아니다. 언제, 어디서 새로운 문제가 불거져 나올지 알 수 없다.
그러니 다가올 시련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자아… 말해보아라, 네가 찾는 지옥의 보물은 무엇이더냐?”
스르르륵…
눈앞에 선택지가 주르륵 떠올랐다.
이것들을 하나하나 기억에 담아야만 한다.
현재 픽업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게임의 시간과 일치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맞군.’
다행히, 픽업 일정은 어긋나지 않은 모양.
그렇다면 남은 건 선택뿐이다.
“내가 원하는 건….”
굳게 다물었던 입을 벌리며 소리를 흘려보냈다.
“…그런가, 좋다. 반드시 찾아내 주마!”
휘오오오오오…
지옥석의 무지갯빛 기운이 순식간에, 아제룹에게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파지지지지지지지지직-!
‘시작됐다.’
뚜둑…
넘치듯이 흘러나오던 무지갯빛이 일순, 푹 꺼진 채 노을처럼 공간을 잠식했다.
아제룹이 소리를 토해냈다.
“아주 머나먼 과거, 지옥에 성격이 느긋한 악마가 있었다.”
6성 무기, 6성 악마의 가챠에 성공했을 때 나오는 나레이션과 영상이다.
영상 속 하늘색 머리칼, 냉혹한 인상의 여인이 우뚝 멈춰 섰다.
“그녀는 순례 도중, 한 구덩이를 발견했는데 그 구덩이의 깊이는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후우…
“그녀는 매일같이 기다렸다. 구덩이에 악마의 시체를 던져넣고, 그것들이 전부 썩고 부패하여 짓무르는 것을.”
– …흥미로운걸?
내가 바라는 힘.
아마도 영상 속의 악마 역시도 바랐을 것이다.
“구덩이에 모인 악은 어떨 때는 끓어오르고, 어떨 때는 얼어붙었다. 아주 긴 시간을 천천히 그렇게 차올랐다. 그리고….”
어떤 무기가 가장 강한가?
그건 이견이 존재할 수 있기에 답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떤 무기가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가에 대한 답은 결정했다.
어쩌면 오직 나만이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침내 구덩이가 가득 차고 그 썩은 물에서, 한 자루의 검이 탄생했다.”
나는 이 게임이 끝나는 날까지 함께했으니까.
악마가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 반가워, 오랫동안 네가 오기를 기다렸어.
“그 주인인 악마 크로셀은, 이 검과 함께 당당히 명부 레메게톤에 이름을 올렸다.”
그르릉거리는 울림.
드드드드드…
“검의 이름은 호수. 지옥이 두려워해 마지않는 이름이다.”
후우우우웅…
콰아아아아아아아아-!
지옥문에서 무지갯빛이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요상한 기운에 휘감긴 물체가 두둥실 열린 문을 통해 등장했다.
세검에 가까울 정도로 얇은 검신에 꽤 고풍스러운 손잡이.
장식용이 아닌가 할 정도로 아름다운 검이다.
[★★★★★★ 호수의 수색에 성공합니다.] [업적 퀘스트 ‘애병’을 달성합니다.]철그럭…
철그럭…
페넥스가 그 검 앞에 서서 나를 돌아보았다.
“…어째서?”
할아버지의 검이 아닌 거지?
작약을 원하지 않았지?
그렇게 묻는 듯한 눈초리.
원망보다도 더 큰 호기심에 잡아먹힌 눈이었다.
“할아버지의 검은, 호수보다 강해! 그러니까… 어째서….”
그야 그렇겠지.
너에게는 말이다.
저벅…
저벅…
가볍게 거닐어 페넥스를 지나쳤다.
그리고 호수를 눈에 담으며 말했다.
“이 검은, 널 위한 게 아니다.”
“그럼…!”
이어진 내 행동에 페넥스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철컥.
호수를 거머쥐자, 검은 형태를 반지로 변형했다.
휘리릭…
페넥스는 입을 벌린 채로 말을 잊었으나, 루시퍼는 모든 일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내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파우스트의 힘을 깨우쳤습니다.] [파우스트의 강점: 탐욕을 확인합니다.] [탐욕: 뜻대로 하소서!를 확인합니다.] [파우스트는 모든 무기를 다룰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악마의 전용 무기일지라도.] [파우스트가 가진 탐욕의 권능은 아직은 불안정하여 70%의 효율만을 발휘합니다.] [파우스트의 몸에는 아직 깨어나지 못한 다른 칠죄종의 피가 잠들어 있습니다.]전용 무기가 레메게톤이라는 게임의 핵심 시스템이라고 말했던 마지막 이유.
그건 바로 파우스트 때문이다.
“…내 것이다.”
* * *
뭔가 쿠우웅-! 하고 심장을 짓누를 듯한 배경음이 깔릴 것 같은 무거운 분위기였다.
심처에는 소집한 썩은 뿌리의 모든 사역마가 좌우로 늘어서 있다.
중대한 위기를 앞두고, 마지막 소집이다.
“성장의 제단 가동은?”
“가진 무형물은 모두 사용했습니다.”
무형물은 성장의 제단에 사용되는 재화다. 다양한 수급처가 있지만 대표적으로는 역시 던전 수호 임무에서 침입자들을 격퇴 후에 얻는 보상이다.
다른 수급처를 확보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당장에는 더 큰 일이 있으니….
“지형 변화는?”
흑요정 여왕 아리엘이 내 말에 답했다.
“말씀하신 대로 숲길을 움직여두었어요.”
그렇다면 됐다.
변화한 숲길에 더해, 미리 재배치해둔 함정과 사역마들의 서식지까지.
하나,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는 얘기지 그게 먹혀들 거라는 기대는 솔직히 희박하다.
‘상대는 칼 쿠르소다. 녀석이 정체를 드러내면 판세가 뒤집히겠지.’
하지만, 역설적으로 녀석은 정체를 드러내기를 주저하고 있다.
아마 위기에 몰리지 않는 이상 정체를 드러내지 않겠지.
‘중요한 건 그 순간이다.’
칼 쿠르소가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을 때, 녀석의 파티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해야 한다.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서는 답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일격을….’
그리고 여기까지 성공하더라도, 이후에 이어질 상황을 생각하면…
“페넥스.”
“…나리.”
아직도 꿍해 있는 건가.
할아버지의 검을 원했겠지.
“네가 해줘야만 하는 일이 있다.”
“…내가?”
“그래,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쫑긋!
중요한 일이라는 걸 짐작한 듯, 귀를 쫑긋 세우고 녀석이 경청한다.
“침입자들은 아마도….”
그녀에게 내 계획의 일부를 들려주었다.
페넥스가 이 계획을 온전히 이해할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그냥 말해주고 싶었다.
어쩌면, 그녀의 전용 무기인 작약이 아닌 크로셀의 전용 무기 호수를 선택한 게 못내 마음에 걸린 건가 하고 자신에게 되물었지만 딱히 그건 아닌 듯했다.
그저, 그녀에게 해야만 하는 일을 일러주려 한 건지도.
“반드시 임무를 완수해라.”
“…응! 나리.”
철컥…
철컥…
페넥스가 또 어디선가 장비를 꺼내 착용하기 시작했다.
“…또 무장인가.”
“무장은 각오니까! 늘 같아!”
“…그렇군.”
그녀는 늘 한결같다.
그렇기에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그녀를 자리로 돌려보낸 후, 모든 사역마에게 운을 띄웠다.
“이곳에 곧 한 무리의 침입자들이 당도할 것이다.”
“…….”
“그들에겐 선택의 기회가 있었다. 이성을 찾아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기회가.”
고요하게 가라앉는 분위기.
“그들은 내가 제시한 선택지를 거부했다. 오직… 이 파우스트의 죽음만이 유일한 길이라 강요하며.”
인간이 증오의 굴레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다면…
“내게는 보인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미래가.”
그러라지.
“모두 죽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