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23
제23화
– 헉… 헉….
숨을 헐떡이며 도주하는 데일.
– 빌어먹을… 제기랄… 제기라아아알!
그는 자신이 큰 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채, 뒤돌아 달리고 있다.
녀석은 방금 벌어진 일을 믿지 못할 것이다. 아니,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도.
요정의 푸른 불빛 너머, 번들거리는 안광을 내뿜어대는 숲 트롤과 눈이 마주치자 데일은 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압도적인 공포에 몸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 상황.
그런 와중에, 그의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투우우욱-!
풀썩…
남성의 손에 밀쳐져 나자빠지는 두 여인.
– …데일?
– 아니지?
콰지이이이이익-!
데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이후의 상황이 어떻게 됐는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곤봉의 소리가 들려온 후, 여성의 고통에 겨운 신음이나 비명 같은 게 없었으니 아마도 죽었을 것이다.
죄책감? 죄악감?
그런 콧대 높은 감정들은 이런 피비린내 나는 상황에서는 찾아오지 않았다.
오직 공포, 공포뿐이다.
* * *
‘놓쳤군. …빨리 잡아야 해.’
숲 트롤의 재생력을 위협할 만한 공격력을 가진 마법사 쪽은 첫 일격에 박살이 났다.
저들 셋이 신출내기일지라도, 전위 쪽이 정신을 차렸다면 첫 일격에 둘이 죽는 사태는 면했을 것이다.
‘전부 의도하긴 했지만….’
그들이 상황을 인지하는 순간을 최대한 뒤로 늦췄고 그 결과, 본능적인 판단을 내리도록 만들었다.
인간의 본성은… 대부분 추악하고 이기적이기 마련이다.
– 으아아아아! 제바아아알!
원하는 목적지까지 거의 다 왔다.
이제 마지막으로 데일을 참살하면, 내 계획이 무너질 확률은 한없이 낮아진다.
‘그러니까, 반드시 여기서….’
데일은 아마도, 뒤쫓아오는 숲 트롤의 곤봉에 들러붙은 육편을 보고 기겁하고 있는 듯했다.
– 거기 서라아아아!
– 히이이이익!
순조롭게 추격이 이어지고 있는 듯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이런.’
첫 일격 후에 이미 5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데일은 별다른 위기 없이 숲 트롤의 사정권에서 계속 빠져나가고 있었다.
요정이 데일을 함께 쫓으며 숲 트롤에게 그의 위치를 일러주고는 있지만 문제가 있었다.
‘숲의 지형을 변경한 탓에 보행이 제한된다.’
숲 트롤의 거대한 체구가 빼곡한 나무를 전부 으스러트리며 지나가야 하니 추격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이렇게 되면….’
숲의 상황을 전부 꿰고 있었기에,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몰아넣어라, 저곳으로!’
– 제기랄! 저리 가! 저리….
투우우욱-!
데일이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 으윽!
휘리릭-!
그의 발을 걸어 넘어트린 나무뿌리가 살아 움직였다.
[★★★ 고기 먹는 나무가 정체를 드러냅니다.]나무로 위장한 식인 괴물이 그대로 입을 쩍 벌려 데일을 집어삼키려 했다.
서걱-!
– 허어억-!
데일을 휘감고 있던 나무뿌리가 누군가의 검에 의해 잘려 나갔다.
‘…이런!’
안개가 짙어진 구역으로 이동해 잠시 행방을 놓쳤던 마웬이었다.
– 데일!
– 마, 마웬.
쩌저적-!
고기 먹는 나무가 서슬 퍼런 칼날에 속수무책으로 조각났다. 이 사역마는 미믹과 마찬가지로 본체의 전투 능력 자체는 형편없는 축에 속해 이런 결과가 나왔다.
성장 재화라도 꾸준히 투입했다면 모를까, 가뜩이나 모자라는 재화를 3성짜리 고정형 사역마에 투입할 여유는 없었다.
– 프리아랑 로엠은?
– 마웬… 살려줘.
– …무슨 소리를?
– 죽기 싫어… 난… 난….
– 죽긴 왜 죽어! 똑바로 설명해. 우리가 왜 죽는다는 거야?
– 녀석이, 녀석이 모두 죽였어. 우리는… 모두 죽을 거야….
– …그럴 리 없어.
쿠우웅-!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숲 트롤이 도착했다.
– 마웬, 뒤….
히죽 웃으며, 숲 트롤이 손아귀를 뻗어왔다. 저 손으로 잡아채면 인간의 몸 따위는 한순간에 으스러트릴 수 있다.
그러나 이 순간, 그 어떤 기대도 되지 않았다.
마웬이 이곳에 합류했다는 건 마루스 역시 함께라는 얘기니까.
푸화아아아아악-!
– 우어어어어어-!
숲 트롤의 한쪽 팔이 피 분수를 뿜으며 잘려 나갔다.
– 무사한 게냐?
– 마, 마루스 님!
– 정신 차리거라.
분개한 숲 트롤이 반대쪽 곤봉을 휘둘렀다.
후우우웅-!
그 팔에 올라타는 마루스.
타탓…
힘차게 두 걸음 도약해 핑그르르 회전한다.
무척이나 깔끔한 춤사위를 보는 듯했다.
서걱…
푸화아아악-!
숲 트롤은 녀석의 머리가 공중에 떠오를 때까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계획이 어긋났다.’
차선책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할수록 계획의 완전성에는 흠집이 나기 마련이다.
쯧.
결과가 쓰다.
지금 상황은 그저 마루스의 영웅 서사의 한 장면처럼 보이기까지 했으니까.
모든 게 그렇게 형편 좋게 흘러갈 리는 없다는 건가.
‘마루스가 생각보다도 더 강하군.’
– 마루스 님….
– 다른 이들은… 죽은 게냐?
– …그렇습니다.
데일의 대답에 마웬의 동공이 흐리멍덩해졌다.
– 그런… 어째서… 데일!
– 내가 지키지 못했어… 전부 내 탓이야… 난….
내막을 전부 알고 있는 나로서는 웃을 수밖에 없는 연극.
마루스가 타고난 연기자인 데일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 네 잘못이 아니다, 데일. 누구보다 내가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으니.
– …….
– 어서 털어내거라. 그것보다 혹시, 이곳에 온 후로 악마를 보지 못했느냐?
마루스의 말에 흠칫 놀라 숙부에게 물어보는 마웬.
– 숙부님? 로엠과 프리아가 죽었습니다!
– 그렇기에 이곳에 오기 전, 내 돌아가라 말하지 않았느냐. 죽어간 이들이 선택한 결과일 뿐이다. 애도할 따름이지.
– 숙부님!
– 그럼, 여기까지 와서 뭘 어쩌자는 것이냐!
움찔…
한 번도 크게 화를 낸 적 없던 마루스의 일갈에 마웬은 멈칫했다.
– 돌아가요, 숙부님. 데일도 저도… 전부 죽을지 몰라요.
– 그럴 수는 없다.
– …예? 어째서요!
마루스가 이를 빠드득 갈며 답했다.
– 수십 년 동안 악마를 쫓았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비로소 다다른 것이다. 너는 이 울분을 이해할 수 있느냐?
– …이해 못 해요.
– 마웬. 내가 여기서 포기하고 물러난다면, 다음엔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되돌아오겠지. 그건 너 역시도 마찬가지다.
– 저도… 마찬가지….
– 이곳에서 악마에게 동료를 잃은 네가 멀쩡히 살아갈 수 있을까? 겁쟁이에 패배자 낙인이 찍힌 채로 말이다.
– …….
–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악마가 바라는 것이겠지.
의심하며 묻는 마웬.
– 승산은… 있는 겁니까?
– 있다. 이 숲의 비밀을 밝혀낸 것 같으니 말이다.
– 그, 그게 정말입니까? 마루스 님?
– 사실인가요, 숙부님?
– 아마 곧 모습을 드러낼 테지.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흑요정 여왕 아리엘이 억지로 숲의 지형을 뒤튼 여파가 곧 찾아왔으니.
드드드드드드드드…
근방의 나무들이 빠른 속도로 메말라갔다. 아니, 숲 전체의 나무들이 마루스 일행의 주변을 제외하고 전부 생기를 잃었다.
‘제길….’
– 드디어 납시셨군.
– …불쾌한 인간이군요.
– 흑요정!
* * *
“흐, 흑요정이라니… 패권전쟁 때 마족의 편에 붙었다가 멸족당한 자들 아닙니까?”
마웬의 말에 마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편법을 써 살아남은 자들이 있다고 들었다만… 그게 던전에 사역마로서 기생하는 방법이라니. 추악하군.”
“공생이라고 해두죠. 약탈과 파괴밖에 모르는 당신네 인간들은 이해할 수 없는 고귀한 방식이겠지만 말이에요.”
“스스로 마족에게 기어 개가 된 자치고는 연설이 일품이었다. 하품 정도는 나올 것 같군.”
“불쾌한 인간과 이 이상 말을 섞을 필요가 있을까요?”
스릉…
마루스가 검을 뽑으며 말했다.
“자신 있나? 이만한 힘을 썼다면 당연히 대가가 있을 터인데?”
“대가가 무엇이든, 당신들을 상대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흥, 악마의 냄새를 쫓아왔더니 재밌는 광경을 보게 되는군.”
그렇게 말했지만, 내심 마루스는 불안한지 두 신출내기에게 한마디 했다.
“목숨을 보전해라, 힘을 숨기고 있을 수도 있다.”
“예, 숙부님.”
“알겠습니다, 마루스 님.”
[우두머리 전투가 진행됩니다.] [흑요정 여왕 아리엘이 퇴로를 차단합니다.]마루스가 목에 걸린 묵주를 부여잡고 힘을 불어넣었다.
[마루스가 사자 혼의 가호를 사용합니다.] [자신을 포함한 주변 아군의 방어력을 소폭 증가시키며 받는 피해를 10% 감소시킵니다.]휘리릭-!
아리엘이 손짓하자, 주변에 나무로 만들어진 쐐기가 생겨나 마루스에게로 향했다.
[아리엘이 신록의 창을 사용합니다.] [신록의 창은 명중한 대상에게 숲 속성 피해를 줍니다.] [신록의 창은 아리엘이 보유한 마력 비율에 따라 개수와 속도를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현재, 만들어진 나무 창은 하나뿐.
확실하진 않지만 그만큼 아리엘의 마력 상황이 좋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쒜에에에엑-!
나무를 통째로 갈라내려던 마루스가 흠칫하여 버클러를 휘둘러 나무 창을 흘려냈다.
터어어어엉-!
“무지막지한 힘이군.”
“아쉬워요. 더 좋은 날 만났다면 한 번에 그 입을 다물게 했을 텐데 말이에요.”
“흥, 우쭐하지 마라!”
[마루스의 굳은 의지가 발동합니다.] [방어에 성공한 경우, 다음 방어의 피해 경감률이 20% 증가합니다.]으지지직-!
아리엘의 손에 녹색 기운이 모여들었다.
콰아아앙-!
그녀가 그 손을 바닥으로 향하자, 녹색 기운이 바닥을 강타하며 나무뿌리가 넓은 범위로 퍼져나갔다.
그 범위는 마루스 일행이 디딘 땅을 메우고도 남았다.
[아리엘이 묘목 심기를 사용합니다.] [3초 후에 넓은 범위에 위로 솟구쳐 오르는 가시가 형성됩니다.] [가시는 숲 속성 피해를 주며, 일정 확률로 중독 상태로 만듭니다.]3…
“이건… 모두 나무 위로 올라가!”
의심은 없다.
고함과 동시에 마루스 일행은 주변의 나무로 뛰어 올라갔다.
2…
그리고 1초.
푸슈슈슈슈슉-!
솟구쳐오르는 가시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빠르게 아리엘에게로 회수되었다.
“허억….”
“헉….”
마웬과 데일은 공격을 회피한 후에도 심장이 서늘한 공포에 떨어야 했다.
“정신 차려라!”
쒜에에엑-!
마웬을 향해 날아오는 신록의 창을 대신 튕겨내는 마루스.
“노오오오옴!”
마루스가 아리엘의 간격으로 파고들어 검을 뿌렸다.
촤아아악-!
아리엘의 어깨 부위에서 피가 튀었다.
“그 피가 네 흑심만큼 검지는 않구나!”
“닥쳐라, 인간!”
휘리릭-!
신록의 창을 형성해 직접 휘두르며 마루스에게 맞서는 아리엘.
그러나, 전투에 능한 마루스에게는 연신 손해를 입을 뿐이었다.
더군다나, 숲의 지형을 뒤흔들었기에 그 힘은 더욱 약해져 있었으니… 오래 싸우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리엘이 입술을 짓깨물었다.
투우우웅-!
충격파로 마루스를 밀쳐낸 후, 곧장 나무줄기로 몸을 휘감는 아리엘.
으지지직…
“저건….”
[아리엘이 숲의 어머니를 사용합니다.] [숲의 어머니 형상의 아리엘은 받는 모든 피해의 90%를 감쇄합니다.] [숲의 어머니 형상 동안 아리엘은 초당 잃은 체력과 마력의 1%를 회복합니다.] [숲의 어머니 형상 동안 나무 병사들이 형성됩니다. 나무 병사들은 숲 지형에서 사망한 모든 생명의 형상을 모방하며 대상의 30%의 체력과 공격력을 가집니다.] [숲의 어머니 형상은 아리엘이 직접 해제하거나 모든 나무 병사를 제거했을 경우 해제됩니다.]아리엘이 가진 궁극의 힘.
후에 무기나 성장으로 달라질 수는 있지만 숲의 어머니가 그녀가 가진 원초적인 힘이었다.
으지지직…
곳곳에서 생겨나는 고블린들.
“서둘러라! 어서 베어야 한다!”
“예!”
마루스도 다급해졌는지, 마웬과 데일까지 거들도록 했다.
서걱-!
서걱-!
원래도 나약한 종족이지만 그보다 더 나약한 상태로 재탄생했으니 순식간에 짚단처럼 베어 넘겨지는 고블린들.
으지지직…
이번엔 오크의 형상이.
“내가 맡겠다!”
마루스가 그들에게로 달려간 사이에, 마웬과 데일은 다른 병사를 베어야 했다.
– 왜… 왜 우리를…
– 여기에…
되살아난 나무 병사는 희생당한 로엠과 프리아였다.
“으아아아아!”
데일은 그들이 무슨 말을 더 지껄일까 봐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라 허둥지둥 목을 베었다.
한 번이 어려웠지, 두 번은 쉽다.
“데일! 진정해!”
“으아아아아!”
그 사이, 숲 트롤의 분신까지 베어 넘기는 마루스.
“끝이다, 흑요정.”
아리엘의 패색이 짙은 그 순간.
휘리릭-!
숲의 어머니 형상에서 벗어난 아리엘이 신록의 창을 형성했다.
마루스가 뻔하다는 듯 버클러를 끌어올리자, 아리엘이 싱긋 웃었다.
“…뭣?”
신록의 창은 모두 두 자루.
마루스가 아닌 마웬과 데일에게로 향했다.
모두를 구할 수 없다는 걸 간파한 마루스가 한쪽으로 향했다.
터어어엉-!
한쪽에 쏘아진 신록의 창은 저지되었으나.
콰지이이익…
“컥… 커어어억….”
한쪽은 명중했다.
가슴이 뻥 뚫린 데일.
“데이이이일!”
“노오오오오오오옴!”
서거어어억-!
분노한 마루스의 검에 의해 아리엘의 머리가 분리되어 둥실 떠올랐다.
아리엘은 그 순간까지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조금, 힘내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