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25
제25화
마루스는 덩그러니 서 있다.
악마와 마루스, 단둘만이 덩그러니 대화를 나누던 그날 밤처럼.
– 도망치지 않는구나.
– 아름다워….
사자 혼의 성기사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되돌아온 그날, 마루스는 악마를 만났다.
그리고 그 신비로운 존재에게 완벽하게 사로잡혔다.
그날, 악마는 마루스를 죽이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이유를 물었다.
– 어째서, 나를 살려두는 거지?
악마는 답하지 않았다.
그건, 마루스에게 있어 저주였다.
이렇게 그가 일생을 바쳐 악마의 흔적을 쫓게 했으니까.
“손쉽게 만나주지는 않는다는 건가.”
“나리는 바쁘니까!”
“…이런 수를 쓴다고 해서 결과가 바뀌는 건 아니다. 그대 역시 알 텐데.”
“모른다고, 그런 거.”
철컥-!
페넥스가 웃으면서 검을 앞으로 향했다.
“복잡한 거, 페넥스는 모르겠어. 앞으로도 모를 거야. 그냥….”
그녀의 얼굴에서 일순간 웃음기가 사라졌다.
“덤벼.”
“…골치 아프게 됐군.”
마루스는 진퇴양난의 상태다.
악마와의 전투를 피하기 위해 도주를 택한다면, 이제껏 공들인 것들이 전부 허사가 된다.
조카인 마웬의 죽음까지도.
그렇다고 전투를 택하는 것도 현명한 선택지는 아니었다.
상대는 무려 악마다.
설령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피해 없이 끝나기는 어려울 게 뻔했다.
답은, 내려졌다.
스릉-!
쓴웃음과 함께.
“30년 전의 그 청년은 그곳에서 틀림없이 죽었겠지. 악마의 변덕이 아니었다면 말이야. 얄궂군, 지난 세월은 내게 무엇을 남겼단 말인가.”
도덕과 인륜의 선을 넘은 괴물의 삶.
악마를 쫓던 마루스는 이제 와 궁금해졌다.
“그날 이후 내가 쫓던 것이, 허상은 아니었는지 확인하도록 하지.”
[칼 쿠르소의 기본 지속 능력: 불신자가 발동합니다.] [불신자 상태에서는 살의 기반 능력을 사용해도 신앙 능력에 영향이 가지 않습니다.] [살의는 전투 중 피해를 주거나 받을 때 차오르는 자원입니다.]쉬이이이잇…
아주 옅은 붉은 빛이 마루스의 몸 주위를 맴돌았다. 사자 혼을 떠난 그 긴 시간 동안 살해당한 피해자들을 비롯하여 본인 정도만 아는 힘.
지속적으로 살인 행각을 벌이며 갈고닦은 기술이다.
탓.
타앗…
조금씩 서로를 향해 거리를 좁히는 둘.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가속하여 부딪힌다.
“으아아아아!”
“하아압!”
위에서 아래로 찍어누르는 힘과 아래에서 위로 올려 치는 힘이 격하게 충돌했다.
콰아아아아아앙-!
끼기기기긱-!
쌍방이 온 힘을 다한 첫 충돌로 비슷한 깨달음을 얻었다.
‘역시나 악마로구나! 정면승부는 불리하다!’
‘이 남자, 강해… 이대로 내가 지면 나리가 위험해!’
물론, 생각과 공방은 동시에 이루어졌다.
카아앙-!
카아아아앙-!
인간인 마루스 쪽이 먼저 힘에 부쳤는지, 버클러를 쥔 왼팔을 휘둘러 페넥스를 밀쳐냈다.
투우우웅-!
마루스는 기본 전투술의 체급 자체가 남달랐다. 뜨내기 모험가들과는 궤를 달리할 정도로 기본기가 탄탄했다.
그렇기에 오직 전투와 살인만을 위해 살아간다고 익히 알려진 악마와 단신으로 싸울 수 있는 것이리라.
튕겨 나간 그대로 자세를 회복한 페넥스는 서둘러 검을 앞으로 향했다. 이어질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칼 쿠르소가 폭발하는 비도를 사용합니다.] [단검을 투척하고 투척한 단검이 대상에 적중하지 않을 시 의도된 폭발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폭발 시, 칼날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하여 물리 피해를 주고 일정 확률로 출혈을 일으킵니다.] [폭발하는 비도는 살의를 소모합니다.]피피핏-!
역시나 날아오는 붉은 기운의 단검 세 자루.
페넥스는 묵직한 공격을 예상했었기에, 조금 안심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방심은 하지 않았다.
단검은 엄청난 빠르기로 날아갔지만, 전투에 집중한 그녀에겐 조금 느리게 느껴질 정도였다.
타앙-!
타아앙-!
‘두 자루!’
한 자루가 보이지 않는다.
[비도가 폭발합니다.]‘…뒤!’
파아아아앙-!
피피피피피핏!
폭발의 기척을 느끼자마자 페넥스가 앞으로 굴렀다.
빠르게 반응했음에도 등에 칼날이 후두둑 박히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으윽….”
파아앗-!
몸을 일으켜 세우는 찰나, 목을 노리고 들어오는 롱소드의 기운.
‘흐읍!’
카아아앙-!
기습까진 막아냈지만, 연계하여 들어오는 다음 동작까지는 방비가 불가능했다.
후웅-!
[칼 쿠르소가 방패 강타를 사용합니다.] [대상에게 방패의 방어력만큼 타격을 주고 방패의 완전 방어 성공률만큼의 확률로 진탕을 일으킵니다.] [진탕은 3초 동안 어지럼증을 유발하여 능력치를 10%만큼 감소시키며 대상이 받는 공격은 전부 치명적인 판정이 됩니다.]타아아아아앙-!
머리를 정통으로 얻어맞고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치는 페넥스. 다행히 어깨가 먼저 바닥에 닿아 2차 피해는 면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삐이이이이이-!
귓가엔 이명.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여기서 죽는다.
‘그럴 수는 없지!’
페넥스가 이를 악물고, 임기응변으로 대처했다.
콰아아앙-!
신체 내부에서부터 폭발을 일으킨다. 그 이름을 물려받으면서부터 불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페넥스지만, 방금의 이 기행은 스스로를 상처입히는 방법이었다.
치이이이이-!
최대한 거리를 벌려 물러나는 마루스.
철컹…
투우우웅.
그가 불편한 무게의 완갑을 풀어 바닥에 떨어트리고는 페넥스에게 물었다.
“능력은 사용하지 않는 건가? 자신감이라면….”
화르륵…
화염 속에서 드러난 것은 페넥스의 불탄 얼굴이었다.
휘오오오…
그러나 순식간에 원상 복구되는 이목구비.
“자신감? 아니, 불필요해서라고 해야 하나….”
“흐으음….”
페넥스는 상대를 무시하고 있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페넥스는 지금 칼 쿠르소에게 근소하게 밀리고 있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곳이 지옥이었다면, 그녀가 본신의 힘을 발휘해 마루스를 일격에 베었을 것이다.
하지만, 악마라는 존재는 기본적으로 지옥이 아닌 다른 세계로 넘어왔을 때 엄청난 페널티를 받게 된다.
이는 성인의 몸이 다시 유아기 시절로 되돌아간 것만큼의 차이다.
여기에 더해, 페넥스에겐 현재 던전의 자원이 그렇게 많이 투입되지 않았다.
던전의 다른 부족한 부분에 우선적으로 자원을 투입한 파우스트의 결정이다.
그 결정이 옳은지, 그른지 페넥스는 모른다.
그저,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정말로 쓸모가 없거든….’
페넥스의 기본 스킬셋은 상대의 수가 불어날수록 강해지는 구조지만, 그렇지 않을 땐 대체로 힘을 쓸 수 없었다.
더군다나 상대는 상태 이상 저항이 높은 성기사다. 전투술 또한 탄탄해 그녀를 상대로도 밀리지 않았다.
안타깝지만 전투의 승패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만한 능력은 막대한 재생력과 화염을 다루는 부분뿐일 것이다.
“역시나 악마로군. 잠시 잊을 뻔했다.”
“그 단검, 그렇게 많이는 없는 거지?”
“…….”
“다시 붙어보자고.”
육탄전을 거듭하다 보면, 태생적으로 인간보다 강한 악마가 우위를 점하지 않을까.
페넥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스윽….
마루스가 품에서 두루마리를 꺼내기 전까지.
찌이이익-!
그가 신비한 문구가 적힌 두루마리를 강제로 찢었다.
후우우웅…
그 순간, 빛이 번뜩이더니 그의 망토가 일변했다.
[칼 쿠르소가 연금술 두루마리: 곡예사의 망토를 사용합니다.] [곡예사의 망토가 형성됩니다.]촤르륵…
망토의 안쪽엔 수많은 단검이 부착되어 있었다.
“치사하잖아!”
“덜 여문 악마였군. 솔라리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겠어.”
“…….”
“나로서는 행운이다만, 그대에게는 불운이겠지.”
마루스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의 앞에 있는 것이 갓 소환당한 페넥스가 아닌 칠죄종, 혹은 마족과 계약을 맺은 지 오래된 다른 악마였다면 그는 이미 고깃덩이가 됐을 테니까.
결국, 행운은 마루스를 향해 웃어주는 듯했다. 온 세상이 그가 그토록 원하던 악마를 손에 넣게 해주고자 하는 것처럼.
‘뭔가, 방법이 있을 텐데….’
휘오오오오…
파파팟-!
또다시 페넥스를 향해 쏘아지는 단검들.
하나, 둘, 셋…
눈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닐지도 모르니 절로 긴장하게 된다.
카아앙-!
카아앙-!
‘…놓쳤다!’
단검 한 자루를 놓쳤다.
‘터진….’
그러나, 단검은 터지지 않았다.
대신 그녀가 놓친 단검으로 시선을 향한 찰나에 또 다른 단검들이 발사되었다.
파파파팟-!
한 번에 전부 쳐낼 수는 없다.
‘어떻게 해야….’
페넥스에게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발상.
그 짧은 순간에 날아오는 단검들을 보고 이후에 이어질 전투의 흐름을 잡아챘다.
푸욱-!
페넥스는 단검을 쳐내지 않았다.
그 대신 최대한 회피해, 한 자루의 단검을 어깨로 받아냈다.
“객기인가?”
파아아아앙-!
나머지 단검들이 모두 폭발해 사방으로 칼날을 쏟아냈다.
그런데, 이어진 페넥스의 반응이 이전과는 달랐다.
콰아아아앙-!
몸에서 폭발을 일으켜 순간적으로 발생한 연기 속으로 몸을 숨겼다.
이렇게 되면, 그녀의 위치를 포착하기 전까지 마루스 역시 연계 타격을 가하기가 어렵다.
‘이걸 노린 건가….’
그러나 하책이 분명했다.
기록에 따르면 페넥스의 재생력은 무지막지하지만, 그 생명이 무한한 건 아니었다.
이곳은 지옥이 아닌 솔라리아이기에.
그녀의 재생력 또한 던전 코어의 마력을 끌어다 쓰고 있을 것이다. 그녀에게 할당된 마력을 다 사용하는 순간 재생은 멈출 것이다.
화르르르륵-!
“무슨 짓을…!”
페넥스가 괴이한 짓을 벌이기 시작했다. 연기 속으로 몸을 감춰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마루스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노리는 건 질식? 아니면 기습인가?’
무엇이 됐든, 급할 건 없었다.
아까 전, 그녀의 몸에 폭발로 큰 상처가 남은 걸 확인했다.
그녀가 생명력을 끌어다 쓰고 있다는 얘기다.
던전이 가진 마력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짐작 정도는 가능했다.
‘아마도… 위협적인 건 이번 공격까지다.’
화아아아아아…
사방이 연기로 둘러싸였다.
유독한 연기지만, 들이마시는 것만 주의하면 이후에 회복할 수 있다.
‘어디냐… 어느 쪽이냐?’
파팟.
페넥스가 소리를 흘렸다.
‘거기구나!’
피피피핏-!
단검 세 자루가 날아갔다.
카아아앙-!
위치가 확정됐다.
단검을 쳐내는 소리가 연기 속에서 들려왔으니까.
소리가 들려온 방향에서 나머지 단검을 폭발시키려는 그때.
화르르륵-!
정 반대편에서 연기를 뚫고 튀어나오는 불덩어리.
‘어째서…!’
그렇구나.
검과 부딪히는 소리가 아니었다.
‘내 단검을….’
그녀의 몸에 꽂혀 있던 단검이 보이지 않았다.
이미 자리를 벗어난 후에 날아오는 단검을, 몸에 박힌 단검을 빼내어 던져 맞춰 떨어트린 것이다.
‘연기 속에서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악마이기에 가능하다고 하기엔, 괴물 같은 전투 수행 능력이었다.
“하아아아아!”
불타고 있는 페넥스의 몸뚱이가 운석처럼 마루스를 향해 돌진해왔다.
파파팟-!
정면에서 발사된 단검 세 자루.
터트릴까?
터트려야 하나?
…그럴 수 없다.
단검을 터트리면 마루스 자신까지 휩쓸리는 거리였으니까.
‘노린 건 이 순간인가!’
하지만 단검을 막아내기 위해 방비하는 사이에 대응할 시간은 주어질 것이다.
그러니….
퍼퍼퍽-!
‘이런 미치광이가!’
단검을 그대로 몸으로 받아내며 돌파하는 페넥스.
가슴팍과 왼쪽 허벅지, 그리고 왼쪽 팔에 각기 틀어박힌 단검.
단검이 허벅지 근육을 파고들었는지 돌진하던 그대로 넘어지는 그녀였지만, 오히려 가속을 붙여 멀쩡한 한쪽 팔로 검을 휘둘러온다.
미쳤다.
미치광이다.
“으으아아아아!”
자신도 모르게 악에 받친 고함을 내지르며 페넥스의 검과 그 자신의 검을 부딪쳤다.
카아아아아아앙-!
그 한 번의 일격으로 둘의 검은 손에서 튕겨 나갔다.
페넥스는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
마루스는 오래전 그날 밤 느꼈던 감정을 지금, 또다시 느끼게 된다. 경외와 탐욕을!
“하아앗!”
왼팔의 버클러를 휘둘러 떨쳐내야 한다.
터어어엉-!
페넥스의 머리를 밀쳤지만, 이미 그녀의 불타는 몸이 마루스의 품에 달라붙었다.
넘어지며, 둘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파아앗-!
푸화아아악-!
페넥스의 심장에, 단검이 꽂힌다.
그녀가 피 흘리며 히죽 웃었다.
원하던 것을 이루었기에.
그녀의 팔에 박혀 있던 단검이, 어느 순간 그녀의 손에 들려 있었다.
버클러를 쥐었던 마루스의 왼팔이, 팔꿈치 아래로 절단되어 있었다.
그리고 페넥스의 끔찍한 화염이 번져, 얼굴의 반을 태웠다.
“크아아아아악!”
발로 페넥스를 걷어차 뒤로 넘어트리는 마루스.
그가 벌떡 일어나 회복을 시도했다.
후우우웅-!
[칼 쿠르소가 은혜의 빛을 사용합니다.] [은혜의 빛은 최근에 입은 상처를 아물게 하고 생명력을 끌어올립니다.]치이이이이…
불은 꺼졌지만, 그의 절단된 팔꿈치 그리고 화상을 입은 얼굴 반쪽은 회복되지 않았다.
아니, 이게 기적적으로 회복한 수준일 것이다.
그가 회복함과 동시에, 반대로 페넥스의 불씨는 꺼져갔다.
말단부터 시작해 몸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녀에게 할당된 던전 코어의 마력이 다한 것이다.
“허억… 허억… 푸흐흐….”
웃고 있는 페넥스에게 다가가는 마루스.
“…네 주인을 반드시 찢어 죽여주마.”
“나리를?”
그녀는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이 성기사는 강했다.
나리의 그 비쩍 말라 보이는 몸으로 상대할 수 있을까.
악마인 그녀조차도 힘든 싸움을 벌였는데.
페넥스는 문득,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 팔을 노려라.
– 팔?
사지 중 하나를 잘라내는 정도의 피해. 그 정도가 던전 수호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름과 얽힌 저주가 그것을 강제했다.
어떻게든, 맡은 일은 해냈지만 아쉬운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공존했다.
자신이 조금만 더 훌륭한 악마였다면, 이 자리에서 성기사의 숨통을 끊어놓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
그리고 팔 하나를 잘라내는 것조차 이렇게 어려운데, 이 성기사를 제압해야만 하는 나리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
어쩌면, 정말로….
‘…아.’
페넥스는 사라지며 떠올렸다.
나리의 성정을.
아마 자신이 걱정하며 이후의 일에 관해 묻는다면, 그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 …주제넘은 생각이구나.
그래.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안심시킬 것이다.
“히히….”
“난 악마에게서도 살아남았다. 반드시… 반드시….”
나리는 지지 않는다.
페넥스는 재로 변하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해 보시든지.”
[페넥스가 파티에 충분한 피해를 주었기에 강제로 패배합니다.] [페넥스가 불길로 되돌아갑니다. 잠시 후에 부활합니다.] [관문의 마력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페넥스가 부활하지 않습니다.] [우두머리 전투가 종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