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27
제27화
레메게톤 49위, 크로셀.
그리고 그 냉혹한 악마의 무기 호수.
악이 고여 만들어진 구덩이는 호수를 벼려냈고 이 검에 베인 자는 얼어붙어 썩는다고 알려져 있다.
부패와 혹한의 악마, 크로셀의 무기다운 효과.
스으으…
쩍…
수은으로 만들어진 마루스의 인공손의 색이 탁하게 변했다.
[파우스트가 사무치는 부패를 사용합니다.] [사무치는 부패는 혹한을 응축한 기운입니다.] [사무치는 부패에 적중당한 주변부는 모든 속도가 10% 저하됩니다.] [사무치는 부패는 중첩됩니다.] [사무치는 부패의 중첩이 동상을 일으키는 수준에 도달하면 괴사 혹은 결손이 진행됩니다.] [동상을 일으키는 중첩 횟수는 대상의 냉기 및 독 저항에 따라 다릅니다.]마루스는 아마도, 인공손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을 점점 참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후우우웅!
[칼 쿠르소가 자가 치유의 기운을 사용합니다.] [30초 동안 매 5초가 지날 때마다 상태 이상 회복을 시도합니다.]……
마루스의 몸에 신성한 은빛이 감돌았다.
“지금은 불신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난 오랜 세월 악과 싸웠다. 이런 저주쯤은….”
호수가 발휘하는 능력은, 흔하디 흔한 저주가 아니다.
악이 응축되어 만들어진 고유의 힘이기 때문에 구덩이에서 벗어나기 전엔 해제에 엄청난 힘이 소요된다.
“…무슨?”
이쯤 되면 녀석도 이상을 느꼈을 테지.
그리 쉽사리 흘러갈 전투가 아니라는 걸.
마루스는 강하다.
나 역시 그걸 인지하고 있다.
신체적, 가진 바 능력은 내가 더 뛰어날지라도 산전수전을 겪은 마루스에 비교했을 땐 경험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틈을 노려야 한다.
앞으로 이 전투에서 이용할 수 있는 마루스의 허점은 많아야 셋 정도. 모두 순간에 가까울 정도로 찰나다.
그리고, 지금 그 첫 번째 틈이 왔다.
피핏-!
“크윽-!”
수은으로 만들어진 손을 집요하게 노리는 부패의 기운.
쩌적…
손은 점점 둔해질 것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
파아아악-!
“기다리고 있었다!”
마루스가 고함을 내지르며 롱소드를 내찔렀다.
핏-!
아슬아슬하게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롱소드.
후우우웅…
이번엔 그의 인공손이 형태를 바꿔 창처럼 변해 한 번 더 나를 찔러왔다.
피유우웃-!
이건, 예상하고 있던 바다.
즉시 검을 쥐지 않은 손을 내밀어 놈의 인공손을 잡아챘다.
[사무치는 부패가 동상 기준치에 도달합니다.] [괴사를 일으킵니다.]빠지지직-!
“…뭐?”
쩌저저적-!
과자처럼 부서지는 수은 손.
푸스스스-!
먼지처럼 흩날리는 손은 더 이상 날 막을 수 없다.
이 순간, 유일하게 자유로운 내 검이 앞으로 짓쳐들어갔다.
녀석의 가슴팍이 보였다.
강하게 찌르면, 죽는다.
그래, 지금 찌르면…
나와 같은 사람을 죽인다.
푸우우우욱-!
“끄으으으….”
빠아아아악-!
마루스의 발차기에 얻어맞아 뒤로 나뒹굴었다.
“크헉….”
…찌르긴 찔렀다.
녀석의 심장에서 한참 벗어난, 어깨 쪽에 적중했지만.
후우우웅-!
[칼 쿠르소가 은혜의 빛을 사용합니다.] [은혜의 빛은 최근에 입은 상처를 아물게 하고 생명력을 끌어올립니다.]치이이이이…
“크으으… 후우… 어처구니가 없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
“…….”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망설였어.’
녀석의 심장을 찌르지 못했다.
그건 내가 직접, 인간을 죽인다는 것과 같으니까.
직접 진흙탕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거니까.
마음속엔 아직도… 원래의 내 삶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는 걸까?
‘병신, 머저리.’
불신자는 오래전 저버린 믿음의 힘으로, 전신을 휘감았다.
휘오오오오오…
“우습게 볼 생각이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죽어라.”
[칼 쿠르소가 축성의 방패를 사용합니다.] [주위를 서서히 회전하는 방패 모양의 신성한 힘을 떠올립니다.] [축성의 방패는 일정 확률로 실체화해 투사체를 방어하며 방패 능력 발동 조건을 만족시킵니다.]구덩이에 잡아먹힌 암실은 지금, 어둠과 부패 그리고 냉기로 가득하다.
“빛이여!”
후우우우웅-!
그리고 그것을 밀어내고자, 강렬한 빛이 번뜩인다.
“제 맘대로 칼도 휘두르지 못하는 놈이 감히 내 앞을 막으려 드느냐!”
찌이이익-!
[칼 쿠르소가 연금술 두루마리: 긴급 수복을 사용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용한 연금술이 효과를 상실했다면, 다시금 해당 연금술을 사용합니다.]휘오오오오…
녀석의 인공손이 재생되었다.
“슬슬, 이 손도 익숙해지는군. 네게는 불운한 소식이겠지만.”
“…….”
불운이라.
이 세계로 건너온 후 유독 많이 떠올리는 단어인 것 같다.
마치 세계가 나를 미워하는 것처럼, 모든 순간이 나를 죽이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칼 쿠르소의 강함도, 녀석이 사용하는 힘도 내 예상과 경험을 뛰어넘었다.
고작해야 에피소드 1막의 보스인데… 나는 그 1막의 보스보다도 유약하다.
아마도 호수를 준비하지 않았다면, 상황을 낙관하고 있었다면 지금쯤 죽었을 게 뻔했다.
그래도 아직, 방법은 많았다.
아니 살아날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스스로가 그걸 잘 알고 있다.
아니, 저주받은 몸인 파우스트의 전투 감각이 지금도 칼 쿠르소의 목을 벨 수십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호수의 세 번째 힘.
내가 현재 다룰 수 있는 마지막 호수의 능력을 꺼냈다.
파스스스…
[파우스트가 실체 없는 악을 사용합니다.] [사무치는 부패의 형질을 변환할 수 있습니다.] [구덩이 안에서는 변환 속도와 변환할 수 있는 양이 증가합니다.]형질 변환.
호수가 가진 능력의 알파이자 오메가.
언뜻 보면 능력 설명도 부실한 데다 뭔가 심심해 보이는 힘. 그러나 레메게톤의 능력 설명은 전통적으로 부실하고 두루뭉술할수록 고점이 높았다.
실체 없는 악의 힘은 간단했다.
사무치는 부패를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것.
단순히 그것뿐인 힘이지만, 그 실상은 꽤 무지막지하다.
한때는 파우스트를 직접 컨트롤하는 게 아니라 파우스트에게 호수 한 자루를 쥐게 하고 Ai로 자율 전투를 수행하게 해 위험한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게 과금 유저의 공략이었던 적도 있었을 정도로.
한파의 특성도 가지고 있는 검답게, 투사체를 얼려 고체로 만들어 꿰뚫거나 물처럼 만들어 피하기 어렵게 할 수 있다. 아니… 사실은 더 무지막지한 일들을 해낼 수 있다.
‘우선….’
휘오오오오…
실체 없는 악을 사용해 검은 운무를 형성했다.
나중을 위한 안배다.
이후 공격을 어떤 방식으로 이어갈지 고민하던 중, 칼 쿠르소가 먼저 행동에 나섰다.
휘오오오오…
[칼 쿠르소가 악이여 드러나라!를 사용합니다.] [신성력을 응축한 망치로 지면을 내려칩니다.] [매우 넓은 범위에 5초마다 약한 신성 피해를 주는 지속 효과를 부여합니다.] [지속 효과가 발동할 때마다 대상의 위치가 드러납니다.]놈의 수은으로 만들어진 왼손이 커다란 전투 망치처럼 변했다.
“어디 숨은 것이냐, 애송아!”
콰아아아아앙-!
번갯불이 튀는 것처럼, 굉장한 빛이 번뜩였다. 그리고 구덩이에 금빛의 실금이 무수히 그어졌다.
치이이…
실금이 몸을 타고 올라왔다.
광범위 추적 능력이었기에 고통은 그리 크지 않았다.
아니, 파우스트의 신체 자체가 전투 중에 고통을 최대한 다스릴 수 있게 만들어졌으니 그런 것도 있겠지.
“거기로군!”
휘릭-!
[칼 쿠르소가 방패 던지기를 사용합니다.] [방패를 착용하지 않았습니다.] [축성의 방패를 대신 사용합니다.] [대상에게 물리 피해가 아닌 신성 피해를 줍니다.]쒜에에엥-!
‘막아야 한다!’
부지불식간에 이어진 연계기에 당혹성을 터트릴 시간도 없이 검으로 대응했다.
콰아아아아앙-!
“큭….”
팔을 시작으로 전신이 떨렸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에 봉착했다.
쒜엑-!
전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날아오는 단검.
‘단검을 숨겼어?’
마루스가 방패로 시야를 가리고 단검을 발출한 것이다.
‘…제길!’
파아아앙-!
적중하지 않은 단검이 터지며 칼날의 폭풍이 일었다.
퓨퓨?-!
“크으으으으….”
부서진 칼날 몇 개가 몸에 틀어박혔다.
“끝이다!”
녀석이 성난 멧돼지처럼 쇄도해왔다.
“노오오옴!”
퓨우우웃-!
녀석에게 대응하기 위해 사무치는 부패를 발출, 눈을 노린 공격이다.
눈은 인간에게 있어 치명적인 급소다. 당연히 고개를 돌리거나 가려야만 하는 동작이 강제된다. 마루스도 그 사실을 알기에 재빨리 눈을 인공손으로 가렸다.
‘…한숨 돌렸군.’
휘리릭-!
미리 돌진해오던 자리에 만들어뒀던 물웅덩이. 당연하게도 사무치는 부패를 응축한 물웅덩이였다.
스스로 눈을 가린 녀석이 그것을 피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첨벙-!
“이….”
벗어나기 전에, 얼린다.
쩌저저적…
그리고…
“썩어라.”
콰지지지직-!
“끄아아아아악!”
이번엔 가짜가 아닌 진짜 육체가 동상에 걸려 썩어 떨어져 나갔으니, 고통을 참을 수 없을 거다.
녀석은 왼손에 이어, 한쪽 다리도 잃었다.
“포기해라, 끝이다.”
“…이 정도로 포기를 말하는 거냐?”
찌이이익-!
[칼 쿠르소가 연금술 두루마리: 수은 신체를 사용합니다.] [부서지거나 큰 충격을 받기 전까지, 수은으로 신체를 재형성합니다.]‘하나가 더 있었나!’
이건… 이상하다.
아니, 사실 한참 전부터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칼 쿠르소가 무과금 절단기라 불릴 정도로 흉악한 녀석은 맞았지만, 에피소드 1장의 보스일 뿐이다.
이렇게까지 질기게 저항하고, 이렇게까지 강한 힘을 숨기고 있지는 않았었다.
게임에서는… 이러지 않았는데.
분명, 파우스트가 전용 무기를 사용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정신 나간 게임이 있을 리가 없잖아! 아니, 그럼 애초부터 잘못 생각한 걸지도….
‘…지금은, 게임이 아니니까.’
뒤뚱뒤뚱 비칠거리며 일어서는 마루스.
녀석을 보며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을 던졌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는 거지?”
“…….”
“네 욕망은 오랜 시간에 걸쳐 네 몸과 정신, 시간과 삶을 망쳤다.”
“…….”
“너뿐만 아니라 네 주변의 삶까지도. 그런데 뭘 위해서 그렇게까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뭐?”
“왜 그런 걸 신경 쓰는 거지? 그게 내 삶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려는 거냐?”
마루스가 히죽 웃었다.
“그날, 나는 죽었다. 악마가 내 삶의 전부가 됐다. 다른 건 아무런 가치도 없어. 모두 회색빛이야.”
“네 이기심으로….”
“이기심? 세상을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거늘! 나를 위해 세상은 존재한다!”
이처럼 광오한 자가….
– 너보다 낫군.
순간,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 파우스트와 똑 닮은, 아니 똑같이 생긴 존재가 날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 아닌가? 김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