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31
제31화
심장이 미칠 듯이 쿵쾅거렸다.
근처에 있는 다른 이가 들으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이래도 되나?
단챠로 6성 악마가 등장하는 것부터가 기적에 가까운 일인데 평범한 6성 악마도 아닌 무려 대악마가 내게 오고 있었다.
‘이건….’
범죄다.
현실에서도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면 바로 영구활동 정지를 당할 정도의 극악무도한 범행이나 마찬가지다.
머릿속에서 일곱 대악마의 이름들이 뒤섞인다.
어떤 괴물일까.
어떤 괴물이 썩은 뿌리에 혁명을 가져올 것인가.
손에 들어온 행운은, 더 이상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당연히 받아내야 할 것을 받아내는 것처럼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게, 꿈이 아니길.
현실을 걸으며, 계속해서 꿈을 꿀 수 있기를.
“최초의 피를 물려받은 일곱 악마는 하나같이 강력했으나 제각기 다른 힘을 물려받았다.”
무엇이냐.
네가 물려받은 힘은…
“별의 번뜩임….”
아….
너로구나.
너였어!
“그녀의 지옥은, 별과 같은 지성으로 가득 채워졌으니….”
쿠구우우우우우우우웅…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주위에 스산한 안개가 깔린다.
“유황과 번개로, 지성의 심판을 내리는 자….”
타오르는 지성.
“영원의 별이 지금, 이곳에 추락한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지옥문에서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온다.
쿠구구구구…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고, 그 안에서 자그마한 소녀가 등장했다.
바로 그때, 지옥문 너머로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두려움에 떨게 할 만큼 음산한 목소리가 넘어왔다.
– 아모오오오오오오온!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하….
쿠구구구구구…
지옥문이 그 고함이 다 전해지기도 전에 닫혔다.
신비로운 연기 속에서 나타난 소녀의 외형은 특이했다.
축 늘어진 소매에 매우 작은 뿔.
아담한 신장에 어울리는 브라운과 골드가 적절히 섞인, 양 갈래로 땋은 머리칼까지.
하나같이 눈길을 끄는 복색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압도적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건….
기이잉-
기이이이잉-
그녀의 주위를 자유롭게 비행하며 얼쩡거리는 기계 손들일 것이다.
어림잡아 다섯… 아니, 일곱 개 정도로 보이긴 하지만 더 있을 수도 있다.
녀석들의 손등엔 눈처럼 보이는 렌즈가 달려 있었다.
‘아니, 정말로 눈일지도.’
앙증맞은 아몬의 뿔에서 그녀의 이목구비로 시선이 옮겨졌다. 그녀의 작은 입에서 한숨이 토해졌다.
“하아… 하아… 음?”
그제야 소환자에게 관심을 주는 대악마다.
“어… 어흠… 소개하지, 이 몸은 지성의 별이자 지옥의 대악마인….”
그녀의 눈이 소름 끼치도록 빛났다.
“아몬이니라.”
[★★★★★★ 아몬을 소환합니다.] [업적 퀘스트 ‘영원의 별’을 달성합니다.]싱글싱글 웃고는 있었지만, 그 웃음 너머에 압도적인 존재감이 자리했다. 그녀의 시선이 곧 내가 아닌, 본인과 같은 뿔을 지닌 두 여성에게로 향했다.
페넥스와 루시퍼.
“호… 이게 누구지? 과연… 그런 거였나? 루시퍼, 그대가 날 부른 거군.”
루시퍼가 한 손을 반쯤 들어 펴 보이며 대꾸했다.
“무리, 아몬을 소환한 건 파우스트 님입니다.”
“스파게티?”
“파우스트.”
“…….”
척-!
아몬의 기계 손 중 하나가 내게 검지로 삿대질했다.
“거짓말, 이 몸이 저 미물에게 소환되었다는 말이냐?”
“파우스트 님은 마족이십니다.”
“…멸족했다 들었다만?”
“명맥은 이어가고 있습니다.”
“…으그으으으.”
아몬은 어쩐지, 내게 소환당한 것이 굉장히 분해 보였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들고는….
“끄으응… 그럴 수 있느니라! 우주엔 이해할 수 없는 게 아직도 가득하니….”
히죽-
“그래서 더 재밌는 법이니라.”
폭풍과도 같은 순간들이 지나자, 꿈이 현실이 되어 있었다.
“좋아, 안내해도 좋다. 이 아몬 님의 거처는 어디지?”
“…….”
루시퍼가 눈치를 살피더니 아몬에게 다가가 속닥거렸다.
“대충 되는 대로 자고 있습니다.”
충격을 받은 듯 아몬의 눈이 퀭해졌다.
“……그럴 수는 없다. 잠자리는 중요한 것인데!”
이를 아그작 물고는 말한다.
“내 시종들을 데려왔어야 하는데!”
그녀가 후회하는 모습을 보며 루시퍼에게 전했다.
“여기까지 하기로 하지.”
마석을 사용하기엔, 아직 이른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 * *
아몬.
지옥의 가장 오래된 존재들이자 가장 강력한 존재들인 7대 악마 중 하나.
현실에선 핵과금 유저들이나 영접할 수 있었다는 괴물이다. 대악마는 그 하나하나가 밸런스 파괴의 주범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대단했기에, 아마도 레메게톤이 망한 이유 중 한 가지는 바로 이 대악마들의 존재일 것이다.
‘없는 쪽의 박탈감이 말이 안 됐거든.’
인권이라 부르기엔 더럽게 비싸고 없어도 무방하다고 하기엔 박탈감이 치명적이었다.
그런 아몬이, 지금 썩은 뿌리에 두 발을 딛고 서 있었다. 나보다 한참 작은 키로 위를 올려다보며 물어온다.
“그래, 스파게티 자네는 마왕인 게지?”
“파우스트.”
“이 몸이 부르는 것이 곧 이름이니라!”
“…파우스트.”
“파우스트! 그래, 마왕인 게지?”
“마왕과는 관련 없다.”
“그럴 리가!? 여기는 31번째 던전 정도 되고 말이야? 우연히 시찰 나온 게 맞을 것 아닌가?”
“첫 번째 영지다.”
퀭-!
무슨 애니메이션에서 이런 표정을 봤던 것 같은데. 동공이 한순간에 사라져 쓰러지려는 아몬을, 그녀의 기계 손이 부축했다.
“이극… 이….”
간신히 몸을 일으킨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돌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한다.
“나는 이만 돌아갈 것이다! 지옥으로!”
이럴 땐, 그나마 연고가 있는 자의 도움이 필요했다.
가령, 루시퍼 같은.
“아몬, 파우스트 님에겐 당신의 힘이 필요합니다.”
“뭐? 헤헤… 역시 그렇… 아니! 루시퍼, 그대의 부탁이라고 해도 소용없느니라”
아몬이 정색하며 뜻을 말했다.
“대악마 아몬의 힘을 그렇게 사소한 일에 사용할 수는 없는 법. 이 강대한 힘은 오직 지옥의 균형을 수호하기 위해 지켜져 온 힘이다.”
제법 강단 있는 발언에 루시퍼가 말을 얹었다.
“아몬이 지옥의 균형을 무너트린 장본인 아니었습니까?”
“…그랬었나?”
“벌써 잊은 겁니까?”
“오래도 기억하는구나, 루시퍼.”
스윽…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나는 자리를 비웠다. 나의 심처에서 그들끼리 떠드는 것을 보고 있자니, 그 모습이 초라해 보일 것 같아 잠시 자리를 비켜준 것이다.
‘어차피 대화는 나도 들을 수 있으니까.’
썩은 뿌리와 나는 한 몸이나 다름없다. 던전에서 벌어지는 일을 내가 모를 수는 없다.
스으윽…
밖으로 나와 던전을 순찰했다.
던전이 갖춘 첫 번째 필드가 숲이어서 좋은 점은, 집 앞에 산책할 공원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 키이익…
– 키이이익…
며칠 전, 고블린 한 마리가 숲 필드의 효과로 불어났다. 필드를 오랫동안 좋은 상태로 가꾸면 아마도 더 양질의 사역마가 늘어나겠지.
꾸루룩…
꾸루루룩…
나무에 앉은 이름 모를 새를 보며 생각한다. 이곳에서 벌어졌던, 앞으로 벌어질 일과는 상관없이 숲은 평온했다. 이곳에도 사역마들 나름의 삶이 있다.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한편으로는 심처에서 계속되고 있는 아몬과 루시퍼의 대화를 엿들었다.
– 루시퍼, 어찌 된 일인 게냐? 그대가 어째서 마족의 곁에?
– …지금은 성심을 다해 파우스트 님을 섬길 뿐입니다.
– 흐음…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이미 멸한 마족에게 기대는 그대가.
아몬은 마족이 이미 재기불능이라 여기는 모양이다.
– 그렇지 않습니다.
– ……음?
– 아직, 잿더미 속에 숨어…
지금, 말을 하는 루시퍼의 얼굴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 자그마한 숨결만으로 온 세상을 불태울 불씨가 남아있습니다.
– 그것이 스파게티?
– …파우스트 님입니다.
– 음… 의문이 풀리지 않느니라. 지옥이 그대를 필요로 할 때 자취를 감추었건만 이름 모를 마족의 곁에서 마주할 줄이야… 이 몸의 소환엔 그대가 개입한 것인가?
‘…설마?’
흠칫, 불안감이 치솟았다.
설마 이 모든 게 루시퍼의 계략이라면….
– 그렇지 않습니다.
– …….
– 오직, 파우스트 님의 힘입니다.
휴….
한시름 놓게 된다.
내 행운이 조작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니까.
– 그보다, 지옥문 너머에서 들리던 목소리. …익숙했습니다.
– 사, 사소한 건 넘어가는 게 어떠한….
– 아몬의 이전 계약은… 아마도 굉장히 오래된 것으로 아는데 술법이 약해진 겁니까? 지옥문을 스스로 넘어온 걸로 생각됩니다만… 아하… 설마 소환 의식에서 느껴진 그 불온한 기운은…
– 그만! 그마아아안! 더는 캐묻지 않는 편이….
– …내게 떠넘길 생각이었습니까?
떠넘겨?
‘설마… 소환 과정에 개입한 건 아몬 자신이라는….’
– …이 몸은 당분간 지옥에는 돌아갈 수 없느니라.
– 역시, 얼핏 들었던 건 그녀의 목소리가 맞았…
– 좀 누추하지만, 여기도 꽤 아늑한 것 같구나. …둘러보겠다.
‘그렇군. 의도적으로 넘어온 건가?’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운이 좋다 싶었다. 하지만, 그게 뭐 중요한가?
‘중요한 건, 아몬이 지금 내 손에 들어왔다는 것뿐.’
나는 벼랑 위에 서 있다.
이 벼랑 위에서 아몬이라는 눈덩이를 굴려 어떻게든 거대한 이득을 볼 생각뿐이다.
“나리….”
“…여기 있었나, 페넥스.”
“아몬, 위험해.”
악마가 대악마를 두려워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했지만, 페넥스도 그러했나?
“아몬이 두려운가?”
휙휙-
페넥스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할아버지가 대악마, 믿지 말라고 했어!”
“…….”
“대악마가 생명력, 봉인했다고 말했었어.”
어라?
‘아아… 그랬었지.’
전대 페넥스와 일곱 대악마 사이에는 비사가 존재했다. 이후 페넥스의 스토리에서 꽤 중요하게 다뤄지는 부분이다.
‘지금은 별 상관없지만 말이야.’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인지하지.”
그 말이, 그녀에겐 마치 진리처럼 다가왔는지 해맑게 웃으며 대답한다.
“…응!”
* * *
아몬.
이 썩을 것.
“…아몬은?”
“거처에 있습니다.”
아몬은, 일하지 않았다.
제멋대로 아직 용도를 결정하지 않은 공간을 순식간에 그녀의 거처로 개조했다.
눈앞에서 기적이 벌어지는 것을 목격할 줄이야. 그녀의 기계 손이 돌을 쪼개고 다듬지를 않나 정교한 조각까지 무리 없이 해내지를 않나….
돌을 갈아낼 정도의 강도를 지닌 그 기계 손들은, 잠깐이지만 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섬?한 공간에서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퍼질러 자는 아몬이 더 공포였다.
말 안 듣는 리자몽을 데리고 다니던 지우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당장에라도 그녀의 엉덩이를 걷어차서 일하라 말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좋지 않은 결과가 초래될 것이니….
“하아….”
아몬은 눈덩이가 아니었다.
돌덩이였다.
그나마 말이라도 잘 들었던 페넥스가 선녀처럼 보였다.
“파우스트 님.”
스윽…
루시퍼의 부름에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양피지를 내밀었다.
“모리에게서 온 소식입니다.”
“모리인가.”
스륵…
약간의 기대감을 지닌 채 돌돌 말린 양피지를 펼쳤다. 그 안엔,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던 내용이 들어있었다.
“암시장이라….”
리우디라를 포함한 주변… 그러니까 좀 떨어진 위치의 도시들에서 흘러나온 장물과 기타 떳떳하지 않거나 희귀한 물건들을 거래하는 암시장의 일정을 전해왔다.
‘게임에서는 단순히 불법적인 루트로 오고 가는 장물을 거래하는 곳에 불과하긴 했었다만….’
그 비밀의 장소가 현실에 적용되었다면, 아마도 그리 단순한 모습은 아닐 것이다.
‘마침 밖에 나갈 일이 있기는 했으니….’
루시퍼가 눈을 빛냈다.
“이번엔 꼭….”
바로 그때.
“갈 것이니라!”
뻐어엉-!
아몬의 거처, 그 굳게 닫힌 문이 활짝 열리며 머리가 뻗친 그녀가 총알처럼 튀어나왔다.
파팟-!
“이 몸도 갈 것이니라!”
그 말을 듣자, 나도 모르는 새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어쩌면, 이번 외출이 그녀의 나태함을 바로잡을 수 있을지도.
“안 될 것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