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36
제36화
달그락…
달그락…
푸르르르…
말의 투레질과 함께, 마차 안의 정적이 깨진다.
“그러니까, 그림할 남작의 영지에 저 정체 모를 마족들과 동행한다는 거예요?”
“메리, 저들 중 마족은 한 명뿐이에요.”
“…다른 자들은요?”
“저도 다른 이들의 정체까지는 정확히 모른답니다.”
“그런데 어째서 일을…!”
“장막의 신, 베스께서 말씀을 주셨으니까요.”
베스 교는 장막을 다스리는 어둠의 신 베스를 섬긴다. 말로만 전달받으면 사특하거나 음습한 종교라고 여겨질 수 있지만, 교리를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기본 교리 자체가 포용으로 향한다.
모든 신자의 포용.
솔라리아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 마족, 요정과 난쟁이 등. 하해와 같은 장막의 품으로 그들을 끌어안으라 말한다. 태양에게 외면당한 이들이 문을 두드리는 곳.
“마족과 함께하는 게 꺼려지나요?”
“그건….”
옆에 있던 얼굴에 칼자국이 난 우락부락한 남성이 대신 말했다.
“솔직히 그렇습니다. 다른 일이라면 모르겠지만, 우리가 그림할 남작에게 평화적인 목적으로 방문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성녀님, 이 부분은 전적으로 카자리 경의 말이 옳습니다. 차라리 교회 본단에 구원을 요청하는 편이….”
“둘….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 둘이에요.”
손가락 두 개를 핀 아델리아가 설명을 시작했다.
“첫째, 교회 본단에 임무 수행을 위한 지원을 요청하게 되면 제 능력에 대한 의심이 따라오겠죠.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맞는 말씀입니다.”
“둘째, 간단합니다. 정말로 성 베스께서는 검은 머리의 남자와 함께하면 일이 해결될 거라 말씀을 내리셨어요.”
“하지만….”
“이 말씀을 의심한다는 건, 제 신앙의 부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신실한 믿음이라는 건… 가끔은 믿기 어려운 것들을 믿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니까요.”
밝게 빛나는 눈으로 초롱초롱 눈빛을 쏘아대는 탓에, 이 자리에 있는 성기사 카자리와 메리 그리고 알론은 한숨을 푹 내쉬며 답했다.
“맞는 말씀입니다.”
“따를게요….”
“어쩔 수 없죠.”
중요한 얘기가 끝났으니, 모두 마차의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근데, 그 남자… 이름이 뭔가요?”
“폰이라 소개하더군요. 그게 정말일진 모르겠지만.”
“폰… 으흐음… 폰….”
“메리? 왜 그러시죠?”
“아, 아니에요.”
“…그가 마음에 들었나요?”
“그는 마족인데요?”
“그리고요?”
“정체도 알 수 없어요. 수상한 점투성이죠.”
“…그래서요?”
“…잘생겼던데요?”
풉-!
“맞지, 조각 같은 미남이긴 하더군.”
“그러니 저 메리가 관심을 가지는 거겠지.”
“과, 관심은 누가….”
* * *
“설명해, 아몬.”
“네 몸에 대해서 말인가?”
“그래.”
아몬은 내 몸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는 듯했다. 숨긴 적은 없지만 내가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다는 게 조금 심통이 났다.
“네 몸은 지금, 썩은 뿌리와 연결되어 있다.”
“그건 알고 있어.”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서로 생명력을 공유한다는 의미지.”
“던전과?”
“정확히는 던전 코어. 네 생명력은 던전 코어의 생명과 일체화되어 있다. 던전 코어가 강해지기 전까진 스스로 연결을 끊어낼 수조차 없느니라.”
이 역시도 어느 정도 알고 있기는 했다.
“그런데 어째서, 내 몸 상태가 당장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 수 있던 거지?”
“최근에 강력한 영혼을 삼킨 적이 있었겠지?”
“강력한… 영혼?”
“쉽게 말하자면, 던전 코어는 영혼을 삼킬수록 단단해지느니라.”
강력한 영혼이라면…
“칼 쿠르소를 말하는 건가.”
“뭐가 됐든, 떠올렸다면 그 영혼이겠지. 그 영혼이 너의 생명력이 되었다.”
“…기묘하군.”
쯧…
“살아가기 위해선 죽여야만 한다는 건가?”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맹수든 인간이든 대부분의 생명은 살아가기 위해 살생을 저지르지. 아니, 애초에 살아간다는 건 그런 것이니라. 딱히 특별하지 않은 일.”
아몬의 말에 가만히 의자 등받이에 몸을 파묻었다.
특별하지 않은 일.
앞으로 일어날, 미래로 가는 길에 대한 평가다.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보다, 교회 쪽 사람과 관계를 맺는 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빌이 물어왔다.
“베스 교는 일반적인 집단이 아니다. 제국에서도 이단 취급을 받는 자들이기에 우리와 오히려 이해가 맞아떨어져.”
“장막의 신을 모신다는 그 교회로군요.”
“이종족 융화 교리 때문에 배척받지. 뭐, 깊게 관여하는 것만 아니면 괜찮다. 엮이는 건 이번뿐이고 그들이 내건 대가가 지금 꼭 필요하거든.”
“그렇다면, 이해했습니다.”
똑똑…
모리가 웃음기 머금은 말투로 마차를 두드리며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이곳이 그림할 남작의 저택인 것 같군요.”
끼이이이익…
마차가 정지했다.
‘…대단하군.’
어마어마한 대저택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 정원만 하더라도 암시장의 부지보다 넓은 것 아닌가 싶은 정도.
주변 조경만 보더라도 이 저택의 주인이 얼마나 까다로운 성격인지 알 수 있었다.
저택 정문에, 휘황찬란한 망토와 커다란 브로치를 한 중년의 남성이 나와 있었다. 그의 곁에 모여 있는 하인들의 수가 이 대저택을 어떻게 수월하게 관리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
스윽…
멋들어짐과 우스꽝스러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콧수염을 스윽 쓰다듬으며 그림할 남작이 앞으로 나섰다.
“아델리아 님께서 친히 이곳에 방문하여 주시니, 이 랜포드 그림할… 성은에 몸둘 바를 모르겠군요.”
“그림할 가의 새로운 가주이신 랜포드 경께서는 부디 예를 거둬주시길, 신도들을 살피는 건 제 몇 안 되는 사명일 뿐이에요.”
“후후… 정말로 아름다우십니다, 아델리아 님. 이 랜포드의 심장이 오랜만에 살아있다고 말하는군요.”
그림할 남작이 무릎을 굽혀 아델리아의 손등에 입 맞추었다. 꼭 음미하듯 천천히 이루어지는 그의 행동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걸 참을 수 없었다.
“그런데 함께 오신 분들의 소개는….”
“방랑을 일삼는 분들입니다. 개인적인 용무로 지금은 제 순례에 말벗을 해주시는 정도지요.”
“하하하! 호쾌하시기도 하시지. 그럼 통성명은 안으로 들어가서 하시지요.”
그림할 남작과 시선이 교차했다.
‘호….’
번뜩이는 눈빛을 한번 받은 것만으로도 그림할 남작이 어떤 인물인지 곧장 알 수 있었다.
‘…숨기지 않는 건가?’
그의 성채나 다름없는 곳이기에 자신감이 더한 것인지, 그 광오함을 숨기지 않았다.
“파우스트.”
“…….”
“우리가 이리의 아가리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아느냐?”
“그래, 그런 것 같군.”
저택 사방에 기척을 숨긴 자들이 잔뜩 포진해 있었다.
아몬이 싱긋 웃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지루하지는 않겠구나.”
내 감상평은 그녀와는 달랐다.
“마석을 좀 더 받아야 수지가 맞는 장사겠어.”
“그것도 좋지.”
저벅…
저벅…
공포영화 속 한 장면처럼, 저택의 정문을 향해 걸어가는 우리의 뒷모습이 위태로워 보일 것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기뻐하고 있는 건가?’
사건이 일어날 게 분명했다.
광오한 자와 수상한 전조.
그리고 이 폐쇄적인 대저택이라는 장소 선정까지.
그것이 기뻤다.
어떤 이유를 들먹이며 보상을 뜯어낼지만 계속해서 떠올렸다.
스윽…
메리가 이동 중에 슬쩍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함부로 움직이지 마……세요. 어디까지나 그쪽은 성기사들이 조사를 벌이는 사이 생기는 호위 공백을 임시방편으로 메우는 정도니까.”
“참으로 옳은 말이군. 그렇게 하겠다.”
“얘, 얘기가 통하네……요!”
조연은 조연답게 사고나 치지 말고 있으라는 경고였다. 흠흠! 이라고 수상쩍게 다시 아델리아 쪽으로 붙는 메리.
이후에, 자연스럽게 하인의 안내를 받아 이곳에 머무는 동안 잠자리가 되어줄 거처를 배정받았다. 대저택답게 방이 여럿 있었다.
다만, 왕녀 측과 성기사 셋은 각기 방 하나를 배정받았고 우리 쪽은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 총 방 2개를 배정받았다는 차이가 있을 뿐. 오히려 이편이 움직이기 편하다는 걸 그들은 알까.
곧, 식사에 안내받았고 상석에 앉은 그림할 남작과 맞은 편 아델리아가 있는 테이블에 착석했다.
‘긴 테이블에서의 식사라니….’
이런 기괴한 테이블에서 식사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델리아와 그림할의 가주 랜포드는 그들끼리만 아는 대화 주제로 주로 떠들었다. 적당히 걸러 들으며 식사를 이어갈 즈음, 그림할 남작이 우리에게 관심을 줬다.
“흐으음… 그러고 보니 아델리아 님의 일행이신 이분들… 용태가 범상치 않군요.”
“…그런가요?”
“남녀 구분 없이 빼어난 미인들입니다. 이건 사심 없는 칭찬이니 부디 곡해하지 말아 주시길.”
씰룩.
아몬의 입꼬리가 뒤틀렸다.
혹시라도 그녀가 사고를 칠까 봐 솜털이 곤두섰을 때, 그녀의 입에서 청아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호호… 감사해요.”
대답을 들은 그림할은 우리에게서 관심을 거두곤 아델리아와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내가 놀란 표정으로 아몬을 흘깃하자, 아몬이 나에게만 들리도록 말했다.
“당황하는 네 반응이 재밌어서 말이지.”
이 자식, 안절부절못하는 내 반응을 즐긴 거다.
“그런데, 최근 인근 교구에 기이한 일이 있었던 걸로 아는데….”
아델리아가 예의 그 화제를 꺼냈다.
“아… 실종 사건 말이군요. 맞습니다. 신도 몇이 요 몇 달 사이에 행방불명되었습니다. 교구 차원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좀처럼 실마리가 잡히지 않는군요. 참… 면목 없습니다. 본단까지 이 사실이 전해지다니. 아… 혹시 그 때문에 이 그림할을 찾아오신….”
“그건 아닙니다. 교구의 분위기를 살피는 겸, 이 기회를 빌어 교구의 중요한 후원자이신 그림할 경을 한번 뵙고자 했습니다.”
“으하하하! 아… 죄송합니다. 기꺼운 마음에 그만.”
“3일 정도, 이곳에 머물 생각입니다.”
“3일이라… 모시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식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식사를 끝마치자마자 성기사들이 행동에 나섰다. 저택의 하인에게 질문을 던지거나 수상쩍은 공간을 찾는다거나 하는.
어설프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들의 조사를 돕는다고 해서 내게 콩고물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3일만 이곳에 가만히 있으면 마석이 잔뜩 들어오는데 뭐가 급하다고…
그런데, 상황이 달라진 건 이틀째 정오가 되었을 때였다.
똑똑…
“아델리아에요. 티타임, 괜찮을까요?”
…정오의 티타임이라.
끼이이익…
아델리아가 자리에 앉자, 티타임이란 말을 귀를 쫑긋 세우고 어디서 들었는지 루시퍼가 나타났다.
졸졸졸…
곧, 나와 아델리아 앞에 차를 내놓고는 상기된 표정으로 뒤로 물러나는 그녀.
“부디 향을 즐겨주시길.”
“아… 고마워요.”
“…어서!”
“…네.”
마치 벌컥벌컥 원샷을 때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험악한 분위기 조성에 루시퍼에게 슬쩍 눈길을 줬다.
“핫… 죄송합니다. 물러나겠습니다.”
루시퍼가 슬쩍 자리를 비워주자, 아델리아가 얘기를 시작했다.
“계획이 틀어졌어요.”
“바로 본론이군. 좀 진정하지.”
“시간이 부족해요.”
“…뭐가 문제였던 거지?”
하아…
아델리아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솔직하게 인정하죠. 이런 쪽 일은 저희도 처음이라 미숙한 부분이 있어요.”
“조사 말인가?”
“예, 올곧은 분들이라….”
“요령이 없다는 걸 돌려 말하는군.”
“…….”
이것 봐라…?
“아델리아.”
“예.”
“피차 갈 길이 바쁜데, 시간 낭비하지 말지. 원하는 게 있지?”
“…….”
“실종된 신도의 조사 임무 해결이나, 그림할 남작에 대한 의심이나 뭐든 좋아. 조사하면 밝혀질 부분이니까. 넌… 네 욕망에 대해 내게 솔직하게 말해야 할 거야.”
“…어째서요?”
“아니라면, 돕지 않을 테니까.”
아델리아가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그림할 남작을, 종교 재판에 회부하고 싶어요.”
“…어째서?”
“첫째, 그림할 남작의 뒷배로 의심되는 자가 다른 경쟁자 중 한 명을 후원하고 있다는 의심을 하고 있어요.”
“경쟁자의 세력 흔들기인가? 합리적이군.”
“둘째, 실종 사건의 범인이 그림할 남작이라 의심하는 게 아니에요. …확신이에요.”
“증거가 있나?”
“실종된 신도들이 그림할 남작과 접촉했다는 공통점은….”
“말했었다.”
“실종된 신도들이 모두 이종족이라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었죠.”
“…음?”
어라?
그러고 보니….
“이 대저택의 하인들….”
“예. 인간이 너무 적죠.”
거의 열댓 명에 육박하는 인원 중 인간이 집사와 관리자 계급의 하녀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확실히 수상하군.”
“셋째, 저택에 숨겨진 공간이 있어요.”
“어디지?”
“지하에요.”
“평범하겐 들어갈 수 없겠군.”
“잠입하거나… 강행하거나인데… 어느 쪽도 위험 부담이 있어요.”
고지식한 성기사들이, 남작이 꽁꽁 감추려 하는 지하에 잠입한다는 건 어불성설이고… 강제로 열어보겠다고 말하는 것 역시 그림할 남작에 대한 의심을 수면 위로 끄집어내는 행위다.
“강행은 최후의 수단일 테고… 만일 강제로 열어젖혔다가 문제가 밝혀지지 않는다면 곤란해지겠군.”
“…정답이에요.”
“최후의 수단을 취하기 전, 나를 찾아온 건가?”
“…….”
“아델리아, 그대의 속셈은 너무 뻔하다.”
“…무슨?”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문제가 발생하면, 시의적절하게 꼬리를 자르려는 생각이겠지. 내 독단으로 벌인 일이라고 말하며. 아니라고 할 생각인가?”
아델리아는 교회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우리가 적극적인 행동을 해주길 바란다. 문제가 생기면, 아마도 버림받겠지.
자, 어디 말해봐라.
“…맞아요.”
그녀가 부정했다면, 내 태도는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솔직한 게 그녀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나를 믿나?”
“베스의 말씀을 섬길 뿐.”
그 베스인지 뭔지가 날 선택했다는 건가? 정체를 숨긴 검은 머리 마족을?
그놈 참… 용하군.
“당신도 나를 이용할 뿐이고… 나 역시 당신을 이용할 뿐이야. 자, 여기까지 이해했다면….”
“마석….”
“…….”
“동등한 무게의 궤짝 하나를 더 얹어드리죠.”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억지로 붙잡았다.
가챠… 가챠다!
“조건은?”
“이곳에 머무는 동안 그림할 남작의 범행을 밝혀내는 거예요.”
[조력 보상이 수정되었습니다.] [보상은 최상급 마석 6,000개입니다.]“한번 시작하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생각인데, 이쪽은?”
이 말엔,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델리아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그 아름다운 얼굴을 그대로 유지한 채 답했다.
“상관없어요.”
“어째서?”
“신이 가는 길이니까.”
오만하구나!
썩을 것.
그래서 좋다!
“모리.”
스르륵…
줄곧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도플갱어 모리가 커튼 뒤에서 나타났다.
“예.”
모리의 모습을 확인한 아델리아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그녀도 이번만큼은 무표정할 수 없었겠지.
모리는 저택의 하녀 중 한 명과 똑같은 복장과 얼굴을 한 채로 생글생글 웃고 있었으니까.
난 한 손을 턱에 괸 채로 그에게 명령했다.
“시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