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37
제37화
모리에게 그림할 남작이 신도들의 실종과 관련이 있다는 증거를 수색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하루, 그리고 반나절.
흐으흠…
모리가 콧노래까지 부르며 향한 곳은 저택의 다락과도 같은 공간. 그가 빌과 함께 사전에 조사한 결과 이 저택에서 감시의 눈이 닿지 않는 몇 안 되는 공간이다.
저택 사방에 일행을 살피는 눈이 있었다. 잘 훈련된 눈들이다. 그들은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기척만큼은 모리와 빌을 속일 수 없었다.
끼이익…
그는 소리가 새어 나가기 전에 문을 열고 다시 닫았다.
“깨어나셨나요? 음… 아니지, 흠흠….”
모리가 원래의 목소리로 되돌아왔다.
“깨어났나?”
…으읍! 으으읍!
그곳엔, 모리의 현재 모습과 똑같이 생긴 하녀가 구속된 채로 쓰러져 있었다.
구속된 이는 그가 취한 모습의 원래 주인이다. 모리는 놀랍게도 아델리아가 요청하기 전부터 이미 저택의 시녀 중 한 명을 납치했었다.
지금 와 놓고 보면, 대담하면서도 섬뜩한 판단이었다. 만일 그림할 남작이 실종과 관련이 없다면, 크게 문제가 될 행동이었을 테니까.
이 넘치는 행동력은 이후에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다는 모리의 자신감일지도 모른다.
시녀의 입에 물린 재갈을 빼내자, 떨리는 목소리가 토해져 왔다.
“내… 내 얼굴… 살려주세요. 왜… 왜 이러시는 거예요.”
“네 눈앞에 있는 나를 뭐라고 생각하나?”
“몰라요….”
“잘 생각해 보라고. 지금이 네가 모르는 쌍둥이 동생과의 감동적인 재회일 리는 없잖아?”
시녀는 이내, 기억해 냈다.
모습을 훔치는 마물의 존재를.
“도… 도플갱어?”
“정-답! 그렇다면 알 테지. 도플갱어의 전설을.”
자신의 모습을 한 도플갱어와 마주친 자는 죽는다. 시녀는 금방 그 사실까지도 기억해 냈다.
“아… 안 돼! 죽기 싫어요… 죽고 싶지 않아….”
지금 시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목숨을 애걸하는 것뿐.
“…나를 어쩌려는 건가요?”
“딱히, 궁금한 걸 물어볼 뿐이야.”
“정말로 그것뿐인가요?”
“그래. 하지만 난 인내심이 깊지 않아. 한 번이라도 거짓을 말하거나 아는 내용을 모른다고 답하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되거든.”
“…….”
“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수단 중 가장 손이 덜 가는 방법이니 고른 것뿐이야. 자, 시간이 없어. 지금부터 시작할게? 주의 사항은 알려줬다? 이름이 뭐더라… 세라? 맞지?”
끄덕…
모리가 히죽 웃었다.
“세라, 그림할 남작에겐 비밀이 있어, 맞지?”
끄덕…
“비밀이 뭔지 정확히 알아?”
“아뇨… 그것까지는….”
첫 번째 반발.
“흐음… 세라, 그럼 이 넓은 저택의 하녀들 중 너와 시종장 단둘만 인간인 이유를 알 수 있을까?”
움찔…
“제대로 된 질문이었나 보네. 나머지는 모두 이종족이야. 신기하지?”
“그건… 남작님이 이종족들에게 친절을….”
“세라.”
“…….”
“그 친절에 의도가 있을 수도 있겠지?”
“그…렇죠?”
“그 의도란 게 별채의 지하실이야?”
순간, 세라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피가 한순간에 빠져나가는 듯했다.
“대답은 안 들어도 알겠네.”
“지하실에… 감금된 이들이 있어요.”
“좋아, 그런 태도. 거기까지는 짐작하고 있었어. 감금된 자 중 이번에 실종된 베스 교도들도 있나?”
“거기까지는… 저도 몰라요. 지하실에 가는 건 극히 드문 경우라….”
“넌 그 지하실에 들어가는 게 가능해?”
“저는 불가능해요.”
답은 즉각적이었다.
“어째서?”
“지하실은 단단한 자물쇠로 잠겨 있는 걸로 알아요. 저는 열쇠가 없어요.”
“자물쇠를 억지로 부쉈다간 온 저택 사람들이 찾아오겠군. 열쇠는 누가 가지고 있지?”
“시… 시종장님이랑 집사님, 그리고 남작님이 가지고 계셔요.”
“보는 눈이 많으니 남작에겐 접근할 수 없을 거고… 다른 둘은 호위가 있나?”
“아뇨. 이곳은 그림할 남작님의 저택인데 그분들을 누가 해할 수 있겠어요?”
“집사는 무술을 익힌 흔적이 있다, 맞아?”
“과거에… 용병 생활을 했다는 말을 언뜻 들었어요.”
“얄팍한 실력은 아니더군. 그럼 이쪽도 어렵겠고… 남은 건 시종장이군.”
모리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빌과 손발을 맞춰야겠군. 자, 질문은 끝났다.”
“…이제 절 죽일 건가요?”
“귀찮게 왜? 아! 문제가 생길 수는 있으니 잠재워두겠지.”
안심하는 세라에게 모리가 조언했다.
“지하실에 뭔가 있는 게 확실하다면… 깨어나는 대로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게 좋을 거야.”
으읍?
재갈을 다시 채워진 세라가 눈을 홉뜨며 이유를 묻는 시늉을 하자, 모리의 손날이 그녀의 목을 후려쳤다.
툭…
철퍼덕 쓰러지는 세라.
“시종장이라….”
* * *
“세라! 지금껏 어디 있던 건가요?”
“죄송해요, 시종장님. 손님께서 놓아주질 않으셔서….”
“아델리아 그 계집을 말하는 거군요. 분수를 알고 조용히 지낼 줄 알았건만… 세라 혹시, 그녀에게 뭔가 구실을 줬나요?”
“아, 아뇨. 단순히 말동무가 필요하다는 이유였어요.”
“말동무? 수상한 질문을 하진 않던가요? 남작님과 관련된 질문이라던지….”
시종장의 질문에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좌우로 젓는 세라. 당연하게도 시종장의 앞에 서 있는 건 세라의 모습을 훔쳐낸 모리였다.
“딱히 그런 질문은 없었어요. 저택의 생활에 만족하냐는 질문이나 제가 가진 종교에 관해 묻기는 했지만….”
“흐으음… 그건 다행이군요. 참 귀찮단 말이죠. 베스 교의 쭉정이들이 주인님의 근처에서 알짱거리는 게.”
모리는 짧은 대화를 통해 시종장이란 여인이 충성심이 강한 인물이라는 걸 파악했다. 단시간 내에 이런 여인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을 방법은 오직 기만뿐이다.
“저… 시종장님….”
“할 말이 있나요?”
“그… 잘못된 정보일 수도 있기는 하지만….”
“뭔가요, 뜸 들이지 말고 말해보도록 해요.”
꿀꺽…
“아델리아… 그러니까, 남작님의 손님께서 어젯밤에 괴상한 신음을 들었다고 해서요….”
“…뭐라고요?”
“아무래도 별채….”
별채라는 단어를 꺼내자마자 시종장의 눈이 무섭게 변했다.
“쉿… 목소리를 낮춰요.”
“그… 그곳에서 소리가 새어 나온 것은 아닌지….”
“그런… 그럴 리가 없는데. …아니, 불가능한 일은 아니죠. 여태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이 없었을 뿐이지.”
다행히, 시종장은 늘 걱정을 안고 사는 유형인 듯했다.
‘신음이 흘러나오는 게 그리 이상한 시설은 아니라는 건가.’
별채의 지하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상적인 무언가는 아닌 듯했다.
‘지하실에 있는 건 숨이 붙어있는 녀석들일 거고, 몸 상태는… 적어도 정상은 아니겠군.’
시종장이 손톱을 쥐어뜯으며 중얼거렸다.
“사실이라면 큰일이군요. 혹 베스 교의 끄나풀들이 듣게 된다면 일이 커질 수 있어요.”
“저… 어떻게 하면….”
“세라. 전 당장에 자리를 비울 수가 없군요. 아무래도 세라가 별채에 가서 상황을….”
모리가 원하는 최고의 상황이 만들어지려는 찰나.
“…음, 역시 안 되겠어요. 별채에는 시간이 나는 대로 제가 직접 가도록 할게요.”
“…네, 시종장님.”
“그럼, 계속해서 아델리아를 부탁해요. 눈이 그녀의 처소까지는 닿질 않으니 세라의 역할이 막중해요.”
“명심할게요, 그럼….”
“가보도록 해요.”
세라의 모습을 한 모리가 아델리아가 있는 방으로 사라졌다.
당연하게도 아델리아와 모리가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그녀는 숨죽이고 파우스트의 수족들이 하는 행동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빌, 나와.”
스르륵…
“말한 대로 시종장의 주의를 꽤 오래 붙잡아뒀다. 해낸 거, 맞지? 아니라면 실망할 텐데.”
짤랑…
시종장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열쇠뭉치와 똑같이 생긴 열쇠 뭉치를 건네는 빌.
“자, 이 중 하나가 별채의 열쇠겠지. 시종장이 말을 하면서도 계속 이 열쇠 뭉치에 신경을 썼으니까.”
“그 여자가 열쇠가 사라졌다는 걸 알면 날 의심하지 않을까?”
“그럴 일은 없다. 열쇠는 정확히 말하자면, 바꿔 쳤을 뿐 사라진 건 아니니까 말이지. 아마 그녀가 직접 별채 문을 여는 때가 오지 않고는 눈치채지 못할 거다.”
“흐음… 열쇠 자체를 모사한 건가? 난 그런 쪽의 재주는 없는데.”
“나 역시 변장은 가능해도 얼굴을 훔치지는 못한다. 각자 할 수 있는 일이 다르다고 봐야겠지. 뭐, 그분께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뭐든 상관없으니.”
짤랑…
“맞는 말이야. 경비병은?”
“선 채로 재워뒀다. 가까이 가도 눈치채지 못할 거야.”
“그런 것도 가능해?”
“잠입은 기초 중의 기초다. 불가능한 걸 찾는 쪽이 더 빠를지도.”
둘의 대화를 숨죽이고 엿듣던 베스 교의 성녀 아델리아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시종장이 예상보다 빨리 별채에 가게 된다면요?”
“그럴 일은 없습니다. 성기사들에게 지금부터 소란을 피워두라 당부해뒀으니.”
“…아!”
“아마 시종장은 소란이 남작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하지 않기 위해 바쁘겠죠.”
“거기까지 준비를….”
빌이 고개를 끄덕이며 모리에게 말했다.
“모리, 그분을 대신해 별채의 지하를 확인해라.”
* * *
“다들 괜찮으세요? 혹시….”
경비병들은 모리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꼭, 의식을 잃은 것만 같이.
“기절시킨 건가? 감쪽같군. 그 자식, 실력은 인정해야겠어.”
세라의 모습을 한 모리가 당당하게 별채의 지하로 아무런 제지 없이 내려갔다. 드러난 건 커다란 자물쇠로 잠긴 문
짤랑…
열쇠 소리가 들리자 안에서도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건, 목소리였다.
“으으… 으….”
“아파아….”
이 문 너머의 풍경이 더욱 궁금해진 모리가 자물쇠의 구멍에 맞는 열쇠를 찾기 위해 시도했다.
찰칵… 찰칵…
“이건 아니고.”
찰칵…
“너도 아니고.”
찰칵… 찰칵.
“이것도.”
딸칵.
…씨익.
끼긱…
끼기기기긱…
별채의 문을 열어젖힌 모리가 휘파람을 불었다.
“피 냄새가 예술이군.”
피비린내가 온 사방에 퍼지는 것으로 모자라, 후각을 마비시켰다.
지하실의 실내는 습한지, 피안개 같은 것이 깔려 있었다.
“어디 보자… 살아있는 녀석들이 별로 없군.”
그곳에 있는 건, 온갖 이종족의 흔적이었다. 이종족이 아닌 이종족의 흔적이라 말하는 이유는, 온전하게 신체 전부를 유지하고 있는 자들이 몇 안 되기 때문이었다.
이곳의 분위기는 독특했는데, 사악한 실험실이나 가혹한 심문실과는 달랐다. 모리는 이곳의 주인이 어떤 뜻을 품고 이곳을 만들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재미.
오로지 본인의 흥미를 위해 이런 변태적이고 가학적인 장소를 일군 것.
장에는 정체불명의 액체에 담긴 이종족의 신체 절단부가 그득했다. 안구를 비롯하여 손, 머리 가죽까지.
인간의 것으로 보이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아마 지하실의 피 안개는 이것들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생성된 듯했다.
마물인 모리 역시도 피와 가까운 삶을 살아왔지만, 이렇게 기분 나쁜 피는 오랜만이었다. 저항하지 못하는 자들의 피는.
“어디 보자, 멀쩡한 게 남아 있어야 할 텐데.”
이곳에 있는 게 마물인 모리였다면, 피에 취해 어떤 일이든 벌였겠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건 파우스트의 수하인 모리였다.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이곳의 희생자들이 겁을 먹을 수 있으니 세라의 모습을 벗어던지고 적당한 모험가의 모습을 취하는 모리.
그리고 신음을 흘리고 있는 구속된 이종족에게 다가가 같은 질문을 던진다.
“베스 교도인가?”
“으으으으….”
“틀렸군, 이 녀석은 부패한 지 오래야.”
베스 교도인가?
“살려줘….”
“베스 교도라면 생각해 보지.”
“아니야… 난….”
바로 그때, 근처에서 누군가 모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베스… 베스 교도를 구하러 온 건가?”
“너 베스 교도야?”
“아아… 베스 신이시여. 으흑… 당신께서는 끝끝내 저를 외면하지 않으….”
“이봐, 시간이 없어. 헛소리를 늘어놓을 거면 찬장 예술품 사이에 네 혓바닥이 나란히 놓일 거야.”
모리가 물었다.
“실종된 베스 교도, 맞지?”
“…맞네.”
“나머지는? 어딨어? 몇이 더 있다고 들었는데.”
“여기… 있었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의 좌측엔 목이 잘린 시체가, 우측엔 내장이 헤집어진 시체가 구속되어 있었으니까.
“…그나마 하나라도 살아서 다행이군. 이봐, 그림할을 종교 재판에 세울 거야. 베스 신인지 뭔지의 심판을 받겠지. 증언할 수 있어?”
“증언… 하겠다. 하지만, 대체 누가 그림할을 심판할 수 있을까?”
모리가 히죽 웃었다.
“글쎄, 셈만 맞으면 가능할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