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39
제39화
[아몬이 비무장: 일손을 사용합니다.] [아몬의 심상에 감응하는 한 쌍의 손을 소환합니다.]파지지직…
아몬의 등 뒤로 전류가 흐르는 차원문이 열렸다. 그녀는 그곳에서 이제껏 본 적 없는 거대한 기계 손 한 쌍을 불러왔다.
기계 손은 새하얀 몸체에 손가락마다 뇌전이 감도는 반지를 끼고 있었다. 고대의 유물 같아 보이기도 한 그 손은, 등장하자마자 저택에 존재하는 모든 시선을 사로잡았다.
파직…
파지지직!
아몬의 신체에도 변화가 일었다.
그녀의 여린 몸 주변으로 뇌전이 번뜩이기 시작했으며, 이내 그 기운 중 일부가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파지지지지직…
아몬, 그녀의 작은 뿔 위로 번개로 만들어진 거대한 뿔이 덧씌워졌다. 그녀가 가진 진정한 힘 중 일부가 드러나고 있었다.
치이이이익…
여전히 아몬의 몸 주위를 중심으로 둥둥 떠다니는 작은 기계 손 중 하나가 파우스트를 비롯한 일행이 모여있는 지점의 대리석 바닥을 검지로 짚었다.
전투를 예감하고 일행은 어느새 좁은 식당에서 홀로 이동한 상황.
파지지직…
뇌전을 뿜어대며 검은 흔적을 남기는 작은 손. 그렇게 그어진 검은 원은 아몬만의 작은 울타리를 만들어 냈다.
새까만 고리가 완성되자 아몬이 말했다.
“이 원을 벗어나지 말거라.”
그녀의 말에 즉각 반발하는 성기사 메리.
“그럴 수는… 함께….”
아몬이 피식 웃었다.
“스스로 번갯불에 타죽는 어리석음을 자랑하려거든 말리지 않겠느니라.”
“…….”
아몬의 눈빛과 기세 모두, 여태 파우스트의 곁에서 잠자는 고양이처럼 고요하던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녀의 변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그림할 남작이 뒤로 물러나며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켰다.
“뭣들 하는 게냐? 어서 내 눈앞에서 저자들을 치워라!”
남작의 사병은 물경 수십에 달한다.
14채의 마차에서 쏟아져 나온 자들과 저택에서 머무르던 사용인들까지.
모두 훈련받은 자들이다.
그 훈련의 수준이 파우스트가 보았을 때 높지 않다고 한들, 수십이라는 머릿수는 그들이 숨 쉬는 감각만으로도 압박이었다.
타다닷-!
복면을 쓴 자들이 순식간에 일행을 에워쌌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하나같이 비슷한 기운인 게 애초부터 그림할의 사냥개로서 거두어진 자들일 것이다.
같은 훈련을 받고 같은 목줄을 차고 있으니, 비슷한 기운일 수밖에.
“…죽여라.”
선두에 선 조장으로 보이는 자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눈매에 흉터가 있는 사내가 와락 달려들었다.
파아앗-!
사내는 눈앞에서 보고 있음에도, 기척이 희미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인상은 그것이 전부였다.
파자아악-!
아몬의 거대한 기계 손이 선두에서 아몬을 향해 짓쳐오던 자를 귀찮은 듯 후려쳤다.
마치 파리를 후려치는 듯한 동작.
후두두둑-!
단순히 부딪힌 것만으로 사내의 피는 비가 되어 떨어졌고 육편은 사방으로 튀었다.
“허억….”
“으으음….”
성기사들이 신음했다.
그만큼 기괴한 광경이었다.
반면, 움찔할 뿐 그 이상의 반응을 보이지 않는 자들.
그들은 필사적으로 공포를 억제했다. 사냥개들이 훈련받은 전투의 기초다.
그들도 심상치 않음을 느꼈겠지만, 아무도 덤벼들지 않으면 이 싸움은 성립될 수 없다. 그저 학살의 장이 열릴 뿐.
후욱…
후욱…
흥분으로 다급해진 숨.
불 꺼진 장내는 어두컴컴했지만 모두 어둠에 익숙한 자들이다. 이곳의 그 누구도 굳이 횃불을 들 이유가 없다.
한동안 정적만이 감돌자 어둠 속에서 아몬의 목소리가 침묵을 뚫고 나왔다.
“흐르지 않으면, 썩을 뿐이니라.”
그녀가 개구쟁이같이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그러자 그녀의 주위에 떠올라 있는 커다란 기계 손이 그녀의 손동작을 똑같이 따라 했다.
따아아아아악-!
손가락이 부딪힌 지점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파직…
파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그 충격 지점에서 엄청난 빛과 뇌전이 뿜어져 나왔다.
“크아아아아악!”
“끄아아악….”
충격 지점에서 가까이 있던 자들이 귀와 눈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렇게 그녀를 감싼 첫 번째 전선이 허무하게 부스러졌다.
그 이후에 찾아오는 건 정적이 아닌 공황이다.
…싸우지 않으면 죽는다!
다년간 훈련받은 자들이기에 순식간에 판단을 내렸다. 그 판단이 떨어지지 않는 발을 움직였다. 이성이 공포를 억누르며 조금이라도 살 확률이 높은 쪽으로 몸을 움직이게 했다.
“쏴라! 접근은 그다음이야!”
파아아앗!
쒜에에엑-!
수리검과 화살.
투사체는 전부 소용이 없었다.
파지지지직!
그녀를 둘러싼 기계 손들이 계속해서 뿜어내는 뇌전이 장막을 만들어 그곳을 통과하는 모든 투사체를 바닥으로 떨어트렸으니까.
…그녀를 쓰러트리기 위해선 직접 그 심장에 칼날을 박아 넣어야 한다.
누구든, 섶을 지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이들에게 남겨진 숙제.
미루면 전부 죽는다.
“으오오오!”
“죽여!”
고함으로 광기를 끌어올린다.
점차 격해지는 전장.
파아앗…
직검을 가슴에 품고 돌진하는 암살자가 죽음을 각오했다.
함께 죽을 것이다.
이 검을 악마에게….
치지지직…
거대한 기계 손이 뒤로 당겨졌다가 그의 앞으로 쏘아진다.
“어….”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신음. 암살자의 시야가 전부 손바닥으로 가득 찼다.
파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이극….”
충돌과 동시에 전신의 뼈가 가루가 되었다.
으지직…
생각할 수 있는 뇌가 짓이겨지며, 그의 육신이었던 고깃덩이는 끝내 아몬이 쏘아낸 뇌전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된다.
파지이이이이이익-!
드드드드드드드-!
대리석으로 만든 바닥이 뇌전이 지나간 흔적으로 짓이겨지며 벽면까지 물러났다.
…공포라는 두 글자가 실체화한 듯한 무위.
“그래…!”
번개를 흩뿌리며 거대한 손을 휘두르는 마녀는, 웃는다.
“인간의 피 냄새는 실로 오랜만이구나. 조금 더 즐기게 해주련.”
마치 아이를 달래는 듯한 그 달콤한 음성이 적들의 심장에 또렷하게 파고들었다.
“으… 으아아아아!”
“한꺼번에 파고들어라!”
“절대 틈을 주지 마! 밀어붙여라!”
이 박살 난 전황에서 그나마 쓸 만한 명령이 전달됐다.
그녀를 둘러싼, 사람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원이 점차 좁혀지며 작은 원으로 변했다. 그 작은 원은 제각기 칼날을 품은 위협적인 톱니바퀴다.
그러나, 아몬이 곧 번갯불이었다.
짜아악-!
그녀가 손바닥을 맞부딪치자 우레의 고리가 주변을 휩쓸었다.
콰르으으으으으으응-!
동시에 주변으로 확장해 나가는 뇌전의 고리.
“크아아아악…!”
“그으으으….”
“으그그그극….”
암살자들로 만들어진 원은 금세 숯덩이 뭉치로 변했다.
바로 그때, 그 검은 원 뒤에 숨어든 회심의 칼날 하나.
과거, 용병 생활을 했던 저택의 집사였다. 그는 사병들의 죽음으로 도움닫기를 하며 아몬의 간극으로 파고든다.
이 맹수와도 같은 쇄도는 아몬의 거대한 기계 손의 사정권에서도 벗어나 있었기에 그녀에게 닿기만 하면 매우 치명적일 터였다.
“죽어라, 마녀!”
…그래, 닿기만 했다면.
퍼어어억-!
순간, 집사의 시야가 정지했다.
정확히는 그의 시야 뒤로 밀려나던 주변 풍경이 갑자기 변화를 멈췄다.
끼긱…
그를 가로막은 건 아몬의 주위로 둥둥 떠다니던 작은 기계 손이었다.
그녀의, 모든 게 무기다.
커다란 손을 피해 파고들었다고 하여서 근본적인 뭔가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단지, 같은 결말을 다른 과정으로 맞이할 뿐.
“노력이 가상했느니라.”
“이… 괴물….”
“…똑바로 부르짖거라.”
뚜두둑…
집사의 목을 부러트리는 기계 손.
“악마다.”
아몬이 손을 휘저었다.
파지이이이익-!
“끄아아아악!”
손을 아래로 향하자, 커다란 기계 손이 사병들을 위에서부터 짓이겼다.
콰아아아아아앙-!
“도… 도망….”
“끅… 끄으으으…”
불이 꺼진 공간이지만, 아몬이 손을 휘두를 때마다 단편적인 광경을 목도할 수 있었다.
히히…
아하하하!
학살.
오로지 학살이었다.
파지지이이익…!
더는 비명을 내지르는 자가 없을 때까지, 섬광과 함께 이어지는 학살은 계속되었다.
……
그리고 잠시, 찰나의 정적이 이어졌다.
콰르릉-!
아몬이 불러온 것일까, 끔찍한 피의 강에 하늘이 진노한 것일까. 하늘에 번쩍이는 번개가, 정적 후의 저택의 풍경을 잠시 비추었다.
그 빛이 잠시 머문 곳에는 새까만 숯덩이와 짓이겨진 고기들로 즐비했다. 오직 한 사람만이, 공포에 질린 채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거짓말이야… 이건… 그래, 꿈이야….”
그림할 남작이 홀에서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중턱에 서서 정신이 나간 듯한 탁한 눈빛을 하고 간신히 서 있었다. 그의 명령을 따를, 아니… 들을 수 있는 이는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
스으윽…
아몬이 서서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히… 히이익… 오, 오지 마! 악마… 악마라고? 그래! 이, 이봐! 아델리아! 악마다! 악마야! 너는 어서 이 악마에게 맞서라!”
“…….”
그녀가 거느린 성기사들이 아델리아의 입술에 주목했다.
그녀가 악마의 처결을 부르짖으면, 성기사들은 이 악몽과도 같은 현장에 난입해야 할 것이기에. 얄팍한 생명선인, 검은 원을 스스로 넘어야 했기에.
“악마는 교회의 적이다! 그건 틀림없을 테지! 어서….”
“저는….”
그녀가 양손을 올려 눈을 가렸다.
“저는 오늘 밤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죽일…! 위선자여! 지금 악마가 눈앞에 있거늘… 컥….”
커다란 기계 손 하나가 점차 다가와 그림할의 몸뚱이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서서히…
그에게 죽어간 희생자들에게 비할 수는 없겠지만, 고통스러운 죽음을 선사했다.
“끄으… 다… 답답… 숨이….”
뿌지이이익-!
손이 그를 움켜쥐자, 뼈와 살이 뭉개지는 소리가 들리며 손가락 사이로 피가 튀었다.
온 사방이 피였다.
냄새와 흔적 모두.
중앙 홀을 장식하고 있는 그림할 남작의 초상화에도 그 주인의 피가 튀었다.
달이 구름에 가려진 밤의 살육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끼이익…
학살을 끝낸 아몬이 저택 계단의 난간에 엉덩이를 기대어 앉았다.
따악-!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번갯 줄기가 저택의 횃불을 몇 개 건드리고 지나갔다.
화르륵…
횃불 몇 개가 켜지며 장내가 비친다. 그렇게 현실을 외면할 수 없게 한다.
오늘 밤, 이곳에서 악마가 인간을 죽였다. 희생자는 수십의 생명.
이 참혹한 광경은 어설프게 단련한 평범한 인간과 악마의 격차가 어떠한지를 숨기지 않고 보여주었다.
히죽…
아몬이 정전기로 부스스해진 머리를 한 채로 생기 있는 미소를 띠었다.
태고의 대악마인 그녀는 얼마나 오랜 세월, 이런 아수라장에서 외롭게 숨 쉬어 왔을까.
“…이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폭력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겠느냐?”
아몬의 말에 파우스트는 암시장에서 그녀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 폭력은 효율 좋은 수단일 뿐이지.
파우스트의 말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 좋은 말이구나. 다만 그 효율 좋은 수단이 거의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다면 말이다.
그것은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다.
얼마든지 가변하는 가치다.
그럼에도…
“뭐, 오늘만큼은.”
적어도 오늘만큼은, 그녀의 말이 진리처럼 느껴졌다.
씨이익…
아몬이 칭찬받은 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아름답다.
결코, 이 학살의 현장을 만든 악마로 보이지 않을 만큼.
스윽…
파우스트는 그 아름다운 악마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눈길을 억지로 돌려 성녀에게 보냈다. 그녀는 오늘의 이 학살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아델리아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베스께서 오늘 제게 크나큰 숙제를 내리셨군요.”
[조력 보상이 수정되었습니다.] [보상은 최상급 마석 12,000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