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4
제4화
72 악마 레메게톤.
미소녀 가챠 수집 게임치고는 부분부분 뜯어 보면 꽤 잘 만든 게임이다. 물론 총체적으로는 똥겜이라는 거에 이견이 있을 수 없지만.
72 악마는 레메게톤의 상징이자 핵심.
던전의 여러 요소로 활용되는 사역마 중 최고 등급인 6성급은 모두 이 악마들이 차지하고 있다.
즉, 이 게임은 처음부터 악마로부터 시작해 악마로 끝나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튜토리얼 보상으로 얻게 되는 재화 중 하나인 악마석, 악마 가챠권은 엄청난 가치를 가질 수밖에 없다.
콰아아아아아아아-!
해골의 눈구멍에서 쏟아지는 무지갯빛 광채와…
쿵…
쿵…
아까부터 지옥문을 울리는 저 너머의 존재감.
‘이거… 최고잖아.’
이 순간이 좋다.
뭔가가 이뤄질 것만 같은 변화, 그에 더해 지금보다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악마다… 드디어, 악마라고!’
기대감에 부푸는 게 그리 이상한 일도, 죄악도 아니다.
‘혹시 대공급 이상이 나오면 일이 편하게 풀릴 텐데….’
6성급 악마라고 해도 각자의 값어치는 동등하지 않다. 72 악마의 밸런스가 찰떡같이 맞아떨어지는 아름다운 상황 역시 있을 리 없다.
당연하게도 72 악마가 존재하면 그 쓰임과 유연함, 성능에 따라 72개의 순위가 만들어진다.
줄 세우기는 당연하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가챠가 의미 있다.
‘초반부터 포칼로르… 혹은 비네라도 나온다면… 아니, 이 시기에 초회로 뽑을 수 있는 악마 중 가장 좋은 악마 중 누구라도!’
머릿속에서 행복의 스파크가 튄다.
망상으로 인해 행복의 회로가 과열되는 신호다.
누군가 말했던가.
모바일 게임의 가챠란, 그저 스킨을 덕지덕지 덮어씌운 파친코나 마찬가지라고.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름 살면서 쓸데없는 것에 돈을 쓴 기억이 거의 없었다. 그런 내가 레메게톤에서는 나름 핵과금러로 분류됐던 걸 보면… 가챠 게임이란 건 지독한 중독성으로 모두를 매료시키는 악마의 게임이다.
‘그래… 악마 같다고. 이 연출을 봐라.’
휘오오오오오오-!
레메게톤은 똥겜이 분명했지만, 가챠 연출과 그에 따른 보상만큼은 확실했거든.
난 이 순간이 좋다.
앞으로 짧은 시간이 흐른 후에 펼쳐질 풍경이.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환희이다.
“지옥에….”
아제룹이 중얼거렸다.
나레이션의 순간.
연출이 시작되려 한다.
“한 노인이 있었다.”
멈칫하게 된다.
‘…응?’
해골은 멈추지도 않고 계속해서 지껄였다.
“노인은 괴팍하지만, 그 누구보다 뜨거우며 강했다.”
눈앞에 지옥문의 권능으로 빚어진 영상이 흘러나왔다.
‘그보다 지금 해골이 말하고 있는 거, 어디서 들어본 스크립트인데….’
영상은, 거대한 한빙(寒氷)의 파도와 홀로 맞서고 있는 불꽃을 비추었다.
“홀로 강한 자, 그는 지옥의 불꽃이자 용기와 생명의 상징이었다.”
아…
“지옥에 예고도 없이 멸절의 한파가 닥쳐왔을 때, 그는 자신의 무거운 이름을 제자에게 건넸다.”
‘…아니지? 아니… 안 돼!’
– 떠나라, 꼬맹아.
– 할아버지!
아 제발, 하지 마.
나한테 이래선 안 돼.
몸이 뜨거워졌다.
감정이 둔해진 몸뚱이가,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 이제부턴, 네가 페넥스다.
– 할아버지!
“…….”
“그녀는 그날 이후 지금까지도, 가슴속에 불꽃을 품고 있다.”
쿵!
지옥문이 맹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콰앙…
콰아아앙!
“언젠가 찰나의 순간 기적같이 타오를… 불꽃을.”
콰아아아앙!
피잉!
쩔그렁-!
사슬이 끊어진다.
그 즉시, 지옥문이 개방됐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엄청난 마기 그리고 무지갯빛 광채와 함께, 지옥문이 열리며 한 명의 소녀가 괴상한 자세로 튀어나왔다.
파팟-!
이 아리송한 자세를 취하기 위해 수십, 수백 번 연습했을 게 분명한 깔끔한 동작.
‘…너냐!’
얼굴을 손으로 반쯤 가렸지만, 맑고 하얀 피부와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인상적인 여인.
붉은 머리칼에 더불어 붉은 눈.
천연덕스럽게 웃는 미소.
그리고 머리에 자리한 뿔.
그녀의 뿔은 루시퍼의 뿔과는 달리 그리 커다랗지 않았다.
여인이 말했다.
“나리.”
일순간, 여인과 나의 시선이 교차한다.
파우스트와 지옥문에서 넘어온 첫 번째 악마와의 부딪힘이다.
그 충돌은 괴멸적… 아니, 절망적이었다.
“페넥스의 불꽃을 찾은 건, 나리야?”
[★★★★★★ 페넥스를 소환합니다.] [업적 퀘스트 ‘신참 마왕’을 달성합니다.]이 순간, 내 감상은 두 종류로 찢어졌다.
연출이 쓸데없이 엄청나잖아!
가챠 연출이, 정말로 대단했다.
아직도 인근에 페넥스의 불꽃이 넘실거리는 것이 현실감 넘쳤다.
‘…….’
또 하나의 감상은, 상당히 부정적인 쪽이다.
“히힛….”
칭찬과 환호를 원하는 듯한 악마의 저 눈망울을 보고도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강아지냐고.
애초에 파우스트는 악마에게조차 그렇게 상냥하지 않다.
스윽…
내 시선이 그녀를 불러낸 지옥문의 해골로 향했다.
해골은 움찔하더니 내 반응을 보고 뭔가 잘못된 걸 감지했는지, 신음했다.
“…으, 음?”
이내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루시퍼에게로 향했다.
스윽…
루시퍼도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었는지, 어쩌면 나를 만난 이후 처음으로 내 눈길을 피했다.
고개가 모로 떨어지며 진심이 담기지 않은 말이 튀어나왔다.
“꽤… 훌… 륭한 악마가….”
루시퍼는 그 문장을 마무리 지을 만한 담력까진 없었는지 그대로 멈추었다.
다시 내 시선은, 부활의 악마 페넥스에게로 향한다.
“히히힛….”
그녀는 조력자인 루시퍼를 제외하면, 나의 첫 악마다.
그렇다.
파우스트의 소감은 한 줄이면 족하겠지.
“곤란하군.”
* * *
첫 6성급 악마가 중요하다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심지어 게임에서도 자체적인 리셋 마라톤 즉, 리세마라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유저들은 다중 계정을 이용하거나 온갖 편법으로 원하는 악마를 뽑으려 했었다.
‘그러니까… 이건 지금 게임조차도 아니라고.’
레메게톤이 현실이 된 지금, 리세마라가 가능할 리 없었다.
튜토리얼을 끝낸 후에야 주어지는 악마 가챠권. 단 하나의 악마를 확정적으로 손에 넣는 기회.
한번… 단 한 번의 기회라고.
원치 않는 악마를 뽑았다 해도 핵과금러에게는 크게 문제가 없는 일이다.
압도적인 자본을 투입하면, 결국 원하는 악마를 뽑을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되면 첫 번째 악마를 기용하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나는 아니다.
빌어먹을, 나는 아니라고.
나는 아니란 말이다, 개자식들아.
‘선택지가 없다….’
과금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내 첫 악마로 페넥스가 찾아온 건… 하, 곤란하다는 말도 무척 순화한 표현이다.
아니지… 냉정하게 분석해보자.
페넥스가 구린가?
‘구린가… 구린가….’
갸웃-
페넥스는 구리다.
반만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페넥스는 ‘지금은’ 구리다.
이 부활의 악마는 후에 자주 쓰일 정도로 특출난 장점이 있는 악마다.
부스럭…
“…….”
지금도 페넥스는 기둥 뒤에 숨어서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
강아지처럼 낑낑대는 느낌이다.
‘내가 뭔가 잘못한 건가?’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한 표정으로.
“…눈이 무서워, 나리.”
…말로 내뱉을 필요는 없었잖아.
내 이름은 딱히 말한 적 없지만, 지옥문을 넘는 계약을 통해 알아서 전해진 모양인지 가끔 파우스트 나리라고 칭하기도 했다.
아무튼 지금 이 상황은 녀석도 나도 민망하긴 하다만, 페넥스는 초반에는… 특히 스타팅에선 절대로 뽑아선 안 되는 녀석이다.
현실에선 리세마라 등급표가 존재했는데, 페넥스는 그중에서도 거의 바닥에 처박혀있다시피 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한 줄로 요약하자면…
‘용도가 제한적이고 일정 수준까지는 성장 재화를 퍼먹기만 한다.’
돈 들어가는 캐릭터는 주력 캐릭터로 키우는 게 아니라 후순위 캐릭터로 키워야 한다는 게임계의 절대적 진리가 있다.
‘그래….’
녀석은 식충이다.
거기에 더해 첫 캐릭터의 미덕인 다재다능이 아닌, 일재유능(一才有能)을 겸비한….
“저기….”
페넥스가 방금 말을 건 상대는 내가 아닌, 루시퍼였다.
“여기… 밥은 언제 줘?”
“…….”
루시퍼와 내 시선이 교차했다.
스윽…
그리고 그녀는 침묵하며 나를 외면했다.
저벅저벅 걸어가 잠시 페넥스를 데리고 사라지는 그녀.
고맙다, 덕분에 혼자 생각할 시간이 생겼어.
“하아….”
곤란하군.
곤란해.
* * *
페넥스는 새로운 나리를 만났어!
– 꽤… 훌… 륭한 악마가….
아름다운 악마… 누군지는 아직 모르지만, 나보고 훌륭하다고 했어!
그러니까, 페넥스는 인정받은 거야!
– 곤란하군.
…나리도 분명 같은 생각이겠지?
아직 적응이 필요해.
그야 이곳은 내가 있던 지옥이 아니니까!
밥은 많이 주려나?
나는 좀 많이 먹는 편인데….
나리는 고민이 많은가 봐.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의자에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어! 대단해! 페넥스는 지루한 건 못 참는데.
음… 지금까지의 계약자들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긴 해.
그래도… 이전 계약자들 모두 처음에는 날 반겨줬는데….
‘헉!’
혹시 이건 그건가?
모르는 사이에, 나에 대한 악평이 퍼진 거려나?
할아버지… 어떡해!?
‘아무래도 미움받아버린 걸지도….’
꼬르르륵…
아, 생각했더니 배고프다!
“저기….”
스윽…
“여기… 밥은 언제 줘?”
도도돗…
뭐야, 예쁜 악마한테 끌려 나왔어.
혹시 밥 먹으러 가는 건가?
“페넥스, 파우스트 님이 계신 곳에서는 언행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배고픈데….”
“식사는 정해진 시간에 이루어집니다.”
“그 시간이 언젠데?”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
뭔가… 이상한 곳에 온 것 같아.
“파우스트 님께서 생각을 정리하실 때까지는 이곳에서 얌전히 대기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페넥스는 얌전하지 않은걸….”
“…….”
“알겠어….”
배고픈데….
페넥스 배고파!
그보다 이 악마, 어째선지 돌아가지 않잖아?
…페넥스 옆에 서 있는데?
“있잖아….”
“루시퍼.”
“…….”
“그렇게 불러주시길.”
“루, 루시퍼… 응? 루시퍼라고?”
잠깐만! 루시퍼라면… 그?
그 루시퍼라고요?
지, 지옥의 절대자였던 악마잖아요!
거짓말! 이거 무조건 거짓말이잖아!
“정말로 루시퍼야?”
“…사적인 질문은 사양하겠습니다.”
“하지만 루시퍼라면… 그….”
“페넥스.”
할아버지! 루시퍼를 만났어!
할아버지가 말했던 악마 말이야!
“짊어진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기를.”
“…할아버지를 기억해?”
스윽…
“어쩌면 이번이, 당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난 몰라!
역시 소문난 거야!
“읏… 알고 있어?”
루시퍼는 전부 다 아는 모양이야!
파우스트는? 파우스트도 알아?
“파우스트 님께서는 당신이 거쳐 간 계약자들 모두가, 당신을 내쳤다는 걸 아직 모르십니다.”
전부… 알고 있어.
“…아직은.”
“마, 말할 거야?”
“…….”
“말하지 마! 페넥스 이번엔 잘할 수 있어! 잘할….”
“그만.”
단호해!
…무섭기도 하고.
“소란을 멈추시길.”
“…응.”
“그리고….”
스윽…
“식사는, 말씀드려보겠습니다. 그때까지 참아주시길.”
“아….”
역시… 상냥해!
루시퍼는 상냥해!
– 루시퍼 녀석, 무슨 꿍꿍인지 원….
할아버지가 종종 말했던 이름.
– 그래도, 이 지옥에서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네가 그나마 의지할 만한 녀석인가…. 기억해둬라, 루시퍼라는 이름을.
‘할아버지, 나… 만났어! 루시퍼 말이야!’
……
쿠궁…
헉, 문이 열렸어.
파우스트다!
저벅…
저벅…
식사 시간이 정해진 거야!
“나리!”
“페넥스.”
“…응?”
“…….”
찌릿-
‘윽….’
눈빛, 무서워!
“우선,”
“…….”
“해야 할 일이 있다.”
“…….”
밥은?
“그 후에, 식사다.”
…나리도 상냥해!
“페넥스는 그거,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