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40
제40화
하룻밤 사이에 수십에 달하는 인원이 증발해 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시신이 번갯불에 태워지거나 토막 난 채로 여기저기 흩어졌다고 말하는 게 옳다.
나로선 간밤에 벌어진 일을 달빛 말고는 아무도 모르게 하는 게 좋으니 우선 이 흔적을 치우는 게 급선무였다.
‘…어떻게 치우지?’
이미 시체들을 한데 그러모아 땅에 파묻거나 하기에는 그 파편의 수가 너무 많았다. 아마 그 육편을 일일이 줍고 있다가는 보름이 지나도 이 저택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그림자 속에 숨어 사는 놈들이니 이들의 시체를 치우는 것보다 이들의 이름을 세상에서 지우는 게 더 빠를지도.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있자, 아델리아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저택을 불태우죠.”
과격하지만 효과적인 제안이었다.
“그래도 괜찮나?”
“여기까지 와서 괜찮지 않을 만한 일도 있을까요?”
“하긴… 그렇군.”
“오늘 밤 있었던 일은 모두 불탈 거예요, 저택과 함께.”
“남겨진 사용인들은?”
“그들 중 목격자가 있을까요?”
그녀의 질문에 빌이 다가오며 고개를 저었다.
“사용인들은 만찬의 분위기가 험악해진 즉시 빠져나가도록 안배했습니다.”
“목격자는 없다는 건가?”
“적어도 직접 눈으로 본 자는 없을 겁니다.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짐작은 할 수 있더라도요.”
그래도 역시 문제는 남는다.
저택이 불타면 사용인들은 오갈 곳이 없어진다.
“그들은 저와 함께 교회로 갈 거예요.”
“베스 교로 가게 된다라… 베스를 믿지 않더라도?”
“앞으론 저를 믿어야 할 거예요. 우선 그것부터 시작하죠.”
틀린 말은 아니다.
오직 그녀의 자비로 목숨을 건진 것과 마찬가지니까. 아델리아를 믿는 것이 그들이 살 유일한 길이다. 아니었으면, 저택의 장작에 보탬이 됐겠지.
또한, 날 위해서도 그게 정답이다.
이 안건은 단순히 그림할 남작의 처형보다도 더 커다랗다.
아몬은 악마다.
교회에 몸담은 이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간밤에 공유한 비밀은, 절대로 밝혀져선 안 되는 성질의 것.
나와 아델리아는 서로 공범처럼 보이지만, 아델리아 쪽은 언제든 손바닥 뒤집듯 행동을 달리할 수 있다.
‘뭐, 물론 베스에게 맹세했으니 그들이 직접 비밀을 밝힐 확률은 한참 낮지만.’
교회의 고위직이기에 신앙은 절대적이라 봐야 했다.
여기까지 해결이 되면 아델리아 쪽도, 확인받고 싶을 것이다.
내가 아델리아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고 난 후, 그녀를 숙청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전에 내 의사를 확인하거나 행동을 취하고 싶을 테지.
“날 심판하거나 맞설 생각은 없나?”
“베스 교는 일반적인 종교와는 달라요. 모든 이들을 포용하죠.”
“그것이 악이든, 마족이든?”
“악도… 마족도, 베스께서는 포용을 원하십니다.”
“…뭐?”
광기가 넘실거리는 신앙이다.
아델리아가 미소를 띠었다.
“모든 것을 사랑하라.”
“괴팍한 종교군.”
“애초에 이곳에 당신과 함께 오지 않았다면, 묻혔을 사건이거니와 혹 진실을 밝혔더라도 전 이곳에서 죽었을 거예요.”
유리알과 같은 눈.
“베스께서는, 모든 것을 내다보셔요.”
떠날 채비를 끝마친 우리는 저택 마당에 나와 기다렸다.
화르륵…
장작에서 일어난 불길이 이내 저택을 화마로 뒤덮었고, 순식간에 저택의 모든 공간을 집어삼켰다.
화르르르르륵…!
검은 연기가 하늘로 솟아오른다.
“잘 타는군.”
“그러게요.”
비밀스러운 밤이다.
* * *
리우디라까지 이동하면서, 불편한 점은 거의 없었다. 이들을 이대로 떠나보내는 것이 너무 안일한 행동은 아닌가에 대해 스스로 고민해 봤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들을 살려두는 편이 나았다.
‘아무리 그래도 성녀라고.’
악마와 관련된 자로 베스 교의 추격을 받는 것보다, 성녀 살해 죄목으로 베스 교의 추격을 받는 편이 상황적으로는 더 심각할 것 같았기에.
“오늘은 여기서 야영하고 가는 게 어떨까…요?”
“그러지.”
여행길이 편하게 느껴진 이유 중 또 다른 한 가지는, 성기사들의 태도 변화였다. 저택에서 일이 벌어지기 전까진, 업신여기는 정도까진 아니어도 무시하는 느낌이 강했는데 지금은 조금 과하게 말하자면 벌벌 기고 있었다.
“저녁 준비는 저희가 하겠습니다.”
끄덕.
그들은 앞장서서 야영지를 꾸리고, 불을 지펴 식사를 내왔다. 그에 대한 보답이라고 해야 할까, 식사 후에는 루시퍼에게 부탁해 그들에게도 차를 대접했다.
후룹…
“하아… 오늘 하루 힘들었던 게 싹 내려가는군.”
“고생은 말이 다 했잖아?”
“그 말이 곧 내 다리 아니야? 내일은 네가 마차 몰래?”
“사양할게.”
다 마시면 꼭 잘 마셨다는 인사와 함께 아델리아의 잠자리를 살피고 불침번을 섰다. 불침번만큼은 한쪽에 일방적으로 배분할 수 없었기에 빌과 모리까지 포함하여 번을 섰다.
‘어차피… 저들을 온전히 믿을 순 없으니까.’
내 사람도 아닌 자들을 믿고 잠을 청하는 건 심장을 내놓고 다니는 거나 마찬가지니, 조심할 건 조심해야 했다.
리우디라까지 향하는 길 첫날까지는 저택에서 있었던 일 때문인지, 그들끼리 소란스럽게 얘기를 나눴다. 그러나 성녀가 그에 대해 잘 타일렀는지, 오히려 다음 날이 되고 나서는 친근하게 우리를 대했다.
아마도 리우디라에 도착하는 순간까지는 별문제가 없을 것이다.
‘문제가 생긴다면… 리우디라에 도착한 직후겠지.’
리우디라에 도착한 직후에,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이번 일의 보상인 최상급 마석을 전부 넘겨받기로 했다. 바로 그 시점에서, 서로가 품은 생각을 알 수 있게 된다.
…모두가 잠이 들 무렵, 홀로 잠이 오지 않아 불가로 나갔다.
타닥…
탁…
지금 번을 서는 건, 빌. 불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만 봐도 번을 서고 있는 게 누구인지 알아챌 정도가 되었다.
잠자리 중 불가에 오는 첫 손님은 내가 아니었다.
“…아몬?”
“잠이 오지 않는구나.”
아련한 듯이 말하는 저 악마.
“낮에 잠을 그렇게 자니까 못 자는 거 아닐까.”
“잠들지 못한 건 너도 매한가지 아니더냐?”
“…그렇군.”
“불을 쬐려거든 가까이 오거라.”
불가 맞은편에 앉아 가만히 멍때리는 우리.
‘던전은… 별문제 없겠지?’
문제가 있었다면 지금, 멀리 떨어진 내게도 이상이 있었을 것이다.
‘심장을 꺼내 집에 두고 외출하는 기분이 이런 건가?’
불안할 법도 한데, 크게 위축되진 않았다. 다만, 조심할 필요성은 느꼈다.
‘이번엔 운이 좋은 거다. 다음에도 무사히 넘어가리란 보장은 없어.’
하마터면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을 법한 상황이었다.
가끔 찾아오는 모험가들을 걱정해 던전에만 박혀 있으면 성장할 수가 없고, 영역 외에서 성장하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간 언제든 던전이 습격을 당할 수 있는… 그런 딜레마.
‘행운으로 생각하고 앞으로는 방비해야지.’
던전이 성장하면 할수록 그만큼 방비는 수월해질 것이고, 움직임은 자유로워질 것이다.
악순환이 선순환으로 뒤바뀌는 것.
‘이게 다 이번에 마석 수확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지.’
히죽 웃음이 새어 나올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을 하길래 네 주변에서 꽃 냄새가 나느냐?”
웃지는 않았지만, 희망적인 미래에 관한 생각을 하는 게 들킨 모양이다. 아몬이 은유적으로 꼬집는 거 보면.
“…뭐 이것저것.”
“피곤하구나, 얼른 돌아가고 싶다.”
멍한 아몬에게, 잊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페넥스의 스승과 본 적이 있나?”
“음? 아… 있다. 한데… 그건 왜 묻지?”
“불가에서 할 얘기가 달리 있나?”
“아하핫… 하긴, 그 녀석도 뜨거웠지. …페넥스, 그 아이가 네게 무언가 말을 했나 보군.”
– 할아버지가 대악마, 믿지 말라고 했어!
– 대악마가 생명력, 봉인했다고 말했었어.
페넥스가 남긴 말이 인상 깊었는지, 머리에 계속 남아 있었다. 아마도 슬쩍 질문을 건넨 건 그 이유 때문이겠지.
“뭐, 그렇다.”
“무어라 말하던가? 이 몸을 조심하라 말했느냐?”
“딱히, 그냥 말을 조금 섞은 것뿐이다. 네 얘기를 들려주면 좋겠군.”
“페넥스의 의부… 그러니까, 그 스승되는 녀석의 이야기 말이군. 이해했다.”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구나. 역시 대악마인가?
“악마들이 사는 세계에 대해 아느냐?”
“지옥. 아닌가? 그리 살기 좋은 환경은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반만 맞다. 지옥은 맞지만, 살기 그리 나쁜 환경도 아니니라. 그곳에 사는 게 눈에서 불꽃을 만들어 내고 대지를 쪼개는 악마들이라는 걸 상정했을 땐 말이지.”
“그래서?”
“지옥은 살아있는 세계다. 악마들을 괴롭히고 또한 그 가혹한 환경으로 성장하게 하지.”
처음 듣는 얘기다.
게임에서 지옥에 관한 설정은 거의 풀지 않아서 말이지.
“지옥… 녀석이 강해질수록, 우리 역시 강해진다. 하지만… 정도를 넘어서는 채찍질은 우리 모두를 부술 뿐이야.”
“갑자기 그 얘기를 왜 하는 거지?”
“페넥스의 스승에 관한 얘기다.”
“…그가 지옥과 관련이 있나?”
“있지. 지금은 홀로 절멸의 한파를 막아내느라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지만, 한때 녀석은 지옥에서도 손꼽히게 위험한 녀석이었다.”
“어째서? 너희 대악마들에게 평범한 악마들의 힘은 미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잘못 알고 있구나. 대악마라는 건 태어났을 때부터 손에 쥔 왕관이다. 태초의 악에게서 건네받은 이름 같은 것이지. 절대적인 강함은 아니다.”
대악마가 모든 악마보다 강한 건 아니라고?
‘이건 좀 흥미로운데….’
아몬이 계속해서 얘기했다.
“지옥의 환경은 수많은 기적과 불합리를 만들어 낸다. 그건 대악마들에게만 한정된 게 아니지. 녀석 또한 그런 문제였느니라.”
“정확히 뭐가 문제였지?”
“어느 날, 녀석이 우리를 찾아왔다.”
대악마가 그를 찾은 게 아닌, 그가 대악마를 찾은 거라니… 전해 들은 것과 달랐다.
“자신의 생명력을 봉인해달라 말했어. 확실히, 그런 건 대악마들이나 가능한 일이지.”
“어째서 생명력을 봉인해달라 말한 거지?”
“녀석의 생명은… 끝없이 팽창했다.”
“…뭐?”
“멈추지 않고, 끝없이.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간 지옥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었다. 그 생명력을 얻기 위해 대전쟁이 벌어지든, 비대한 생명력이 지옥의 환경을 뒤바꾸어 버리든 간에.”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글쎄… 지옥이니까?”
이제야 이해가 되는 일.
대악마들이 생명력을 봉인했다는 건 어폐가 있는 말이다.
‘스스로 봉인한 거야. 지옥을 무너트리지 않기 위해.’
절멸의 한파를 홀로 막아낸 그가 내렸을 법한 판단이었다.
“아무튼, 궁금증은 해결이 되었느냐?”
“대강은.”
“그럼 되었다.”
* * *
며칠이 지난 후, 우리는 리우디라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리우디라 인근의 언덕을 낀 작은 평지에.
수상한 마차 두 채가 그곳에 서 있었는데, 아무래도 저들이 베스 교의 사자들인 것 같았다. 그것을 눈치챈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은 게, 전부 힐끔힐끔 내 눈치를 살폈다.
‘긴장 좀 해야겠군.’
거래가 임박한 순간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넋을 놓고 있다간 뒤통수 맞기 딱 좋았다.
‘꾀를 부리려거든, 지금이다.’
아델리아 쪽으로 시선을 던지자 그녀는 묵묵히 마차로 나아갔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성녀님.”
“모두가 걱정해 주신 덕분이에요.”
“당치도 않습니다! 저희가 직접 모셨어야….”
“사소한 이야기는 접어두고… 준비됐나요?”
마차를 지키던 이들이 일제히 내 쪽을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물론입니다.”
“그럼….”
스윽…
긴장감이 흐르는 와중, 마차에서 궤짝들이 꺼내어져 왔다. 궤짝은 모두 4개.
“직접 보시겠어요?”
“…그러지.”
끼이익…
마석으로 가득한 궤짝.
전부 최상급 마석의 푸른 빛을 내뿜고 있었다.
끼이이익…
이것도.
끼이익…
이것도 말이다.
4개의 궤짝을 전부 확인한 후에, 아델리아에게 말했다.
“약속을 지켰군.”
“약속이니까요.”
“…그래.”
“어떤가요? 신뢰를 조금 얻었나요?”
“굳이 내 신뢰를 얻을 필요는 없을 텐데?”
“한번 보고 말 사이도 아니잖아요.”
“…뭐?”
싱긋 웃는 그녀.
“비밀을 공유했잖아요, 우리?”
“날 이용할 생각인가?”
“방금, 거래하지 않았나요? 앞으로도 그런 관계이지 않을까요?”
“거래라….”
최상급 마석 12,000개.
40연차.
그래, 40연차다.
…다른 게 뭐가 중요한데?
“일이 있으면 리우디라에 온통 흰 옷을 입은 자를 보내라.”
“누굴 찾으면 되나요?”
“찾을 필요 없다. 내가 그자를 찾을 테니.”
“좋아요. 그럼….”
“그래.”
“또 봐요.”
[첩보 활동의 보상이 최종적으로 확정됐습니다.] [보상은 최상급 마석 12,000개입니다.] [첩보 활동 중 베스 교와 접촉했습니다.] [세력과의 교류는 앞으로의 첩보 활동에 영향을 줍니다.]아델리아 일행이 떠났다.
“파우스트 님.”
“마석을 마차에 실어라.”
“예. 하면….”
수하들에게 말했다.
“던전으로 돌아간다.”
마석 12,000개!
가챠하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