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42
제42화
주황빛 광채는, 내 두 눈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그게 거북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황홀하군….’
흔히, 이 맛에 돈 쓴다는 말을 자주 하게 했던 가챠 성공의 연출.
휘오오오…
아제룹의 눈에서 뿜어지던 광채의 색이 뒤바뀌었다.
먼저 예고편을 보여줬으니, 차례차례 부속품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녹색.
[★★ 정전기 정령을 소환합니다.]파지지지지직!
쿠웅-! 하고 우는 작은 정령.
하나의 개체로는 그다지 쓸모가 없지만, 여럿이 뭉쳐 있다면 합쳐지거나 하는 형태로 강해진다.
휘오오오…
푸른색.
[★★★ 강철턱 거북을 소환합니다.]쩌어억-!
아가리를 벌리며 나타나는 커다란 거북이.
‘둔하다는 게 느껴지네.’
대양 속성과 토지, 그리고 금속 속성을 전부 가지고 있는 사역마, 무난한 맛에 채용하기 좋다.
‘굳이 따지자면, 침입자들 체력 빼두기에는 쓸 만하지.’
휘오오오…
다음은… 보라색!
[★★★★ 오크 전쟁광을 소환합니다.]“끄훅… 전쟁인가?”
드디어 오크 중에서 인간과 마족의 공용어를 할 수 있는 개체가 나타났다.
레메게톤의 재밌는 점 중 하나인데, 종의 원류에서 파생된 사역마들의 등급이 올라갈수록 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해진다.
가령 말을 할 수 없었던 개체도 4성과 5성쯤에 이르면 대화 정도는 우습게 해낸다.
‘물론 아닌 개체도 있고… 저마다 특징도 다르지만.’
다음으로 넘어가자.
휘오오오…
푸른색이다.
[★★★ 향수병의 저주 부적의 수색에 성공합니다.]‘…통과.’
그다지 쓸모없는 저주다.
특정 성향의 모험가에게만 작용하는 부적으로 보통 저격용으로 채용하는 편이고 그 외엔 창고에 박혀 있거나 부적을 갈아 다른 부적을 성장시키는 데 사용한다.
저주 부적이 성장하면, 저주의 성공 확률이 높아지는 것뿐만 아니라 각종 새로운 효과까지 따라붙는 경우가 있다.
‘뭐… 대부분 높은 등급의 저주 부적이 그런 편이긴 하지만.’
저주는 일반적으로 던전 진행 중 하나의 저주만 발동 가능했다. 예외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그렇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건, 던전이 무한히 강해질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이다. 예를 들어, 저주처럼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 사역마라면 던전을 가득 메울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이론상 가능하긴 하지. …이론상이지만.’
그 경우에는 질 낮은 사역마들로만 던전이 가득 찰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던전을 집이라고 생각하면 편했다.
심처를 포함해 보스 룸이 3개인 던전은 방이 3개인 집이다. 방의 평수는 제각각이지만 그건 집을 설계한 사람의 마음에 달린 것처럼.
그리고 그 방 안에 들어가는 사역마들은 가구라고 생각하면 편했다.
가구를 밀어 넣으면 어떻게든 들어가겠지만, 주변과의 조화를 생각하지 않으면 서랍이 안 열린다거나 잠자리가 불편하다거나 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즉, 가구로서의 본연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조화를 깨트리지 않고 사역마를 많이 집어넣는 법?
‘집 자체가 커지던가, 다른 방의 공간을 대신 할당해야지.’
물리적인 공간을 의미하는 것과 동시에, 던전 코어로부터 공급받는 마력도 이와 관련되어 있다.
‘뭐, 던전 코어야 무한히 성장하니까 던전 자체가 무한히 성장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
생각하는 사이, 벌써 4종류의 무기가 지나갔다.
[★★★ 광기의 뿔 나팔의 수색에 성공합니다.] [★★ 지린내 나는 단검의 수색에 성공합니다.] [★★★ 모독하는 투갑의 수색에 성공합니다.] [★★★★ 두개골 수집기의 수색에 성공합니다.]휘오오오…
나름 보라색, 그러니까… 영웅 등급의 무기도 존재했지만 심드렁할 뿐이다.
어째서 사역마를 뽑았을 때와 반응이 이렇게 다른가 하면, 무기는 적합성이란 것이 존재해 착용할 수 있는 개체가 정해져 있으며 등급이 어정쩡할수록 그 효과가 더 미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나마 두개골 수집기… 이건 오크 전쟁광이 착용하면 괜찮겠네.’
제대로 된 무기까지 착용한 4성급 사역마를 전면전으로 감당할 녀석은, 이 근방에 드물 것이다. 그렇더라도…
‘역시 필요한 건 사역마란 말이지….’
던전은 점차 넓어질 것이다. 아마도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그 넓은 던전을 채우는 건 무기가 아닌 사역마다.
‘다음은 사역마가 나왔으면 좋겠군.’
파츠즈즈즈즛…
신호가 온다.
이번 차례였었던 건가.
‘주황색!’
아제룹이 신음한다.
“크으으읏….”
5성의 전조.
9번째 소환물에서 신호가 온 것이다.
파지지지지지지직-!
천둥이 내려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형체의 무언가가 등장했다.
– 구우우우우우우…
“…골렘?”
지옥문보다도 거대하게 느껴지는 덩치. 그 덩치만 보면, 숲 트롤 방랑자보다도 커다랬다.
[★★★★★ 영역 수호자를 소환합니다.]“흐음….”
대지 속성의 골렘.
특별한 장점이라 할 만한 것은, 그 단단함에 더해 중심부의 핵이 파괴되지 않는 이상 무한히 복구되는 기관일까.
쓸 만한 녀석임은 분명하다, 당장 유적이나 흙 속성 필드를 구축한다고 하면 가장 1순위로 보스 룸에 세울 놈이니.
‘그래도, 대지는 기반이 너무 없어.’
대지 필드를 구축할 만한 전력이 없다. 앞으로 사역마를 더 뽑아봐야 알겠지만, 기적적으로 대지만 뽑히지 않는 이상 당장 필드 구축은 어려울 것이다.
당분간은 계륵처럼 쥐고 있어야겠지.
아무런 시너지가 없는 상태로 투입해 봐야 던전 코어가 공급하는 마력만 잔뜩 잡아먹어 한 등급 아래인 4성 사역마보다도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
휘오오오…
[★★★ 알아보기 힘든 유황 구덩이의 수색에 성공합니다.]마지막은 불 필드 함정.
‘만족스러우면서도 조금 아쉽네.’
유효타가 없다. 굳이 따지자면 오크 전쟁광 정도.
새로운 필드의 사역마도, 외부 첩보 활동 인원도 마땅치 않았으니….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오늘의 나는… 마석이 잔뜩 있으니.’
휘오오오오…
차례차례, 10연차를 진행했다.
이번엔 속도를 높여서.
[★★ 오염된 배수로의 수색에 성공합니다.] [★★★ 누전된 개폐장치의 수색에 성공합니다.] [★★★ 폭음 두꺼비를 소환합니다.] [★★★ 화염 임프를 소환합니다.] [★★★★ 볼케이노 웜을 소환합니다.] [★★★ 끔찍한 실험체를 소환합니다.] [★★★ 늪귀신을 소환합니다.] [★★ 게으름의 저주 부적의 수색에 성공합니다.] [★★ 정전기 정령을 소환합니다.] [★★★ 덜 자란 설인을 소환합니다.]‘음….’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일부러 60연차가 가능한 마석을 보유한 상태에서 시작했으니.
‘점점 보유 풀이 늘어나고 있다.’
망한 10연차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던전 운영은 보스 룸 구축이 전부가 아니다. 보스를 밑받침하면서 침입자의 실력을 가늠하고 그들의 체력과 정신력을 갉아먹어 줄 필드의 구축 역시 중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마력을 적게 먹는 일반 사역마들이 계속해서 나와주는 건 나쁘지 않았다.
‘물론 최고로 좋은 건 악마를 뽑는 거지만… 거기까진 바라는 건 심하지.’
이미 대악마 중 하나인 아몬이 내 곁에 있다. 그녀의 힘을 일부나마 느낀 시점이 바로 얼마 전이었으니 무리해서 다른 악마를 욕심낼 필요도 없다.
‘지금 필요한 건 평정심이야. 차근차근….’
휘오오오…
또다시 10연차.
[★★★ 바람잡이를 소환합니다.] [★★ 무덤 좀비를 소환합니다.] [★★★★ 샐러맨더를 소환합니다.] [★★★ 실체 없는 영혼을 소환합니다.] [★★★★ 모닥불 방화광을 소환합니다.] [★★★★ 갈래 길의 저주 부적의 수색에 성공합니다.] [★★★ 독니의 수색에 성공합니다.] [★★★ 해골 광전사를 소환합니다.] [★★★ 유황 원숭이를 소환합니다.] [★★★ 화염 임프를 소환합니다.]‘…슬슬 다음 필드가 정해질 때군.’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레메게톤의 과금 시스템은 극악이다.
초보자 뽑기에서 제한된 4속성 보다도 훨씬 많은 속성이 존재하기에, 또 한 가지 속성에서도 갈래가 나뉘기에 던전의 필드를 제대로 구축하기 위해 들어가는 초기 자본은 어마어마했다.
‘…적어도 1트럭에 하나는 완성해야 할 거 아니야?’
가장 비싼 깡 마석 패키지를 1트럭이라고 표현하는데, 10만 원이 넘는 금액이기 때문에 결제할 때마다 부들부들 떨었었다.
레메게톤에서는 1트럭의 값어치가 가끔 한없이 밑바닥에 처박힐 때가 있다. 일명, 돈 쓰고도 달라진 게 없는 상황이 찾아올 때다.
‘40번이나 뽑으면 적어도 필드 하나는 맞춰주라고 제길!’
“멈출 텐가?”
마치, 여기서 물러나기를 종용하는 듯한 아제룹의 말에 나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아니.”
아제룹이 ‘호오….’ 와 같은 감탄사를 하며 물러서지 않는 내 각오에 화답했다.
이번엔 물러설 생각이 없다.
새로운 필드의 구성과 외부 활동 요원 확보를 이룰 때까지는!
휘오오오오오…
파츠즈즈즈즛…
“크으으으으으….”
…설마?
휘오오오오오-!
주황빛 광채가 아제룹의 눈에서 폭발하듯 흘러나왔다.
빛이 바뀌지 않는다.
그 말은, 첫 번째로 나타날 존재가 이 주황빛의 주인이다.
파직… 파지지직!
번갯불과 함께, 녀석의 실루엣이 보였다.
“크르르륵….”
연기 속에서, 늑대인간의 흉악한 실루엣이 어른거렸다가 점차 줄어들더니 여리여리한 성인 여성의 실루엣이 완성되었다.
연기가 걷히고, 콧잔등에 횡으로 그어진 흉터가 있는 미인이 나타났다. 눈매는 사나웠으며, 자신감으로 가득한 표정.
“당신이 내 계약자야?”
[★★★★★ 달무리 늑대인간을 소환합니다.]…유효타다.
* * *
이번 가챠의 결과를 미리 정리하자면, 6성급 악마는 나오지 않았다.
‘얼추… 구색은 맞춰졌군.’
하지만, 던전을 꾸려나갈 수많은 사역마가 합류했다. 그리고 꽤 운이 좋았는지, 새로운 필드 하나를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고민을 꽤 했지….’
새로운 필드의 조건은 보스 룸을 채울 만한 재원이 있어야 하며, 필드의 환경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만큼의 일반 사역마 풀이 확보된 상태여야만 했다.
첫 번째 조건을 만족하는 속성은 3개.
‘대지, 화염, 번개.’
이 중에서 두 번째 조건까지 만족하는 속성은 화염뿐이다. 고로, 다음 필드는 화염으로 결정되었다.
‘번개의 경우엔… 사역마의 분류가 달라서 말이지.’
번개 계열 사역마들도 확보하긴 했으나, 폐연구소 테마의 사역마는 몇 없었다.
‘애초에, 앞쪽부터 강화하는 게 맞는 순서니까.’
침입자에게 아몬보다 먼저 페넥스가 마중을 나갈 테니, 그녀에게 힘을 실어주는 게 옳은 판단이었다.
‘자… 그럼….’
옥좌 앞에 무릎 꿇은 새로운 사역마들. 그중에서도 몇몇이 눈에 띄었다.
5성급 사역마들이다.
난 이번 가챠에서 무려 50번의 뽑기를 시도했고….
‘드디어, 내게 광명이 내리쬐나?’
내 앞에 무릎 꿇은 새로운 5성급 사역마는…
모두 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