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45
제45화
페넥스를 필두로 하여 토벌대가 계속해서 전진했다.
드드드…
끼이익… 끼이익…
사방이 온통 어둠으로 가득한 곳에서 횃불만을 의지한 채 앞으로 나아가는 건 보통 담력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어둠을 두려워하는 게 온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다만, 제2구역의 보스를 토벌하기 위해 파우스트의 명을 받아 이곳에 온 이들은 모두 인간이 아니기에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까드득…
까드득…
“눈치만 보고 덤벼들진 않는군요.”
“그러게. 심심한데….”
“불리한 조건에서 싸우는 건 그다지 유쾌하지 않을 겁니다. 페넥스 님, 참으시지요.”
고블린 킹 쟈킴은 막 소환되었을 당시만 하더라도 파우스트에게 하대 아닌 하대를 했을 정도로 오만한 태도였다. 그런 그가, 페넥스에겐 사뭇 공손했다.
“페넥스, 파우스트가 네게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았어?”
“나리가? 아니, 그냥 다녀오랬어.”
“흐음… 그만큼 페넥스 님을 신뢰하고 있는 거겠군요.”
페넥스가 머리를 긁적이며 헤실헤실 웃었다.
“아니… 뭐…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는 종종 말하지만….”
…말한 적 없다.
쟈킴은 페넥스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해주었다.
“그만큼 믿고 있기에 별문제 없이 토벌에 성공할 거라 예상하신 겁니다.”
루비가 이죽거렸다.
“어쭈, 꿀 바른 입을 너무 놀리는데? 원래 그런 쪽이었어?”
“닥쳐라, 무뢰배. 악마와 그 주인은 존중받을지어다.”
“헤… 그래? 뭐, 그렇긴 하지.”
악마.
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존재는 그 아름다움을 뛰어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사역마들에게는 그다지 비밀이 아니다.
– 구우우우…
그렇게 한참을 이동한 그들은, 한 가지 불쾌한 사실을 접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함정이 멀쩡히 작동하는데?”
“그러게… 페넥스, 이거….”
“우음… 쟈킴?”
“아마도, 이 던전이 형성된 과거에 작동하던 함정들인 것 같군요. 상당히 오래되었습니다.”
“잠깐… 그 말은….”
그들은 오래지 않아 목표로 했던 위치에 도달했으나, 거대한 벽이 그 위치를 가로막고 있었다.
“흐음… 빙 돌아가야겠군요. 이만한 두께면 모암의 힘으로도 어림없습니다.”
“하루를 꼬박 넘기겠네.”
“어쩔 수 없지.”
절뚝…
절뚝…
조금 오래 걸었으니, 쟈킴의 다리가 멀쩡할 리 없다.
“제길….”
“저기, 페넥스.”
페넥스가 우뚝 멈춰서고는 뒤돌며 말했다.
“저기, 쉬었다 가자.”
쟈킴이 식은땀을 흘리며 자리에 앉았다.
근처의 부서진 목책을 장작으로 써 불을 피웠다. 연기가 곳곳으로 빠져나간다.
바람이 통한다는 얘기이기도 했고, 이곳은 지하이니 그만큼 쌀쌀하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 구우우우우…
모암이 조금 더 모두를 감싸는 식으로 고쳐 앉았다.
“고맙군, 모암. 기억하지.”
“풉… 뭘 기억한다는 거야.”
“나는 은혜와 원수를 잊지 않아. 그것이 무엇이든 말이지.”
“그래?”
쟈킴이 조금 진정됐는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 던전… 상당한 규모군. 던전 코어로부터 이 정도로 영향력이 뻗어 나왔다는 건 파우스트 이전에 이 던전을 가졌던 자가 강자였다는 의미겠지.”
“맞아, 음… 누구였으려나?”
“모르지. 다만 아직까지 함정이 작동하는 걸 봐서는 그리 오래된 인물은 아닐 거다. 지하 백작이나 칠죄종, 아니면 강철 용인….”
“칠죄종도 알아?”
“모를 리가 있나. 핍박받는 이종족에게 있어 영웅이나 다름없는 자들이지.”
“숲에서만 산 건 아니었네?”
“숲에서 살기 위해선 숲에서만 살아가선 안 됐으니까. 겨울이 오면 식량이 부족해 마을을 습격하기도 했고, 상단의 창고를 털기도 했다.”
“또?”
“토벌대와 혈전을 벌인 적도 있고 기사도 여럿 죽음의 강 너머로 배를 띄워줬지.”
“악명이 자자했겠는데.”
“그래서 토벌령이 떨어졌고… 빠져나오다 다리 한쪽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 아니냐.”
쟈킴이 투덜투덜 살아오며 경험한 것들을 풀어내자, 루비가 물었다.
“고칠 수는 없어? 그 다리.”
“여태 고쳐보겠다고 나선 녀석들은 모두 실패했지. 반쯤은 포기한 상태다.”
“그대로 두면 썩거나 문제가 생길 텐데….”
“잘라내면 그뿐이다. 흥.”
루비가 히죽 웃으며 그 말에 감춰진 속마음을 들췄다.
“거짓말이구나?”
“뭐?”
“다리, 잃고 싶지 않잖아.”
“…….”
“제대로 걷고 싶으면서 말이지.”
“닥쳐라, 네가 뭘 안다고….”
“아니었으면 사역마 계약을 네가 뭐 하러 맺었겠어?”
“…….”
루비는 화려하게 반짝이는 눈동자로 쟈킴을 바라보았다.
“기적을 바란 거겠지.”
“흥….”
쿠우우…
“모암, 왜 그러지?”
쿠우우…
“…모암이 아니야, 페넥스네.”
쿠우우…
페넥스가 코에 방울까지 맺힌 상태로 모암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나 원… 악마는 맞는 건지.”
“악마를 이해하려 들지 마라. 그 말로까지 궁금하지 않다면 말이지.”
“악마를 두려워해?”
“악마를 두려워하지 않는 걸 두려워한다.”
“키힛… 그 정도야?”
“악마를 본 적 없나 보군.”
“응, 페넥스가 처음이야.”
“너무 가까워지지 말도록. 그들은 자유로운 존재니까.”
“자유로우면 좋은 거 아니야?”
“자유롭다는 건, 선이 없다는 얘기다.”
“…….”
타닥…
탁…
“얼른 돌아가서 목욕하고 싶어. 여기 목욕도 가능하려나?”
“지하수는 흐르는 것 같다만….”
“그 정도면 충분하지.”
“루비라 했던가?”
“그래. 예쁘지, 내 이름? 파우스트가 줬어.”
“넌 어떻게 고향을 잃었지?”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해?”
루비가 경계하며 묻자 쟈킴이 콧방귀를 뀌었다.
“새로 몸을 누일 곳에 가시는 없는지 살피는 건 기본이다.”
“흐흐흥… 그러셔? 살아남는 방법의 일환인가 보네.”
쟈킴이 물러서지 않고 두툼한 눈꺼풀 한쪽을 슬쩍 올리자, 루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내 고향 루비토리엄은 밤이 되면 하늘이 별로 가득 차는 숲이었어.”
쿠우우…
“일족의 전사들은 모두 강했고, 긍지 높았어. 우리는 대륙의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우리 내부의 일을 수습하기 바빴지.”
한순간, 루비의 눈동자가 더욱 붉게 물드는 것처럼 보였다.
“…망할 인간들이 우리의 마지막 낙원까지 불태우기 전까진 말이야.”
“정복 전쟁을 경험한 세대인가?”
“아니, 나는 한참 뒤에 태어났어. 루비토리엄 태생이거든. 내가 태어났을 땐 이미 솔로몬은 전 세대의 인물이었고.”
“네가 루비토리엄 최후의 아이?”
“푸하하핫! 아니, 아직 나 말고도 루비토리엄의 생존자는 꽤 있어. 다만 소식을 알 수 없을 뿐이지.”
쟈킴이 이야기를 끝내려하는데, 루비가 되물어왔다.
“넌?”
“고향?”
“응.”
“고향은 없다. 기억이 나지 않는군.”
“헤에….”
“고블린들은 멍청하다. 늘 싸우고 늘 지기만 하지. 한심한 종족이야.”
“심한 말인걸.”
“멍청이가 이끌기에, 다들 멍청이처럼 죽었다. 난 내 앞에 설 제일 힘 센 멍청이를 죽였다. 그걸 계속 반복해왔지.”
“으음….”
쟈킴이 탄생한 이유다.
“내가 그 멍청이들의 앞에 섰을 때, 처음으로 이겼다.”
“…….”
“그제야, 경치가 볼 만해지더군.”
“앞으론 어쩔 생각이야?”
“흠….”
“사역마가 된 목적이 있을 거잖아?”
“무리를 잃고 한쪽 다리까지 잃은 내가 어디로 갈 것 같으냐? 파도에 몸을 실을 생각이다. 파도가 나를 놈들에게 떠밀어주길 바라면서.”
“놈들이라면….”
“너와 마찬가지. 빌어먹을 인간들 말이다.”
“킥… 그것만큼은 뜻이 일치하네.”
문득, 둘은 페넥스의 코골이가 들리지 않는다는 걸 뒤늦게 눈치챘다.
페넥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기척 내지 말고, 조용히. 습격이야. 위.”
“…….”
“…….”
“셋을 세면… 몸을 날려서 피해. 음… 아.”
페넥스의 다음 말이 들려왔다.
“셋.”
“망할!”
“뭐야!”
파아아아아아앗-!
동시에 사방으로 흩어지는 사역마들.
– 구우우우우우우!
모암은 그 덩치 때문에 재빨리 대응하지 못했고 덕분에 팔 한 짝이 충격에 휩쓸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기다랗고 거대한 무언가가 천장을 뚫고 나와 바닥으로 사라졌다.
“…맙소사.”
녀석은 모암의 팔을 한순간에 박살 낼 정도로 강한 힘을 가졌다.
후두두두둑…
다행히, 모암의 경우 핵이 파괴되지 않으면 신체 부위를 재생하기에 어렵지 않게 회복할 수 있었다. 만일 모암이 아닌 다른 이가 휩쓸렸다면 깨어나는 곳은 이곳이 아닌 재생의 화원이었을 것이다.
“저게 뭐….”
쿠구구구구구…
녀석이 땅 밑에서 지반을 파헤치는 게 진동으로 느껴졌다.
끄드드드드드…
이번 습격이 불만족스러웠는지, 심해의 괴물이나 낼 법한 괴상한 울음과 함께.
“물러나는 건가?”
“쫓자.”
페넥스가 간결하게 말하자, 쟈킴이 황급히 손을 앞으로 뻗으며 말했다.
“잠… 저는 이제 달릴 수가….”
파아아아아앙-!
공기가 진동하는 동시에 타는 듯한 냄새가 코를 때렸다.
치이이이…
페넥스가 달린 길 위로 잔불이 남아 검게 그을리게 해 어디로 이동했는지 알 수 있게 했다.
– 구우우우우-!
유적 수호자 모암이 쟈킴을 한 손으로 들어 올려 그의 어깨에 얹었다.
“이제 된 거지?”
“…….”
루비의 말에 말문이 막힌 쟈킴이 대답하지 못했다. 이런 경험은 난생처음이기에.
“모암! 페넥스를 따라가!”
쿠우웅-!
쿠우우웅-!
모암이 거체를 움직여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순발력이 부족할 뿐이지 속도 자체는 평범했다. 아니, 오히려 이 거체가 이 정도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다.
치이이…
킁킁…
“저쪽!”
그을음이 중간중간 끊어져 있었지만, 루비의 코가 탄내를 잡아내 페넥스가 향한 방향을 놓치지 않았다.
땅속을 헤집는 진동은 느껴지지 않은 지 오래. 저 멀리 페넥스가 불꽃을 피워올려 신호를 보냈다.
“아, 이 문은….”
“일전에 보았던 벽과 같은 형태로군.”
단단한 벽으로 가로막혀 있어 빙 돌아가야 했던 유적. 공간 균열인지 뭔지 하는 게 이 너머에 있는 게 확실했다.
후우우우웅…
“이거, 못 열겠어.”
페넥스가 양 손바닥을 위로 향하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녀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뜻.
쿵…
쿠우우우웅…
모암은 이곳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가가 문에 몸을 비볐다.
– 구우우우…
“뭐, 뭐 하는 짓이냐!”
“쟈킴, 내려와. 모암이 뭔가 하려나 봐.”
팟-!
어정쩡하게 착지한 쟈킴을 뒤로 하고, 모암의 손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맺히기 시작했다.
휘오오오…
핵에 잠든 대량의 마력이 거대한 손에 맺히고는…
쩌저적…
유적의 문을 열어젖히기 시작했다.
그그긍…
“오….”
“힘 하나는 압도적이군.”
“모암이 없었으면 되돌아갔어야겠네.”
페넥스가 콧김을 내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나리야. 여기까지 내다본 거구나.”
모암의 눈이 번쩍 푸른 빛을 뿜어냈다.
– 구우우우우!
쩌저저저적-!
모암의 큰 덩치가 통과할 정도로 넓혀진 문. 강제로 넓혀졌기에 한동안 닫히지도 않을 것 같았다.
저벅…
저벅…
쿵…
토벌대가 안으로 들어서자,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저게… 균열이야?”
“커다랗군.”
지이이이이잉…
“모두 조용히.”
페넥스가 눈을 감고 한 손을 귀에 가져다 댔다.
“…….”
“…….”
잠깐의 침묵이 이어지고.
“왔다!”
콰아아아아아앙-!
천장을 뚫고 나타난 것은, 거대한 지렁이와 닮아있었지만, 그 아가리가 위치한 곳은 끔찍하게 생긴 이빨이 원통형으로 자라있었다. 동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데스웜의 일종인 듯했다.
다만, 저 덩치는 흔히 볼 수 없는 쪽에 속해있다는 게 문제였지만.
[중립 우두머리 ‘게걸스러운 타마가’가 매우 화가 났습니다.] [우두머리 전투가 진행됩니다.] [공간 균열이 이상을 일으켜 주변을 차단합니다, 도망칠 수 없습니다.]……
제2차 썩은 뿌리 토착 우두머리 토벌전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