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47
제47화
기이이이잉-
탁탁탁!
기계 손이 연구소의 먼지를 털고 있었다. 작은 빗자루와 같은 도구를 이용해 구석진 곳을 청소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천장의 거미줄까지도 걷어냈다. 요상한 천으로 만들어진 앞치마까지 착용한 모습이, 사뭇 본격적이었다.
“먼지 날리니까 이따가 하거라.”
기이잉-
기계 손의 눈알이 아몬을 바라보다가 손을 끄덕거리고는 청소를 멈추었다.
이곳은 아몬의 비밀 연구소.
딱딱한 돌 위에 리우디라에서 구해 온 천과 가죽이 얹힌 소파에 아몬이 어정쩡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기이이잉-
그녀의 기계 손 중 하나가 포도알 하나를 그녀의 입 속으로 가져갔다.
“아~앙.”
텁.
과즙이 터져 나와 그녀의 혀에 달콤한 감각을 선물했다.
“근데, 손은 씻은 것이냐?”
…기이잉.
“…가서 씻고 오려무나.”
이 과일 역시도, 리우디라에서 공수한 물건이다.
아마도 이 과일이 현재 던전에 남은 마지막 과일일 것이다.
“신선한 식재도 금방 바닥을 보이는구나. 하는 것 없이 늘어지다 보니 말이다.”
방금의 과육, 달콤했지.
아아.
“지옥에선 쉽게 맛볼 수 없는 진미로다.”
새삼, 이곳 솔라리아 대륙이 사랑스러워졌다.
“어디….”
흐으읍…
코로 공기를 음미하는 아몬.
“…참으로 오랜만이구나, 이 땅의 공기도.”
축축하고 어딘가 음습한 공기.
이 공기는 지하에서 느껴지는 특징이기도 했지만, 이곳이 던전이기에 더 배가되는 느낌이었다.
을씨년스럽고 시리다.
그녀는, 이런 고요가 싫지 않았다.
“나쁘지 않구나.”
기이잉-
“거기, 거기가 피로하구나.”
기계 손이 아몬의 어깨에 달라붙어 열심히 그녀의 몸을 주물렀다.
“하암….”
아몬은 하품하며 눈을 게슴츠레 떴다.
“기억하던 솔라리아의 모습은 모두 사라졌다라….”
그녀는 무척이나 오래된 기억을 꺼내며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
“하늘이 뒤집혔군, 마족이 멸했다면… 왕의 피도 끊어진 건가?”
하긴, 지옥도 그만큼 변화했으니.
이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아몬.
태업은 그녀의 일상이다.
흔히들 악마는 욕망으로 이루어진 존재라 말하지만, 그녀는 몇 안 되는 예외일 것이다.
무엇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한 지가 오래되었다. 아니, 애초에 뭔가를 진심으로 원한 적이 있던가?
뭐, 그런 사소한 문제가 있다고 하여도 이 역시 그녀의 관심을 끌 순 없었다.
그녀는 탈피를 거듭한 뱀이자 우화를 계속해 수천 번 새로운 여름을 맞이한 매미다. 오랜 세월, 시간을 견뎌온 그녀에게 감정이란 갈아치울 시기를 놓친 소모품일 뿐.
그녀는 그저 정제되고 정제된, 그저 아몬이라는 이름이 가진 힘의 상징이 되었다. 번뜩이는 영감과 지성, 그것이 아니라면 그 무엇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 소녀가 있다.
…따분하고, 지루하다.
앞으로도 분명 그러할 날이 계속됨을 알고 있다는 건 저주나 마찬가지다.
불멸이며, 영겁.
영원히 시끌벅적하지만, 영원히 고독하다.
악마란 그런 존재다. 72개의 이름을 가진 악마들은 모두 존재의 외로움을 안고 살아간다.
과거, 그들이 계약자를 위했던 마음이 있었는지조차도 이제는 희미했다. 그리고 아몬은 그런 악마들보다도 더, 희미한 기억을 가졌다.
…아몬의 계약자는, 역사상 단 한 명뿐이었고 그가 죽은 후로, 솔라리아에 발을 들인 적은 없었기에.
– 지옥문을 스스로 넘어온 걸로 생각됩니다만….
스스로 넘어왔다라… 틀린 말은 아니다. 지옥의 상황이 영 좋지 않게 돌아가긴 했지만, 반쯤은 구실삼아 이곳에 넘어왔다.
추악한 일탈이다. 다른 이의 욕망이, 혹시 잠든 자신의 열망을 피워 올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저질스럽구나.’
권태의 늪에 빠진 것은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다. 대악마 모두가 그러하리라.
그중에서도 유별나다 할 수 있는 아몬은, 미약하지만 분명 힘 있는 파동이 악마를 원해왔기에 그 빛을 붙잡았다.
그래서 그녀가 모든 권태로부터 해방되었는가를 묻는다면….
전혀.
“…….”
저벅…
저벅…
하지만,
“아몬.”
스윽…
“페넥스의 토벌대가 균열을 손에 넣었다, 가지.”
씨익-
“…아무렴.”
이곳엔 아직 여물지 않은 악이 있다.
좌충우돌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그 자그마한 약진이 퍽 눈에 밟힌다.
아몬은 그것을 천천히, 시간을 들여 지켜볼 생각이니… 적어도 심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 * *
[매우 오래된 유적의 모든 위협을 제거하였습니다.] [매우 오래된 유적을 답파합니다.] [모든 전리품이 던전: 썩은 뿌리에 귀속됩니다.] [차원문 중계기의 건축이 가능해집니다.]썩은 뿌리의 미답파 지역을 비롯한 많은 구역을 실물로 봐 왔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곳처럼 괴상하게 생긴 장소는 처음이다.
그렇다고 하여 산만하게 주위를 둘러보는 행동까지는 하지 않았다. 지금 내 앞에 무릎 꿇고 있는 토벌대 때문이다.
물론, 페넥스만 그런 게 익숙하지 않은지 혼자 서 있었지만.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자니, 칭찬을 기대하는 것 같았다.
흠흠…
스윽…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스쳐 지나갔다.
“수고했다.”
어라? 이게 끝? 과 같은 표정을 짓다가 해맑게 웃는다. 그녀는 영락없는 강아지다.
그런 존재를 쌀쌀맞게 스쳐 지나가는 것도 나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아몬, 말한 대로 이곳을 확보했다.”
“흐으음… 따라오거라.”
아몬이 유적의 중심부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페넥스가 아몬의 뒷모습을 찌릿! 하며 쳐다봤지만, 아몬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쓸쓸해 보이는 페넥스.
“너희도 함께다, 따라와라.”
– 구우우우?
“너희가 얻어낸 것이 무엇인지, 그 눈으로 확인시켜 주도록 하마.”
이것은 나름의 보상이다.
균열이 일렁이며 유적의 정중앙에 떠 있고 그 아래엔 기이한 문양이 새겨진 장치가 있었다. 기계 장치라고 하기엔 생김새가 유적의 일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몬이 조금 만져보더니 눈을 빛내며 말했다.
“장치가 오래됐구나, 이쪽 균열 통로는 다 타버렸다. 으흠, 그런 건가?”
“왜 그러지?”
“전 사용자가 이 균열 통로를 이용해 도주했기 때문이겠구나. 흠, 그때 장치가 오작동을 일으켰나 보군.”
뭐야? 문제가 생긴 건가?
이러면 곤란한데?
“그래도 몇몇 좌표는 건질 수 있겠다. 그거면 충분할 것이니라.”
“이 장치가 네가 말한 차원문을 만들어 내는 것인가?”
“물론. 더 많은 생명을 죽이기 위해 탄생한 무기지.”
“무기라… 음… 어째서 무기라 부르는 거지?”
“던전이 어째서 이 세상에 탄생했는지 아느냐?”
몇 줄 안 되는 설정 정도로만 알고 있다. 개발사에서도 제대로 푼 적이 없다고 그딴 건.
그러니 사실 모르는 거나 다름없다.
적어도 내 눈앞에 영겁을 살아온 역사학자이자 도서관인 녀석에게 아는 척하기에는 부족하다.
대강 안다고만 대답하자, 아몬이 친절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최초의 던전은 마족 고위층에 의해서 탄생했다.”
“흐음….”
“당시엔 마족과 인간이 서로의 다름을 종의 구분이 아닌, 계층의 서열로 구분했었는데….”
…잠깐 사이에 뭔가 충격적인 말이 지나간 것 같은데?
“잠… 뭐라고?”
“그 말대로다. 인족과 마족은 본디 하나였다. 그중에서도 마력을 특별하게 타고난 녀석들이 지배 계층이 되었고 그게 현재의 마족이다. 검은 머리와 검은 눈, 바로 너와 같은 녀석들이지.”
“…그걸 네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알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으냐? 대악마는 솔라리아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최초의 악마들이니까.”
“…….”
뭔가 충격적인 내용이 많이 지나가고 있었다. 하나하나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아몬의 흥미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냥 듣거라, 어차피 전부 알게 될 일이다. 당시 마족 고위층들은 그중에서도 특히나 엄청난 마력과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니… 괜히 대악마와 계약한 게 아니었다.”
아몬의 계약자는 역사상 단 한 명뿐이었다는 건 그녀의 설정으로 알고 있기는 했다. 아마도 초창기 솔라리아의 마족 고위층이 그녀의 계약자였던 건가.
“대체로 가진 게 많은 자들은 항시 주변으로부터 노려지는 법이지. 그들은 나와 내 형제들을 지옥으로부터 불러와 이 땅에 발을 디디게 했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 지금은 솔라리아의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아몬의 표정에 처음 보는 감정이 이슬처럼 맺히는 것 같았다.
– 무엇을 원하는가?
“그가 내 형제 중 한 명에게 했던 말이 떠오르는구나.”
– …이곳을 지켜다오.
“최초의 던전이라 불리는 마에르탄의 탄생은 그러했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었지.”
…이거 역사 공부가 되는걸?
“그 이후에 한참이 지나 던전이라는 것의 목적 자체가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느니라.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던 것이 전쟁에 대비해 만들어진 무구들을 시험하는 곳으로….”
아몬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엔 수많은 영혼을 갈무리하기 위한 곳으로.”
“점차 타락한 건가.”
“글쎄… 시기가 언제가 되었든 발생은 필연적이었을지니. 그것의 발상은 악에서 기인했으나 우습게도 그것이 지금 너의 목숨을 구하고 있지 않은가?”
“…….”
영혼을 흡수하기 위한 던전. 썩은 뿌리는 틀림없이 영혼을 갈무리하기에 최적화된 던전이다.
그리고 내 눈앞에 있는 이 장치 역시 보다 많은 영혼을 손에 넣고자 하는 목적으로 탄생했으리라.
그것이 더없이 불쾌하고 역겨운가? 대답으로 마음속에 잔잔한 미소를 띄워 보였다.
‘전혀.’
이제는 어떠한 동요도 없다.
“잠깐….”
아몬이 갑자기 장치 앞에서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나를 휙 돌아봤다.
“흘러가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만, 내가 이걸 왜 도와줘야 하는 거지? 내게 무슨 이득이 있다고?”
만드라고라를 날름하고 할 말이 맞나 싶었지만, 이럴 때를 대비해 쟁여둔 것이 있다. 이번 대 가챠 일정의 수확 중 하나.
“…….”
녀석의 귓가에 그것을 넘기겠다고 말했다. 내게 큰 가치는 없는 것이지만, 아몬에게는 가치가 다른 물건.
그녀가 내 말을 듣고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초기 발명품이군. …나쁘지 않은 거래 조건이다.”
스으윽…
그녀가 장치에 손을 올렸다.
후우우우웅-!
[차원문 중계기의 수복을 시작합니다.] [차원문 중계기에 남아있는 균열 좌표 수복을 시작합니다.]……
알아볼 수 없는 신비로운 문자들이 유적 허공으로 떠올랐다.
후우우우웅…
츠즈즈즛…
츠즈즈즛…
장치가 과부화된 것인지, 장치에서 스파크가 번뜩이고 유적이 기이한 울음을 토해냈다.
콰릉…
콰르르릉-!
드드드드…
드드드드드드드…
유적이 맹렬히 진동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힘든 진동이었지만, 이곳에 있는 자들의 무력을 생각하면 중심을 잡는 것쯤은 해내는 게 정상이었다.
문득, 아몬을 얻지 못했다면 이 차원문 중계기를 수복하는 건 누구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나였을까?
아몬의 뒷모습은 작은 소녀였지만 나는 안다. 그녀는 틀림없는 대악마다.
콰아아아아아아아-!
빛이 명멸했다.
[차원문 중계기의 수복을 완료합니다.] [차원문 중계기는 보다 많은 침입자를 던전으로 불러오게 할 수 있습니다.] [대악마 아몬이 직접 수복했습니다. 균열 좌표가 추가로 수복됩니다.] [Tip: 차원문 중계기와 같은 몇몇 시설은 노동력을 투입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