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48
제48화
차원문 중계기의 수복 이후, 외부 차원문과 던전 입구를 연결하기 전 마지막으로 필드 점검에 나섰다.
심처에서 보는 환영 형태의 조감도로는 필드의 취약한 부분이나 잘못 배치된 것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페넥스의 보스 룸이었다. 던전이 성장하면 보스 룸에 이런저런 장치나 환경을 추가할 수 있지만 당장엔 여력이 없었다. 애초에 그런 게 필요한 보스는 기믹형 보스였고 페넥스의 경우엔 무투파 보스니 급한 것도 아니니 뭐….
“여기 좀 보시길, 페넥스. 이 먼지들 어떡할 겁니까?”
“으으… 루시퍼….”
“꼬질꼬질합니다. 제가 미리 점검하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습니까?”
“별로… 안 더러운데….”
“조용, 조용!”
“…….”
루시퍼는 페넥스에게 특히 엄하다. 아니, 사실 그녀와 이런 식의 대화라도 주고받는 게 페넥스밖??없어서 더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 다른 사역마들은 루시퍼에게 말 한마디 붙이기 어려워하니….
루시퍼는 지금, 침입자들에겐 악몽이나 다름없는 보스 룸을 나보다 먼저 방문해 여기저기 청소 중이다.
‘페넥스 입이 댓발 튀어나왔군.’
불만은 있는데 참고 있는 건가?
뭐가 됐든 루시퍼의 참견은 필요했다. 보스 룸도 엄연히 페넥스의 생활 공간이니 깨끗한 환경에서 지내게 하고 싶은 거다.
‘뭐… 유독하거나 위험한 환경은 사역마의 생활 공간이 아닌 필드면 충분하니까.’
이번 화염 필드의 컨셉은 잿더미 숲이다. 쉽게 생각해, 산불이 난 필드라고 생각하면 된다.
레메게톤의 필드는 속성마다 컨셉이 여러 갈래로 나뉘는데 당연히 지형 효과나 시너지도 다양하게 존재했다.
“키히히히히….”
광기의 유랑극단 단장 산토.
페넥스가 맡은 잿더미 숲, 그곳에서 그녀를 제외한 유일한 사역마가 이 녀석이다.
왜 필드에 사역마를 채우지 않고 이 녀석을 집어넣는 괴상한 짓거리를 했냐면, 이 녀석이 가진 특수한 능력 때문이었다.
“키힉… 키히힉….”
언제까지고 멀리 떨어진 나무에 찰싹 붙어 이쪽을 힐끔거리며 웃고 있기만 할는지. 아군으로서는 좀 모양 빠져 보이겠지만, 적으로 녀석을 마주하면 공포를 자아낼 외견이다.
그보다… 어찌 됐건 두 번째 필드가 성공적으로 완성되었다.
감회가 새롭다. 마치 돈을 모아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 장녀에게 방 하나를 따로 내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페넥스가 쭈뼛거리자, 루시퍼가 말했다.
“페넥스, 당신은 파우스트 님의 수족이나 다름없으니 항상 몸가짐을 바르게 하여야 합니다.”
“…그럴게.”
“매주 찾아올 거예요. 청소를 게을리하면….”
“할게! 청소!”
페넥스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뭔가 말해주길 바라는 건가.
“…종종 찾아오지.”
히죽-!
페넥스는 해맑게 웃었다.
“나도 갈게!”
아니, 넌 너무 자주 와….
딱히 할 말도 없으면서.
그녀와 눈빛을 교환하고 자리를 뜬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패배가 그녀에게 예정되어 있는가?
‘한동안은 계속 지겠군.’
계속 패배하고, 계속 쓰라린 상처를 떠안는 게 당분간 그녀의 본분이다. 난 그녀의 주인으로서 그 시련으로 그녀를 등 떠밀 것이고.
“다음은… 숲인가.”
“파우스트 님, 최종 점검 전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루시퍼가 나를 불러세웠다.
“할 말이라는 게 무엇이지?”
“혹시, 아몬이 뭔가 괴상한 걸 들이밀더라도 당황하지 말아 주시길.”
“…그게 무슨 소리지?”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입니다만… 아니, 지옥에서도 종종 있었던 일이긴 한데 그게….”
바로 그때.
“아! 거기 있었구나!”
아몬의 어쩐지 쾌활한 듯한 목소리가 점차 가까워져 왔다. 루시퍼가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와버렸다.”
그리고는 내 등 뒤로 양손을 오므리며 숨었다.
“루시퍼는 어딨지? 내 작품에 관한 감상을 듣고 싶었건만.”
“그건 무슨 소리….”
“흠흠… 뭐, 조금 순서를 어겨도 상관없겠지. 네 의견도 필요한 참이었느니라.”
“내 의견?”
“자, 눈을 씻고 이 훌륭한 것을 보아라!”
스으윽…
아몬이 슬그머니 내미는 건 화분이었다. 한 손에 쏘옥 들어오는 사이즈. 거기에 뭔가가 심겨 있었다.
“이건… 만드라고라군.”
“으흠… 으흠! 연구의 성과가 나왔느니라.”
암시장에서 공수해 준 만드라고라.
당시 무척 비싼 가격에 인상을 쓰며 사줬던 걸로 기억이 난다.
‘드디어 완성된 건가?’
화분 한쪽에 동그랗게 그려진 무언가.
“…시계?”
“흐음… 어떠려나?”
아니지, 들고 다니기엔 불편한 게 꼭…
“자명종이군.”
“정답.”
따악-!
아몬의 기계 손 중 하나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곧 화분에 심긴 만드라고라에서 끔찍한 괴성이 울려 퍼졌다.
– 끼아아아아아아악! 지각이야아아아아! 지각하면 안 되는데에에에에!
뒤돌아보니 루시퍼가 혼자 귀를 막고 있었다. 아몬이 입 모양을 뻐끔거렸다.
뭐지? 왜 갑자기 촌극을….
스윽…
루시퍼가 손수건을 건네왔다.
귀에서 흐르는 무언가를 그 손수건으로 닦자 손수건이 빨갛게 물들었다.
“…떠냐고.”
“…뭐?”
“내 발명품이 어떤 것 같으냐 말이다.”
…이딴 쓰레기를 만드는 데 내 피 같은 금화가 들어갔다고?
만드라고라가 재차 울기 전에 서둘러 밑에 달린 버튼을 돌렸다. 이게 아마 음량 버튼인 것 같다.
– 끼아아아악… 늦을 거야! 나 늦어어!
다행히, 귀에서 또 피가 나는 일은 없었다.
“…자명종이 언제 울리는 거지?”
“물론 일어날 때니라.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자명종이 울린 후에 5분을 더 자면, 자명종이 사용자를 죽일 것이니라.”
…엄청나다.
엄청나게 과격하고 더럽게 쓸모없다.
‘죽음을 감수하고 5분 더 자고 싶은 녀석은 없다고….’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것이 앞으로 이 말 안 듣는 아몬을 길들일 수단이 되어줄 거라는 걸.
“파우스트 님, 어서 이 흉물을….”
“제법… 쓸 만할지도.”
“발로 밟아 부수… 네?”
루시퍼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믿었던 존재에게 배신이라도 당한 듯.
그리고 그런 반응은 신기하게도 아몬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말이냐?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냐?”
“파우스트 님, 지난 밤사이에 무슨 좋지 않은 일이라도….”
나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물론이다. 내 침상 머리맡에 두도록. 요즘 통 일어나기가 힘드니 말이다.”
아몬의 비밀 연구소가 가동되고 난 후에, 그녀는 종종 발명품을 내오는데 대부분은 쓰레기다.
그리고 나는…
‘그것조차도 품어주마, 아몬!’
루시퍼가 속삭였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파우스트 님.”
“5분이나 게으름을 부린다면 죽어 마땅한 일이지. 오히려 꽤나 자비롭다 느껴지는군.”
즉문즉답!
어떠냐, 아몬!
“후… 후후후후….”
…아몬이 이상하게 웃고 있다.
되지도 않는 발명품을 선보이는 건, 그녀의 가장 음습한 욕망이다.
그녀는 이런 발명품이 쓸모가 없다는 걸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다만, 그럼에도 칭찬받고 싶어 한다.
과거, 그녀의 손을 거쳐 탄생한 숱한 역작들은 대부분이 무기다. 더는 살생만을 위한 발명품을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아마도 그녀의 목표는 쓸모 있으되 쓸모없는 물건. 세상을 딱히 이롭게 하지도 더럽히지도 않는 물건.
그 기묘한 밸런스를 사랑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 소중히 해줬으면 하고 알아줬으면 한다.
아몬이 만든 무기를 원하지 않느냐고?
‘만들라고 한들 만들겠냐고, 이 녀석이.’
퍽이나다.
제멋대로인 녀석이니, 내 진짜 반응 역시 숨기는 편이 좋다.
5분 더 잔다고 죽이는 알람이라니, 농담이 심하잖아. 이런 속마음은 청정 필터를 거쳐 향긋한 말로 정제되어 내뱉어질 테지만.
“앞으로도 이런 물건이 종종 있다면 좋겠군.”
아몬이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최대한 표정을 억제했다.
“뭐… 어떠려나? 거기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지 않을까? 그래도… 이 몸이 무료해지면 생각해 보도록 할까나?”
알기 쉽다, 이 녀석.
“그럼 이건 침상 머리맡에 두도록 하마.”
“내가 해도 될 일이다.”
“아니, 내가 하지. 그 정도쯤이야.”
여태 날 위해 뭔가를 해주는 걸 별로 달가워하지 않던 녀석이 자명종을 들고 총총 사라졌다.
심지어 자명종을 든 손도 기계 손이 아닌 그녀의 손. 얼마나 발명에 애착을 가지는 건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저럴 땐 완전히 애 같단 말이지.’
아마도 내 침대 머리맡을 살피러 갔을 거다. 자명종을 어디에 두면 좋을지 알아보기 위해.
이를 지켜보던 루시퍼가 조용히 끄덕였다.
“과연… 그런 뜻이셨습니까.”
“…뭘 납득하고 있는 거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남은 건 숲인가?”
“예, 분부하신 대로 숲의 구조가 바뀌었습니다.”
“아리엘의 반응은?”
원래 숲을 점유하고 있던 흑요정 여왕의 생각도 중요하다. 생길랑 말랑하던 일말의 충의를 내가 짓밟았다고 느낄 수도 있으니.
그녀는 모처럼의 휴식을 즐기는 듯했습니다. 고블린들이 딱히 벌목을 마구잡이로 한다거나, 토양을 오염시키지는 않았으니 지켜볼 요량인 것 같습니다.
“쟈킴의 활약이 기대되는군.”
숲으로 이동한 후, 침입자들의 동선을 하나하나 점검했다. 이제는 숲의 히든 보스로서 존재하는 아리엘에게도 들렀다.
“파우스트 님, 직접 방문해 주셨군요.”
“아리엘, 처우에 불만은 없는가?”
“말썽꾸러기들로부터 해방된 것 같아 오히려 안심이에요. 다만, 쟈킴이 잘 해낼지 걱정이군요.”
“…믿어야겠지.”
숲 필드의 고유 효과를 통해 고블린 전투원이 또 하나 합류했으며 가챠를 통해 얻은 고블린 종도 무려 넷이나 되었다.
아직 부족하긴 해도, 나쁘지 않았다.
“파우스트 님, 저걸….”
쟈킴이 있는 곳.
그곳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점점 올라갔다.
“…제법이군.”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고블린 킹 쟈킴.
이 녀석은 내 던전의 새로운 수문장이 될 것이다.
* * *
파아아아앗-!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스글렌 지역에 딱 달라붙어 있는 신비로운 동굴에서 차원문과 접촉했다.
그것이 모험가들이 기억하는 마지막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씨발, 이게 지금 대체….”
“숲이잖아? 빌어먹을….”
환각을 보고 있는 건가?
“야, 어쩔 거야? 큰돈 만질 것 같다면서?”
“입 닥쳐 봐, 지금 나도 생각 중이니까.”
“우리… 어딘가로 전이된 게 아닐까요?”
“이런 숲 한가운데라니… 너무 이상한… 음? 마력 흐름이 좀 수상한데?”
“…그러게. 설마 던…전?”
그 말에 모두 눈을 빛냈다.
“던전이라고? 여기가?”
“맞는 것 같아. 확실히 마력의 흐름이 기이해.”
“오, 오히려 다행이잖아? 미답파 던전이기라도 하면 공략하는 순간 코어가 손에 들어온다고!”
“5명이 나누면… 그래도 평생 떵떵거리면서 살겠어요!”
“아무렴! 귀족이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걸?”
갑자기 힘이 나기 시작한 모험가 일행.
일확천금의 꿈이 머지않았다.
“저거 보여?”
“음… 숲 한 가운데 있기엔 조금 이상한 건축물이군.”
숲 한복판에 이상하게 우뚝 솟은 건축물. 그 크기가 멀리서도 보일 정도다.
“가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