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49
제49화
“저기 있잖아… 이 숲, 더럽게 넓은 것 같지 않아?”
“여기, 던전이 맞기는 한 거냐?”
다노르 지방에서부터 흘러온 파티의 마법사가 인상을 찡그리며 답했다.
“지금 내 판단을 의심하는 거야?”
“아니, 그렇잖아. 이렇게 커다란 숲이 던전이라고? 멀쩡히 해도 떠 있고 바람도 느껴져. 밖에 있는 것 같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커다란 숲에 전이됐다고밖에는….”
마법사가 친절하게 설명했다.
하아…
“잘 들어. 던전 코어는 던전의 모든 것을 조율할 수 있어. 던전 안에서는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지. 가짜 하늘 정도는 뚝딱 만들어 낸다고.”
“저 하늘이 가짜라는 거야?”
“말이 그렇단 거지. 실제로는 외부의 하늘을 투영하는 걸지도 모르고.”
아직도 이곳이 던전인지 아닌지로 말다툼해야만 하는 게 마법사에겐 한심한 상황처럼 느껴졌다.
“빌어먹을, 해까지 졌군. 어이 앞에 뭔가 보이나?”
“…보일 리가.”
“이쯤에서 쉬자고, 그럼.”
“다들 좀 예민한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오늘 번은 내가 서지.”
다른 파티원들이 방금 말을 꺼낸 모험가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럼, 우리도 화해하지.”
“아까는 내가 너무 신경질적이었어.”
“아냐, 나도 까칠했지.”
방금 번을 서겠다고 말한 모험가가 한숨을 쉬었다.
“이 자식들이….”
“하하하! 그래도 벌레만 조심하면 훌륭한 잠자리인 것 같은데. 안 그래?”
“쓸모도 없는 말은 그만하고 잠자리부터 만들어.”
“그래도 손은 쉬고 있지 않다고. 그보다… 마기는 느껴지는데 마물은 보이지 않는군.”
“던전치고는 수상하리만치 조용하긴 해. 오히려 그래서 조심해야 할 거야.”
“…어째서?”
“이런 곳일수록 야생 개체가 정리당했다는 거니까. 통솔력 있는 녀석이 무리의 대장으로 군림하고 있을 확률이 높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야영 준비를 마치며 던전에 관해 얘기를 나누는 모험가들.
“이 던전을 발견한 게 우리가 처음일까?”
“어떻게 생각해?”
파티의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는 마법사에게 질문이 이어졌다.
“모르지. 차원문 자체도 누군가의 의도일 수도 있고. 다만, 전설에 의하면 방대한 마력을 가진 코어가 스스로 차원문을 만들어 낼 때가 있다고 하더군.”
“그게 정말이야?”
“그래, 이유는 모르지만 아마도 코어의 마력 수용량을 뛰어넘을 정도로 많은 마력이 쌓였기 때문이 아닐까 추정한다.”
그 말이 모두를 기대에 부풀게 했다.
“한마디로 버려진 던전 코어가 외로움에 지쳐 우리를 부른 걸 수도 있다는 얘기?”
“가능성은 있지.”
“가만… 그러면, 우리가 앞으로 이곳에서 얻게 될 던전 코어가 마력이 그득그득 차 있다 못해 넘치고 있을 거라는 얘기?”
“…그것도 가능성은 있고.”
모험가들의 낯빛이 진지하게 변했다.
현시대에 던전 코어의 값어치는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단순히 텅 빈 그릇만으로도 제도에 딸린 저택을 살 수 있을 정도.
만약 마력이 가득한 던전 코어를 손에 넣는다면, 파티원 모두가 코어를 독차지하기 위해 피 튀기는 싸움을 하지 않더라도 모두에게 공평하게 엄청난 부를 안겨줄 것이다. 그래, 영원히 모험가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될 거라는 얘기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모험가와 거리가 먼 삶을 꿈꾸는 모험가들은 세상에 많았다.
…바로 이들처럼.
“아무튼, 자고 일어나서 생각하자고.”
“불 피워.”
화르륵…
파티의 마법사는 냉기를 전문으로 훈련했지만, 기초적인 화염 마법은 가능했기에 모닥불은 금세 타올랐다.
타닥…
탁…
모험가들은 평소보다 모닥불의 연기가 훈훈하게 느껴졌다. 앞으로 그려낼 장밋빛 미래 때문일까? 평소라면 긴장해 설쳤을 잠도, 밀어내지 못했다.
…히히
“으음….”
히히히히…
모험가는 꿈을 꿨다.
파티가 모닥불에 둘러앉아, 앞으로의 미래를 희망을 담아 얘기 나누는 그런 꿈을.
히히히…
난 바닷가에 대저택을 지을 거야.
난 부모님을 귀족으로 만들 거라고.
난 마족 노예를 잔뜩 사서 내 맘대로 할 거야.
난 마차 하나와 호위대를 사서 유랑할 거야.
다들 진부한 꿈이네, 정말.
나는 평범한 가정을 꾸릴 거야.
히히히…
히히…
아까부터 대체 누가 웃는 거지?
푸히히히히…
– 나는 너희를 초대할 거야.
그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눈을 뜬 건 모험가들 전부.
그들은 기이하게도 꿈속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여섯 번째 소원은 그들이 바란 것이 아니다.
모닥불가에 앉은 기괴하게 생긴 존재가 웃으며 뭔가를 나눠주었다.
[산토의 기본 능력: 유랑극단이 찾아왔어요! 가 발동합니다.] [광기의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12시간의 제한 시간이 주어집니다.] [제한 시간 내에 초대에 응하기 전까지 각종 정신 피해에 노출되며 이 효과는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집니다.] [불과 가까이할수록, 정신 피해 효과가 강해집니다.]초대장은 아주 뜨거웠으며 그것이 손에 닿는 순간 거품처럼 사라지며 손바닥에 인장을 남겼다.
치이이이…
“으으윽….”
“이게 대체….”
다들 신음을 내며 깨어났다.
“이게 무슨 일이야! 번을 서는 동안 존 거야? 저런 게 접근할 때까지 어째서….”
“이, 이상해. 나는 분명 깨어있었는데….”
파티의 마법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모두를 불러 모았다.
“아무래도, 이 던전… 위험한 것 같다.”
“뭐?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솔라리아에 모습을 나타낸 스펙터 중에 특별히 조심해야 하는 존재가 몇 있는데… 아무래도 이 던전에 그 녀석이 사는 모양이야.”
“스… 스펙터라고?”
“히익….”
귀신, 망령, 혹은 요괴.
통칭 스펙터라고 묶이는 언데드의 한 종류.
“그래, 플레이마라고 하는 스펙터… 하나같이 위험한 녀석들이지. 보통 소리소문없이 한 마을을 불태우고 사라지는 녀석이야.”
“어째서 그런 위험한 녀석이….”
“토, 토벌하면 그뿐 아니야?”
마법사의 박학다식함은 여기서 그 진가가 드러나고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플레이마는 생명을 죽이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는 아니야.”
“그러면?”
“놀이. 녀석은 산 자와 놀고 싶은 것뿐이야. 다만… 그게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간다는 거지.”
“…하고 싶은 말이 뭐야?”
“플레이마의 초대에 응해야 해. 규칙을 지키면 플레이마도 그냥 사라져 버린다더군. 이건 생존자들이 남긴 말이니 거짓이 아니야.”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만한 던전이라면, 그런 녀석이 대장으로 있을 법하군.”
“오히려 좀 시시한 편인걸? 던전 크기로 봐선 드래곤이라도 있을 줄 알았단 말이야.”
“모… 모두 허풍이 심해요.”
“좋게 생각하자는 거지. 다른 괴물이라면 고전했겠지만, 규칙을 지키기만 하면 될 거 아니야? 그렇지?”
마법사가 굳은 얼굴로 망설이다 답했다.
“음… 아니, 이건 굳이…. 네 말이 맞아 제한된 시간 내에 초대에 응하기만 하면 돼.”
“근데 녀석이 어떻게 우리 곁에 접근한 거지?”
“그건 아마 불을 피웠기 때문일 거야. 플레이마는 불길과 악몽에 기생하는 스펙터거든.”
“아하… 앞으로는 모닥불도 피우면 안 되겠군.”
“쉬어갈 수도 없다는 건가? 횃불은?”
“횃불도 위험해. 조심하는 게 좋겠지.”
“말도 안 돼, 횃불 없이 야간 행군을 해야 한다고?”
잠자코 있던 전사가 말했다.
“어디 놀러 왔어? 상황 따져가며 움직일 때가 아니야. 이봐, 마법사. 그 플레이마란 놈의 초대에 응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지?”
“결과는 뻔하지.”
“…그렇군.”
철컥…
“움직여. 주둥이 놀릴 시간 있으면.”
좀처럼 말을 하지 않는 전사지만, 파티가 술렁일 때마다 위압감으로 그들을 휘어잡는다. 이는 매우 중요한 역할이기도 했다.
“앞으로 플레이마를 만나기까진 꽤 고될 거야. 환각이나 환청을 보게 될 거고 그것에 심각하게 매몰되면 실제로 다칠 수가 있으니 조심해.”
“걱정 붙들어 매라고. 기껏 할 수 있는 게 환각이라니! 푸흐흐!”
모험가 일행은 횃불도 켜지 않은 채로 조용히 숲을 전진했다.
시답지 않은 농담 따먹기를 하며 무료함을 달랬는데, 곧 말소리가 줄어들었다.
이유는, 환각과 환청 때문이었다.
“이봐, 자… 잠깐. 걸음이 너무 빨….”
턱.
앞선 이의 어깨를 붙잡아 뒤를 돌아보게 하였을 때, 나타난 건 산토의 얼굴이었다. 이 기괴한 얼굴이 히죽 웃어 보이면 그만큼 공포스러울 수가 없었다.
“푸히히히히히히!”
“으, 으아아아악!”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는 신관.
“허억… 허억….”
“무슨 일이야?”
“푸히히히히히!”
아직도 산토의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아, 아뇨… 조금 놀랐어요.”
마법사가 신관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환상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해.”
“잡아먹히면 어떻게 되는데요?”
“…가자고.”
그는 플레이마가 어째서 솔라리아에서 위험하기로 손꼽히는 스펙터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으아아아악!”
“너, 너… 얼굴이 불에 타고….”
“그만! 그마아아아안!”
그 짧은 사이에 일행은 몰골이 수척해졌다.
공포라는 건, 대비한다고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천천히 산토의 광기에 잠식되어 갔다.
그들은 느끼고 있었다.
이대로 전투를 치르다간, 큰 사고가 날 것이라고.
그러나, 모두 괜찮은 척할 수밖에. 플레이마의 규칙을 어긴다는 건, 죽음으로 걸어 들어가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절대로 초대에 늦어서는 안 된다.
절대로.
“봐, 저길.”
전사가 손짓한 곳에, 해가 훤할 때 보였던 건축물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숲에… 성?”
“아니, 그것보단 조악한데… 이건 토성이야.”
“툭 치면 무너질 것처럼 생겼군.”
“조심해, 안에 뭔가 있을….”
화르륵…
갑자기 토성 벽에 횃불 십수 개가 켜졌다.
크르르륵…
케르륵…
“고블린?”
화색이 되는 모험가들.
“반갑다, 이 새끼들아!”
“괜히 걱정했잖아! 그래 언제쯤 와주나 했….”
오직 마법사와 전사만이, 싸늘한 안색으로 전방을 주시했다.
전사가 소리쳤다.
“모두 내 뒤에 서라!”
[톤주가 우산 방패를 사용합니다.] [방패의 수비 범위가 더 넓어지며 마법을 제외한 투사체를 효과적으로 방어합니다.]푸슈슈슈슈-!
방패의 수비 범위가 넓어졌다 한들, 멀리 있는 파티원까지 보호할 수는 없었다. 화살에 노출된 자가 있었다는 말이다.
“안 돼!”
“커흑….”
신관이 화살에 심장이 꿰뚫려 쓰러졌다. 그녀의 눈은 이미 죽은 자의 그것이었고… 절명하는 순간 입에서 괴상한 소리를 내보냈다.
“푸히히히….”
“저 빌어먹을 고블린들이 연계를… 평범한 고블린이 아니야! 돌파한다!”
화르르륵-!
토성의 외벽에 화염이 솟구쳤다.
미리 준비한 기름이 불꽃을 만나 타오른 것.
“어딜!”
[발론이 얼음 공성추를 사용합니다.] [단단한 얼음 기둥을 발사해 대량의 물리 피해를 줍니다. 대상이 사물이라면 피해량이 2배가 됩니다.]콰아아아아앙-!
한 방에 토성의 한쪽 성벽을 무너트리는 마법사. 안에서 우수수 고블린이 쏟아져 나오며 일행을 덮쳐왔다.
“푸히히히히!”
그들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불길이 솟구쳐 오른다. 어느 순간 시야도 까맣게 그을리는 것만 같았다.
제기랄… 늦으면 안 되는데.
초대에 늦으면…
불길을 넘어, 걸리는 것은 모조리 베고 부셨다.
“푸히히히히히!”
콰지이익-!
“키아아악!”
“컥….”
콰아앙-!
화르르르르륵!
불길 속에서 싸움이 계속되었다.
동료가 무사한지조차 확인할 수 없는 불길.
“아하하하하하하!”
마법사는 불길을 뚫고 나와 동그랗고 커다란 공 위를 걸어 사라지는 산토를 향해 얼음 창을 발사했다.
“망할 녀석이!”
피유우우우우!
“컥….”
산토의 얼굴 분장이 녹아내리며, 동료의 얼굴로 뒤바뀐다.
“어… 아니, 난….”
전사는 노기가 탱천한 얼굴로 마법사를 향해 돌진해 왔다.
마법사는 그 순간 알아챘다.
자신 역시도, 동료에게 플레이마로 보이는 상황이라는 걸.
“이이이익!”
이대로 죽어줄 수는 없었기에, 마법사는 전사의 다리를 냉기로 꿰뚫었다.
푸슈우우욱-!
파육음은 동시에.
전사의 검에 마법사의 심장, 마법사의 마법에 전사의 다리가 동시에 꿰뚫렸다.
“빌어….”
불길 속에서 포효하는 전사.
“으아아아아!”
부딪히고 걸리는 것은 모조리 벤다. 이미 파티는 제 기능을 잃었고 동료들 또한 살아있는 자가 없을 것이다.
부우우웅-!
전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후우우우웅-!
“크하하하하…!”
불길이 가라앉을 때쯤, 전사의 곁엔 아무도 없었다. 한참을 베었을 텐데, 주변에 고블린의 주검은 고작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
전사는 웃음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트롤의 어깨에 올라타 있는 고블린이 히죽 웃고 있었다.
고블린 킹.
전사는 텅 빈 동공을 한 채 실소했다.
“네가 이 던전의 주인이냐?”
“…어리석은 인간.”
쟈킴이 올라탄 트롤의 그림자가 전사에게 덧씌워졌다.
콰지이이이익-!
트롤의 발에 머리통이 짓이겨지는 전사.
“푸히히히히….”
그의 시체에서도 산토의 비웃음이 들려왔다. 머리가 터졌는데도 말이다.
“…더 깊은 곳을 들여다보지 못한 것이, 너희에겐 축복일 것이다.”
차원문 중계기 개방 후 썩은 뿌리를 찾은 다섯 개의 파티 모두 쟈킴을 넘지 못했다.
파우스트의 던전 코어에, 영혼이 모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