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5
제5화
“여기? 여기로 가면 돼, 나리?”
“그래.”
부활의 악마 페넥스는 곧장 내가 맡긴 일을 하기 위해 투입됐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식당과 식량 창고는 답파 최우선 목표가 아니었는데….’
답파의 최우선 목표는, 던전이 굴러가는 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들을 빠르게 개방하여 이득을 보는 것이다.
가령, 던전 수호 중 전투 불능에 빠진 사역마를 즉시 회복시키기 시작하는 재생의 화원.
이 시설이 개방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투가 벌어져 사역마가 전투 불능에 빠진다면 그대로 사망한다.
‘그런 일은 만에 하나지만….’
또, 근방을 정찰하고 때때로 마석과 같은 자원을 모아오는 파견실.
이들과 같이, 일찍 개방하는 게 강요되거나 일찍 개방했을 때 이점이 큰 시설이 바로 핵심 기반 시설이다.
그런데 식당과 식량 창고가 그런 핵심 기반 시설에 속하는가?
‘아니지, 절대 아니지.’
게임에서는 그냥 커뮤니케이션 장에 불과했고 마물의 컨디션 관리나 기타 이벤트, 거기에 더해 가끔 사역마가 식사하는 장면을 넋 놓고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시설에 불과했다.
‘그래도 뭔가 많긴 하군.’
아무튼, 핵심은 아니라는 거다.
다만 게임이 현실이 된 지금에 이르러서는 식당이야말로 핵심 기반 시설이긴 했다.
게임일 땐 사역마가 무엇을 먹든, 언제 먹든 얼마나 먹든 딱히 신경 쓰지 않았지만, 현실에서는 매우 중차대한 문제다.
‘내 식사도 걸려 있으니까.’
다 먹고 살자… 음… 살아남자고 하는 짓이다.
‘허기가… 지는군. 너무 늦기 전에 식량 문제부터 해결해야겠어.’
생존에는 당연히 질 좋은 식사도 포함되는 게 당연지사다.
“꼭 밥 줘야 해! 약속이야!”
“그래, 그만 떠들고 전진해라.”
“응!”
난 심처의 코어를 통해 그녀의 주변을 관찰할 수 있다. 덕분에 그녀가 일을 훌륭히 수행하는지, 일 처리에 문제는 없는지 아주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직접 처리하는 게 제일 편하지만….’
안타깝게도 파우스트의 유리 몸은 튜토리얼의 전투만으로 녹초가 되어 자주 전투할 수 없는 상태였다.
좋은 사역마가 필요한 이유다.
“파우스트 님.”
“말하도록, 루시퍼.”
옆에서 화면을 지켜보던 루시퍼가 말을 걸어왔다.
“페넥스가 곧 식량 창고에 도달할 것 같습니다.”
루시퍼의 설명으론, 이 썩은 뿌리 던전이 과거에 한 마족이 다스렸던 곳이라고 한다.
때문에, 기반 시설을 새로 올리는 게 아니라 수복하는 정도의 수고만으로 뚝딱 해치울 수 있다는 것.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루시퍼의 말을 그대로 페넥스에게 전달하기 전, 오히려 반대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엇! 뭔가 느껴져!”
“그래, 그곳이다. 맡은 일은 잊지 않았겠지?”
– 끼이익…
– 끼이이익…
일전에도 보았던 질병 박쥐가 우수수 튀어나온다.
[페넥스의 기본 능력: 타오르는 불꽃이 발동합니다.] [페넥스는 전투가 종료될 때까지 지속해서 생명력을 회복합니다.] [잃은 생명력에 따라 효과가 증가합니다.]전투가 시작되자마자 페넥스의 패시브가 발동했다.
핏-!
공중에서 비틀어 내려오며 상처를 내려는 질병 박쥐.
스릉…
당연하게도.
푸화아아아아악-!
페넥스의 검에 양단되었다.
움찔…
나도 모르게 손을 불끈 쥐게 되는 장면이다. 고블린 3형제의 힘을 아득히 넘어서는 6성 악마의 힘은, 나를 매료시켰다.
능력을 사용했나?
아니다.
대단한 무기를 사용했나?
평범한 기본 철검이었다. 아무런 옵션도 없는, 평범한 철검.
“하나!”
피이잇-!
날아오는 질병 박쥐.
후우우우웅-!
그에 따라 횡으로 휘둘러지는 장검.
“두울!”
그리고, 먼저 세어지는 숫자.
푸화아아아악-!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결과다.
물론, 상대에게.
“헤헤헷!”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어딘가를 향해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하는 페넥스.
…거기 아니다.
나한테는 뒤통수만 보인다고.
‘금제가 없는 페넥스는… 확실히 훌륭해.’
이렇게 강력한 악마인 페넥스를 내가 왜 못마땅하게 느낀 것일까? 그건, 페넥스에게 존재하는 또 다른 패시브 때문이다.
일종의 개성이라고도 하는 이 패시브는, 6성 악마들만 가지는 힘이다.
이 개성 패시브는 무난하게 좋은 것들도 있지만 가끔 악마의 평가를 뒤엎을 정도로 충격적인 패시브도 있다.
‘그게… 내 첫 악마인 페넥스의 패시브라는 게 문제지만.’
금제이자 저주나 마찬가지인 패시브.
한때는 유저들이 페넥스의 스킬셋을 보고 캐릭터의 개성을 중시한 나머지, 밸런스를 엿 바꿔 먹었다고 평가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봐야 제작사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지만.
덕분에 후에 재평가가 될 정도로 잠재력이 큰 페넥스가 초반에는 외면받았다.
‘하지만… 그 끔찍한 개성 패시브도….’
답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오직 던전에서 모험가를 맞이하는, 수호 임무에서만 적용되는 패시브.
즉, 지금의 나는 온전한 페넥스의 힘을 휘두를 수 있었다.
이는 아마도, 초반 답파에서 악마들의 성능 차이를 절감한 유저들이 대거 이탈할 것을 우려해 만든 안전장치였을 것이다.
일단 제작사로서도 마석을 팔아야 하니, 상품에 모난 부분이 없어 보이게 말이다.
‘꼬우면 접는 게 맞지. 안 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나는 접지 못한다.
나는 꼬와도 못 접는다.
…이제는 참고, 해야 한다.
그게 가장 큰 차이다.
푸화아아아아악-!
“요이! 뭔가 큰 걸 잡았는데? 나리! 봤어?”
“아.”
잡념에 휩싸인 나머지, 잠시 페넥스의 전투에 집중하지 못했다.
‘…뭐지?’
화면이 어지러웠다.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페넥스의 주변은 온통 절단된 사체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다른 질병 박쥐와는 달리 거대한 파편으로 나뉜 특이종이 있었다.
‘설마, 그 짧은 시간에 전부 처리했다고?’
아니, 6성 악마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아직 튜토리얼 수준에 불과한 에피소드의 초반부에서는.
레벨도 올리지 않은 순수 체급만으로 기반 시설을 답파하는 정도는.
그래,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지.
‘하지만 그걸 직접 체감하는 건… 다른 느낌이네.’
욕심이 났다.
더.
더 강한 악마들을 거느린다면…
‘…우선 살아남는다, 무조건.’
[생활 구역의 흔적 1의 모든 위협을 제거하였습니다.] [생활 구역의 흔적 1을 답파합니다.] [모든 전리품이 던전: 썩은 뿌리에 귀속됩니다.] [식당 및 식량 창고의 건축이 가능해집니다.]* * *
부스럭…
철 가루.
끈적…
이건 점액질 부스러기.
‘그리고… 혈석 조각인가?’
심처에 귀속된 전리품을 확인하고 있었다. 보통 던전 답파에 성공하면 해당 지역의 전리품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일회성에 불과한 보상이지만, 어차피 던전 수호 단계로 넘어가면 그쪽에서 보상을 주니까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 보상을 잔뜩 모아야 사역마들을 강화할 수 있다.’
사역마 본체를 강화하든, 사역마가 휘두르는 병장기를 강화하든 말이지.
부스럭…
‘그런데… 이렇게 많았나?’
정확한 양은 계산해봐야 알겠지만, 체감하기로는 게임에서보다 훨씬 많은 느낌이었다.
‘설마 인게임에서 획득할 수 있는 재화의 양이 다르다던가…?’
아직은 가설일 뿐이다.
정말로 바라마지 않는 가설.
“응? 이게 뭐지?”
페넥스가 어딘가로 쪼르르 달려갔다.
“무슨 일이지?”
“뭐가 지나갔어! 요기로!”
“…지나갔다고?”
“가봐도 돼?”
불길한 예감이 들어 부정했다.
“아니, 직접 가지.”
스으윽…
옥좌에서 일어나 고블린들, 그리고 루시퍼와 함께 페넥스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묘한 기분이군.’
던전은 모양새도 채 갖추지 못했고, 완벽하게 계획이 맞아떨어지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나를 둘러싼 이들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저벅…
저벅…
페넥스가 있는 곳에 도착하자, 녀석이 반겼다.
“나리! 여기야!”
“…….”
배시시 웃는 그녀.
“잘했지? 나 잘한 거지!?”
주먹을 꽉 쥔 양손을 앞에 모으고 물어보는 모습. 원반을 물어온 강아지 같았다.
누가 봐도 칭찬받고 싶어 안달이 난 모양새.
‘하지만.’
페넥스에게 지금 필요한 건, 상냥함이 아니다.
그렇기에 애써 반응하지 않았다.
“흔적은?”
“……응? 아… 흔적! 여기!”
페넥스가 안내한 자리엔, 무언가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뭔가 기다란 게 쓩! 하고 이어졌어!”
녀석의 말을 굳이 해석하자면, 길쭉한 무언가가 땅을 움푹 훑고 지나갔다는 뜻이다.
“이 흔적이 어디까지 이어졌지?”
“건너편까지!”
흔적을 살폈다.
굴착기가 한껏 대지를 긁으며 지나간 듯한 자리.
‘찐득하군.’
새하얀 뭔가가 흔적 곳곳에 남았다.
‘실…인가?’
아, 그런가.
…녀석이겠군.
“페넥스.”
“응, 나리!”
“이후로, 이 건너편엔 접근하지 않도록 해라.”
“…응?”
내 시선이 향한 곳으로, 페넥스의 시선 역시 따라갔다.
시커멓게 물들어 아무런 빛조차 흘러나오지 않는 곳으로.
“아… 응.”
이쪽의 일은 나중이다.
일단은,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
[건축을 위한 조건이 충족된 상태입니다.] [식당 및 식량 창고의 건축이 가능합니다.]내부의 큰 구조들은 변경할 수 없지만, 자잘한 부분들은 의외로 세심하게 만질 수 있었다.
마치 종이 위에 흐릿하게 덧댄 그림처럼 주변에 떠오르는 풍경.
길게 끌 것 없이 건축을 시작했다.
[식당 및 식량 창고의 건축을 시작합니다.]……
후우우우웅…
던전 코어의 마력에 힘입어, 주변 구조물들이 변화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놓이는 건 작은 크기의 식탁.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인원이 둘러앉을 수 있는 크기의 식탁.
의자와 찬장, 어설픈 주방까지.
거기에 더해 사역마의 특성에 따라 분류해 놓은 구역도 있었다.
식탁이 필요치 않은 녀석들도 있으니까.
‘나중엔 식당까지 오지 못하는 녀석들까지도 합류한다고 봐야 하겠군.’
기반 시설마다 건축에 소모되는 시간이 다르다. 식당 같은 경우, 던전 코어의 마력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부분이라 곧장 공간이 뒤바뀌고 있는 것이고.
눈 깜짝할 사이에, 핏자국이 흥건했던 공간이 식당으로 탈바꿈했다.
물론 아직 초급 단계라 조금 부족한 부분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식당의 모양새는 갖추었다.
‘뭐, 이것도 기존에 있던 것을 수복했을 뿐이니 금방 끝난 거겠지.’
끼익…
끼익…
찬장과 수납장을 일일이 열어보는 루시퍼.
달칵…
“식료가 제법 보관이 잘 되어 있습니다. 아, 여긴 꽤 좋은 차가….”
[식당 및 식량 창고의 건축을 완료합니다.] [식당 및 식량 창고에 노동력을 투입할 경우, 지금보다 효율적인 만족도 조성이 가능해집니다.] [현재 시설 만족도: 나쁘지 않음.] [Tip: 식당 및 식량 창고와 같이 사역마가 모이는 시설은 종종 친밀도에 영향을 주는 사건이 발생합니다.]드륵…
이미 식탁에 앉아서 침을 흘리며 주방을 바라보고 있는 페넥스.
입으로는 ‘밥… 밥….’을 연신 중얼거리고 있었다.
식당은 멀쩡하게 완성됐지만, 요리는 누가 할 것인가?
답은 정해져 있다.
스윽…
고블린 삼형제 중 투석병을 바라보자 녀석이 주방으로 걸어갔다.
[요리에 재능이 있는 사역마가 시설에 노동력을 제공합니다.] [시설이 조성하는 만족도가 일정량 상승합니다.]나머지 두 고블린은 정리가 미진한 부분들을 챙겼다.
가령, 죽어 나자빠져 피를 질질 흘리고 있는 질병 박쥐의 사체를 치운다든가 하는.
‘신기하네.’
손짓 한 번에 공간 자체가 탈바꿈하는 경험은 흔치 않다.
조물주라도 된 기분이랄까.
식당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하우징 시스템을 이용해 미리 준비한 가구 등을 배치하거나 구조를 바꿔 이곳을 꾸밀 수도 있고 마물들과 교류하며 친밀도를 쌓아 올릴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친밀도라….’
친밀도는 당장에는 크게 중요치 않아 보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땐 계속해서 신경 써야 하는 요소다.
‘사역마의 성능에 영향이 가니까.’
친밀도의 상승 자체가 능력치에 변화를 주고, 사역마가 후에 선택할 수 있는 스킬의 범주에도 영향이 있다.
심지어는, 중대한 이벤트의 해금 조건으로도 작용한다.
‘머리를 잘 썼지, 돈 빨아먹을 구석을 한 군데라도 더 찾아낸 거니까.’
친밀도 관리의 경우,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은 역시 선물이다. 게임에서는 엄청난 양의 선물을 대량으로 투입해 마물의 환심을 샀다.
‘난 이제 그런 방법과는 연이 없지.’
쉽고 편한 방법이 있다면, 당연히 어렵고 불편한 방법도 있는 법이다.
불평하기보단, 감사하도록 해볼까.
그래도 방법이 있다는 것에.
“우웃! 맛있어!”
“…….”
식당의 음식을 가장 먼저 입에 가져간 건 페넥스였다.
“이거, 맛있어! 나리도 먹어!”
“…….”
그러고 보니, 식사한 지 너무 오래되었다.
‘아니, 애초에 밥 먹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말이지.’
아내인 승아가 떠난 이후로, 홀로 밥 먹는 것에 익숙해지려 했지만 꽤나 어려웠다.
그래서, 식사는 내게 일종의 생존에 필요한 활동으로 전락했다.
드르륵…
내게도 내어진 정체 모를 스튜.
“…….”
정말로 정체 모를 스튜다.
정체 모를 재료가 듬성듬성 들어있으니까.
스읍…
한술 떠 맛을 제대로 느끼기 전에 목으로 넘겼다.
…이건, 게임이 아니다.
절대로 게임 따위일 리가 없었다.
단 한 순간에 그것을 깨닫고 마는 나다. 그만큼 오묘하고 현실감 생생한 질감과 맛이었다.
그렇다.
…이곳은 현실이다.
이제 이곳에서 먹고 자고, 살아가야 한다.
배고픔이라는 결핍은 금방 휘발되었다.
위장으로 흘려넘긴 스튜는, 텅 빈 속을 포만감 대신 공허함으로 채웠다.
“…….”
어쩐지, 스프를 더 떠넘기기가 괴로워져 일어섰다.
드륵…
“입에 맞지 않으십니까?”
루시퍼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딱히, 허기지지 않는군.”
뒤돌아 나가는 나를, 누군가의 말이 불러세웠다.
“고마워!”
“…….”
페넥스다.
슬쩍 뒤돌아보자, 녀석이 말했다.
“고마워, 나리!”
“…….”
“밥! 좋아! 페넥스 여기, 마음에 들었어! 맛있는 밥 줘서 좋아!”
적절한 대답은 뭘까.
독이 될 만큼 상냥하지도 냉랭하지도 않은, 페넥스의 장래를 생각해 가장 필요한 말.
음, 그게 좋겠어.
“배를 채워둬라.”
“…….”
“이후에도 할 일이 있으니.”
“…응!”
식당을 빠져나올 때, 메시지가 한 줄 떠올랐다.
[부활의 악마 페넥스의 파우스트를 향한 친밀도가 상승합니다.] [현재 친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