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50
제50화
썩은 뿌리의 던전 코어에 영혼들이 순조롭게 쌓이고 있었다.
대여섯 개의 파티가 분쇄되었으니 누군가 알아채는 거 아니야? 할 수도 있겠지만 대륙에서 해마다 원인 불명으로 사라지는 모험가 수를 생각한다면, 이 정도는 소금산에서 한 꼬집 떼어낸 정도에 불과하다.
‘몸에 활력이 돈다.’
나태하고 비루한 몸에 그 어떤 기적이 깃든 것인지, 몸 상태가 호전되는 게 느껴졌다.
뭐랄까… 마력을 담는 항아리에 마력이 서서히 차오르는 충만한 느낌?
그리고 그 항아리가 마력으로 가득 차면, 항아리가 깨지는 것이 아닌 더 큰 항아리가 자리할 것 같은 예감.
‘아니, 실제로 그렇기도 하지만.’
스윽…
‘내 몸이지만 신기하긴 하네.’
파우스트라는 존재는 정서적으로는 혼란스러울지 모르지만, 육체적으로는 꽤나 매력적인 부분이 많다.
이 몸의 무력 자체는 이미 완성형이다. 무슨 말이냐면, 내가 특별히 고민하고 훈련하지 않아도 움직임 자체에 결함은 없다.
깔끔하고, 완벽한 움직임.
문제가 되는 것은 나머지 부분이다.
신체의 내구력과 안정성이 증대되어야 비로소 파우스트의 진가가 나오겠지.
최신형 그래픽 카드와 각종 초호화 부품으로 무장한 컴퓨터가 발열을 잡지 못해 언제 터질지 모르는 것과 같은 게 이 몸이다.
‘뭐, 이대로 시간이 흐르다 보면 언젠간 나아지겠지.’
그때가 되면 불안에 떨며 외부 활동에 나서지 않을지도.
…내 몸에 대한 자조는 이쯤 하도록 하고.
“루비, 널 부른 이유를 아는가.”
“응, 오늘 바깥 녀석 중 한 명이 온다면서?”
뿌드득-!
늑대인간 루비가 기지개를 켜며 하품했다.
“하아암… 안 그래도 좀이 쑤시던 차였어.”
그때, 누군가 심처의 기둥 뒤에 숨어 루비에게 말을 걸어왔다.
“루비… 정말로 가는 거야?”
페넥스다.
나는 옆에 있는 루시퍼에게 속삭였다.
“…저 녀석은 부른 적 없다만.”
“이미 한참 전부터 이곳에 있었습니다.”
“왜 내보내지 않았지?”
“전 청소 중이었습니다.”
“…….”
루비가 해맑게 웃으며 페넥스에게 말했다.
“응, 페넥스. 당분간 자리를 비울 거야.”
“…잘 지내야 해.”
“페넥스도!”
이 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방문이 예정된 손님이 도착했다.
“빌.”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파우스트 님.”
처음 보는 식구가 신기한지 옆에 나란히 선 루비가 빌을 오묘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둘 다 첩보 활동에 활용될 인재들이기에 육성은 나쁘지 않게 되어 있다.
‘이제 문제는….’
둘 중 첩보 활동의 수장으로 활동할 자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5성과 4성의 전투력 차이는 막대하니, 무력을 생각해 루비를 수장으로 두기엔 걸리는 부분이 많았다. 성격이 치밀하지 못하다는 점과 아마 그녀에게 권한이 주어지면 빌과 모리가 그녀를 자중시킬 수 없을 거란 불안과 같은.
첩보 활동이란 게 무력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기에… 고민이다.
“잘 부탁해, 빌. 네가 내 대장이지?”
“…….”
“난 머리 쓰는 건 잘 못해서 말이야. 대장이 시키는 것만 하면 되지?”
…그래도 사리 분별은 괜찮은 편이었네. 그녀는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흡족한걸?’
서열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결정되었다.
빌에게 애 보기를 맡겨서 미안하지만, 우량아이니 이해해 줬으면 한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면…
“3인조에 대한 일은?”
“얼마 전까진 수확이 없다가 최근에 꽤 신빙성 있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신빙성 있는 정보?”
스테이지 2의 보스인 불쾌한 3인조에 관한 이야기다. 칼 쿠르소 때와 마찬가지로 미리 정보를 얻어야 대비할 수 있을 것 같았기도 했고 암시장에서 만났던 무두장이 롬웰과의 약속도 지켜야만 했다.
‘그쪽에서 준비가 되면 따로 연락을 주기로 했지만… 기다리기만 하는 건 하책이지.’
애초에 롬웰을 그렇게 신뢰하는 편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보다, 신빙성 있는 정보라니?
“리우디라와 인접한 곳에서 녀석들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뭐라고?”
녀석들이 이렇게 빨리 나와 충돌한다고?
“다만, 목격된 건 3인조 중 한 명인 칭이라는 자입니다.”
“칭… 한 명뿐이라고? 그거 확실한 정보인가?”
“틀림없습니다. 나머지 둘의 소재도 현재 수소문하고 있습니다”
이상하다.
그 셋은 늘 함께 다닌다고 알고 있는데….
‘아직은 나와 충돌하지 않는 전개인 건가?’
원래의 스토리 그대로 흘러간다면 한참 지난 후에야 에피소드 2의 보스로 등장하지만, 애초에 칼 쿠르소 때부터 이미 원작 그대로 흘러갈 거란 기대는 접었다.
불쾌한 3인조.
녀석들은 동방의 땅에서 흘러온 녀석들이다.
칭과 경, 백이라는 자들인데 동방에서 전해지는 꽤 특이한 힘을 다룬다. 성격은 셋 다 다르니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고, 무력이 특출난 건 기본이고 연계가 뛰어났다.
이 녀석들의 연계에 꿀밤을 맞고 나가떨어진 유저가 한둘이 아니다. …나가떨어진 이유가 꼭 이것뿐만은 아니지만.
아무튼 상당히 포악하고 잔악한 성격이지만, 그 무력이 막강해 롬웰이 쉽사리 제거하지 못했다는 게 기존 설정이다.
‘이렇게 쉽게 꼬리를 잡힐 만한 녀석들이 아닌데… 애초에 따로 떨어져 있다는 것도 이상하고. 뭔가가 녀석들의 행보에 영향을 준….’
번쩍하더니,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정신이 말끔해졌다.
‘그렇군… 왜 그걸 생각 못 했지?’
녀석들의 최근 행보가 특이한 이유는 아마도 지금 내가 짐작하고 있는 게 맞을 것이다.
‘그림할의 영지 때문인가?’
이 주변에서 최근의 가장 큰 사건이라면 역시 그림할 남작의 사망이겠지. 사건 자체는 아델리아가 수습했겠지만, 졸지에 영주를 잃은 영지 자체는 아직도 오리무중인 것 아닐까.
“빌, 혹시….”
빌에게 이에 관해 물었더니 그도 고개를 끄덕여 왔다.
“일전에 서면으로 전달하기는 했습니다만, 영지 문제에 관해선 아직도 마찰이 있는 모양입니다.”
“영지를 날로 집어삼키려는 귀족들이 많은 모양이군.”
“원래였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테니까요.”
“하기야….”
정체가 노출되지 않은 수십의 훈련된 사병이 있었으니 대외적으로는 더 많은 사병을 부렸을 거다, 그 녀석.
아마도 갈 곳 잃은 사병이나 기사들도 주변 영지에 몸을 의탁했을 거고… 이를 핑계로 영지 수습에 한 발 걸치려는 녀석들이 무더기로 나오겠지.
…폭풍전야인가?
“그런가… 용병 놀이라도 할 셈이로군.”
3인조는 아마도, 돈과 보물의 흐름을 읽고 이 조용한 영지 쟁탈전의 용병으로 흘러들어온 거고.
‘잘못하다간, 예상 못 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겠군.’
불쾌한 3인조는 개개인의 무력도 뛰어났으니 이들이 떨어져 있다고 해서 얕보아서는 안 된다.
“빌.”
“명령을.”
“아무도 죽게 하지 마라.”
잠시의 침묵이 흐르고.
“명심하겠습니다.”
* * *
“루비 양, 제가 당신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원래 남에게 다 존댓말을 쓰는 편이야?”
“보통은 그런 편입니다만….”
빌은 잠시 모리를 떠올렸다.
“아닐 때도 있죠.”
“헤… 나는 루비라고 불러. 그편이 부르기 편하잖아?”
“좋은 이름입니다. 그럼 루비,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당신의 무력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으니까요.”
“빌도 꽤 강하잖아?”
고개를 젓는 빌.
“저는 잠입과 요인 암살과 같은 임무에 익숙할 뿐이지, 순수한 무력은 루비에게 상대도 되지 않습니다.”
“음….”
루비는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태생 4성과 5성의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뭐, 앞으로 누가 빌을 괴롭히면 나에게 말해. 내가 혼내줄 테니까.”
“듣기만 해도 든든하군요. 괴롭힘을 당할 때 꼭 떠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키힛… 일부러 괴롭힘당하지는 말고.”
“아무렴요.”
둘은 리우디라에 와 있었다.
사실상 리우디라는 이미 파우스트의 앞마당이나 다름없었다. 이곳에 있는 모든 건물과 사람들에게 눈과 귀들이 따라붙으니 말이다.
혹여 그러한 안배들이 누군가에게 들키더라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빌과 모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파우스트의 이름조차 모르니까.
“빌, 근데 언제 와?”
“그 녀석 말이군요.”
“응.”
“…마침 저기 옵니다.”
그들만 있는 낡은 가게에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스윽…
“네가 루비인가 보군.”
“어? 인간처럼 생겼네?”
“킥….”
모리가 얼굴을 뒤바꿔, 루비와 똑같은 얼굴이 되었다.
“신기해!”
“하하하, 재밌는 여자야.”
“난 루비, 너는?”
“모리라고 한다.”
“그럼 저 남자는?”
“아, 소개를 잊었군.”
모리는 낯선 사내를 소개했다.
“거느린 녀석 중 제법 쓸모 있는 녀석이다.”
“똑똑해?”
“아니.”
“강해?”
“아니.”
“그럼 어디에 쓸모가 있는 거야?”
“눈치가 빨라. 앞으로 신경 쓸 일이 많으니 자질구레한 것들은 이 녀석에게 맡기면 된다.”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자신을 소개했다.
“르테오라고 합니다.”
“르테오, 응.”
이렇게 소개를 마친 인원은 주어진 정보를 점검했다.
“우선, 루비. 넌 이 녀석에 대해 아예 모르지?”
“이 녀석?”
“우리가 쫓고 있는 녀석 말이다.”
“응, 설명해 줘.”
모리가 슬쩍 르테오를 쳐다보자 르테오가 설명을 시작했다.
“불쾌한 3인조라는, 이 근방에서 유명한 자들이 있습니다.”
“으음… 이름부터 꺼려지네.”
“그들에게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3인조가 사용하는 힘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래? 평범하지 않구나?”
끄덕…
“그들은 모두 동방 출신으로, 특이한 무술을 구사합니다.”
“호… 난 무술가랑 싸워본 적은 없는데.”
“신체에 기(氣)라는 특이한 기운을 담아 휘두르는데, 변형된 마력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재밌겠네.”
루비가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그 녀석들 강해?”
“한 명 한 명, 강자인 편이기도 하지만 3인조의 합공은 아직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더군요.”
소개는 이쯤.
“이들 중 최근 3인조에서 따로 떨어져 나온 자가 있습니다.”
“갈라 선 거야?”
“그렇게 보이진 않습니다만… 그저 떠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
“사실 이상한 것이, 원래는 악행을 저지르더라도 남들의 눈을 피해 저지르는 편이었는데 최근 떨어져 나온 이 자는 가는 길마다 숨 쉬듯이 사람을 죽이고 있습니다.”
“주로 죽이는 부류는?”
“부랑자, 장사꾼, 신부, 창부 등… 사실 한 데 엮이기 어려우니 눈 마주치면 마구잡이로 죽인다고 보면 되겠군요. 짧은 기간 내에 무려 일곱 명이나 살해당했으니까요.”
“거, 이상한 놈이네. 솔로몬이 안 잡아간대? 왜 갑자기 살인을 이만큼이나…”
“변방의 일은 보통 해당 영지의 귀족이 처리하는데, 그림할 남작이 최근 흔적도 없이 급사했고 영지의 이렇다 할 주인이 없으니….”
빌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아마도 이 근방 귀족이 녀석의 뒤를 봐주고 있는 모양인 것 같습니다, 루비.”
“엥? 자기 영지가 될지도 모르는데? 영지민을 죽이는 놈을 보고 있다고?”
“그런 녀석이라도 이 영지를 손에 넣기 위해선 필요하니까 말이죠.”
“…아하.”
“이 근방 귀족들은 영지민의 목숨 알기를 파리 목숨으로 알기로도 유명하지요. 이해하셨습니까?”
“충분히. 요컨대 눈치 볼 필요 없으니 거리낄 것 없이 저지른다는 거구나.”
“그렇습니다.”
“죽여도 돼?”
“안 됩니다. 파우스트 님은 녀석의 소재를 파악해 더 많은 정보를 얻길 원하십니다.”
“으으음… 답답한데.”
“애초에, 녀석이 지금 어디 있는지 정확히 모르기도 합니다.”
르테오가 지도의 한 지점을 콕 찍으며 말했다.
“아마도 다음에 들를 곳은 이곳일 겁니다.”
“어째서?”
“여태까지 이 자는 들르는 곳마다 매번 노름을 했습니다. 그 판이 작든 크든 말이죠. 살인도 절반쯤은 이 과정에서 발생했고요.”
“살인에 도박에… 안 좋은 건 다 하는 놈이군.”
“경로를 쭉 따라가 보면 바로 이곳이 나옵니다.”
모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멘카니로군.”
“예, 거대한 도박장이 있죠. 경마장도 유력 사업이고요.”
“노름하는 녀석이 여기를 거를리 없지. 가깝기도 하고 말이야.”
끄덕…
모두가 빌을 쳐다보았다.
“멘카니로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