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51
제51화
유흥과 쾌락의 도시 멘카니.
물론, 변방의 도시답게 도시 인프라는 제도에 한참 미치지 못했지만 제법 운치는 있었다.
이 도시는 절제와 경건함을 권장하는 제도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항구 도시처럼 창관이 번성하지도 않았다.
도박.
오로지 도박뿐이다.
멘카니에는 거대한 도박장 ‘카트라니’가 들어서 있었고 영주 직권으로 이곳에서 행하는 도박은 불법이 아닌 것이 되었다.
그 결과, 일부러 이 변방을 찾아온 도박꾼들이 하루에도 수백은 되었다. 그들은 멘카니에서 먹고 입고 쓴다.
그것은 놀랍게도 이 도시를 병들게 하는 것이 아닌, 되려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래도 나름, 이전과는 달리 규모가 좀 있는 도시인데 경계가 허술하네?”
루비의 말에 모리가 대꾸했다.
“외부인이 이곳에서 쓰는 돈이 주된 수입원인 도시는 대개 이런 편이지. 밖은 처음이냐?”
“응, 줄곧 일족과 같이 지냈었으니까.”
“그거, 참 안 됐군. 신참에게 바깥세상의 찬 공기와 냉막한 시선을 느끼게 해줘야겠어.”
“오….”
“물론 나 말고 저 녀석이.”
모리가 귀찮은 것은 질색이라는 듯이 손을 휘젓자, 빌이 루비에게 말을 걸어왔다.
“루비, 인간들의 도시는 당신의 생각과는 많은 것들이 다를 겁니다. 아마 일족과 함께 지냈던 세월은 도리어 당신을 이곳에 적응하기 어렵게 하겠죠. 지금부터 하나하나 이곳의 문화들을 배워야 할 겁니다.”
“끄으응… 알았어.”
“그보다, 이걸.”
스으윽…
“이게 뭔데?”
“이곳에 어떤 목적으로 왔는지 잊으셨습니까?”
“옷이네?”
해진 옷 한 벌이 그의 손에 들려 있었는데, 피가 묻어 있었다.
“녀석이 남기고 간 것입니다.”
“오오, 바로 맡아볼게!”
킁킁…
킁킁…
후각이 예민한 루비가 옷에 남은 체취를 맡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으음… 헷갈리네.”
“이곳에 없는 겁니까?”
“아니, 확신할 수가 없어서. 몸을 씻고 향유를 바르기만 해도 체취는 사라지니까.”
“흐음….”
“놈이 또 도시 안에서 살인을 저지른다면 찾을 수 있어.”
“녀석이 아무리 멍청해도… 으음?”
빌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녀석이니 일단 이곳에 머무르면서 주변의 정보를 수집하죠.”
그 말에 루비의 시선이 가판에 놓인 과일로 향했다.
“헤에… 그럼 저거 먹어도 돼?”
“안 됩니다.”
“어째서!”
“식사 전에 무언가를 먹는 행위는 부적절합니다.”
“인간들은 그래?”
“그러더군요. 그들과 어울리려면 자제하는 편이 좋습니다.”
“끄응… 알았어.”
모리가 이들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르테오, 우리가 묵을 곳은?”
“중심가에서 살짝 떨어진 곳입니다.”
“말은?”
“숙소에서는 야간에만 돌봐준다고 해서 근처에 마장이 있으니 낮에는 그곳에 맡길 생각입니다.”
“…좋은 생각이군.”
숙소를 잡고, 말을 마장에 맡긴 후에 이들은 한차례 토의했다. 아무래도 이곳에 온 목적이 따로 있었으니 말이다.
칭.
불쾌한 3인조의 한 명인 그가 홀로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고 조금 더 공격적으로 꼬리를 밟기 시작한 게 5일 전쯤이다. 녀석은 마치 번쩍하는 번개처럼 이곳저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녀석의 흔적이 띄엄띄엄 발견되는 건 녀석이 하루에도 어마어마한 거리를 이동하니 중간중간 예측보다 더 먼 거리를 움직여서다.
반면에, 이렇게 쉽게 꼬리를 잡을 수 있는 건 녀석이 숨 쉬듯이 저지르는 살인 때문이다.
녀석은 누군가와 만나면 무조건 사고를 일으켰다. 간단한 폭력부터 살해, 최근에는 창관 하나를 통째로 장사를 접게 했을 정도다.
놈의 생김새는 한번 보면 좀처럼 잊기가 어려울 정도.
머리를 빡빡 밀고 이마에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얼굴엔 문신이 가득했다. 이는 몇 개가 빠져 있는데 몸은 단단한 근육으로 가득 차 있으니 누가 그를 잊겠는가.
“녀석이 지금 멘카니에 들어왔을까?”
“저희가 멘카니에 도착하기 전, 인근 마을에서 끔찍한 몰골로 얼굴을 으깨진 시체가 발견된 걸 전달받았습니다. 아마도….”
“…놈이 계속 움직이고 있다면 어쩌면 지금 이곳에 있을 가능성이 있겠어.”
“…알아보기 가장 쉬운 방법이 있지.”
빌이 손가락으로 멘카니의 가장 거대한 건물을 가리켰다.
아름다운 도박장.
카트라니다.
“저기 가서 알아보자고.”
“…난 인간들의 도박 따위, 흥미 없는데.”
“나도 딱히 관심은 없어, 대장.”
“…일단 다들 가보기나 해.”
* * *
“홀, 백린.”
“…축하드립니다.”
“와하하하하하하하! 이거 정신을 못 차리겠네!”
모리가 순식간에 손에 들어온 거금에 정신을 못 차리고 웃었다.
한쪽 편에서는 또 다른 도박이 이루어졌다.
“축하해요, 아가씨. 승리하셨어요.”
“으하하하하하하하하! 나 이거 재능 있나 봐, 어떡해!”
어느새 본말이 전도되어 도박에 푹 빠진 모리와 루비.
도박에 흥미가 없다거나 하는 말들이 다 거짓말이었다는 게 드러났다.
“저 멍청이들이….”
빌이 머리를 부여잡고 신음하며 옆을 흘겨보았다.
르테오가 차분하게 도박장을 살피고 있었다. 너무 빠르지도, 둔하지도 않게.
“아직 칭이 이곳을 방문하진 않은 것 같군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이곳의 경계병들 그 누구도 빌 님보다 강해 보이지 않습니다. 빌 님이 경계하시는 칭, 그자가 나타났다면 분명 사고가 있었을 것이고… 경계병들이 이처럼 긴장감 없이 행동하진 않겠지요.”
“…일리 있군. 우리가 너무 일찍 이곳을 방문한 건가.”
“그럴지도요. 하지만, 긴 시간 이동했으니 잠깐의 휴식 정도는 괜찮지 않겠습니까.”
“…….”
빌은 이 르테오라는 자를 이번에 처음 소개받았다. 모리는 좀처럼 뭔가를 소유하거나 아끼는 자가 아닌데, 이번 일정에 르테오를 반드시 데려가겠다고 말했다.
“이해가 되는군.”
“무엇이 말입니까?”
“산채에 소속돼 있지?”
“…부끄럽게도 그렇습니다.”
“산적이 되기 전에는 무슨 일을 했었지?”
“변변찮은 일입니다. 작은 도서관의 장서를 관리했었습니다.”
“그런 자가 어째서….”
“누구에게나 사정은 있는 법이니까요.”
그 말을 하는 르테오는 슬퍼 보였다.
그는 여전히 즐겁게 도박판에서 떠들고 있는 모리와 루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우리 모두에게 말입니다.”
르테오의 말대로다.
각자의 사정으로 사역마가 되어, 파우스트를 섬긴다.
섬기는 마음은 각자 다를지라도.
“기구하군.”
“나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
빌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도박판에 자리했다.
“응? 너도 끼게?”
“그래. 이번엔 어디에 걸 생각이지?”
“홀, 흑린.”
“나도 같은 곳에 걸지.”
“뭐? 그럼 졌을 때 크게 잃잖아?”
“이겼을 땐 더 크게 딸 테니.”
“…….”
달그락.
손바닥보다 큰 자기로 가려진 주사위가 드러났다.
“홀, 흑린입니다.”
“으하하하하하하하! 봤어? 봤냐고! 오늘 크게 딸 운명이야!”
“그래. 그런 것 같군.”
피식…
* * *
“이걸 봐라, 르테오.”
“보고 있습니다.”
“왕창 땄어. 산채에 있는 재산보다 족히 수 배는 될 거다.”
“다행입니다. 처음 도박에 손을 대면 보통 잃는다고 하던데.”
“인간 녀석들, 생각보다 재밌는 걸 하고 지내는군.”
르테오는 그 말에 대해 곱씹었다.
모리는 인간이 아니기에, 누군가와 어우러진 기억도 없기에 이렇게 좋아할 수 있는 거구나.
“루비 님은….”
“빌을 붙잡고 한잔하러 갔어. 그쪽도 잔뜩 땄거든.”
“…그쪽도 이해가 되는군요.”
“한동안 돈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 적어도 밖에 나와 있는 동안에는 말이야.”
“운이 따라줬네요.”
재미없는 반응에 질릴 법도 하건만, 모리는 르테오의 차분한 성격을 마음에 들어 했다.
…마음에 들어 했다?
아니, 쓸모가 있다고 느꼈다는 게 더 가까운 표현일 것이다.
르테오가 다른 화제를 중얼거렸다.
“칭이 죽인 자들… 얼굴이 모두 으스러져 있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실제로 보니, 꿈에 자꾸 나오더군요. 비위가 약한 편은 아닌데도 말이죠.”
“쯧….”
모리에게 살인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르테오가 느끼는 공포와 거리감에는 그리 공감하지 못했다.
“세간의 영웅들은 어째서 이런 놈을 안 잡아갈까요?”
“뭐, 그러니까 산적인 너도 아직 멀쩡히 잘 돌아다니는 거 아니겠어?”
모리의 말에 르테오가 히죽 웃었다.
“저는 잔챙이지 않습니까?”
“잔챙이지.”
“잔챙이는 눈치만 있으면 어지간한 놈들보단 수명이 깁니다.”
“킥… 모르는 거지. 뭐, 틀린 말은 아니다만.”
르테오는 산적치고는 유능했다.
분수를 알았고, 아부에도 소질이 있었다. 아마 지금도 산채에 소속되지 않았다면 마을에서 제 할 일 정도는 어렵지 않게 찾았을 녀석.
“그럼 저는, 마장에 맡겨두었던 말을 찾으러 다녀오겠습니다. 밤에는 숙소로 말의 잠자리를 옮겨야 해서요. 먼저 숙소로 가 계실 겁니까?”
“여기 있지.”
“그럼 5분만….”
모리는 밤공기를 마시며 사색에 잠겼다. 가끔,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왜 이렇게 열심인 거지?’
도플갱어는 무리 생활을 하지 않는다. 독립적인 성향이 강하며, 습성 역시도 다른 개체와 부대끼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특이한 체질인가 보군.’
나쁘지 않다.
그래, 오늘 밤은 나쁘지 않다 느꼈다.
앞으로 이런 날이 계속된다고 하여도 불평할지언정 불행하다 여기진 않을 것 같았다.
그래.
10분이 지나도록, 말을 찾으러 간 르테오를 기다리지만 않았다면.
저벅…
저벅…
모리를 향해 걸어오는 발소리엔, 말의 편자가 지면을 딛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험상궂게 생긴 얼굴에, 모리의 2배는 되는 덩치.
이마엔 자글자글한 주름과 이상한 문신들. 지금 모리에게 다가오는 건 아마도….
칭.
“…죽였나?”
“죽였어.”
모리가 싱긋 웃으며 답했다.
“곤란하잖아.”
“…왜 지금껏 내 꼬리를 밟은 거지?”
“꼬리가 길어서. 그보다, 알고 있었나?”
“닥치고, 답해라. 누구의 의뢰냐?”
“의뢰였는데 방금 내 일이 되기도 했어. 기분 나쁘거든, 내 소유물을 건드리는 건.”
“킥… 병신 같은 게.”
부우우웅-!
칭의 주먹이 눈앞에서 늘어나는 듯했다.
파아아악…
쩌어어어엉-!
양팔을 교차해 공격을 막으려던 모리가 마치 쇳덩이가 부딪혀 온 느낌을 받아 놀랐다.
그는 황급히, 칭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모리가 의태: 마주 보는 거울을 사용합니다.] [시야에 들어온 상대의 모습을 고속으로 흉내 냅니다.] [제한된 상대에게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상대의 능력을 일부 사용할 수 있습니다.]휘릭-!
땅을 짚고 회전하며 품에서 단도 세 자루를 꺼내는 모리.
픽-!
피이익!
픽-!
빠르게 내달리며 일정 간격으로 단검을 쏘아냈다. 그리고 기(氣)라는 이질적인 기운을 끌어내어 손바닥을 펼쳤다.
[모리가 홍류장(紅流掌)을 사용합니다.] [대상에게 물리 피해를 주며, 높은 확률로 출혈을 일으킵니다.] [이 출혈은 대상에게 이루어지는 치유에 장애를 일으킵니다.]형태를 흉내 내는 힘.
도플갱어 모리의 장기이기도 하다.
다만, 효과는 극히 제한적이다.
카피할 수 있는 종족은 인간이 거의 유일하며 가진 바 신체 능력은 모리의 원래의 힘 그대로.
즉, 진정한 강자에게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파아아아앙-!
충돌 순간, 칭이 요상한 팔 움직임을 사용해 모리의 팔을 억류했다. 또한 반대쪽 팔을 이용, 모리의 목을 제압했다.
“컥….”
“이딴 잔재주가 통할 거라 내게 생각한 거 아니지?”
모리의 복부에 주먹이 작렬했다.
퍼어어어억-!
“우우웁….”
“말해, 다른 귀족이 보냈나? 누구지?”
격통 속에서 몸부림치던 모리가 녀석에게서 벗어날 방법을 막 생각해냈을 때였다.
콰아아아아앙-!
묵직한 충격과 함께, 모리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리고 그건 칭도 마찬가지.
“케헥… 켁… 그러고 보니….”
모리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쪽은 동료가 있었어.”
달밤을 등지고, 빌과 루비가 서서히 다가왔다.